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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에서 생명이 탄생했다. 죽은 자들 사이에서 생명이 피어난 것이다. 소녀, 아니 엄마는 아기에게 수연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생명과 이름을 준 것이다.
그리고 아기는 아들이었다. 연준에게 생명을 이어줄 아들.
연준은 인천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신이 아들을 낳은 것처럼 가슴이 벅찼다.
그와 더불어 또 한 가지 사실이 연준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소녀를 찾은 것.
이는 아기를 낳은 것만큼이나 중요했다. 연준 자신으로 이어지는 역사가 될 소녀를 찾았기 때문이다.
소녀가 없다면 아기도 없었을 것이고, 결국 연준 자신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어린 나이에 그 고된 피난살이를 잘도 견뎠다. 소녀가 대견했다. 그 험악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았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이 정도면 친구들 불러서 잔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호쾌하게 웃어주기라도 할까?
이렇게 뜨겁고 벅찬 마음이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차츰차츰 식어가자 연준은 또다시 갑자기 우울해졌다.
소녀는 앞으로 얼마나 더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일까?
공동묘지 피난민촌에서 아비 없이 태어난 아기를 이제부터 키워나가야 할 소녀. 열여섯, 아니 열일곱이겠구나. 그 나이의 소녀가 어미가 되어 갓난아기와 함께 험한 피난살이를 제대로 견뎌낼 수 있을까?
연준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강하게 흔들었다. 그 바람에 차도 약간 흔들렸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연준은 씻지도 않고 또다시 할머니 유물을 꺼냈다.
피 묻은 수건과 가위.
연준의 아버지인 수연의 피.
아미동 공동묘지에서 태어난 아기의 피.
이것을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가?
하나는 생명의 피, 다른 하나는…….
죽음의 피?
죽음.
누구의 죽음인가?
가위에 그만한 피가 묻었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되면 방금 태어난 생명이 곧바로 죽음과 연결된다. 이 좁은 방 안에서.
그렇다면 할머니는 죽음을 의미하는 그 피를 왜 40여 년간 간직한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또한 피가 가위에 묻었다는 것은 누군가를 찔렀다는 뜻이다.
날카롭고 긴 가위로 사람을 찌르면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지금 찔린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그럼 찌른 사람은?
…….
누구란 말인가? 오늘 아미산에서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취한 그 사람은?
그리고 그보다 더 궁금한 것, 남의 생명을 취한 가위를 할머니가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한 이유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