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설적 글쓰기에 대하여

12강 과제- 종강하며 지난 12주 성찰하기

by 회색토끼

내가 정윤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단연 글빵연구소 모임에서였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짤막하게 강의도 해주셨는데 꽤 인상깊게 들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녀의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소설가라면 응당 겪었을 고뇌와 고민의 흔적들이 안면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녀가 소설 강의를 연다고 했을 때 주저없이 듣겠다고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초반 과제들은 소소했지만 사진을 보고 1시간동안 묘사만으로 이루어진 글을 쓰라는 과제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묘사를 피상적으로만 사용해왔는지, 내 글근육이 얼마나 부족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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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잘 안 풀릴 때, 또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 전에 많은 독서가 뒷받침되어야한다는 것도 돌이켜보면 좋은 가르침이었다. 이건 나도 물론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일단 나는 쓰는 데에 급급했다. 당장에 뭐라도 공모전이든 뭐든 상을 받아서 계약을 따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작가님께 혼날까봐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장편 소설을 제출해야하는 공모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장편을 쓸 깜냥이 안 되는 것도 알았지만 말 그대로 어쩌다보니 그리 되어있었다. 숱한 인터넷소설이나 웹소설을 써와봤지만 12만자의 장편소설을 갑자기 써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4000자씩 끊어 1회씩 올리는 건 익숙했는데 통으로 몇십만자를 써서 하나의 완결된,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써내는 건 고난이었다.

그 때 수업이 알음알음 도움이 됐다. 계절감을 표현하기, 감정을 장면으로 묘사하기 같은 기초적인 작법들을 조금씩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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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가 막힐 때면 작가님이 강조하신 대로 책을 읽었다. 비슷한 분위기의 소설, 비슷한 소재의 책, 내가 생각하던 문체의 소설을 찾아 읽으며 글을 썼다. 읽기 시작하니 비로소 막히다가도 써지기 시작했다. 말로만 들었을 땐 전교 1등이 ‘전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와 같이 피상적으로 들렸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그 중요성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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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글쓰는 시간은 책을 읽느라 더욱 줄어들었지만 경험치가 부족한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글을 쓰기 전에 읽기부터 하게 되었다. 지금도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구상을 하고 있지만 무턱대고 기승전결 잡고 써내려가지 않는다. 충분히 읽고 시작하려고 한다. 쓰지 않는 날엔 읽는다. 쓰지 않는다고 하여 뒤처지거나 감을 잃는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난 어느덧 알라딘 우수회원이 되어있었고 집근처 도서관에서 애기 책보다도 내 책을 더 많이 빌리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느 날 소재가 떠오르고 소재가 정제되고 갑자기 인물이 튀어나온다. 아마 인물을 표현하는 등 더 디테일한 부분은 실전편 강의에서 배우게 될 것이므로 더욱 다음 수업이 기대가 된다.

그동안 내가 소설을 얼마나 그저 재미만을 위해 써왔는지 반성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문학성까지 갖춘 신춘문예 등단 작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을,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아이를 재우고 책을 편다. 또는 작업창을 켜서 토독토독 키보드로 한 줄 한 줄 빈 여백을 채워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