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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기 Mar 27. 2017

(영화) 더 킹

각성한 사나이

영화 클래식에서 보던 그저 외모 수려한 청년 조인성이 아니었다. 이제 인생의 산전수전을 겪은 티가 난다. 정치드라마인 영화 <더 킹>은 조인성, 정우성, 배성우, 김아중의 쩌는 연기자들과 함께 well made 코믹 정치 영화다. 한재림 감독이 만들었다. (완전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 못 본 사람을 읽지 마시라)


주인공 박태수 검사(조인성분)는 권력지향형 인물이다. 거칠게 살아온 양아치 아버지 밑에서 여동생과 함께 전라도 어촌에서 공부 안 하고 싸움만 하는 태수가 개과천선해서 고시공부에 몰두, 서울대 법대를 진학해서 사법고시에 한 번에 패스한다. 권력을 가지고 싶어서 검사가 되기로 작정했다. 민중을 대변하여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서 법관의 길로 들어선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정치검찰인 서울 중앙 지방검찰청 전략 수사 3 부장 한강식의 문하로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권력의 개가 돼버리면 당연히 쓸모가 없어졌을 때 버림을 받게 된다. 태수가 한강식에게 팽을 당하자, 한강식이 경쟁자에게 했던 방식을 역이용해서 그대로 복수전을 펼친다. 검사직을 버리고 야당에 입당, 정치 1번지 종로구에 출마하면서 정치검사 한강옥을 구속시켜버린다. 


박태수 같은 복수전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십 대 때부터 싸움을 즐겼다. 검사가 된 후에 주먹 대신에 법으로 싸울 뿐, 싸움은 그에게 일상이고, 쾌감이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남자의 양아치 눈빛이 좋아서 결혼을 했다. 이 사람은 끝까지 민중이나 정의의 편에 설 사람은 아니다. 성장배경에서 민중의 아픔이나 구조적 모순을 혁파하자는 아무런 공감대가 없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현실 속에서 깨닫고 그것을 이용해서 권력을 잡아보자는 생각뿐이다. 단 한번, 민중의 아픔이 와 닿은 것은  정신발달 장애인의 딸인 여고생이 권세가 집안의 체육선생에게 성폭행당한 사건을 처리하면서 가진 부당함이다. 태수가 경계선을 넘는, 즉, 법대로 일처리 하는 공정한 평검사에서 권력의 주구로의 정치검사로 접어드는 계기가 이 체육교사 성폭행 사건을 유야무야 처리하면서부터이다. 단, 하나의 부당한 일처리는 나중에 더 큰 부정의 씨앗이 된다. 


한번, 양심을 거스르면 그다음 번 거스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묘한 기분에 빠지면서 태수는 음흉한 어둠의 세계에 빠져들어간다. 이때 뱀의 역할을 하는 것이 학교 선배 검사인 양동철(배성우 분)이다. 뱀은 사람의 흔들리는 부분을 파고들어서 '이거 별거 아니야, 한 번만 눈감아주면 달콤한 세계가 열려'하면서 유혹한다. 뱀은 유혹도 잘하고 언제든지 독으로 물어 죽이기도 한다. 태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그 뒤에 끌고 들어오는 세계가 있다. 양동철의 세계는 호텔 옥상 팬트하우스에서 내노라는 검찰, 언론, 재벌들의 친교 파티장이다. 재계와 정계를 주물럭 거리는 권력을 가진 기득권자들의 세계다. 이 세계는 태수가 잠시 잊어버렸던, 그러나 무의식에서 열망해 왔던 바로 그 권력의 세계였다. 


검사장 한강식은 그의 롤모델이었다. 한강식같은 검찰 권력자가 돼보자는 의도는 고등학생 절친이자 잘 나가는 조폭 부두목인 최두일(류준열 분)의 사망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된다. 태수는 한강식을 지향하고 있었지만, 한편, 의리와 우정을 지켜준 친구 두일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두일은 태수에게 순수했던 고등학교 때의 자아였다. 권력지향이 자신의 또 다른 자아를 살해해 버린 것이다. 아내를 배신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친구를 죽게 만들면서 권력의 개가 되어 버린 자신을 발견한 태수는 아노미 상태에 빠져서 자신을 술로 학대하기 시작한다. 술에 절어 베란다에 쓰러진 태수가 병원에 실려가면서 망가져 버린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병상에서 태수는 이 모든 것이 한 가지 사건에서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가난한 여고생이 체육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돈 몇 푼에 합의하게 만들어준 일이다. 그때 성폭행범을 감옥에 처넣었다면, 자신은 법과 원칙을 지키는 평검사로 순탄한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사람은 반성하는 동물이다. 반성은 그 사람을 새로운 차원으로 인도한다. 그는 권력의 세계를 맛보았고, 그것이 초래한 망가진 인생, 억울하게 당하는 많은 서민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세상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었다. 영화는 태수가 장차 어떤 인물이 되는지를 확실하게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노무현이 시위로 연루된 학생이 기획수사에 희생당하는 일을 변호하면서 민주화운동에 눈이 뜨이게 되었던 것처럼, 여고생 성폭행 사건을 통해서 각성을 하는 계기를 아주 살짝 보여주었다. 


사람에게 각성이란 책이나 명상을 통해서 체득되는 것이 아니다. 사건과 그에 응답하는 방식을 통해서, 즉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된다. 태수가 양아치 아버지 밑에서 막살아보기도 하고, 공부해서 사시도 통과해보고, 법관이 돼서 권력도 휘둘러 보고, 사회적 약자도 겪어보고, 친구를 위해서 목숨도 버리는 우정도 체험해 보면서, 그는 훨씬 성장하게 된다. 비록 경계선을 넘어서 권력형 정치검사로 살아보았지만, 권력에서 버림받게 되면서 태수는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하게 된다. 따라서 사람은 너무 과거만 보고 재단할 일도 아니고, 과거의 잘못에 사로잡힐 것도 아니다. 결국 사람은 변한다. 반성을 통해서 제대로 된 길을 늦었지만 찾아가면 된다. 


잘 만든 영화이며 극장에서 돈 주고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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