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루 달빛은 창백한데

by Rudolf

*


연준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강릉의 어항 어귀.

연준은 또다시 소녀의 행로를 더듬어 보았다.

소녀는 분명 속초에서 이곳 강릉으로 온 뒤 저 견조도에서 묵호항으로 갔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부산으로 가는 군함이 있다.

조선말 고종 때만 해도 하나의 군이었던 강릉. 그 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주문진과 묵호가 떨어져 나간 뒤 여러 제도개편을 통해 육이오 이후 강릉시가 되었다. 지금은 동해안의 최대 명소가 된 도시이지만 태백산맥에 가로막혀 한때는 조그만 면 하나 정도에 불과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연준은 지금 강릉의 성쇠에는 관심이 없다. 이곳을 통해 더 남쪽으로 내려갔을 소녀를 찾기 위해 강릉에 왔을 뿐이다.

70년 전의 가을 바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연준은 소녀의 흔적을 더듬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것에 이어지는 연준 자신의 존재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연준은 그 노신부를 보기 전까지는 자신의 뿌리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육이오를 통한 이산가족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연준은 그런 면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할머니 탓인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과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낸 연준이 그런 면에 무감각하게 된 것은 사실 정상적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궁금해졌다. 그렇다고 자신의 가계도를 찾으려는 것은 아니다. 할머니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걸어온 길. 그것이 바로 연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길이라 여겨졌다.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정체성. 개에게 줘도 물어가지 않을 정체성.

그러나 어쩌랴. 이제 연준 혼자만 남았는데.

할머니가 한번은 부산의 피난민촌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연준의 아버지 수연이 태어난 곳을 말하면서. 따라서 당시 특별한 교통수단이 없는 한 그 소녀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야 한다.

그렇다면 저 어항밖에 없을 테지.

하지만 항구가 너무 작아 군함은 들어올 수 없다.

그렇다면 부산으로 가는 방법은?

육로는 길이 너무 험하고 멀어서 힘들다.

묵호에는 큰 항구가 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6년 삼척에서 나오는 무연탄을 실어나르기 시작하면서 묵호는 꽤 규모를 갖춘 항구로 발전하게 되었다. 게다가 육이오 당시에는 동해북부선이 연결된 곳이다. 지금은 삼척 일부를 수용해서 동해시로 되었지만, 당시에도 동해안의 수산물뿐만 아니라 삼척이나 양양에서 생산되는 시멘트와 철광석을 수출하는 항구로서 상당히 붐비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해안경비대 묵호 기지가 창설되었으며, 육이오가 일어난 당일에는 묵호 바로 위쪽인 옥계 해안에 침투해서 상륙하던 북한 특수부대원을 사살한 전과도 있었다. 그 뒤 묵호 해안경비대는 1986년에 해군제1함대로 승격된다.

어떻든 소녀는 강릉에서 육로로 가든, 아니면 소형선을 타든 묵호까지 가서 그곳에서 부산으로 가든 했을 것이다. 사실 그 두 가지 중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소녀가 이곳 강릉에서 부산으로 간 것만은 틀림없을 테니까.

오가는 배들. 여객터미널을 통해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

강릉에서 부산으로 가는 카페리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곳에서 울릉도를 거쳐 독도까지 갈 수는 있어도 배편으로 부산으로는 갈 수 없다.

연준은 몸을 돌려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로 향했다.

가자. 부산으로.

소녀의 흔적을 따라서.

잘못하면 소녀를 놓칠 수 있다. 그 그림자를 찾아야 한다. 연준이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이 지워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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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 피난민촌 여자들은 연희를 극진하게 보살펴 주었다. 연희는 피를 그렇게 흘리고도 살아났던 것이다. 그곳 공동묘지에서는 많은 이들이 죽었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여기저기에서 죽어나갔다. 더군다나 갓난아기들은 더 많이 죽었다. 그리고 산부들도 죽었다. 출산 도중에도, 출산 후에도.

그러나 연희와 아기는 둘 다 기적을 선물로 받았다.

연희는 아기의 이름을 수연이라 지어주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강은수 소좌의 수와 연희의 연을 따와서 붙인 이름이다. 처음에는 연희 자신의 주변에서 강은수 소좌의 그림자를 없애려 했다. 그러나 아기는 틀림없이 강은수에게서 생명을 받았다. 강은수. 그 이름이 연희에게 남긴 의미가 어떠하든 아기에게는 분명히 강은수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훗날 연희는 수연이 낳은 아들의 이름을 제 아비 이름의 마지막 자를 따서 연준이라 지어주었다. 역사가 흐르듯 가문도 흘러가야 하니까. 본 없는 가문에서는 그 이름 이상으로는 바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연희는 보름 만에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젖은 적으나마 나와서 아기에게 먹일 수 있었다.

장티푸스로 여러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연희는 기운을 차리긴 했지만 다음 차례는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몸은 쇠약했으나 장티푸스의 일반적인 증상인 고열이나 설사는 없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비쳤다. 갑자기 더워졌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텐트 안에 있던 여러 물건들을 꺼내놓고 말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연희는 밖에 나가지 못했다. 아직 자리에서 완전히 일어나 걸어다닐 정도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쇠약했던 연희의 몸은 조금씩 나아져 갔고 아기 역시 별 탈 없이 자라고 있었다. 젖이 적어 영양이 불량한 것 외에는. 그런 도중 좀 멀찌감치 떨어진 텐트에서 어린 딸 하나가 있는 산모가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 건강하고 출산도 순조로웠고 별 이상 증세도 없었는데 어느 날 아침 아기가 너무 울고 그치지 않아서 사람들이 들어가 보았더니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아기는 멀쩡한데.

연희는 자기 대신 그 여자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바로 자기 자신이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죽음이 잘못 찾아갔다고 연희는 생각했다. 연희는 눈을 감고 감사해했다. 자신을 살려준 그 누군가에게.

연희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빨리 일어나야 한다. 죽은 그 여자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그 여자 몫까지 살아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여자의 죽음이 보상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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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은 부산에 도착한 다음 날 영도다리로 찾아갔다. 1934년에 지어진 영도다리의 원래 이름은 부산대교였다. 그러나 1980년에 부산대교가 그 옆에 세워지면서 영도대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부산 사람들에게 그 다리는 예나 지금이나 영도다리였다.

하루에 일곱 번 여닫혔던 그 유명한 영도다리. 부산의 현대 역사에서 영도다리를 빼면 남는 것이 없다. 또한 부산 청춘들에게서는 빼놓을 수 없는 낭만의 거리 남포동에서 영도의 태종로로 들어가려면 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남포동과 태종로 사이를 이어주는 눈물과 낭만과 회한의 다리.

소녀의 이야기에서도 역시 이 다리는 반드시 등장해야 한다. 육이오 당시 부산의 해로를 연준은 모른다. 그러나 영도다리가 등장해야지만 육이오 유행가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영도다리는 원래 하루에 7번 여닫혔다. 오전 6시, 8시, 10시, 그리고 오후 1시, 3시, 5시, 9시. 그러나 지금은 하루에 한번 오후 2시에 15분 동안만 열린다.

영도다리 앞에 있는 공원에는 육이오가 끝난 뒤 1954년에 나온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른 현인 가수의 동상과 노래비가 세워져 있었다. 그 노래비의 가사를 읽으면서 연준은 연희를 생각했다. 아니, 그 시대 모두의 금순이를. 가난 속에서 미래를 찾고, 청춘을 바쳐 사랑도 하며, 눈물 속에서 버림을 받으면서도 억척으로 살아간 우리네 금순이들.

지금 연준은 비록 연희 한 사람을 찾고 있지만, 연희 그 소녀는 당시 모든 금순이를 대표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 연희보다 더 처절한 금순이는 없을 것이다.

또다시 가슴이 아려왔다.

21세기 현대의 도시 한복판에서 연준은 흑백영화의 한 장면 속에 들어가 있었다. 지나는 이 모두들 햇빛과 부요와 웃음과 재잘거림을 즐기고 있었지만 연준은 육이오의 겨울 한복판에서 방황하는 소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공원 근처의 화려한 음식점 간판들 속에서는 미군 전투식량인 C-레이션과 미군이 먹다 남긴 음식을 한 솥에 쏟아붓고 끓인 꿀꿀이죽 냄새를 맡았으며,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늘어선 청춘들 속에서는 배급을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서서 얇은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은 채 추위에 떨고 있는 소녀를 보았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구두와 브랜드 운동화에서는 밑창이 너덜거리는 소녀의 검정 고무신이…….

이 모든 것이 연준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소녀의 자취를 찾을 수 없는 절망감이었다.

연준은 터벅터벅 걸었다. 중구 중앙동을 지나다 40계단을 내려가게 되었다. 그 계단 중간에 세워진 아코디언 신사 조각상.

연준은 그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계단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쳐다본다.

연준은 동상 옆에서 무릎을 세우고 머리를 파묻었다.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지나는 사람들은 연준이 운다고 생각하겠지.

그래, 나 울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고단한 사람이다.

그래서 울어야 한단 말이다.

너희들은 웃거라. 맘껏.

즐기라고 지금을. Carpe Diem.

눈을 감고 연준은 육이오를 생각했다. 소녀를 모습을 떠올렸다. 억지로.

사람들로 혼잡한 70년 전의 부산.

소녀는 영도다리 앞에서 도시를 마주보고 섰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도시의 모습. 비록 전쟁 중이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번잡하게 되어버린 도시의 광경을 보고 소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3층, 4층, 5층이나 되는 으리으리한 건물들, 항만에 떠도는 크고 작은 배들, 그러잖아도 복작거리는 부산 원주민에 피난민까지 더해져 요란복잡하게 된 거리들, 자동차, 자전거, 인력거, 전차,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군인들. 흰둥이, 검둥이, 코쟁이, 뚱뚱이, 홀쭉이, 떠돌이, 거지, 신사숙녀 여러분…….

연준은 그러나 그런 감상에 젖기보다는 다른 것에 더 마음이 급했다.

소녀는 이 너른 신천지에 와서 어디로 갔을까?

연준은 감천동, 당감동, 대청동, 동광동, 우암동, 중앙동, 창학동, 국제시장, 그리고 지금은 공동어시장이라고도 부르는 자갈치시장 등을 모두 찾아가 보았다. 피난민들이 살아갈 방도를 찾기 위해 일을 하거나 모여 있었을 법한 곳들을.

그러나 연준의 기억은 이곳에 와서는 더 이상 연결이 되지 않았다. 바다를 보아도, 항구에 가보아도, 영도다리를 보아도, 그리고 피난민촌이 있었을 법한 곳들을 여기저기 찾아가 보아도, 그 어떻게 해서도 소녀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연준은 더 이상 소녀를 추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 연준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이 된다. 연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연준은 숨이 가빠졌다.

안 돼…….

찾아야 돼. 그래야만 내가 살 수 있어……. 제발…….

그날 연준은 부산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녀의 흔적을 찾으려 했다. 영감을 얻으려 했다. 과거를 들여다보려 했다. 연준은 혹시나 영감을 얻을까 해서 핸드폰에서 육이오 노래와 그 당시 유행가들을 찾아서 들어보기도 했다.

연준은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 들어가서 피난민촌에 대한 자료도 찾아보았다.

특히 사진들.

드넓은 광장 같은 곳에 텐트가 줄지어 세워져 있는 장면, 배급을 받기 위해 길에 줄지어 서 있는 피난민들, 짚으로 천막의 지붕을 덮어 겨울을 나는 피난민촌, 지저분한 개천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들, 좁다란 개울물에 수십 명의 아낙들이 몰려나와 빨래하는 모습, 미군들 따라다니며 껌 달라고 졸라대는 가난한 아이들, 거지들, 폐차된 전차 안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목조건물에 책보 들고 들어가는 학생들, 1953년 초와 말에 각각 일어났던 부산역과 국제시장 대화재의 장면 등등.

이 낡은 흑백사진들 어느 한 곳에 그 소녀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기를 업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준은 특히 아이를 업거나 안고 있는 사진에는 오랫동안 눈길을 보냈다. 이 모습이 틀림없을 거야, 아냐 이보다는 더 어렸겠지, 아니 이것은 부모가 일 나간 사이에 아이들이 아기 보는 사진이니까 이건 아닐 거고…….

고아들처럼 아이들만 바글바글 모여 있는 사진에서는 연준은 무심코 한 사내아기를 찾고 있었다. 자신에게 생명을 이어준 사람. 그가 어렸을 때 사진에 찍혔다면 틀림없이 이런 곳 어디에 있을 테지.

그러나 연준은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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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해가 내리쬐는 8월의 어느 날 오전, 연희의 공동묘지에 낯선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 장교가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군복 위에 흰 가운을 입은 사람도 있었고, 흰 캡에 흰 가운과 적십자 완장을 찬 여자들도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등에는 소독약 탱크를 짊어진 사람들, 게다가 미군도 있었다.

이들은 공동묘지를 돌며 여기저기 약을 뿌리고 텐트마다 들러서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입을 벌려보게 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머리칼 속을 헤쳐보기도 하며 건강상태를 살폈다. 또 그 뒤로는 군인들이 따라다니면서 여러 구호품도 나눠주고 있었다.

이들은 연희의 텐트에도 왔다. 대부분의 텐트는 사방이 완전히 트여져 있었으나 연희의 텐트는 입구만 약간 젖혀져 있었다. 군의관이 먼저 허리를 굽히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를 적십자 여자 둘이 따라들어온다. 그리고 몇 명은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적십자 완장을 찬 한 미국 여자가 연희에게 다가와 퀭하게 들어간 눈과 뺨이 움푹 팬 얼굴을 살폈다. 인상이 찌그러진다. 그리고 안고 있는 아기를 들여다보았다. 아기가 요란하게 울었다. 연희가 두 손으로 들어 어르자 여자가 아기를 받았다. 그러면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연희의 팔에 시선을 쏟는다. 아기가 신통하게 울음을 그쳤다.

여자는 아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연희에게 내민다. 연희가 받았다. 다시 소스라치게 우는 아기.

여자는 연희의 몸 전체를 자세히 살피더니 군의관에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군의관이 연희에게 다가와 묻는다.

“아기가 몇 개월 됐니?”

“한 달 됐어요.”

연희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군의관은 허리를 굽혀서 아기 여기저기를 살펴보더니 다시 허리를 펴고 여자에게 무슨 말인가를 한다. 그리고는 모두 텐트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적십자 완장을 찬 한국 여자가 들어왔다.

“몇 살이에요?”

연희에게 묻는다.

“열일곱.”

연희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간신히 대답했다.

“아픈 데 없어요?”

연희는 대답 없이 멍한 눈으로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여자는 텐트 안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연희는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기진맥진해서 쓰러지듯 그대로 누웠다. 아기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그날 오후 적십자 한국 여자와 위생병 몇 명이 들것을 가지고 연희의 텐트에 나타났다. 그 뒤로 공동묘지 사람들이 따라와서 밖에 둘러섰다.

위생병이 들것을 내려놓자 적십자 여자가 연희에게서 아기를 받아 안는다. 그리고는 연희에게 들것에 올라가 누우라고 한다. 연희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엉금엉금 기다시피 들것으로 올라갔다. 위생병 하나가 다가와서 도와주었다. 위생병 둘이 들것을 들어올리자 연희가 텐트 안에 놓인 자기 물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한 위생병이 냄새나는 넝마 쓰레기와 같은 그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모아서 집어든다.

연희와 아기는 적십자기가 높이 솟아 있는 흰색의 대형 막사 촌으로 호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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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은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그날 밤 부산에서 잤다. 기왕에 내려온 것 하루만 더 머물며 소녀를 발자취를 그려보기로 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난 연준은 갑자기 머릿속에 한 가지가 떠올랐다.

거제도.

육이오 일사후퇴 때 많은 피난민이 거제도에 수용되었다는 사실을 전날 도서관 자료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 것이다. 연준은 부산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거제도에 가보기로 했다.

연준은 부산에서 가덕도를 통해 거가대교를 지나서 거제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당시 피난민이 대량 수용되고 미제물건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사등면 사곡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그곳에 가서 차에서 내린 순간 연준은 실망감이 밀려왔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표현하면 안 된다. 실망감은 좋은 것을 기대했다가 그에 미치지 못한 것에 맞닥뜨렸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 연준은 육이오 당시의 혼란스럽고 비참했던 사진들이 머릿속에 들어차 있어서 그러한 광경을 기대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사독이라는 곳에 요트장이 들어서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딱히 옛 수용소 바로 그 자리에 요트장이 들어섰다는 말은 아니다.

피난민촌은 그 근처 어디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모습은 흔적이나마 찾아볼 수 없었다는 뜻이다.

세상은 변했다. 특히 대한민국은 육이오 때의 혼란스럽던 그 나라가 아니다. 이 사실을 그곳 거제도에 와서 특히 연준은 실감했다.

하지만 연준의 마음은 답답했다. 꼭 여기가 아니라도 어디에서든 소녀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가 그 장소라면 연준은 그만큼 애가 덜 타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도 연준이 찾던 곳은 아니었다. 아니, 아닐 것 같았다.

이곳에 와서도 연준은 아무런 느낌도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답답했다.

또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혹 이곳 공기에라도 70년 전 흔적이 남아 있을까 해서 연준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그리고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폐 속에 공기를 간직하고 과거를 끌어내 보려 했다. 가당치도 않은 짓을 한 것이지.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후 뱉어내며 연준은 스스로를 비웃었다.

ㅎㅎㅎ

어리석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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