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야기
7
희영은 아이들의 뺨을 어루만지며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문득 숲 쪽을 돌아다보았다.
소년이 서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언제 온 거지?
아, 어제 온다고 그랬었지. 그래도 어떻게 소리도 내지 않고 저렇게 나타난 것일까?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제가 하늘에서 왔다고 했잖아요.”
희영은 갑자기 어제 일이 떠올랐다. 어제도 저 애는 희영의 생각을 읽는 듯 말하기도 전에 대답을 했다.
희영은 가만히 서서 소년을 바라보았다. 찬찬히. 무엇인가 염탐이라도 하는 듯이.
저 애 정체가 뭘까?
“제 정체는 아줌마 마음이에요.”
희영은 어제의 일이 생각이 나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계속 쳐다보기만 했다.
소년이 천천히 걸어서 다가온다. 그리고 몇 발자국 앞에서 멈춰섰다. 소년의 맑은 눈이 빛나고 있었다.
희영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하면서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 맑다. 어제는 구름 몇 조각이 흐르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마저 하나도 보이지 않고 하늘은 온통 청옥색 바다였다. 하늘로 뛰어들면 풍덩 빠져서 온몸이 푸른색으로 물들 것만 같았다.
“너무도 맑구나.”
희영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혀 하늘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투명한 감청색이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어서 좀더 쳐다보면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 감청색 너머 더욱 깊은 심연의 우주 공간으로. 그리고 그 우주는 영화에서 보는 깜깜한 공간이 아니라 감청색보다 더욱 짙은 신비한 색의 세계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 저곳으로 가자. 내가 가는 거야. 내가 갈 곳은 저기야.
“그곳은 아무도 갈 수 없어요. 오직 저만 갈 수 있답니다.”
희영은 다시 고개를 내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현실이 나타났다. 산중턱 비밀의 풀밭, 낭떠러지 앞의 현실이.
“너는 왜 여기에 왔니?”
희영은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물어보았다. 자신의 생각이 읽히는 것이 싫어서 마음에서 떠오르자마자 얼른 말한 것이다.
“성진희 씨를 기억하게 해드리려고요.”
성진희……? 그 사람 이름이 왜 저 애 입에서 나오는 거지?
“무슨 기억?” 소년이 희영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희영이 먼저 말을 했다.
“며칠 전에 들으셨잖아요.”
그래, 들었어. 죽으려 했다고 그랬었지. 희영이 또다시 얼른 말을 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알아? 어디에서 들었니?”
“저는 다 알아요. 아줌마가 그분 때문에 여기에 온 것까지도요.”
아…….
그래, 성진희.
하……!
희영은 고개를 숙였다. 풀밭이 있었다. 그러나 풀들은 보이지 않고 물방울 너머의 흐릿한 초록만 보일 뿐이었다. 희영의 눈에 눈물이 고였던 것이다.
희영은 몸이 그대로 쓰러지려는 것을 전동차 뒷손잡이를 강하게 붙잡고 버텼다.
8
희영은 며칠 전 사무실에서 여직원들 몇이 모여서 하던 말을 마음속에 깊이 넣어두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너무 불쌍해.”
“그런데 그게 엄마 마음일 수도 있어.”
“차라리 시댁에 맡기지 그랬을까…….”
“얘, 그런 말 하지 마. 엄마 마음은 다른 거야.”
“그래도 그렇지.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낫잖아.”
“죽는다는 말 하지 마. 끔찍하다.”
“어떻든 다행이야. 세상 일 겉으로만 봐서는 아무도 알 수 없어…….”
“그러게 말야.”
희영은 그 말을 듣고는 처음에는 잠시 어리둥절했었다. 누구 얘기를 하는 거지? 그러나 곧 그것이 성진희에 대한 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 성진희가 자신에게 전화했던 것을 떠올렸다. 함께 회사생활을 할 때는 도도하게 굴면서 희영을 몇 수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었던 성진희. 그녀는 말도 희영과 잘 섞지 않으려 하고 어딘가 다른 세계 사람처럼 외면하고 다녔었다. 혹 업무에 관련된 일이 있어서 마주치게 되더라도 말은 거의 없이 서류상으로만 대하겠다는 듯이 문서를 찾아서 갖다주며 참조해서 처리하라고 말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소위 노는 물이 달랐다. 늘 윗사람들 속에만 들어가 있었고,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해나갔다. 그렇다고 건방지거나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항상 부드러운 미소와 친절이 몸에 배어 있어서 흠 잡을 데가 없이 처신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유독 희영에게만은 어딘지 쌀쌀맞게 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쟁자도 아닌데. 아마도 자신과 클래스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희영도 회사 내에서는 꽤 인정받는 축에 속해 있었지만, 그런 것만 가지고는 자신과 같은 세계에 들어오기 힘들다는 것을 은연중에, 아니 어느 정도는 의도적으로 알려주려 한 것이겠지.
그러던 성진희가 어느 날 갑자기 퇴직했다. 그에 대해 말들이 많았지만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며칠 전에 성진희한테서 전화가 온 것이다. 희영은 간부들 명단에 있는 그녀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있어서, 그 이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머뭇거릴 정도였던 것이다.
“어머, 저 희영이에요.”
“응, 그래. 잘 지냈어?”
“그럼요. 그런데 어떻게 저한테…….”
“아니,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나서. 회사는 별일 없지? 다들 잘 있고?”
“네, 잘 있어요. 사람들이 좀 바뀌긴 했지만.”
“그렇겠지. 시간이 지나면 다 그런 거니까.”
“혹 무슨 일 있으세요.”
“아냐. 그냥 전화했어. 아, 그리고…….” 성진희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했다. 망설이는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꼭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희영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미안해.”
“네? 뭐가요?”
“아냐, 아냐. 그냥 전화했어. 갑자기 생각나서…….”
이 말 뒤 그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전화는 끝났다. 그리고 희영은 갑자기 맥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었다. 사실 희영은 성진희에 대해서 거의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일할 때 멀리 보던 그녀에 대해서 썩 좋은 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악감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성진희는 항상 유리 너머의 사람이었으니까. 즉,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비교는 물론 희영 자신이 그 유리 너머로는 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그날 여직원들 이야기를 통해 성진희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에서 더 나아가 그녀의 비밀 공간, 즉 사생활에 대해서도 알게 된 것이다.
성진희는 집안이 무척 좋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거의 준재벌급 집안의 남자와 결혼했다. 그리고 딸을 낳았는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식물인간 상태라고 했다. 그 뒤부터 심한 부부싸움과 시댁 어른들과의 갈등을 견디다 못해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취직도 하면서 딸을 혼자 키웠다. 낮에는 간호하는 사람을 두고서. 그러나 딸은 엄마가 없을 때 자주 발작을 일으켜 위험한 일이 많이 있었다. 성진희는 이러한 일을 외부에는 전혀 알리지 않고 혼자서 다 헤쳐나가려 했다. 그러나 딸이 발작을 일으키는 횟수와 강도가 점점 심해지자 결단을 내려서 회사를 그만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딸에게 모든 것을 쏟아 돌보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치료해 보려고 백방으로 애를 썼다. 그러나 딸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그러자 결국 성진희는 절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별거하는 남편에게 딸을 맡아달라는 글을 보내고 나서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이 일이 있기 바로 전날 성진희는 희영에게 전화를 했다.
아마도 성진희의 가슴에 희영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희영은 다 잊어버린, 아니 처음부터 염두에도 두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줌마하고 성진희 씨하고는 경우가 달라요.”
소년의 말투가 다소 딱딱해졌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잘 아시잖아요. 이기적이라는 것. 게다가 범죄라는 것.”
범죄? 희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생명은 다 똑같아요. 형태만 다를 뿐이지.”
갑자기 희영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왔다. 그리고 희영은 낭떠러지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희영은 그곳으로 두 아이와 함께 굴러 떨어지기로 했던 것이다. 전동모터의 오작동으로 인한 급발진을 가장해서. 아니면 작동미숙으로.
그러면 당연히 두 아이는 죽겠지. 그리고 희영 자신은 운에 맡기기로 했다. 아주 깊은 낭떠러지는 아니기에 희영은 살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떻든 운에 맡기고 시도해 보려 한 것이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더 이상 미래가 없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일을 하고, 또 그에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두 아이는 희영을 뒤로 잡아당기는 장애물이었다. 게다가 부모님도 더 이상 아이들을 맡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 생각이 처음 머릿속에서 스쳐갔을 때 사무실에서 희영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를 강하게 흔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 모두 돌아다보았을 정도로. 희영은 그 장면에서 갑자기 무안해져 얼른 돌아서서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변기 위에 앉아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자책했다. 자신이 어떻게 그런 끔찍한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원망하면서.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그전부터 그런 생각들이 자기 마음속에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희영은 알게 되었다. 그것을 의식적으로 끄집어내어 구체화시키지만 않았을 뿐.
그런 도중에 성진희의 자살시도 소식을 듣고 갑자기 마음속 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던 씨앗이 순식간에 발아하면서 잎을 펼치고 꽃을 피운 것이다. 성진희도 그랬었구나. 그렇게 힘들어했어. 그래서 그런 생각도 했고. 나만 그런 것이 아니야. 다들 그런 거야. 나만 나쁜 게 아니란 말야. 니네들, 나 같은 환경에 빠진 사람들의 절망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들이 얼마나 처참하고 낙담하며 사는지 몰라. 우리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너희들이 뭘 알아…….
희영은 승진한 날 밤, 창 밖 아래의 야경을 내려다보면서 결심을 굳혔다. 이 순간이 지나면 또다시 실행하기 어렵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전에 정리하자. 만일 잘못되면 나도 함께 죽는 거야. 그것도 괜찮아. 이렇게 계속 두 아이 바라보면서 사는 것, 더는 견딜 수 없어.
희영은 풀밭에 주저앉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부끄럽지도 않았고 죄책감도 없었다. 단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희영 자신은 모르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한없이 흐르고 있었다.
희영은 그렇게 한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나서 두 아이를 한꺼번에 껴안았다. 그리고 볼을 비볐다. 눈물 젖은 뺨으로.
희영이 문득 생각이 나서 고개를 들고 소년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희영은 다시 아이들 쪽으로 얼굴을 돌려 힘껏 껴안았다.
그 순간 어제 대답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생각났다. 이제는 벗어나자. 탈(脫). 탈의 세 번째 의미. 탈출. 지금껏 갇혀 있었던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
자유를 얻자. 그동안 희영을 옥죄고 있었던, 자신을 억압하고 있었던 거짓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다. 남들과 다른 아들을 가진 엄마. 그러나 단지 다를 뿐이다. 사는 방식이. 다른 아이들은 바깥의 세상에서 산다면, 내 아이들은 내면의 세계에서 산다. 내면과 외면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삶은 동일하다.
그렇잖은가.
세상 사람들아, 내 말이 맞지?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