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선요 Aug 15. 2022

하루 길었던 여유 있던 주말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토요일 봉은사에서 수계식 및 수료식을 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기초입문 과정을 마쳤다. 의외로 시원섭섭했고 서른이 되어 종교를 가져봐야지 하고 다짐했던 것의 첫발을 내디딘 것 같았다. 

아직도 여전히 나에게 종교를 가지는 건 어렵고 불교 공부도 어렵다. 

어떤 마음 자세로 가지는 게 바른 마음가짐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린 시절 교회로 종교의 첫 발을 내디뎌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타 종교의 여운이 남아있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종종 내부에서 약간의 마찰이 생기긴 한다. 

하지만 불교로 정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자연에 둘러 쌓인 절을 방문하는 게 나에게는 행복과 기쁨이었으니까. 

하나만을 꼭 정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수계식 때 약간의 의식을 한 이후에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는 기분은 든다. 

이후 코엑스를 갔고 채식에 관한 만화를 봤다. 공장식 축산, 동물권을 보면서 또 다시금 조금 더 노력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은 바뀔 수 없지만 조금은 노력해 봐도 괜찮겠지. 요즘 안 그래도 더워서 그런지 육류가 그렇게 당기진 않았다. 원래 구운 채소를 좋아하기도 하고. 쓰읍 맛있겠다. 

쓰는 도중에도 침이 고인다. 

채소를 가지고 한 요리를 좀 찾아봐야겠다. 물론 여전히 나의 냉동실에는 고기 한 덩이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지만.

사나를 만났고 공차를 마시고 중국음식이 땡겨 중국집으로 갔다. 공차를 마신 뒤에 바로 저녁을 먹으러 가 안에 타피오카 펄이 널뛰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짜장면을 보니 입안에 침이 고였고 방금 전 채식 만화의 영향이 무색하게도 세트 B 깐풍기까지 시켜 먹었다. 깐풍기는 매웠고 짜장면은 정말 맛있었다. 베트남 고추가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었고 (사실 정확한 이름을 몰라 엇비슷한 걸 찾아봤다.) 목구멍이 따끔할 정도로 매콤했다. 사나는 아무렇지 않게 잘 먹었지만 나는 눈물이 찔끔 났다. 

저녁을 먹고 한 바퀴를 돌아 지하철을 탔다. 평소에는 잠실역에서 환승을 하거나 내려서 걸어오지만 그날은 종합운동장에서 환승을 했다. 분명 환승하는 게 덜 걸리고 덜 돌아간다고 해서 덥석 물었더니 전혀 아니었다. (째릿) 

집으로 돌아와 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었다. 확실히 강제성을 띤 독서는 그렇지 않은 독서보다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자율성을 부여해 달라고 늘 소리치는 나였지만 직장인은 자율성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은 평온했다. 이불 빨래를 하러 갔고 다시 더위가 다시 뒷걸음친 것 마냥 땀이 뻘뻘 났다. 간단하게 샐러디에서 아침을 먹었고 이불을 건조기에 넣은 뒤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하지만 웬걸 가는 날이 장날 이라더니 그날은 마트가 매달 두 번 쉬는 날 중 하루였다. 아침 운동 잘했다 생각하고 천천히 다시 돌아와 이불을 픽업했다. 

이불은 포근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갓 꺼낸 호빵처럼 뜨끈한 이불을 두어 번 펄럭인 뒤 집으로 오는 길에 혹여 땀이 묻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했다. 집에 와 샤워를 하고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쉬며 책을 좀 보다가 장을 보러 나갔다. 오늘 저녁은 사나가 새송이 구이를 해주기로 했다. 바나나를 사려고 했지만 아직도 더운 여름이라 날파리가 생길까 봐 포기했다. 동네에 새로 생긴 마트로 장을 보러 갔고 비빔밥 해 먹기 좋은 큰 다라이 사은품도 받아왔다. 다이소도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땀을 한 바가지 쏟았다. 

한 번 더 샤워를 했고 사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새송이 구이는 정말 황홀했다. 정말로 황홀 그 자체! 버터의 담백하고 느끼하고 기름진 맛이 나는 너무 좋았다. 사나는 조금 느끼하다고 했지만 나는 정말 좋았다. 두부조림도 만들어 줘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사나가 와인을 먹고 싶다고 해서 우리는 저녁을 먹은 뒤 장을 보러 다시 나갔다. 버섯을 또 샀고 와인과 필요한 물건을 한 번 더 샀다. 몇 시간이 지났다고 하늘은 그새 어둑어둑해졌고 바람은 선선하게 불어왔다. 공원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과 공기가 참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사나는 다시 요리를 만들었고 세팅을 모두 다 하고 와인 오프너를 찾고 코르크를 따기 직전에 나는 생각이 났다. 요즘 피부에 트러블이 생겨 약을 먹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아임 쏘리~ 

한껏 뾰루퉁 하게 삐져있는 사나를 어루고 달래주었다. 와인 마시는 건 다음 주로 미루기로 했고 새송이 구이는 반찬통에 담아뒀다. 비가 조금씩 오고 있었다. 


월요일은 아침에 일어났다. 따뜻하게 밥을 데워 이미 만들어진 미역국을 끓이기만 해서 준비하고 어제 만들어둔 반찬들과 파김치를 꺼내 먹었다. 먹고 난 뒤 뒷정리를 하다 사나가 신발장과 그 주변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말 나온 김에 한번 손을 대볼까 생각하며 고민함과 동시에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사나의 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이미 판은 벌어졌다.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종이 가방도 비닐도 잘 버리지 못해서 모아두는데 구석에 모아둔 그 물건들이 그렇게나 많을 줄은 정말로 몰랐다. 

종이가방과 비닐봉지가 어림잡아 백 개 정도는 나온 거 같다.  빼고 빼고 또 빼도 계속해서 나왔다. 무슨 도라에몽 가방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나오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번엔 사나가 찌릿 눈빛을 보냈고 나는 끄덕끄덕 내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리를 하는데 장장 세 시간이 걸린듯했다. 정리를 하며 예전의 내 모습과 기억과 추억들도 느낄 수 있었다. 잊고 있었던 물건을 찾기도 했고 쓰지 않는 필요 없는 물건들은 가차 없이 내놓기도 했다. 

물건 정리는 늘 해야지 하면서도 혼자서 마음먹고 하기엔 참 어렵다. 그렇게 또 창문을 다 열어놓고 땀을 빼며 모두 정리한 후에 샤워를 했다. 밖에 쓰레기를 한 번 더 내놓으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감자튀김 냄새가 진동을 했다. 

사나와 눈빛을 교환한 뒤 우리는 바로 늘 먹던 햄버거 집으로 갔다. 매장을 이전한다고 적힌 걸 봤는데 기간을 보지 못했었나 보다. 공사 중이다. 반찬가게가 새로 생긴다고 하네. 요즘 마트와 반찬가게가 주변에 많이 생긴다. 

자취생인 나에게는 잘된 일이지만 호호 앗싸. 그래서 우리는 맥날에 가기로 한다. 

새로 나온 갈릭 버거를 먹으며 불고기버거가 코리안스러운지 갈릭 버거가 더 코리안스러운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나는 매번 먹는 버거를 먹었고 우리는 그렇게 나름의 긴 휴일을 마무리를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작가의 이전글 비가 내리는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