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짓이 하고 싶은 이유

살아 있다는 느낌을 찾고 싶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by 무정인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나쁜 짓이 하고 싶어지는 순간은 대개 밤이다. 그것도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있는 밤. 낮 동안에는 여러 역할 속에서 하루를 버티듯 살아간다. 상담에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감정을 조율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를 돌보고, 또 하나의 하루를 무사히 지나가게 하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갈 즈음이면 몸도 마음도 어딘가 조금 지쳐 있다.


그런 밤이면 나는 문득 어디론가 나가고 싶어진다.


분위기 있는 팝송이 잔잔하게 흐르는 바에 가서, 조용히 혼자 앉아 술을 마시고 싶어진다. 너무 시끄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고요하지도 않은 곳. 바 테이블에 앉으면 바텐더와 가끔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곳이 나의 참새 방앗간이다.


술을 한 잔 주문하고, 잔을 손에 쥔 채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씩 풀린다. 찬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올라가는 담배 연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딘가 막혀 있던 곳이 조금씩 뚫리는 느낌이 든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가 배경처럼 흘러가고, 가끔은 바텐더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 대화는 대개 아주 사소하다. 오늘 하루 일이 바빴다거나, 음악이 좋다거나, 야근이 끝난 후에 들렀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에 나는 굉장히 또렷해진다.


마치 낮 동안 흐릿해져 있던 내가 갑자기 선명하게 돌아오는 것처럼. 그때의 나는 엄마도 아니고, 아내도 아니고, 상담사도 아니다. 그냥 혼자 술을 마시러 나온 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나쁜 짓이 하고 싶은 사람이기보다는, 어쩌면 살아 있는 느낌을 찾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술을 한 잔 마시고, 음악을 조금 더 듣다가, 바텐더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나면 어느 순간 자리에서 일어날 때가 온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져 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무정인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양극성장애로 감정의 진폭을 안고 살아갑니다. 잘 버티는 날보다, 자주 흔들리는 날들을 씁니다.상담사이고 엄마이지만, 여전히 나도 잘 모르는 채 살아갑니다.

7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3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매거진의 이전글나쁜 짓이 하고 싶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