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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기 Jul 23. 2018

여린 사람들의 첫 직장

첫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모욕을 당한 23세의 처자가 울면서 김제동의 톡투유에서 고백을 한다. 그 말을 듣고 여러 패널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중에 유리라는 사람이 말한다. '이 세상에는 좋은 어른들도 훨씬 많이 있다는 걸 생각하세요'


문화충격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한국 사람이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 그러니까 1970년 곽규석 구봉서가 흑백 TV를 누릴 때 들려오던 말이다. 한국과는 너무 다르게 살아가는 미국이 충격적이어서 유학생이나 방문객들이 충격을 받는다고 말할 때였다. 


문화충격은 그 문화 속에서 오래 지내면서 적응이 되고, 나중에는 그들과 별 차이 없는 사람으로 동화되는 현상을 연결시킬 수 있다. 이런 충격은 비단 타국에 갈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처음 학교를 갔을 때,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했을 때, 그리고 군입대해서, 첫 직장에서 등등..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들에서 떨어져서 모르는 사람들 속에 파묻히게 되면, 여린 사람들은 당황하게 된다. 다정하고 예의 바른 집에서 곱게 자란 사람이 고등학교에 진학했더니, 소위 논다고 하는 칠공주파들이 교실을 장악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학교로부터 받는 충격이 엄청날 것이다. 군대에서 선임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하거나, 회사에서 계파 간의 권모술수가 난무한다면 이 여린 사람은 이내 몸에 병이 생겨버릴 것이다. 


진학을 하거나 취업을 하고 이사를 가는 것은 진로라는 관점에서 보면 성장과 발전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그 학교, 직장, 나라가 주는 금전적, 사회적 보상보다, 심리적 보상을 따라서 선택해야 한다.  심리적 보상이란, 아침에 일어나서 쾌적한 기분으로 일을 나갈 수 있고, 일터에서 자신감 있게 처신할 수 있고, 귀가에서 오늘 하루 잘 지냈다고 스스로 뿌듯해하는 마음 상태이다. 직장에서 자신이 하는 말을 남들이 경청하고, 자신의 결정을 주위에서 존중해주고, 일을 마치면 주위에서 칭찬해주고 실패해도 격려해주는 분위기라면 그 사람은 직장에서도 심리적 보상을 충분히 받고 있다. 


그러나 잘 돌아보면, 그 사람의 직업이, 직장이 그런 보상과는 거리가 먼 경우들이 많다.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자랑스럽게 경찰관이 되면, 그다음 만나는 사람들은 동료 형사들, 범죄 혐의자들이다. 영화 '투 컵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사기 치고, 거짓말하고, 안 보이는 데서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긴장하고 살아내야 한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 절대 감당할 수 없다. 


신학대학을 마치고 교회 전도사로 일하게 되면, 주위에 만나는 사람들이 목사님, 장로님, 신도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다. 그들과 밥 먹고, 대화하고, 차마 시면서, 하루가 간다. 그들은 남을 속이러 온 사람들이 아니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다짐하려고 교회에 온 사람들뿐이다. 감성적이고, 서로 덕담해주는 분위기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그곳에서 교사와 학생 간의 폭력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금융사기가 벌어지지도 않는다. 마음이 여리고 부드러운 태도를 지닌 사람이 하기에 알맞은 직업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취업을 미루고 자기에게 맞는 직장을 가지려고 탐색만 하는 청년이 있다.  부모의 눈으로 보면 답답하지만, 본인은 당연하다, 아무 회사나 들어가서 상처받고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로 지니기보다는 안심하고, 문안하게 지낼 만한 직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금전적인 , 사회적인 잣대는 그에게 덜 중요하다. 작은 회사지만, 사람들이 친절하고, 하는 일도 순박한 곳을 알게 되면 지원하고, 그런 회사에 입사하면 봉급이 적고 미래 발전성이 적더라도 오래 다니게 된다. 왜냐하면 다른 대기업에 들어가서 혹사당하는 것은 싫기 때문이다. 


교사나 교수라는 직업은 종교인만은 못하지만, 마음이 여린 사람들에게 감당할 수 있는 직업군이기도 하다. 그들이 상대하는 사람은 90%가 자기로부터 무언가를 지도 받으려는 어린 사람들이다. 교사는 자기의 전문지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남에게 배우기보다는 가르치는 일을 더 많이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을 평가하고, 지도하고, 답을 제시하는 태도가 굳어진다. 세상은 학교 안과 밖으로 구성되어 있고, 밖으로 나갈 일이 없으므로 학교를 통해서 세상을 유추하는 성향이 생긴다. 김 선생님, 이선생님... 이런 호칭들을 동료들 간에 나눈다. 집 내부 수리를 하러 온 사람이었으면 '어이 김씨, 밥 먹고 하자고'라고 말할 것을 학교라는 직장은 '김 선생님, 점심 식사하러 갑시다'로 바뀐다. 심지어는 직장 상사인 교감선생님도 신참 교사를 김 선생이라고 부른다. 이 공간에서는 위신이 올라간다. 직장 사회를 통해서 자신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게 되고, 자기 말에 주목하는 다수의 학생 집단이 있다. 여리지만, 인정 욕구도 있는 사람에게 교사라는 직업은 적합하다. 


(물론, 교사나 종교인을 개인적인 심리 보상을 위해서 택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보다 더 큰 사명감과 봉사정신이 그 진로를 선택하게 만든 측면도 많다)


직장은 그 업무의 전문성과 수입 등의 요소를 넘어서 그 일을 하게 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과의 관계성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식당에서 일하면 화나고 어두운 얼굴을 볼 기회가 적다. 하지만, 병원에서 일하면, 어둡고 , 불안하고, 걱정에 찬 얼굴들을 자주 대하게 된다. 주중에 병원에 가면 대부분 장년, 노인들이다. 그들은 시내 다운타운에서 쫘악 빼입고 활기차게 걷는 도시인들과 달리 패잔병들의 집합소 같다. 법원에 가면 긴장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결국 내가 된다. 자신을 숨기려는 사람들을 직업상 많이 보는 형사는 친구들과 동창회에서도 '저 놈이 어디까지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본능적으로 머리가 돌아간다. 


여린 사람이 강인한 사람으로 변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영화 악의 도시에서 어린 형사가 영화 말미에 배짱 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이 나오는데, 어느 정도 그런 자질이 있지 않고서는 토끼가 사자로 변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험하고 거친 곳에서 첫 직장이나 여행을 시작하라고 ,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사는 게 만만하지 않으니, 처음에 좀 힘들게 살라고 기성세대는 조언들을 한다. 하지만 절대로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날이 갈수록 여린 사람들이 젊은 층들에 많아진다.  아파트 때문인 것 같다. 깨끗하고 편리하고 분리된 공간에서 이웃을 대하는 문화 속에서 아이가 성장하면서 정해진 영양분만 공급받아서 열린 사회,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장돌뱅이처럼 누빌 수 있는 과거 세대의 사람들이 적게 나온다. 


여린 사람은 종종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상처를 받다 보면 복수심이 생기고, 또 다른 가해자가 되면서도 자신은 피해자라고 여긴다. 너무 상처받지 않는, 즉, 문화충격이 덜 한 곳에서 살 수 있다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좋다. 직장을 더 다닐 것인가 나올 것인가, 이런 판단을 하는데서 심리적 보상의 측면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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