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진로상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기 Apr 03. 2017

유능한 부부

29세에 맞이하는 가을 낙엽이 아쉽게 느껴진 것은 이 해를 놓치면 짝이 없는 상태로 서른 살이 된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 올 가을에는 연애를 반드시 해야 하는데...."

동원 씨는 친구 진석에게 뇌까렸다. 

" 알았어, 내가 여자들이 있는 곳에 데려다줄게"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일으키듯이, 이 작은 허전함이 동원 씨의 인생에서 미풍이 태풍이 되는 일을 만들어버렸다. 그는 여러 명의 무리의 여자들 중에서 마음에 드는 한 얼굴을 발견했고, 여러 핑계를 대고 두 번째 그룹 미팅을 성사시키고, 결국, 그 한 여자와 따로 연락을 해서 데이트하는 데 성공했다. 둘은 연애를 시작했고, 달아오르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반년이 흐른 뒤, 프러포즈를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두어 달 뒤에 결혼을 했다. 간신히, 서른에 못 미쳐 너무 늦지 않은 결혼사업을 마무리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어. 그러니 이제 이 사랑을 영속하는 일만 남은 거야"


결혼에 앞서서 알아봐야 할 것은 상대의 진심뿐이었다. 그가 어떤 학벌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직장에서 수입은 얼마가 되고, 부모는 뭐하시는 분인가는 덜 중요했다. 오히려 양가 부모들에게 중요한 사안이었다. 젊은 시절의 결혼은 이렇게 단순하게 성사된다. 부모의 간섭만 덜하다면,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된 사람이라면, 평생 배우자를 선택하는데, 사람의 됨됨이와 자신에 대한 충성서약, 그리고 끌림만 있으면 최종 판단하기에 충분했다. 


대부분의 청춘남녀 드라마는 결혼식을 기점으로 종영이 된다. 그러나 인생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집안일을 도와주지 않는 남편, 각방을 사용하는 부부, 씀씀이가 큰 아내, 사업한다고 취직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집에서 컴퓨터만 보는 남편, 결혼 후에 직장을 관두고 아이가 컸어도 전업주부로만 남겠다는 아내, 한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하는 남편, 아내를 공감해주지 못하면서 바깥으로만 성실한 남편, 아이에게 무서운 남편, 몸이 허약해서 조금만 일해도 누워있는 아내, 캐나다로 유학 와서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아내와 자식을 남겨두고 한국으로 들어가 버린 남편, 신혼여행부터 사사건건 싸움만 하는 부부. 


결혼 후의 생활을 연애의 연장선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혼 후에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은 차라리 회사를 경영하는 것에 더 가깝다. 같이 일하고 싶은 직원 유형이 있듯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이 있다. 유능한 사원이 있듯이, 월급 주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일을 못하는 직원이 있다. 능력은 있어도 사장과 가치관이 달라서 일처리 방식에서 항상 어긋나는 직원도 있다. 회사를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운영할지, 아니면 수평적 기능 구조로 할지를 정하듯이, 가정관리 Home Management도 경영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점수를 매길 수 있다. 


자신이 아무리 유능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회사를 운영한다면 팀원 선발을 잘해야 시너지를 볼 수 있다. 면접을 한다. 우리 회사에서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사람 됨됨이는 협력하여 일할 만 한가, 우리 회사 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의사소통능력은 충분한가? 이런 사항들이 선발기준이 될 수 있다. 저 인간에게 내가 끌리는가? 잘 생겼나? 나랑 노는 취향과 관심사가 유사한가? 이런 것들은 연애 기준이 될지는 몰라도 직원 채용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호감 가는 외모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자태로 직원을 선발하지는 않는다. 직장 불륜 드라마도 아니고. 


능력도 있고, 마음이 통하는 직원이면 회사 발전에 유익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가정 = 회사라면, 연애시절, 얼마나 많은 청춘남녀들이 상대방을 유능의 관점에서 선발하나? 자칫 간과한다. 


50대 부부가 있다. 캐나다 이민을 와서 중산층으로 산 지가 어언 17년이 넘는다. 남자는 프로그래머로 오자 마자 취업을 했고, 여자는 전업주부로 6년을 지내다가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그 분야로 일을 시작했다. 성격이 밝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겸손한 여자는 꾸준히 고객을 확보해서 한 때, 최다수 고객상도 받고, 지금은 좋은 평판을 유지하면서 괜찮은 수입을 확보했다. 남편도 전산 일을 꾸준히 하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다. 한 사람은 직장에, 한 사람은 자유업으로 부동산 중개인을 하면서 서로 협력하면서 자녀들을 대학 보냈고, 그 부부가 다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냥 보면 안다. 두 사람은 상대의 특성을 인정하면서도 여유롭게 받아준다. 늘 그랬다. 부부관계는 늘 안정적이었다. 


꾸준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늘 같았고, 큰 싸움도 없었다. 경제적으로는 남편의 월급도 꾸준히 늘어났고, 아내의 부동산중개업도 성장해서 절세를 걱정할 정도로 자리 잡았다. 두 사람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은 없다. 평범한 두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해서 캐나다까지 와서 살아가면서, 자녀를 키우면서 경제적으로도 성장했다. 회사로 본다면, 매년 매출이 상승하는 구조다. 부부는 각자 영역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고 서로 협력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best partner인 셈이다. 


회사가 망하기도 한다면 가정이 망하는 경우는 매년 매출이 감소해서 적자가 되거나, 동업자 의견이 갈라져서 퇴사를 해버리는 경우, 혹은 양다리 걸쳐서 다른 회사에 비밀리에 취업하는 외도가 있다. 월급은 받으면서,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집안일도 하지 않는 배우자에 해당한다. 무능력한 직원이 있듯이 무능력한 배우자도 있다. 


가정이 경제공동체가 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충성심만 가지고 가정관리가 되지 않는다. 소비와 생산이 가정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꾸준히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연애시절에 상대가 얼마나 유능하였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자칫 세속적으로 보일 수 있다. 흔히, 어느 학교 나왔나, 어떤 직장에서 수입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고 유능함을 판단하려 한다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사막에 떨어져도 살아남을 능력이 더 중요하다. 생태조건이 바뀌어도 적응해서 살 길을 찾아나갈 수 있는 능력이 현대사회에 적합한 유능함이다. 학교에서 공부 잘했다거나, 대기업을 다녔다는 것은 추측만 될 뿐이지, 그 사람의 유능함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충분하지 않다. 유능함은 상황이 바뀌어도, 새로운 생태환경에서도 번식할 수 있는 식물의 생존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손이 많이 가는 화초는 계절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누군가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주어야 제 명대로 살아간다. 남이 관리해주지 않아도 마당에 씨만 뿌려도 사계절을 견디면서 매년 뿌리가 깊어지고, 열매를 왕성하게 맺는 나무처럼, 질긴 생명력을 지닌 배우자가 잘 살아간다. 


한국에서는 잘 나갔지만, 캐나다와 서는 시들해지는 사람이 있고, 남편이 없으면 우울해지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불행을 저 인간을 만난 데서 원인이 있다고 멈춰 서있는 사람도 있다. 이런 개인적인 심사를 경영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무능한 인간의 범주에 들어간다. 무능함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을 이끌고 살아가야 한다면, 좋은 직원을 만났건 아니건, 회사의 운명은 사장이 책임져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쉽게도 연애시절서부터 상대방의 유능함을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버지, 이제부터 기술을 일주일에 하나씩 가르쳐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