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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기 Mar 13. 2017

쫀득한 일상

chewy life

무얼 말해도 그냥 덤덤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므로 상대가 하는 말에 엷은 미소로 악수 표정을 짓지만, 소위 방송용어로 'reaction'이 별로다. 영어 초보일 시절에 원어민과 대화하면 토막 난 질문과 답변으로 주제가 점프하는데, 그는 친구의 말에 공감도, 반대도 하지 않고, 학교 다녀온 손자를 바라보는 링거 주사 맞고 있는 할아버지 같은 자세로 응대하고 있었다. 


대화는 찰기 없는 밀가루 반죽처럼 툭 끊기고 잠시 '침묵'이라는 단어를 떠오를 정도로 휴식을 취하다가,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주로 다른 사람들이 말을 꺼내고 재주 피면서 익살을 떨었다. 모든 대화는 서로 적당히 흥분제를 먹을 때 신이 난다. 탱고 춤의 맛은 튕기고, 부닥치고, 늘어지면서도 기계적인 리듬을 타는 데 있다. 대화도 쫀득해지려면 서로 튕기고, 당기고, 늘어지는 듯하다가 반전이 터질 때 환호한다. 


쫀득한 일상. 


적당히 바쁘고, 기승전결이 있고, 휴식과 유머 뒤에 긴장과 흥분이 하루 동안 이어지면 그 날 하루가 쫀득해진다. 이것은 마치 요리과정과 같다. 시장에서 요리 재료를 구매해서 손가락으로 이것저것 뜯어먹어보면 맛이 별로다. 하지만, 적당히 섞고, 데피고, 뒤집고 하면서 감탄스러운 음식이 탄생한다. 그것도 다 먹고 나면 포만감과 함께, 험상궂게 더럽혀진 빈 접시가 남게 된다. 설거지를 하고 식기대에 그릇을 올리고 나면 완벽한 빈 접시로 돌아간다. 환희란 기억과 경험 속에만 존재한다. 그것은 애초에는 없었고, 노력을 통해서 결합되면서 상승하다가 폭죽을 터뜨리고 다시 우글쭈글해지고, 세척물에 씻기고 무로 돌아간다. 


하루란 그렇게 흘러가고, 주말에 지인들과 만남도 이 과정을 거친다. 여러 사람이 약간의 허기를 느끼면서 눈발 날리는 도로를 운전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당에 앉아 해물탕과 소주를 마주하게 될 때, 기대는 팽창하고, 술잔이 부닥치면서 격조한 그 사이에 있었던 일과 소문에 대하여 나누면서 만남의 오르가슴에 도달한다. 사람은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자동차 기름처럼, 신진대사활동을 위한 식사 보충으로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만남은 화학반응을 일으켜서 음식과 분위기와 함께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을 재료로 오케스트라를 만든다. 


흥분을 유발하는 적당한 대화거리는 비빔밥에 참기름 역할을 한다. 인생은 그저 경험이고, 그 순간의 쾌락이다. 몰입은 쾌락에 이르는 선결조건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말이 없었고, 흥분하지 않았다. 반가움을 가진 것은 맞지만, 속에 돌덩이를 넣어둔 사람처럼, 무거웠다. 


우울감


우울은 사람으로 하여금 흥분을 없애버린다. 외부의 대상에 무감각해지고, 자신 내부에 돌멩이 무게 때문에 바닷속에 가라앉아 버린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은 먼저 상대에게 말 걸지 않고, 혹, 말을 걸더라도 상대의 답변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말은 '그랬군요'라고 하지만, 입술 모양과 눈동자, 얼굴 근육은 미동을 보이지 않는다. 


흥분을 잘하는 사람은 미동이 없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 물론 흥분상태가 오래가는 것도 지친다. 탱고춤처럼, 흥분과 이완이 적당히 박자 롤 느리게 빠르게 반복하는 사람이 가장 적당하다. 타이어 바람이 너무 팽팽해도 안되고, 풀이 죽어도 안 되는 것처럼, 쫀득한 인생을 살려면, 하루 중에 한두 번의 흥분과, 한두 번의 미륵보살이 배합돼야 한다. 


https://youtu.be/sxm3Xyutc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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