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을 마치며
당신도 신춘문예 작가가 될 수 있다.
이 전부터 구독하던 정윤 작가님의 새 브런치 북 제목이었다. 올해 하반기부터 나는 소설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들었다. 완전히. 혼자 벽을 마주하고 앉아 소설을 썼다. 왜 쓰는지, 어디를 향하는지 상관없었다. 소설은 오래 써온 에세이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장편 한 편과 단편 몇 편을 몇 개월 만에 홀린 듯 써 내려갔다. 가진 거라곤 무모한 용기뿐이었는데, 그 저돌적인 열정 덕분에 나는 소설이라는 열차에 간신히 올라탈 수 있었다.
외국에서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는 이과생에게 문학은 무인도와 같았다. 주변에 조언을 구할 친구도, 길을 물을 선배도 없었다. 읽기만 해왔지 배운 적 없는 내 소설에는 단점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몇 편을 써보니 되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그때 정윤 작가님의 공지 글에 손을 들었다.
'소설 쓰기 기초반.' 그래, 기초부터 시작하자. 걷다 보면 길이 나올 것이고, 내가 왜 쓰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알게 되겠지. 그런 마음으로 12주를 보냈다. 매주 브런치 북으로 올라오는 강의를 숙지하고 숙제글을 썼다. 정윤 작가님의 명료한 강의와 정성스러운 피드백은 흔들리는 내 경로를 잡아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라면 설명하고 싶은 욕심을 버린 것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장면을 그리는 연습을 하며, 자꾸만 가르치려 들던 사유의 덩어리들을 걷어내려고 했다. 늘 해석은 독자의 몫이어야 하니까. 그래서인지 요즘은 되려 에세이 쓰기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추상적인 표현과 철학적 수사를 지양하다 보니 생긴 변화이겠거니 싶다. 물론 여전히 걷어내야 할 것들이 많지만, 에세이를 쓰려할 때 느껴지는 생경함이 오히려 묘한 쾌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도 소설을 쓰는 근육이 그만큼 단단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인물과 상징을 배치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명한 서사로 전달하는 것. 그리고 끝내, 읽고 싶은 소설을 쓰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지만, 일단 열차에 올라탔으니 내릴 생각은 없다. 그렇게 나의 소설 쓰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좁은 길을 혼자 달리는 데 익숙했던 나에게, 함께 걷는 브런치 작가님들과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생긴 것은 큰 행운이다. 이 글을 빌어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넓은 길을 함께 걷다 보면 막막하던 풍경도 조금씩 선명해지는 게 아닐까. 이제 나는 새로운 목적지를 설정한다. 쉼 없이 쓰고 고쳐내어, 신춘문예에 도전장을 내는 그날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