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ff Tweedy, [Warm] (2018)
제프 트위디(Jeff Tweedy)는 자신을 마주한다. 자신을 인지하고 자신을 향유한 뒤 자신에 반응한다. 이어 앨범 [Warm]을 자신의 사사로운 언어를 위한 공간으로 조성한다. 음반의 텍스트에게 자신의 모든 일상을 기반으로 삼기를 허락한다. 또한, 일상에서 벌어진 사건뿐 아니라 자신의 감응마저도 바삐 소화해내기를 요구한다. 그래서 제프 트위디는 [Warm]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다. [Warm]을 이루는 장면 대부분은 제프 트위디가 아닌, 다른 개체를 뷰파인더의 중심에 들이지 않는다. 그곳은 오로지 작가 주체만을 위한 현장이다. 심지어는 주체를 확실하게 포착하기 위해 아티스트와 친밀한 사건들마저도 사각 밖으로 밀어내길 꺼리지 않는다. ‘제프 트위디가 어떠한 일들을 경험했는가’ 식으로 귀결되는 묘사와 각색은 텍스트에서 어렵지 않게 탈락한다. 중요한 문제는 ‘결국 제프 트위디가 어떻게 반응했는가’다. 행간은 아티스트의 감상과 사유를 우선적으로 초대한다. 그 결과로 텍스트에 실재적인 묘사가 결핍할지라도, 혹은 주관적인 단상이 과잉할지라도 작품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이곳은 개인 서정의 현전만을 위해 마련된 자리다.
예컨대, 장기간 겪은 바이코딘 중독과 우울, 이들로 인한 가족과의 마찰, 재활 치료와 같은 여러 일이 가사 대부분의 배경을 이루고 있음에도 사건들에 대한 기술은 대거 해체된다. 사건들은 편린이 되어 아주 가끔씩 짧게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대신, 중독을 헤쳐 나오며 가졌던 죽음에 대한 갖은 단상, 소요하는 여러 감정이 끊이지 않고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글자와 글자 사이에 들어선다. ‘Don’t Forget’을 보자. 아들을 향한 전언 투의 텍스트 형식이 자칫 곡의 주제를 가족에 대한 미안과 사랑으로 비치게 하나, 내용을 정복하는 주된 사안은 죽음과 관련한 인식, 사려와 같은 것들에 해당한다. 표현 곳곳에서 이따금씩 드러나는 따스한 가족애는 무거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성찰에 적잖이 짓눌리고 만다. 이러한 연유로, 곡은 수취인과의 화맥이 분명하게 형성되는 메시지라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교술의 가타라 할, 아티스트의 독백에 가깝게 기능해버린다. ‘Bombs Above’와 ‘Having Been Is No Way To Be’도 이어서 보자. 약물 중독 및 재활 시기와 연관 있을 인용구와 같은 문장들이 각각의 곡에 내포돼있지만, 가사는 사건과 관계하는 상세한 진술로는 확장되지 않는다. 핵심은, 사건을 우회하는 언어들로 써나간, 자신의 침잠, 자신과의 대면, 자신의 회복이다.
그런가 하면 ‘How Will I Find You?'는 어떠한가. 곡은 ‘천국이 기실 외로울 공간일지 모른다’는 사후에 관한 아티스트의 상상에서 출발한다. 이어 먼저 죽은 아내를 천국에서 고독히 찾아다닐 발화자 한 명과 텍스트를 창조해낸다. 그러나 ‘How Will I Find You?’를 위한 제프 트위디의 이미지화는 단 여기까지다. 어떠한 사건의 개입 없이 자신의 상상만을 구체화하는 데에도 아티스트는 많은 묘사, 서술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여타 성분들을 죄다 탈거하고서 발화자라는 존재 하나를 곡 한복판에 내려놓고는, 모호한 세 문장 대사만을 그에게 안긴다. 어쩔 수 없이 피조물의 언어와 곡의 가사는 ‘당신을 어떻게 찾을는지 / 나는 알 수 없어 / 당신은 알게 되겠지’의 반복과 횡행으로 채워진다. 이 황량한 시에서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존재는 그렇게 세 마디 화언이 전부다. 제 상상을 위한 발화자에게마저도 제프 트위디는 너그럽지 않다. 인물에 대해 일언반구 없는, 너무도 부족한 묘사는 발화자가 그 자신으로서 우리에게 소비될 수 있을 기회마저도 제거해버렸다. 곡의 온몸을 구성하는 것은 결국 범박하고 공허한 언어로만 기록된, 그래서 창작자만이 온전히 파악 가능하고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없을, 사후를 그린 작가의 상상이다. 오직 작가만이 이 곡의 전부를 소수할 수 있다.
트랙리스트 막바지에 놓인 ‘The Red Brick’과 ‘Warm (When The Sun Was Died)’도 살피자. 감정이 과격하게 분출하는 전자도 그렇거니와, 그 분노가 희미한 희원으로 차분하게 전환하는 후자 역시 제프 트위디의 요동하는 감응만을 취급한다. 도처에서 연속하는, 의미가 불명확한 독백들은 아티스트 스스로 내면을 집요하게 뒤적여야만 건져 올릴 수 있는 산물들이다. 제프 트위디라는 주체는 작품을 최대한 점유하려 하며 작품은 주체의 분광을 통제하지 않는다. 위 트랙들은 그러한 움직임이 초래한 결과다. 그러므로 어떠한 의미에서 [Warm]은 뜨거운 작품이다. 모든 트랙이 작가의 일상과 견고하게 연결돼있음은 물론, 작가 스스로와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투영한다. 윌코(Wilco)와 엉클 투펠로(Uncle Tupelo)를 아우르는 제프 트위디의 오랜 경력 내 그 어느 작품도 [Warm]만큼이나 아티스트의 삶과 행적, 그로 인한 여러 감응과 밀접하게 닿아있지 않았다. (모호할 정도로 다의적인 개념인) 진정성의 윤리가 최선의 행위로 여기는 자기 이해, 자기 표현의 측면에 있어 작품은 상당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 내부의 모든 동작에 이미지를 부여한다는 측면에 있어서도 음반은 대단한 역동성을 확보하고 있다. [Warm]은 분명 자신을 치열하게 받아들인 음반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Warm]은 밋밋한 음반이기도 하다. 이는 앨범의 사운드에 관한 서술이다. 사운드는 가볍고 간편하다. 스타일의 거개가 컨트리와 포크로 구성돼있는 데다 편곡의 양태 역시 결코 과하지 않다. 사운드의 상당수는 어쿠스틱 기타의 찰랑거리는 음향과 슬라이드 기타의 아득한 울림, 가사와 멜로디가 기꺼이 매개로 삼는 제프 트위디의 푸근한 목소리에 의지한다. 이들은 사운드의 근경에 자리를 잡고는, 모든 트랙의 러닝 타임 대부분을 여리게 이끌어가면서 작품 내에 잔잔한 정서를 조성하는 데 기여한다. 트랙리스트의 시작점에 놓인 ‘Bombs Above’가 대표적인 증거에 해당하겠다. 몇 안 되는 악기들의 여백 많은 연주는 널찍한 음장과 2분이 조금 넘는 시간을 간신히 채우며 고요를 만들고 또 유지한다. 리듬에 약간의 활기를 불어넣은 곡에서도 사운드의 구성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리듬 섹션이 조금은 긴밀하게 움직이는 ‘Don’t Forget’, 리프 선율이 리드미컬하게 엮인 ‘I Know What It’s Like’, 고전적인 컨트리 셔플 리듬이 느슨하게 흔들거리는 ‘Let’s Go Rain’에서도 과잉하지 않는 사운드는 분위기를 주조해내는 데 있어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제프 트위디에게 얼터너티브 컨트리, 혹은 뉴 밀레니엄 아트 록의 대명사라는 권위를 부여한 변칙적인 요소들의 비중 역시 크지 않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리버스 이펙트 음향을 후경에 배치하고 노이즈의 크기를 과격하게 키우는 ‘The Red Brick’ 정도가 이 맥락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곡일 테다. 그러나 그마저도 소리의 커다란 콜라주나 비선형적인 전개가 러닝 타임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제프 트위디식 음악 전형에 비해 미약한 변칙성을 보인다. 음장 밑바닥에 신시사이저 라인을 깔아놓는 ‘Some Birds’나 몽롱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조성한 ‘How Hard It Is For A Desert To Die’, 흐릿한 앰비언스 속에 유약한 드론과 복잡한 퍼커션 비트를 단속적으로 배치한 ‘From Far Away’, 여러 소리들 간의 옅은 간섭을 이끌어낸 ‘How Will I Find you’에서처럼, [Warm]의 제프 트위디는 대개 장치들을 어렴풋하게 배치하고 소리를 조심스레 방류하는 방식으로 비정형의 사운드를 디자인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사운드는 더욱 밋밋하게 다가온다. 윌코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도 가장 심심한 사운드를 지녔다던 최근작 [Schmilco]보다도 그 모양새가 미지근하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Warm]에 담긴 위의 두 성격, 치열함과 밋밋함이 조우하는 기제에 있다. 이 둘은 어떻게 서로 작용하는가. 제프 트위디가 소리의 다채로운 가능성을 절제하며 만든 미적지근한 사운드는 주체의 충만을 위해 공간을 내어준다.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울 수 있게끔, 더 나아가 목소리 너머의 텍스트들, 그 너머의 자아들, 그 너머의 주체가 연이어 선명해질 수 있게끔 사운드는 자신의 결핍을 섬세하게 유지한다. 루츠 음악 위주의 스타일링이 가진 짙은 관습성과 재래성은 파격과 다분히 거리를 벌렸을 정도로 결코 특별하지 않으며, 곳곳에 놓인 슬라이드 기타와 신시사이저, 드론 식 운용, 여러 이펙터, 너른 사운드스케이프와 같은 장치들은 물론이거니와 힘을 뺀 리프와 릭 역시 창작자의 이야기를 보조하고 주제에 살며시 살을 덧대기 위한 정도로만 작용한다. 그 여백 많은 자리에서는, 제프 트위디가 여러 번 되새김질한 ‘나’, 수차례 자신과 대질하게 한 자아들, 숱한 사건들 속에서 공재했던 많은 감응, 존재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출현한 여러 심상이 저마다의 언어를 내뱉고 저마다의 울림을 키우며 작품 속, 가장 동요하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내발린다.
이 기제는 두 층위에서 흥미를 유발한다. 작게 보면, 죽음과 고독을 이야기하고 은연중에 감정을 고백하다 결국에는 자신을 쏟아내는 데 있어, [Warm]의 사운드는 적확한 공간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밋밋한 사운드가 만드는 공간은 아티스트의 주변에서 자극적인 기교라 할 것들을 방지한다. 이곳은 독백이 위력을 발휘하기에 최적인 장소다. 제프 트위디의 노래에 앞서 운을 떼는 앨범의 첫 트랙 ‘Bombs Above’의 악기들은 스스로를 제어하며 신중하게 소리를 내고, 짧은 노랫말을 허공에 느슨하게 내뱉는 ‘How Hard It Is For A Desert To Die’, ‘How Will Find You’에서도 사운드는 단어와 단어 가운데에 생기는 공백에 이질적인 소리 뭉치들을 쉽사리 배치하지 않는다. 가사들 사이에 놓인 제프 트위디의 호흡, 감응의 여운은 방해로부터 자유롭다. ‘From Far Away’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비정형적인 드럼 비트도, ‘Having Been Is Now Way to Be’의 허리께에서 스트링처럼 끼어드는 신시사이저도, ‘Some Birds’, ‘Don’t Forget’의 보다 풍성한 편곡도 제프 트위디의 공간을 크게 왜곡하지 않는다. 정적인 분위기는 재차 정돈된 상태로 유지되고, 때로는 감응의 재현, 혹은 모방과도 같은 모습을 연출하며 독백과의 호흡을 유기적으로 구성한다. 새삼스럽게 짚는 이 지점이 첫 번째로 흥미를 발하는 요소다.
크게 보자. 한편으로 이 앨범은 근원적인 대비를 가진 작품이다. 자기 파괴와 침잠, 회복으로 이어지는 경험, 그리고 그 인근의 숱한 감상을 투하할 정도로 제프 트위디는 오체를 앨범에 내던지나 사운드는 충분히 따라오지 않는다. 어떻게든 추적하다 아쉽게 낙오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맹렬히 추적하기를 원치 않는 형상이다. 사운드는 소요하지 않는다. 가사가 행갈이될 때마다 감응이 켜켜이 포개어질 때도 [Warm]의 사운드는 쉽사리 누적되지 않는다. 이렇다 할 누적이 없으니 긴장의 개운한 해소 또한 있을 리 만무하다. 사운드 장치들은 긴장이 쌓일 그 지점 언저리만을 아슬아슬하게 건드리고는 금세 해산한다. 이들은 기어이 터지지 않고야 만다. 그나마 ‘The Red Brick’의 후반부 노이즈가 분노의 과감한 표출을 대신하나 이 파열음마저도 너무도 빠르게 해체되고는 순식간에 전소된다. 그 가운데서 문득 그런 순간을 만난다. 제프 트위디의 투신은 매 순간 강렬히 다가오는데, 사운드는 한 발 뒤로 걸음을 무른 채 관조하는 듯 보이는. 이렇게 보면 [Warm]은 불균형의 작품이기도 하다. 절제된 서정이 가지는, 창작과 결과 간의 불균형이 제프 트위디와 음악 사이에도 다분하다. 이 측면이 두 번째로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다.
어느 기제, 혹은 어느 방식에 따라 [Warm]을 바라보든 간에 요는 다음과 같다. 이 앨범에서 제일 거대한 존재는 작품의 주체로서 움직이는 제프 트위디라는 것. 사운드와 유기적으로 호흡할 때에는 그 모든 것과 어우러져 목소리를 내는 주인공임을, 사운드와 불균형적으로 대응할 때에는 그 모든 것에 앞서 작품 내에서 가장 강하게 공명하는 실체임을 반드시 짚어야겠다. [Warm]에는 제프 트위디의 목소리와 어쿠스틱 기타들이 만드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컨트리, 포크 선율이 있고, 몽환적으로 음향을 퍼뜨리는 사운드스케이프와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비선형의 장치들도 있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최종적으로 감각에 오랫동안 담아야 할 인자는 제프 트위디 스스로가 되짚고 게워내 가며 언급한 흔적들이다. 이 흔적들이 비로소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어서는 시공간을 조성했으며, 끝내는 여러 음악과 [Warm]이라는 결과를 만들었기에. 그러므로 다시 한번 우리는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이 앨범은 제프 트위디라는 인물을 위한 장임을, 그 자신의 내면을 갈아엎어 감응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장임을, 그리고 그 감응들을 기꺼이 파종하기 위한 장임을.
그러고 보면 [Warm]이 발매되기 한 해 전, [Together Last]가 제프 트위디라는 이름을 아래 탄생한 첫 앨범으로 등장한 바 있었다. 하지만 해당 작품의 내용물이 모두 윌코와 골든 스모그(Golden Smog), 루즈 퍼(Loose Fur) 등의 밴드를 통해 이미 발표된 곡들을 다시 부른 소품들이었으니, 한편으로 [Together Last]는 제프 트위디만의 세계관을 완벽히 담보할 수는 없는 작품이었다. 그런 점에 있어 우리는 [Warm]을 두고 진정한 의미에서 제프 트위디가 처음으로 제시한 자신만의 앨범이라 부를 수 있을 테다. 여러 측면으로 자신의 실재를 투여한 작품임은 물론, 그의 지난 음악 이력들로부터도 탈피한 작품이니 말이다. 정리하자. 짐짓 부드럽고 나른하게 보이는 이 앨범에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무거운 진동이 존재한다. 그 진파를 따라 진원 가까운 곳으로 거슬러 가보면 그곳에는 거울을 바라보고 갖은 물음을 던져대는 하나의 ‘나’가 있다. 작품에서 우리가 느낀 진동에는 그 물음이 방사되며 생성된 소산이 있을 테고, 그중 일부가 거울에 반사돼 나오는 산물이 있을 테고, 또 거울이 넌지시 답하며 발생한 결과가 있을 테다. 다시 말해, 우리가 [Warm]에서 경험한 것은 한 주체가 자신과 드잡이하며 써 내린 확인의 기록들이다. 그것도 아주 대단한 열기와 역동성을 내포한.
-수록곡-
1. Bombs Above
2. Some Birds
3. Don't Forget
4. How Hard It Is For A Desert To Die
5. Let's Go Rain
6. From Far Away
7. I Know What It's Like
8. Having Been Is No Way To Be
9. The Red Brick
10. Warm (When The Sun Has Died)
11. How Will I Find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