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발을 짚고 다니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지하주차장에서 아파트 입구로 들어가는 그 짧은 거리도 한 번에 가지 못하고 쉬었다 가야 할 정도다. 아이는 어서 오라며 재촉하고 ㅎㅎ
사무실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니 훨씬 편하다. 그런데 문도 혼자 못 열고 물도 떠오지 못하니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동료 선생님이 정말 많이 도와줬는데 나는 도움 받는 게 민망하고 미안하고 어색해서 혼자서 휠체어에 앉아보려고 하다가 넘어질 뻔했다. 도움을 잘 받는 것도 능력인데 나는 왜 이렇게 도움 받는 것이 힘들까?
늘 도와주는 사람이고 싶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리가 다친 것은 불가항력이었고 내 능력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도 도움이 불편하다니… 병이 깊다. ㅎㅎ
다시 잠이 안오기 시작했다. 오늘 그룹 슈퍼비전 시간도 참 재밌었다. 사례를 읽을 때 내담자들 마음에 공감이 안돼서 내가 집중을 잘 못하는 건가 했었는데 접촉이 잘 안 되는 내담자들이었다. 내 촉이 맞았다는 생각에 더 재밌었다. 내 촉을 믿어주자.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은 하나도 보려고 하지 않고 부족한 모습을 현미경으로 보듯이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치고 싶어 하고 남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니 괴로울 수밖에. 내가 스스로를 아껴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으니 나를 인정해 줄 타인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예전에는 타인들에게 엄청 잘했다. 눈치 많이 보면서 그들이 좋아할 것 같은 행동을 하고 내 의견이나 생각을 정립하기보다 남들에게 맞추기 바빴다. 그러다 번아웃이 오고 더 이상 남들에게 맞출 에너지가 없어지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요즘은 마음을 잘 나누지 않는다. 친구들 생일도 그냥 넘어가기 일쑤고 각종 기념일에도 먼저 안부인사를 보내지 않는다. 그런 내가 삭막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지금의 에너지와 상태에서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다.
예전의 나는 그렇게 사람들을 챙기면서 그게 기쁨이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 시기가 지난 것 같다. 너무 안 해서 걱정이긴 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정반합이 있으니 내가 나를 더 잘 보살피고 여유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을 챙길 수 있겠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챙김을 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차고 그것이 흘러넘쳐서 자연스럽게 주변에도 흘러가기를 바란다. 이 말을 작가님이 했던 것 같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 밤이다. 오랜만이네. 12월의 시작이 우울하지 않아서 감사하다. 한 해를 돌아보며 차근차근 정리해 봐야지. 기록의 사계절 아카이빙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