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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기 Mar 06. 2017

사회성이 약한 아이



그 아이는 내면이 약한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대학기숙사에 가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아이는 타인의 공감을 받으려고 과잉행동을 하게되었다. 그리고는 공부를 소홀이 하게되었다. 지금은 만나는 친구 없이 혼자서 지내고 있다. 타인과 자아정체성을 혼동하고 있다.


진로를 선택할때, 남들이 모두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식으로 할 수 없다. 성적이 비슷하다고 모두 같지않다. 내적으로 준비안된 사람이 있고, 사회성에서 강한 사람이 있다. 혼자사는 힘은 집안에서 키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바깥 생활에서 터득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깊은 물에서 수영할 수 없다. 그 사람의 실력에 따라서 점진적으로 깊고, 더 넓은 물로 인도해야 한다.


어려운 것은 그 아이가 어느 정도 혼자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 가늠하는 것이다. 일단 한번 혼자 물에 넣어본 다음, 수영하는 것을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보조기구를 주던가 아니면 물밖으로 끄집어 내야 한다. 그 진로가 그 아이에게는 시기상조가 될 수 있다.


판단력, 사고능력, 용기, 세계관, 이런 것을 보면 그 아이가 사회능력이 있는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등장한다.


나이는 만 22세, 대학 4학년다니다가 호주로 워홀을 갔다. A는 4개월전에 호주의 서부로, B는 2개월전에 호주의 동부로 갔다. A는 호텔에서 house keeper로 일하면 시급 22불을 받는다. 일하는 중간 휴식시간에 백인동료들과 대화를 할 기회는 많이 있지만, A는 오래 이어나가지 못한다. 항상 자신의 영어가 부족해서 첫 마디 오고가면 그 다음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야 할지 모른다. A는 집에서 영어공부를 한다. 단어도 외우고, 책도 보고, 미드를 보면서 중요한 표현을 암기한다. 일주일에 25시간만 일하므로 공부할 시간은 많다. 호주온지 4개월이 됬지만, 아직 여타의 백인 친구들은 생기지 않았다. 그는 점차 자신의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됬다. '내가 청소일 하러 호주왔나? 영어는 늘지 않고' 한국이 그리워졌다. '이럴 것이 아니라, 그냥 한국에 돌아가서 마저 대학을 마치고 얼른 취업을 해서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제 부터 A 를 살펴보자. 왜 호주워홀을 가게 되었을까? 무었을 얻고자 온 것일까?

대학 4학년때 회사 인턴을 나갔다. 그 인턴 6개월을 마치면 바로 그 회사에 정직원으로 채용되는 노선이였다. 다른 대학생들에 비해서 취업문제가 해결되는 길이 였고, 그 분야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였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서 회사생활을 해보니, 권위적인 조직, 과로, 불합리한 기업 문화등이 다가왔다. 아무리 분야가 맞는다고 해도 이런 분위기에서 직장을 다니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앞으로 무얼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본인 전공 경영학을 해서 경영분야의 일을 잡았는데, 적응하고 싶지 않았다. 공백을 가지기로 했다. 회사를 6개월만에 관두려면 명분이 필요했다. 부모는 반대할 것이고, 직장을 못잡은 친구들은 의아해 할 것이다. 이때 그녀가 선택한 것이 호주워홀이였다. 영어를 배우면 다른 곳에 취업할때 유리할테니, 일단 나가보자. 호주에서 1년 지내면서 영어실력을 늘리고, 여유자금을 모으면 그 다음 진로를 정하는데 유익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일자리가 많고 한국인이 상대적으로 적은 호주의 서부로 갔다. 일은 많이 있었다. 대부분 육체노동이다. 호주로 가니 영어할 기회는 많았다. 버스를 타도, 쇼핑을 해도 모두 영어다. 처음 몇달은 좋았다. 하지만 3개월이 넘어서면서 한계에 부닥쳤다. 현지 오지(Aussie - 호주인에 대한 별명)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었다. 그는 일을 마치고 오면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우울증이 왔다. 돈은 좀 모으지만 영어는 정체된 것 같았다. '호주 간다고 영어가 느는 것이 아니구나, 자기 하기 나름이구나' 는 결론이 떠올랐다. 자신이 하는 일이 영어를 배우기에 마땅치 않은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일을 하면 영어를 더 늘릴수 있을까? 내니를 생각해보았다. 백인 집에서 24시간 생활을 하면 영어가 많이 늘것이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니 경험이 없었다. 아기 돌보고, 간식준비하고, 청소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 더 큰 걱정은 주인집에서 자신을 가족의 일원으로 대우해주지 않고, 식모로 부리면 어떻하나? 주변에 내니 일을 잡았다는 워홀러도 보기 힘들었다. 나머지는 과일 농장, 공장, 청소등의 일자리들 뿐이였다. 골치가 아팠다. 그는 귀국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대학은 졸업했고, 다시 직장을 잡아야 한다. 새로 잡는 직장이 편한 곳이 될수 있을까?


B의 사연을 들어보자. 그는 취업과는 좀 상관이 없을듯한 '사회학'과를 4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휴학을 했다. 졸업하기 전에 외국가서 영어를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향후 진로를 고민할 시간을 가지고자 워홀을 조사했다. 캐나다와 호주를 저울질하다가, 호주로 정했다. 이 단계에서 나와 상담을 했다. 그는 막연하게 캐나다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다. 유학자금은 없었다. 영어는 3년전에 치룬 토익 800점이 있었다. 캐나다 워홀을 권할수도 있었지만, 그가 유학자금이 없으므로 호주가서 좀 벌고, 영어와 해외적응력을 늘리라는 취지로 호주워홀을 권했다. 그는 12월에 호주로 입국했다. 1월 한달을 해변에서 열심히 놀았다. 백인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내가 여기서 '그'라고 표현한 것은 '남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과 상관없이 지칭한 것이다) 남자워홀러들이 백인 여자들과 사귀는 일은 드믈다. 하지만 그 반대는 흔하다. 그는 안되는 영어에도 불과하고 떠들었다.


그= 그 여자 = 그녀


그녀는 잘 웃었다. 해변가에 가니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많았다. 동네의 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모임에도 참석했다. 유창하지 않지만, 자기 생각을 말했고, 그렇게서 알게된 사람들과 파티도 했다. 그녀는 한달을 무조건 놀기로 작정했다. 자신에게 휴식을 주기로 한 것이다. 두달째로 접어들자 가지고 온 돈이 별로 남지 않게 되었다. 노는 것이 돈이 더 나간다.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기왕지사 영어를 보다 잘 배울 수 있는 내니를 알아보기로 했다. 이력서를 리본까지 붙여서 100통을 만들었다. 내니일을 해본적은 없지만, 부풀려서 경험이 있는 것처럼 꾸몄다. 본인 스스로 '구라'잘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버스타고 부촌으로 가서 집집마다 자기 이력서를 넣었다. 한 일주일 그 일을 했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인터넷 사이트에 가서 구직게시를 했다. 그러다가 시드니에서 아이둘을 키우는 부모가 내니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다. 부모는 전화면접후에 바로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여기에 실려있다.


 호주워킹할러데이 오실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B는 요즘 9인분의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들어간 집이 초딩 자녀 두명, 대학다니는 유학생 세명에게 홈스테이를 제공하며 부부가 모두 직장생활을 하는 집이였다. 애들을 돌보는 것이 내니인줄 알았는데, 하는 일은 식사준비와 청소등 가정부 일이 더 많았다. 받는 돈에 비해서 일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연락이 안오던 내니일자리가 취업을 하고 나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주당 400불을 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어디로 갈지 고민중이다.


B는 애들을 돌봐본 적이 없다. 하지만, 독립심이 강하다. 고향을 떠나서 고등학교때부터 학교 기숙사생활을 했다. 대학도 대구에서 학교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집을 떠나서 혼자 산지가 7년이 된다. 고교시절에는 락밴드를 만들어서 전국순회공연을 한 경험도 있다. 혼자 있을때 자기 기분을 조절하기 위해서 일부러 크게 웃는 연습을 한다. 웃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사람들과 말할때 크게 웃는 편이다. 호주가서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서 스스로 망가진 행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상대에게 크게 반응하고, 서투른 영어지만, 욕도 섞어가면서 말을 하면, 호주애들이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고 제안을 해오곤 했다고 한다.


혼자 자취하면서 요리를 했다.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챙겨야 했기때문에 건강식을 주로 했다. 마침 내니 부모는 한국음식은 웰빙푸드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였다. 아무거나 좋으니 웰빙으로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래도 외국인을 상대로 9인분의 식사준비를 하는 것은 도전이다. 그녀는 오늘도 '구라'를 치면서 요리를 하고 있다. 이것 저것 만들면서 버티고 있다.


두 사람은 동갑이다. 대학 4학년 여대생이며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없다. 호주로 간 주요 목적은 '영어', 그리고 할수 있으면 돈을 모으는 것,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호주가서 적응하는 태도는 상반된다. 이 차이는 겉으로 드러난 스펙만으로는 알수없다.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취업을 하면 주변사람들은 모두 동일하게 보는 두 사람이지만, 내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 사회적응능력은 확연하게 다르다. 나는 요즘 캐나다 워홀보다 호주 워홀을 더 권하는 편이다. ( 그 이유는 다른 글에서 밝혔다) 워홀이라는 것은 혼자서 사냥감을 찾아서 생존해야 하는 게임이다. 누군가 요리를 해서 서빙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앉아있으면 웨이터가 와서 주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냥감을 찾아나서고 용감하게 활을 쏘는 사람이 더 많은 먹거리를 얻을 수 있다.  사례에 소개한 A와 B가 호주에서 적응하는 방식이 전혀 다른 것은 이런 차이때문이다. B는 일찌감치 집을 떠나서 외로움을 견뎌가며 살기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적응하고, 내것을 챙기기 위해서 푼수짓도 해야하는 것을 배웠다. B는 체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였다. 또래들에 비해서 몸이 약해서 종종 쓰러지는 환자다. 자기 몸을 위해서 먹거리를 잘 챙겨야 한다는 것을 십대때 깨달았다. 대학 4학년때 교통사고 입원을 하면서 휴학을 해야 했고, 호주행 비행기표를 구매해놓고, 저혈압으로 쓰러지다가 몸을 다쳐서 출국을 취소한 액운도 있었다. 이런 저런 사고들이 그녀가 호주를 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가족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물만난 고기처럼 호주생활을 즐기고 있다.


호주라는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나'가 문제다. 내가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면, 자신의 기대치를 조절할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진로, 생활방식을 알수 있다. 자기를 알아가는 일,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고, 어떤 일을 잘 하고 못하는 지를 알아가는데 시간이 걸린다. 20대 후반이 되면 대부분의 청년들은 자신의 장단점, 능력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눈높이에 맞는 길을 택하기 쉽다. 하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자신을 잘 모른다. 그래서 다른 한국청년들이 호주서, 캐나다에서 어떤 일을 했으니까 나도 해보자는 것만큼 무모한 것도 없다. 사람의 내면이 다른데, 겉만보고 진로를 정할 수없다.


처음 소개한 A는 직장생활과 호주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조금 힘들어도 더 버티면서 한가지를 자기것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이 대한민국에서 최악의 직장이 아니라면 거의 모든 직장생활은 그와 비슷할 것이다. 말이 안되는 관행으로 돌아가는 회사도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면서 사회를 배워나가면 언젠가는 그것을 발판으로 더 나은 일을 할수있다. 호주에와서 시야가 넓어졌을 것이다. 한편 그 안에 적응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세상과 춤을 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 힘으로 터득해야 한다. 혼자 날수 있는 새는 자기가 태어난 둥지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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