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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준은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울음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꿈속에서 들었나?
아니다.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틀림없다.
소녀가 울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제쯤 소녀는 벗어났겠구나.
애 엄마가 되었을 연희. 그가 울고 있다.
왜 우는 거야? 무슨 일 있는 거야?
연준은 콧날이 시큰했다.
할머니, 연희가 울어요!
가녀린 몸. 일가친척 없이 갓난아기 안고 육이오 그 혼란스런 부산 어디인가에서 헤매고 있었을 연희.
그 겨울여름을 나고 또 나고 나면 또다시 어딘가로 떠났을 테지. 결국 성남 어딘가로 올 테니까. 하지만 그 신산스런 세월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연희가 너무 힘든 모양이다. 울고 있는 것을 보니.
울지 마. 울지 마.
내가 가슴이 아프잖아. 울지 마.
연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실로 나가서 창밖을 바라다보았다. 연준은 잘 때 거실 블라인드는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침에 출근할 때 내려놓고 집에 오면 올린다. 낮에는 햇빛 들지 말라고. 그리고 밤에는 미래 속 아파트 단지 야경 불빛 감상하려고.
그러나 아파트 불빛은 거의 꺼져 있었다. 다만 군데군데 듬성듬성 불 밝힌 창들.
저들은 이 한밤 왜 잠 못 이루고 있는 것일까?
연준처럼 과거의 사람 때문에 밤을 지새우는 것일까?
과거의 사람이라면 사랑했던 기억의 아픔 때문에?
사랑…….
연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연준에게는 과거가 없다. 연준이 다가갔던 사람도, 연준에게 다가온 사람도 없었다.
천리포 해안에서 멀거니 두 눈 뜨고 빼앗겼던 아무도 아닌 사람 말고는.
그러니 연준이 어찌 이 한밤 가슴 아픈 이들의 마음을 알랴.
그런데도 연준은 마음이 아팠다. 유행가처럼.
그렇게 연준은 창가에 서서 새벽을 맞았다.
새벽까지 연희는 계속 울고 있었다. 하지만 연준은 연희를 달랠 수가 없었다.
연희를 찾아야 한다.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연희의 눈물에 동참해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연희가 어디쯤 와 있을 것인가?
부산은 이미 떠났을 테지. 전국 각지에서 온 피난민들이 또다시 전국 각지로 흩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갈 수 없는 연희는 어느 곳으로 떠돌았을까?
연준이 태어난 성남. 할머니는 그곳에서 50년을 살았다. 그렇다면 휴전이 되던 해 어름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전에는 계속 부산에서만 있었을까? 할머니는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며칠 전 부산에 내려갔으나 연준은 아무런 소득 없이 올라왔다. 연희가 부산에서 보냈을 그 3년이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연희는 울고 있다.
어떻게 한다…….
부산에 다시 내려가 볼까? 아니면 어차피 성남으로 올라왔으니 성남으로 가서 그 흔적을 찾아볼까?
동향으로 나 있는 거실 유리창으로 갑자기 황금빛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준은 돌아섰다.
아들 수연이 해병대에 들어가 있을 때 연희네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공군 활주로가 건설되었다. 제15전투비행단.
연희는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그래서 편지를 썼다. 연평도에 있는 아들에게 이사한 주소를 알려주려고.
수도 없이 이사한 연희. 아들한테 미안했다.
이사 갈 때마다 옮겼던 주소. 연희는 그 주소 다 외운다.
하지만 아들은 이사하고 나서 먼저 집으로 종종 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연희는 아들에게 미안했다. 이번에 또 새로이 이사 가야 하는 주소를 아들에게 보내는 연희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들의 이마에 또 하나 금이 가겠구나.
수연아. 너무 힘들어하지 마.
그리고 그곳에서 동료들하고 싸우지 말아라. 다시는 사람들하고 싸우면 안 돼.
너 싸울 때마다, 너 다칠 때마다 내 마음은 어떤지 아니…….
수연아…….
그리고 3년이 지난 뒤 연준이 태어났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고. 그 뒤 얼마 있다가 간단히 식을 올리고 사진 찍고서 1년도 안 되어 비극이 일어났다.
그 뒤 수연은 집을 뛰쳐나가고, 그리고는 연락이 끊겼다.
연희는 손자 연준을 홀로 키우며 성남에서 20여 년을 살았다. 주변 사람들은 집을 나간 아들을 기다리느라 떠나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내를 찔러 살해했으니 돌아온다 해도 성치 못할 것이라 수군거렸다.
하지만 연희는 주변의 눈초리나 수군거림은 모른 척하고 손자 연준 하나만을 위해 억척으로 일을 하며 살았다. 어떻게 해서든 연준만은 제대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은수로부터 내려온 생명이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만이 연희의 유일한 희망이요 미래였다.
연준은 자신의 출생지로 차를 몰았다. 우선 손쉬운 대로 가까운 성남부터 찾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예상한 대로 그 주변은 아파트 단지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여기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
아파트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곳을 굳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왜? 무엇 때문에?
무슨 영감이라도 받으려고?
아니다.
그럼 왜?
혹 짐작 가는 것이라도……?
맞다. 마음속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구체화되지는 않고 있었다. 안개 속. 영국 추리영화에 나오는, 안개 낀 골목을 달그락거리며 걷는 이륜마차. 저 멀리에는 희미한 가스등 불빛 하나.
연준은 아파트 숲속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영어, 이태리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등이 뒤섞여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도록 지은 아파트 이름들. 온 세상 축소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구의 표면적이 5억1천만 평방킬로미터. 한국 사람들은 평수로 해야 금방 이해하려나. 153조 평 정도 된다. 30평짜리 아파트로 5.1조채. 10층짜리 고층아파트로 짓는다면 51조 채가 된다. 여기에서 복도, 공용면적, 도로, 어쩌고를 다 합해서 50% 정도를 빼면 25조 채. 이 숫자가 많은 것인지 적은 것인지 감이 잘 안 온다. 만일 4인 가족 기준으로 하면 100조 명. 어이쿠, 많긴 많은 거구나. 그런데 이것을……, 한국 복아줌마들 풀어놓아서 죄다 싹 사들이게 한다면 며칠 정도 걸릴까? (거 참) 이런 데서는 복비도 엄청 짭짤할 것이다. 옷 장사 그만두고 부동산중개인 시험이나 볼까…….
할머니는 휴전이 되던 해에 이곳 성남으로 올라와서 아들 장가보내고 손자 보고, 그러고도 20여 년을 더 사셨다. 연준이 군에서 제대한 이후에 부평으로 이사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반세기, 즉 근 50년 간 사신 것이다. 땅 한 평 없이 월세로 전세로 전전하면서. 살던 지역이 개발되면 멀리로 이사하고, 그 다음에는 그곳에서 더 들어가고, 또 더 들어가고……. 그렇게 주소만 바뀌었지 성남을 떠나지는 못했다. 게다가 사람들과의 접촉도 극도로 피했다. 친척들 이야기도 물론 전혀 하지 않았고.
이러는 동안 연준의 세상은 오직 할머니 한 분뿐이었다. 다행히 연준이 사교성이 좀 있는 성격이어서 외골수가 되지 않고 그런대로 원만하게 사회생활을 한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장가가지 못한 것만 빼놓고는. (그렇게 생각하니 역시 할머니의 외로움을 물려받긴 했나 보다.)
연준은 할머니와 열 번도 더 이사 다닌 곳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았다. 아주 어렸을 적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손수레에 짐 싣고 비 오는 저녁 비탈길을 올라가던 것이나 얼마 안 되는 세간들 밖에다 쌓아놓고 남의 집 창고에서 밤을 보낸 것 등은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아련한 아픔과 함께. 그 뒤 학교에 다니면서도 늘 집 주소가 바뀌었던 것, 집에서는 학교가 점점 멀어졌던 것, 그래서 처음에는 걸어서 학교 다니다 나중에는 버스를 한번 타고, 또 더 나중에는 버스에서 내려 차비 아끼려 한참을 더 걸어간 기억들…….
연준은 사실 그렇게 공부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잘못된 길로 빠지지도 않았다. 그저 평범하게 지내왔다. 고등학교나 대학 들어갈 때마다도 늘 아슬아슬하게……. 그래도 큰 굴곡 없이 살아왔다. 남들이 보기엔 무난한 성격일 것이다. 그렇지만 연준 내부는 늘 어두웠다. 외로웠다고나 할까. 할머니는 그것을 아시는지 항상 연준을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았지.
할머니.
다 큰 것을 넘어 중년에 이른 사내의 눈에서 괜스레 눈물이 감돌려 한다.
연준은 소녀 연희가 부산으로 간 것까지만 추적했다. 그 뒤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연희는 당연히 피난민촌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물론 피난민촌은 대구에도 있었고, 서울 근처에도 있었다. 그 당시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 특히 아이들은 그러한 곳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어두운 세계로 들어갔다면 모를까. 그 밖에 고아원이나 남의 집 양녀 또는 외국으로 입양되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말이 없었다. 소녀는 고성을 떠나 연준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까지 이 지구상에서 증발된 것과 같은 삶을 살았다. 연준은 그 공백을 메우려 70년 전 소녀의 체취를 맡으며 부산까지는 뒤쫓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부산. 그 당시 소녀의 눈에는 부산이 온 세상처럼 넓었을 것이다.
부모형제 없이 낯선 타지에서 열여섯 소녀는 어떻게 살아갔을까? 게다가 곧 겨울이 닥쳐왔을 텐데. 억센 남정네도 아니고 임신한 몸이다. 말투는 또 어떻겠나? 투박한 강원도 산골 사투리. 게다가 복장은? 산속 마을 촌뜨기.
전쟁통에 밀려드는 피난민들. 당시 부산의 인심이 어땠을지는 짐작할 만하다.
그런 환경에서 임신한 열여섯 소녀는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가 말이다.
하긴 그 시대 피난민들의 삶을 짐작 못하는 바는 아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신산스러운 하루하루.
그렇더라도 연준은 그 속에서 소녀를 찾아야 한다.
혹 할머니가 그 자취를 지워버린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자신을 추적하지 못하게. 추적의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할머니 자신은 알기에. 영원히 감추고 싶은 것. 그것을 손자 연준이 알아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 맞다. 이번에 그 노신부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할머니의 과거는 영원히 묻혀버렸을 것이다.
불쌍한 할머니.
70년 동안 가슴에 감춰두었던 비밀들. 그것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그러나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연준은 그것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일까?
여기까지 생각한 연준은 갑자기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감추어 두었던 비밀들이 밝혀지는 순간 갑자기 돌아가셨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부모형제의 원수를 고발한 승리감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연준이 고성경찰서에 찾아갔을 때 할머니의 그 평온한 듯한 눈빛은 무슨 뜻일까?
사랑? 미움?
하루 종일 성남 일대를 헤매고 집에 돌아온 연준은 다시 한번 할머니의 유품을 꺼내어 눈앞에 펼쳐놓았다. 누렇게 변색된 수건과 가위.
그리고 한 남자의 DNA. 그밖에 다른 사람 것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가위에서도 수건에서도 오직 한 사람의 DNA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왜 이것을 소중하게 간직한 것일까? 그리고 왜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일까?
피의 주인공.
할머니의 혈액형은 O형. 연준의 혈액형도 O형.
그렇다면 어머니의 혈액형도 O형일 것이고, 아버지의 혈액형도 O형, 할아버지의 혈액형도 O형일 것이다. 극단적인 예외의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고 가위의 혈액형도 O형.
더 정확한 것은 연준 자신의 DNA를 분석하면 알게 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연준은 가위와 수건에 묻은 혈액의 주인공이 아버지일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버지는 왜 집을 나갔는지 할머니는 명확히 말해 주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
몇십 년 동안 아버지가 연락하지 않은 이유는?
할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찾으려 했을까? 연준이 보기에는 그러했을 것 같지 않았다.
부조화.
맞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아버지가 실종된 지 40년이 넘었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에도 할머니는 성남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20년 이상 살았다. 아버지가 마음만 먹는다면 어떻게 해서든 연락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혹 할머니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을까?
아니면, 그 반대…….
아버지의 가출. 실종.
그러나 할머니는 아버지를 찾아다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버린 자식 취급한 것일까? 그래도 자식인데 40년 이상 무심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가위에 묻은 아버지의 그 피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할머니는 왜 그 끔찍한 가위를 유물처럼 보관했을까? 핏자국도 지우지 않고.
연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딘지 안개가 서서히 걷혀가는 듯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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