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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기 Aug 07. 2018

미인이시네요

나이와 성에대한 고정관념

"미인이시네요. 몸이 참 좋으시네요. 피부가 참 좋으시네요" 

"여자 친구 아니야, 그냥 여자 사람이야"

"아, 저보다 연배가 높으시군요"


상대를 파악하는 기준에서 외모, 성별, 나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한국서 성장하고, 한국적인 일반적인 습관이다.  


캐나다 생활을 25년 하면서 외국인들과 한국인들과의 차이점 하나가 있다. 서양 여자는 물론, 중국 여자, 인도 여자, 필리핀 여자들은 한국 여자들보다 당당하고 남자들 사이에서도 말을 잘한다. 상대적으로 한국 여자들은 남자들, 특히 한국 남자들이 많은 곳에서는 조신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중년을 넘어갈수록 엷어지기는 한다. 


한국인끼리는 남녀 차이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크다. 직장동료가 남자라면 할 수 있는 행동을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못하거나 다르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 한 팀에서 자주 만나는 남녀 한국인이 있다고 치자. 격전지에서 전우처럼 두 사람은 같이 문제 해결을 하고, 계획을 짜고, 회사 생활의 이모저모를 공유한다. 대충 호흡이 잘 맞으면, 서로 오래 잘 지낼 수 있다. 이것은 여자 남자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동료로서의 태도와 전문성이 서로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사람을 파악하는 기준에서 성별이 큰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이성으로 보는 마음이 생긴다. 여직원의 몸매가 눈에 들어오고, 그 여직원을 생각하면서 같이 술 마시고, 신체 접촉도 하는 상상을 한다. 사람이 꽉 들어찬 지하철 안에서 기차가 흔들리니까 앞사람의 몸에 손이 닿은 것인데, 그 몸이 상대 여성의 가슴이고, 닿은 부분이 내 손이면, 아차, 여성의 몸에 손을 대었다는 생각이 들고, 얼굴이 빨개진다. 상대방을 승객으로 여기면, 그 사람 신체를 접촉하게 되었다고 홍조가 될 필요는 없다. 


그 동료가 여러모로 생각이 통해서  근무시간에 못다 한 수다를 떨고 싶어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 두 사람이 남자면, 뭐, 그저 그런 제안에 불과하다. 하지만, 상대가 이성이라는 생각이 강하면, 동성에게 할 수 있는 제안을 그녀, 그 남자에게 하기 껄끄럽다.  여자 측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방 남자 직원이 그냥 '직원'이라면, 같이 식사할 수 있다. 하지만, '남자'인데, 거의 매일 자기에게 점심같이 먹자고 하면, '가만, 이 남자 너무 들이대는데,,, 제어해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성을 크게 보는 문화 속에서는 사람대 사람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성이 제약요건이 되고, 왜곡을 시킨다. 아무리 여직원, 남직원이 한 팀에서 수년간 일을 해도 그것은 그저 동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왜 반드시 남녀는 자주 만나면 연애감정을 느껴야 하나?


단지 상대에게 호감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동료로서 호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지, 반드시 성적 대상으로 호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불 꺼진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버리면,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끼리라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 성이 다르면, 썸을 타야 하는가?


'남녀 칠세 부동석'


7살짜리 어린이를 어린이로 보기도 전에 남자와 여자로 구분해버리자, 아이들은 성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인간 기준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된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같은 성끼리 어울리고, 남자애들은 축구를 하고 여자애들은 줄넘기를 한다. 내가 자란 1960년대의 흔한 운동장 모습이었다. 


캐나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여자애들도 축구하고, 남자애들도 땅에다 그림 그리면서 논다. 대학을 갈 때까지, 여자중학교, 여자고등학교, 여대,,, 뭐 이런 학교 명칭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만 해도 여자애들 사이에서 같이 노는 것이 눈치 보이는 행동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는 당연히 남자들끼리만 지냈다. 그러다가 대학에서 다시 여학생들을 보니, 여자라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모르게 되었다. 대학 때에 남학생이 특정 여학생과 자주 지낸다는 것은 '연애'라고 불렸다. 같은 학과가 여학생이 한 명 있었지만, 자주 교류는 안 하게 되었다. 


인도와 중국 여자 동료들이 한 팀에 있다. 이 들이 할 말 다하고, 나를 다른 직원들과 같이 거침없이 대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당당하다'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문화가 여자들을 저렇게 당당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였다. 남자도 수줍음을 잘 타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여자도 당당하고, 참견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상대방을 사람이기 이전에 여자라고 보면, 어떤 면에서는 한국적 관념의 다소곳한 여자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을 모른 상태에서 문자채팅으로 대화를 하면, 상대를 성이 아닌, 사람으로 소통하게 된다. 


남녀가 둘이 만나면 반드시 불꽃 화학반응이 일어나야 하나? 자주 만나면 정들고, 정들면 사귀어야 하나? 이성은 친구가 될 수 없어라는 진부한 논쟁은 지극히 한국적인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대가 조금 이쁘고, 조금 탤런트 누구를 닮은 것처럼 보인다고 아이스크림을 보면 핥아 보아야 하듯이 남녀의 만남은 연애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하면, 남녀가 만날 때마다 긴장하거나 엉뚱한 우려를 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에게 호감을 가지는 것은 다양한 맛의 결과이다. 남녀가 만나서 테니스를 치면 반드시 썸을 타야 할 것 같은 감정은 그저 강박관념에 불과하다.  헬스클럽의 트레이너가 운동하러 온 여자 회원에게 '회원님 참 미인이십니다'라고 말하는데, 왜, 트레이너가 운동만 가르치면 되지 전혀 목적과 상관없는 말을 꺼내나, 그 말을 듣고 은근히 기분이 업되는 회원님도 성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여 과장님에게 결재받으러 갔더니, '이대리는 피부가 참 곱네'라는 말을 했다고 치자. 불편한 감정이 오는 게 정상이 아닌가.  그 말에 기분이 좋아져서, 그때부터 여 과장님을 바라보면서 로맨틱한 상상을 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갑자기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아내가,,, 남편이... 이러저러해서 사는 게 재미없어... 당신처럼 내 말을 잘 알아들으면 좋건만, 여자는... 최소한.. , 남자라면,,, 어쩌고저쩌고... 오늘 저녁 퇴근 후 시간 어때?... 


대인관계에서 성의 기준이 크면, 인류의 반인 여성과 남성을 친구 목록에서 제외시키게 된다. 사람 친구를 가지는 데 있어서 성은 사소한 기준이다. 테니스 상대가 돼서 인터넷상에서 만나서 자주 운동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그저 테니스 호흡이 잘 맞는 사람 A와 B인 것이지, 여자, 남자였다는 이유로 연애가 되거나 안 만나거나 둘 중의 하나로 결론이 나야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한국과의 차이는 이들이 나이에 대한 관념에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우리 팀의 평균 연령은 삼십 대 초반이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의 나이가 이제 막 태어나거나 미취학 아동이 대부분이다. 아내 출산을 앞두고 baby shower를 한다거나 생일잔치라고 초대를 하는데, 평상시 회사에서 느끼지 못했던 세대차이를 절감하게 된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느낄 정도로 꼬맹이들과 젊은 부부들 사이에 반백의 내가 어정쩡하게 서있게 된다. 점심때도 같이 먹자고 오고, 회사의 모든 일에서 거침없이 대한다. 한국 같으면 나이 많은 한 직원을 다소 어려워하면서 대하겠지만, 캐나다 직장에서는 서운하리만큼 경로사상이 전무하다. 면박 주고, 비판하고, 할 말 다하고, 농담하고, 그저 피부색이 다른 인종이 있는 것처럼, 머리털 색이 다른 직원 하나가 저기 앉아있을 뿐이다. 


일의 특성상 우리 팀은 토론토, 뉴욕, 런던, 인도에 퍼져있고 매일 집단 전화 Conference call로 미팅을 한다. 토론토 지역을 제외한 다른 곳의 직원은 얼굴을 모르고 음성과 채팅으로만 일한다. 런던 사는 여직원은 채팅을 하다가, 내 개인에 대한 질문공세를 해댔다. 누가 나에 대하여 팬심에서 질문을 하는데 싫을 리가 없다. 영국 엑센트가 강한 그녀는 대뜸 묻는다. 


'너 몇 살이니? 나 32세야' ,, 

'응 나는 58이야'

'어 그래? 목소리로는 굉장히 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안 믿어진다'

'애들은 지금 뭐해, 아내는? 어떻게 연애했는데, 어디서 아내를 만났니? 어느 나라에서 왔니, 어머 한국이야? 나 한국영화, 드라마 너무 좋아해, 한국 가서 6개월 살아보는 게 나의 인생 목표 중에 하나야, 그렇게 좋은 한국을 왜 떠났니'... 등등...


내 나이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느냐? 전혀... 그냥 내가 오늘 어떤 색깔의 옷을 입고 출근했느냐고 물어본 것에 불과하다. 


만일, 내가 런던에 파견 나가서 근무했다면, 그녀와 퇴근 후에 pub에 가서 맥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라면, 중년 남자가 새파란 젊은 여자랑 맥주집에서 수다를 하면, '어머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 봐' 하고 눈치가 보일 수도 있겠지만, 런던에서는 아무도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종종,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한국사람들이 같이 만나서 술과 저녁을 하는 기회를 가지자고 제안하는데, 나는 다른 이유로 소극적이다. 그들의 나이가 나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으로 대화를 나눌 공동 주제가 없기 때문에 피한다. 그 말은,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주제나 관심사에 대하여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적극적이 된다. 


이런저런 일로 내 또래 다른 이들보다는 알고 지내는 젊은 사람들, 여자들이 많다. 정말 사람은 다양해서 사람마다 서로 다른 주제로 대화를 하곤 한다. 캐나다 와서 살면서 더더욱 절감하는 것은 나이와 성, 외모 등을 무시하면 살아생전에 맛있는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무궁무진해진다는 것이다. 나이와 성에 갇혀서 사람을 나누고 차단하고 경계하는 것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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