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강, 나의 성장 기록기

by 제니아

차정윤-제12강, 나의 성장 기록기


그날은 실로 우연이었다. 글쓰기 강좌를 위한 정윤 선생님의 글을 발견한 것은. 그때 나는 노노스쿨 졸업소회사를 맡아 한 해를 되짚고 있었다. 자연히 지난 시간 동안 써 온 글을 돌아보게 되었고, 글쓰기의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 기간 동안 열심이었던 글쓰기를 되돌아보는 지점이기도 했다. 그즈음까지 나는 유독 브런치에서 동아리 활동과 인연이 없었다. 혹시 발행한 글의 결이 맞지 않아 계속 밀려나는 건 아닐까, 혼자 짐작해 보기도 했다.


내 글쓰기의 출발점은 늘 ‘공무원의 글쓰기’였다. 기존 기획안을 정서해 다시 쓰는 일, 상황을 설명하는 정확한 문장들. 사근사근한 수사나 감정을 빚어내는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이력을 은근히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차정윤 선생님을 만났고, 이미 써 두었던 글들을 예시 강의에 맞게 고쳐 쓰는 데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과정에서 오래 품어온 의문 하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른 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거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잘 쓴 글을 완성하는데, 나는 왜 늘 일기장을 내보이는 심정으로 탈고를 해야 하는 걸까.

지인인 국어과 교장 선생님께 이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분은 우선 글쓰기를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처럼 많이 쓰라고, 필력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격려해 주셨다.


강의를 들으며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글은 내가 가장 잘하는 편지글처럼 풀어내면 되었지만, ‘사진을 자세히 서술하기’나 ‘감정을 감각으로 번역하기’ 같은 과제에서는 두 줄을 채우는 일조차 버거웠다. 지시문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내 서술 방식이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단답형이기 때문이었다.

‘옮겨져 있다. 놓여 있다. 앉아 있다.’

선생님은 “그렇다고 말하지 말고, 그렇다고 보여주라”고 하셨지만, 그게 쉽게 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의 글에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이 있었는데, 내 글은 그저 나를 빤히 노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도 「제4강 늘 그렇지만」, 「제8강 서하진의 제부도」, 「제10강 날씨로 분위기 있는 글쓰기」, 「제11강 여행기」로 이어지며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어쩌면 나 역시 내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자신감이 싹텄다.

회기마다 제목을 받을 때마다 마음속 결론은 늘 같았다.

절제된 언어로 글을 써 보자.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에도 정윤 선생님의 강의는 묵묵히 이어졌다. 이상하리만큼 선생님의 댓글은 큰 힘이 되었고, 든든한 지원군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한 에세이에 내 이야기가 서너 쪽이나 실린 책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것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이었다. 활자로 찍힌 이야기 속에 내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전혀 새로운 감각이었다.

그때부터 막연한 바람이 생겼다.

나 역시 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글을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이에게는 내 이야기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서, 짐짓 아닌 척 이야기를 보태는 방식으로.


소설 쓰기는 아직 경험이 없지만, 시점과 화자를 구상할 수 있다면 이야깃거리는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아닌 척하며’ 하고 싶은 말을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1회기를 마치고 다음 주가 되면, 막연한 상상을 구체적인 서사로 바꾸는 진짜 소설 실전편이 시작된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 주인공의 지인쯤이라도.

세상에, 나 자신에게 이야기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니.

마치 초급반 생도가 몰래 고급반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두려움과 기대가 동시에 밀려오는 이 양가감정이 낯설면서도 설렌다.


이 글쓰기 강좌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올해는 제법 잘 살아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본다. 그리고 조심스레, 내년의 나를 다시 기약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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