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의 삶
토요일 Mono Cliff Provincial Park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 공원을 그간 자주 방문해보았지만, 매 산책로마다 사람들이 5미터 간격으로 마주치는 일은 드물었다. 그날은 달랐다. 온타리오 주에서 주립공원 방문을 재 허용한 어제는 Victoria 연휴 첫날이기도 했거니와 그간 아이들과 집에서 풀리지 않은 날들을 보내야 했던 가족, 친구들과 만나지 못했던 청년들이 그나마 토론토에서 제일 근접한 주립공원을 찾아 나선 것이다.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면에서 반갑고 안심이 된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우리 부부는 3.5킬로 하이킹을 하고 나서 바로 나와버렸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왔기 때문에 전염병이 걱정되었다. 백신이 개발되어서 코로나 면역력을 모든 사람들이 가지게 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가까운 접촉을 멀리하게 될 것이다.
은퇴하면 도시 한복판으로 이사 가서 살 것인지, 아니면 호젓한 교외로 이사를 갈 것인지 고민했었다. 소박하고 자연주의적인 삶에 매료되었을 때는 사람이 없는 숲 속에서 살고 싶었지만, 그 생각을 접은 것은 '심심'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서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관계 맺고 살아간다는 것이 더 꽉 찬 삶이라는 방향으로 생각이 변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샾에 나가서 책을 보던 글을 쓰던 적당히 북적거리는 공간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상점들도 보고, 저녁에는 맥주집에 가서 흐트러진 사람들 속에 젖어보는 생활을 하는 것이 숲 속 생활보다 더 나에게 어울려 보였다. 도시에 머물러야 친구들을 만나서 대화도 할 것이다. 친구들이 없는 삶은 더운 욕조에 한 번도 안 들어가고 세수만 하면서 사는 것과 같다. 살 수는 있지만, 욕조 맛을 알고 나면 주기적으로 담그고 싶다. 재택근무를 일주에 며칠을 할 수 있는지 신경 쓰면서 살다가 평생 재택근무 모드로 변하고 나니, 회사생활이 그립다. 귀찮기도 하지만 동료들과 어깨를 맞대고 농담하고, 질문하고, 커피 마시고, 점심 먹고, 얼굴 표정의 변화를 시시각각 바라보면서 지낸 시간들이 떠오른다.
대면 사회 faced society에 익숙하게 살아왔다. 이제는 아침에 일어났다고 머리 감고 헤어 드라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전날 와이셔츠를 다리지 않는 생활을 한다. 캐주얼을 넘어서 외모에 신경을 덜 쓰는 재택 생활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을 제거한 내성적인 생활이다. 많은 것을 안 보여주어도 되고, 오로지 문자와 음성만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제스처도 볼 수 없고, 외모가 주는 인상도 알 수 없다. 따라서 호감도, 불쾌감도 감소한다. 코로나 사태는 은퇴 후 어디서 살 것인지 대한 질문을 다시 하게 만든다. 도시에 머물더라도 사람들과 접촉이 제한된다면, 숲 속에 사는 것과 뭐가 다를까. 인터넷만 된다면, 어디서건 채팅을 할 것이고, 영화감상을 할 것이다. 여름이 되면 화단에 꽃들이 만개하고 단풍나무에 다람쥐와 새들이 늘어날 것이지만, 여전히 나는 혼자서 커피 마시고, 책 보고, 달리기 하고, 맥주 한 병 겨우 마시고 잠에 들것이다. 이웃들도 먼발치에서 인사를 주고받을 뿐, 집에 초대하거나 악수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청년들은 어떻게 새로운 애인을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얼굴을 보지 않고, 우리는 얼마나 사회를 존속시켜나갈 수 있을까? 사람이 그리우면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없는 사회를 오래 살다 보면 어떻게 propose 하는지도 잊게 될 것이다.
'저희 집에 오세요, 식사 한번 하지요'
'이번 여름에 파티를 합시다'
'그러면 정기적으로 만나서 합창 연습을 해볼까요?'
'우리 정식으로 사귀어 볼까?'
'같이 여행 갑시다'
마릴리 몬로의 사진을 보면서 사랑에 빠지듯이 평생 마릴리를 만나지 못하고 짝사랑한다. 이 코로나 전염병에서 인류를 구원해줄 독수리 삼 형제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타인을 짝사랑하면서 살 각오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