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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요 Apr 27. 2022

가족 앞에서는 가장 힘든 게 감정 다스 리기다.

소중하다는 말과 기대로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지 


항상 마음에 담아 두는 일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드러나도 괜찮은 속 마음은 말 하지만 그 속에 있는 건 말할 수가 없다. 

사실 말할 수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 싸움을 더 크게 만드는 일일까 봐 그 마음은 꾹꾹 눌러서 글이나 그림으로 만든다. 당사자와 대화만 잘 이어 나가면 별일 아닌 일이다. 

지난 주말 가족 넷이 만나기는 오랜만의 일이었다. 

30년이 넘은 짧지만 긴 평생 우리는 가족사진을 하나 찍은 적이 없었다. 

그날 각자 다른 곳에 사는 넷이 시간을 맞춰 겨우 만나 드디어 가족사진 하나 찍으러 가는 뜻깊은 날이었다. 

하지만 웬걸 늘 뭐든 계획대로 잘 되면 하나가 뒤틀리거나 삐뚤어져야 성에 차는지 그날도 그런 날이었나 보다. 날씨는 완벽히 좋았고 가족 넷 모두 아침부터 분주히 각자 맡은 일을 잘 처리해 내고 있었다. 

모든 게 정확한 타이밍에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바로 촬영하기 한 시간 전까지 말이다. 

우리가 넷이서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4시였고 아빠는 일 때문에 4시 30분에 나는 그전부터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빠가 일하는 곳에 같이 있었고 우리 모두는 아빠가 일 때문에 조금 늦으리라는 건 짐작했기에 그 부분은 괜찮았다. 4시 50분까지만 출발하면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생과 엄마가 약속한 시간까지 그곳으로 오지 않았다. 처음 전화를 했을 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말했고 그래도 오지 않자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 밖에서 그냥 만나면 안 되겠냐고 했다. 

우리가 있는 곳에 엄마가 갈아입을 옷이 있는데 엄마는 아직 옷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바로 우리 쪽으로 오라고 이야기를 했고 4시 40분쯤 느지막이 서야 도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볼멘소리를 했다. 이렇게 늦게 와버리고 출발해버리면 시간 약속이 늦게 된다고 혹시나 우리가 늦어서 밀리면 어떻게 하냐고. 집을 벗어나기 전까지 다급한 마음에 재촉했고 이렇게 늦어서 어떡하냐고 했다. 우리가 출발하게 된 시각은 5시가 다 돼서였다. 그러자 동생은 폭발해버렸고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쳤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시간 약속을 한 이유가 뭔데. 나와 동생이 짜증 섞인 말로 말싸움을 시작하자 엄마가 동생 편에 합세했다. 조금 늦은 거 가지고 뭘 그러냐. 가만히 좀 있어라.라는 나의 의견을 잡아 뭉개고 막아버리는 말들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는 역시나 매번 늘 남동생 편만 들지.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평생에 걸친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그게 사실이었고 나는 그 레퍼토리가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이어진다는 게 너무 싫었다. 한평생 이어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아빠까지 폭발하게 되었고 이럴 거면 취소하고 가지 말자라고 우리 모두를 침묵하게 만들었다. 나는 너무 서러웠다. 서러워서 눈물이 펑펑 났다. 엄마는 왜 이 정도 가지고 이 난리냐고 했다. 전형적인 가해자의 어투였다. 별것 아니었지만 기분이 상했다. 원래 기분은 별거 아닌 거에 상하는 거 아닌가. 다행히 모두 차에 탑승한 후 침묵 속에 아빠가 중재를 해주셨다. 

'누나가 충분히 그런 말 할 수 있어. 우리 모두 4시에 만나기로 했고 그전에 약속했으면 그걸 기본으로 지켜줘야지. 그리고 당신은 당신 기분만 가지고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며 대하면 안 돼. 그러면 안돼.'

그 묵직한 한마디가 나의 서러움에 기름을 부었다. 나는 너무 서러웠다. 나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눈물을 꾹 삼키며 한마디 했다. '나는 대화를 하고 싶었어. 사실 아무 말이 아니었는데 그 작은 거 하나로 이렇게 욱할 일인지 나는 정말 모르겠어.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내가 화장한 얼굴로 엉엉 우는 걸 본 아빠는 오늘 사진 찍기는 글렀다며 다시 돌아가자 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사과면 돼. 대화만 제대로 나누면 돼. 대화로 풀어서 마음이 풀리면 그걸로 된 거야.' 엄마는 옆에서 미안하다. 또 미안하다. 마음에도 없는 텅 빈 공허한 말만 입 안에서 맴돌았다. 그 사과는 나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그냥 이 상황을 무마시키고 싶어서. 남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또 해주셨다. 그건 아빠의 직업병이자 아빠가 가진 가장 좋은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나는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평소에는 늘 감정을 잘 다스리고 침착하려고 노력하지만 가족 앞에서는 가장 힘든 게 바로 감정 다스 리기다. 쉽게 스크래치가 나고 쉽게 난만큼 짧은 시간 안에 상처가 아물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소중하다는 말과 기대로 얼마나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지 모른다. 나도 가족의 일원이기 때문에 욱 하는 성질이 있다. 지금보다 좀 더 혈기 왕성하고 치기 어린 시절 마음이 많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본 경험이 있은 후로는 전보다 많이 줄긴 했다. 하지만 간혹 가족들에게는 불쑥불쑥 그런 날것의 감정이 쉽게 올라온다. 자잘한 것들 사소한 감정들이 지나쳐지지 않는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들이 얼마나 싫었으면 이상형 1번이 욱하지 않는 재미없어도 잔잔하고 차분한 사람이었다. 대화는 상대를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된다. 다른 사람이 말하려고 하는 입을 막는 순간부터 소통은 더 이상 되지 않는다. 나의 부족한 점과 잘못된 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게 소통의 기본자세다. 

그것을 들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소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대화와 소통과 그의 부재에 대한 무게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가진 직업은 많은 사람들을 중간에서 중재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게 그 어떤 것 보다 중요한데 매번 부딪히는 일들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솔직하게 대화로 소통하는 일이다. 

조금만 나를 내려놓고 솔직해지자. 처음은 어렵지만 한번 시작하고 나면 별로 어렵지 않아 진다. 

가장 중요한 건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과 나 스스로에게 솔직한 마음 그리고 내 마음을 말로 풀어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잘못하고 실수한 것 인정한다고 큰일 나는 것 아니다.

모든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나도 반성하고 인정한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갈고닦고 반성하고 돌아보고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힘내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나를 알고 받아들이기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보는 이 여정을 계속해서 해나가자. 이 글에서 툴툴대서 살짝 미안하긴 하지만 사실 나는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아낀다.라고 이제 와서 뒤늦은 변명을 해본다.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 이 글의 주인공들에게 메롱 니 똥 굵다라고 전해주고 싶다. 지지고 볶아도 모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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