1월의 어느 날에
그는 '비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면서 내게 넌 '채움'의 연속이라는 말을 했다.
채움과 비움은 반대의 의미가 아니다. 비움은 채움의 대척점이 아니라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다듬어간다.
퇴임하면서 몽땅 비움일 것을 염려했다. 어느 날 일상이 사라지며 상실의 시간을 거치기도 하지만 어제와 오늘은 변함없이 계속된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5분 안에 잠이 든다. 단 한 번도 불면의 증세는 없었다. 심지어 초저녁 쏟아지는 잠으로 인해 고충을 느낄 정도이다. 새벽 두 시를 넘어 세시가 다가온다. 전례 시간이라면 잠시 후면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오늘은 서너 시간을 더 잘 수 있다. 또다시 네 시 다섯 시를 총총히 넘긴다. 내가 오늘 왜 이러나.
잠을 못 잔, 면접장에 나서는 나를 남편은 기꺼이 바래다준다. 한 시간을 기다려 들어간 면접장은 순식간에 끝이 났고 준비한것에 비해 아쉬움이 남았다.
사흘 후, 발표가 났고 '예비 합격생'이라고 했다. 처음엔 자존심이 좀 상했지만, 발 빠른 태세 전환으로 나를 다독였다. '예비하신 대로 하소서'는 내 기도 제목이었다. 뭔가 다른 뜻이 있겠지. 도와준 분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기분을 달래기 위해 다음 동작을 단행했다. 합격통지서를 받아놓은 학교에 등록을 하고 수강 신청을 했다.
그래도 알아는 보자는 심정으로 전화기를 돌렸다.
'예비 합격생은 몇 명인가요?' '2 명입니다.'
'예년에 미등록자는 몇 명쯤 되나요?' '한 명 정도입니다.'
'그럼 제가 예비 몇 번인지는 알 수 있나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2월 0일 메일 드립니다.'
'면접 후의 희망 고문은 지금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지만 마음을 비운다.
월급을 일정하게 받는 것도 아니요, 일주일에 삼일을 종일반으로 수업에 참여해야 하고, 왕복 세 시간을 마다하지 않은 건, 올 한 해 고생하면 내년부터는 봉사단에 소속된다는 게 좋아서였다. 같이 하는 분들도 궁금했고 수혜자인 할머니들도 궁금했다. 식문화로서 행복한 삶을 나눈다는 단체에 진심으로 음식을 신성시하는 내가 끌렸던 부분이다. 순수한 의미로 온전히 봉사의 길을 간다는게 좋았다. 작년 한 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고 그동안의 나 정도면 무난히 통과할 것이라는 자만은 나를 반성하게 했다. 요 며칠 말수가 줄었다. 대입 보결생의 심정을 한껏 맛봤다. 무엇보다 나이 상한을 지정한 모집요강에 조바심을 느낀 건 사실이다.
차선으로 50+센터에 지원서를 쓴다. 집 근처 복지관에 지원한다. '혹시 알아? 이곳이 내년에 졸업반 실습처로 쓰일지?‘
무엇보다 신기한 건 면접 연습 때 '만일에 합격하지 못하면 차선으로 어떤 봉사를 하실 건가요?'를 힘껏 외웠었다. 무심하게도 그대로 되려나?
약속된 날짜에 지정된 시간보다 정확히 한 나절쯤 전, 나를 찾는 낯선 전화가 있었다. 그렇게 노노에 들었다.
또 이렇게 소중하고 진기한 경험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