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의 눈물

11강 숙제-정윤작가님 소설기초반 -여행에세이

by 하빛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여행 첫날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동유럽의 우기는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시작에 머물러 계절을 춥고 눅눅하게 만든다. 우산을 쓰기도 어색한 빗줄기가 처량한 눈물처럼 흘러내린다. 바르샤바가 어부(바르스)와 인어(샤와)라는 의미라는 말을 들으니 왠지 내리는 비가 인어의 눈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폴란드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몇 년 전 여름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밝고 활기가 넘치는 도시였다. 다양한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서로 개성 있는 패션을 뽐내듯 줄지어 서 있는 구시가지에 마음을 빼앗겼었다. 하지만 늦가을에 방문한 도시는 마치 처음인듯 낯설고 쓸쓸하기만 했다.


주변사람들을 의식해서 우산을 가방에 넣다 뺏다를 반복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동유럽 사람들은 웬만한 장대비가 아니면 우산을 쓰지 않는다. 폭우가 내리거나 태풍 올 일이 없으니 우산이 별로 필요 없다. 이곳에서는 비가 와도 그냥 모자나 후드티를 뒤집어쓰고 다니는 일이 당연한 일상이다. 결국 가방에 우산을 넣어두고, 나도 덩달아 가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축축한 광장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광장을 지나면 두 개의 골목이 나온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왼쪽 골목을 선택했다. 그냥 색색의 건물들이 줄을 지어 작은 길을 내고 있는 골목이 좋아 보였다. 그 길을 쭉 걸어가다 보니 빨간색 벽돌로 둘러싸인 건축물이 나타났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지어진 성곽인데, 기나긴 세월 속에 벽의 일부가 소실된 듯하다. 이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양쪽 벽에 기대어 마치 나를 환영이라도 하듯, 나무 두 그루가 서로 아치형을 만들며 손을 잡고 있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내리는 비를 견뎌내고 있는 샛노란 잎파리들이 빨간색 벽돌과 어울려 가을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결국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진 나뭇잎들은 바닥에 숨을 죽이고 누워있었다.

성곽을 이루는 빨간색 벽돌은 지난 세월의 평탄치 못한 삶을 보여주듯 울퉁불퉁 서로 다른 모습이었지만, 누군가를 같이 지키겠다는 마음 하나로, 다른 벽돌들과 가지런히 합을 맞추기 위해 자신을 내어 주었다. 세월 속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나는 멈춰 서서, 끝내 떨어져버린 나뭇잎들과 여전히 견뎌내고 있는 노란 이파리들을 축하라도 하듯 사진을 찍어주었다. 너희를 기억해 주겠다는 듯이 셔터를 누르다 보니 나도 그 이파리들과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비 내리는 동유럽의 가을은 어둡고 슬프다. 마치 지나온 어두운 과거를 품고 눈물을 흘리듯 마음을 가라앉게 만든다. 우산도 쓰지 못하고 그 슬픔을 함께 받아내야 할 것 같았다. 긴 겨울의 터널로 들어가는 초입길에서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매달려 있는 샛노란 잎파리들도 함께 눈물을 받아낸다. 맑게 갠 하늘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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