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야기
40대 이야기
1
덕진은 아무런 소득도 없는 일에 매달리는 자신이 늘 한심하게 생각되었다. 그러나 벌써 20년이나 해온 그 일에서 벗어날 수도 없었다. 말이 좋아 시민운동이지 온종일 발품 팔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보람도 느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다 시들했다. 그래도 지금껏 해온 일 여기에서 그만두면 다른 사람이 대신 할 리도 없어 마지못해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 탓에 돈 버는 일 하고는 관계가 없는 덕진은 집 안에만 들어가면 목소리가 모기만 해진다. 집안 살림은 모두 아내가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 같은 사람들이 있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거야.”
덕진은 이 말을 아예 달고 산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 그렇게 말을 해서 별명이 아예 ‘세제돌’이 되었다. 이세돌이 아니고 세제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를 줄인 것이다. 하지만 이세돌은 바둑계를 평정하고 컴퓨터에게도 이겼지만, 덕진은 바둑은 7급을 넘어본 적이 없고, 컴퓨터는 만지기만 하면 망가진다. 남들이 하면 멀쩡하게 잘 되는 컴퓨터가 덕진이 건드리는 순간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화면의 커서는 제 마음대로 날뛰고, 프로그램은 풀 수도 없을 정도로 뒤엉켜버리며, 어떤 때는 저절로 전원이 나가버리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고생고생을 하며 그때까지 쳐놓은 문서 다 날아가 버려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덕진은 아예 컴퓨터를 만지지 않으려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 탓에 고생만 무지 한다. 누구 말을 들어보니 손에 땀이 많이 나는 데다가 알파(α)파라는 것이 나와서 그렇다고 한다. 어느 유명한 소설가 역시 그런 현상이 있어서 아예 컴퓨터는 건드리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 한편으로는 위안도 얻게 된다. 남들은 그 알파파인지 뭔지 하는 이론 안 믿고서, 덕진이 컴퓨터를 제대로 다룰 줄도 모르고 자기 잘못은 알지도 못하면서 성질이나 푹푹 내며 아무 자판이나 마구 두드려대고 억지로 껐다 켰다 하는 바람에 컴퓨터에 무리가 가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야단치고 핀잔하지만, 덕진은 그래도 비빌 만한 구석이 생겼다고 하며 알파파 이론을 핑계로 삼는 것이다. 게다가 집 안에서 무엇 망가지거나 고칠 것이 있으면 아예 손대지 않는 게 집안 편하게 해주는 것이고 또 고쳐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괜히 으스대며 나서는 바람에 결국 일이 커져서 돈도 시간도 더 들게 만드는 것이다. 그 탓에 집에서는 덕진은 아예 내놓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집’에서만.
그렇지만 밖에만 나가면 덕진은 날개 돋친 호랑이가 된다. 일종의 ‘전사’니까.
덕진은 사무실로 나갔다. 사무실이라야 별것 아니다. 사람들 손에 잘 안 잡히는 인문학 서적을 펴내는 출판사 한쪽 옆에 책상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뿐이니까. 그래도 임대료 일부를 부담하기 때문에 당당히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임대료 외에는 모두 신세 지고 있다. 그래서 목소리는 높이지 않는다. 냉난방, 팩스, 인터넷, 복사, 우편, 전기, 수도, 통신 등의 관리비는 모두 출판사에서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 출판사는 서점보다는 주로 대학이나 연구단체를 상대로 책을 만드는데, 책을 펴내는 순간부터 적자이기 때문에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여러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그래도 매달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사장의 형이 제법 큰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덕에 아직도 망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출판사 규모에 비해 직원은 꽤 많은 편이다. 사장 포함해서 열 명이나 되니까. 소규모 출판사치고는 과한 편이지만, 월급이 너무 적어 실제로는 대여섯 명 수준밖에 안 된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모두가 열심이다. 그 봉급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지만, 어느 누구에게서도 불평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소신을 듬뿍듬뿍 담아낸 책들을 펴내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덕진이 오히려 이곳에서는 부르주아가 되는 셈이다. 아내가 하는 무역회사가 그런대로 잘 나가고 있어서 덕진이 한 푼도 벌지 못해도 살림이 쪼들리지 않으니까. 게다가 아내는 덕진이 하는 시민운동을 적극 지지해 주고 있다.
시민운동.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답답한 일이다. 우선 운영자금으로 정부에서 주는 몇 푼 안 되는 보조금은 아예 의미도 없을 정도고, 책임자를 맡고 있는 덕진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받아오는 후원금과 아내가 덕진을 위해 근 10년 동안 별도로 모아서 간신히 사들인 허름한 4층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겨우겨우 충당한다. 그 임대료가 전체 운영비의 근 5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민운동이라는 것이 말은 거창하지만, 세부적인 것으로 들어가 보면 구제사업이나 마찬가지이다. 시민운동을 하다가 구속되거나 재판받는 사람들의 변호사 비용,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 뒷바라지, 그리고 그 가족들의 생계비와 자녀들 학비 일부 보조, 또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억울하게 몰려서 차별당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언론이나 사회에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정부나 관련기관으로부터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나 법원에 청원하고 압박하는 등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여러 기관이나 기업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이 사회 각 분야에서 기피 1호인 진드기인 셈이다.
그러하니 자연스럽게 덕진 자체가 주변 모든 사람으로부터 왕 비호감이 되어 그의 등장과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덕진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전화하고 편지하고 찾아가고 기다리고 하는 바람에 그 뜻 좋고 의미 좋은 덕진이라는 이름만 나와도 사람들은 아예 진저리를 내는 것이었다.
“이름 좀 바꾸면 안 될까요?”
“뭐라고 바꿀까요? 하나 지어주시지요.”
“진드기 어떨까요?”
“좋은데요. 앞으로 그렇게 불러주세요.”
덕진은 헤 웃으며 자신이 후원금 액수를 미리 써놓은 약정서를 내민다.
“0 하나만 지웁시다.”
“더 붙이려다 뺀 겁니다. 제가 오늘 그냥 갔다가 다시 오면 원래대로 0이 하나 더 들어갈 텐데요.”
그러면 담당자는 화장실이 급하다며 일어나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덕진은 그냥 자리에 앉아서 퇴근시간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6시 다 되어 나타난 담당자는 이렇게 말한다.
“거 잠은 집에 가서 주무시죠. 주인도 없는 남의 책상에서 꼭 그렇게 코 골며 자야 합니까?”
그때서야 덕진은 고개를 들고 기지개 펴고서 팔과 목을 두드리며 투덜거린다. 담당자 책상에 두 팔 올려놓은 채 얼굴 파묻고서 깊이 잠들었다가 일어난 것이다.
“아, 거 잠자기 되게 불편하네. 팔이랑 목이 다 뻣뻣해졌어요. 메모리폼 베개라도 하나 가지고 다녀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정말로 큼직한 메모리폼 베개를 가지고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지난번보다 0이 하나 더 붙은 약정서를 내민다.
이렇게 해서 간신히 1년에 얼마 안 되는 금액의 약정서를 받아내고, 그중에서 80~90%만 달성하면 만족한다. 100%를 다 주는 곳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긴 그들도 뜯기는 곳이 한둘이 아니니까. 그래도 어떻든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진덕의 실적이 가장 좋다고 한다. 안면철판에 진드기 작전이 주효한 덕분이다.
덕진이 하는 일은 이런 것뿐만이 아니다.
노점상 하다가 불법지역이라며 벌금 쪽지 받은 할머니 대신해서 경찰서에 찾아가면 글자 그대로 호랑이로 변해 버린다. 보통 키에 약간 마른 듯한 체격 어디에서 그런 목소리와 배짱이 나오는지 글자 그대로 고함을 넘어 함성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고성이 나오는 것이다. 마치 메가폰 들이댄 것처럼. 게다가 마치 경찰서 다 때려부술 것 같은 기세로 달려들어가서 사무실마다 돌아다니며 난장판을 벌이는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고소도 당하고 벌금도 상당히 물었지만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성 잃은 사람처럼 행동을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덕진이 나타나면 아예 모두 피해버리고 만다. 그 덕에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긴 했지만.
사정이 이러하니 대한민국에서 덕진을 환영하는 기관이나 회사는 거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일도 수월하게 풀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요즘 아내의 회사가 갑자기 어렵게 되었다. 중국 회사와 계약한 것이 거의 사기에 가까운 일로 밝혀지고 법적인 일로도 번지면서 자금회전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은행융자도 막혀버리고.
따라서 덕진이 하는 시민운동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든든한 기둥 같은 자금원이 흔들리게 되고 말았다.
2
덕진은 당장 함께 일하는 사무원의 활동비도 줄 수 없게 되었다. 월급이라는 말이 부끄러워 활동비라고 이름을 붙여 매달 지급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무원은 버젓한 직장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실력도 있고, 게다가 미혼모여서 딸애까지 딸려 있는데도 그런 쥐꼬리만 한 금액을 받고서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는다.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서 낮에는 덕진의 일을 열심히 도와주고 저녁에 딸을 데리러 간다. 교육경비는 나라에서 많이 보조해 주고 있어서 큰돈은 들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운수 대통해서 조그만 영구임대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던 덕에 자신은 행운녀라고 한다.
그래서 덕진은 아내한테서 받는 자기 용돈을 몽땅 그 직원에게 주고 있었다. 그래 봤자 활동비의 반밖에 되지 않지만. 그 용돈 속에는 차 운영비도 들어 있었는데, 그 돈이 없어지자 덕진은 여간 불편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약간의 용돈을 더 받았지만, 점심값하고 버스나 지하철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담배는 아예 안 피우고, 술은 거의 멀리하기 때문에 큰돈이 안 들어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덕진의 일이라는 것이 원래부터 사람 찾아다니는 것이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서울 시내뿐만 아니라 근교까지 안 가는 곳이 없었다. 점심은 집에 남아 있은 것 대충 싸와서 해결한다지만, 교통비는 다른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사람 찾아다닐 때 아무리 시민운동 한다며 빈손으로 다닌다고 해도 하다못해 귤 한 봉지씩은 들고 가야 한다. 용돈 넉넉할 때는 그런 정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막상 주머니가 헐렁하다 보니 귤 한 봉지가 쌀 한 가마니처럼 부담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나다니며 늘 마주치는 길거리 좌판에서 이것저것 사가곤 했었는데, 그곳을 말로만 때우고 그냥 지나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일부러 멀리 돌아서 가기도 하고, 두세 번 지나칠 때 한번 사는 식으로 때웠지만 그것마저도 몹시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이것 참, 이제는 내가 도움받아야 하는 처지가 된 것 같은데?”
주머니가 비니까 정말로 사람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버텼는데 결국 종착지까지 가고 말았다. 아내의 회사가 마침내 도산한 것이다. 무역회사라는 것이 알고 보면 껍데기와 같은 것이다. 공장이나 빌딩 또는 토지 같은 부동산은 없고 순전히 중개수수료로 먹고 사는 것이라 회사가 망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게다가 신용불량자까지 되면 금융거래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어떻든 아내의 회사가 무너지면서 덕진 부부에게 남은 것은 담보대출이 이미 한도가 넘은 아파트 한 채와 덕진이 타고 다니던 낡은 SUV 한 대뿐이었다. 아내가 월세 받아서 시민운동에 보태 쓰라고 사준 낡은 건물까지 눈물을 머금고 팔아야 했으니까. 덕진은 마지막까지도 그 건물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보려 했었다. 그 건물은 덕진이 하는 일의 기둥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건물이 아무리 낡았어도 흔히 하는 말처럼 조물주 아래 건물주라며 엄살떨지 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도 낡아서 유지보수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허물고 다시 짓기에는 형편이 되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싸게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미적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딸 둘이 하나는 외고에, 또 하나는 예고에 다니는 데다 여러 과외와 레슨까지 받아야 해서 교육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던 중에 은행 이자가 계속 쌓여가면서 독촉을 넘어서 법적 조치까지 하겠다고 해대자 더는 견디지 못하고 팔 수밖에 없었다. 글자 그대로 눈물을 머금고. 그리고서 남은 얼마 안 되는 금액은 아이들 교육비로만 쓰자고 다짐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손대지 않기로 두 부부가 맹세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덕진이 하는 일이 많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묘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덕진이 경찰서에 가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사무실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려고 의자를 빼는데 사무실을 같이 쓰는 황보 사장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덕진은 저도 모르게 동작이 멈춰졌다. 평소 대화는 많이 하지 않지만 서로 배포가 맞아 속을 터놓는 사이여서 황보 사장이 덕진에게 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으나, 이번만은 덕진이 어딘지 모르게 평범치 않다고 느낀 것이다. 그래서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황보 사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좀 나가지.”
황보 사장은 그 말만 하고 뒤돌아서서 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제야 덕진이 어떤 예감으로 사무실 안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모두가 바라보고 있다가 황급히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덕진은 저도 모르게 서러운 마음이 확 올라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간신히 버텨오던 자신에게 사람들이 이유 모를 돌을 던진다는 느낌이 든 것이다.
니들, 나한테 이러면 안 돼!
덕진은 누구랄 것 없는 대상을 향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생각 같아서는 주먹이라도 불끈 쥔 채 들어올리고서 부르짖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덕진은 저들처럼 자신도 그들을 외면하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황보 사장은 이층에서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막 내려서고 있었다. 그 뒤통수가 갑자기 크게 다가왔다. 평소부터 머리를 약간 장발로 기른 데다가 살짝 헝클어져 있어서 머리칼로만 치면 마치 사자 갈기 같아서 보기에도 썩 괜찮았던 그 머리의 뒤통수. 갑자기 무서워졌다. 정말 사자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사실 황보 사장과 단둘이 어디에 가서 대화한 적은 덕진의 기억으로는 한 번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럴 만한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서로가 거리낄 것 없이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덕진의 마음에선 빨간 경고등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었다. 그리고 혹 자신이 빠뜨린 일이 있나 생각해 보았다. 얼마 안 되는 임대료이지만 그것은 한 번도 날짜 어기지 않고 제 때에 다 주었다. 덕진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리고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이일수록 약속 하나만은 철저히 지키자는 주의였으니까. 그래서 지금까지 적어도 주변 사람들한테서는 불편한 소리 한번 안 듣고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황보 사장은 사무실 건너편 무슨 신용금고 건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이층에 커피숍이 있다. 덕진이 자주 가는 곳이다.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무실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덕진이 커피숍으로 들어가자 황보 사장이 가장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앉는 것이 보였다.
덕진은 커피숍 직원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한 다음 황보 사장 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 앞에 커피잔이 놓일 때까지 황보 사장은 덕진을 외면하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덕진이 마음은 불편하지만 애써 억누르며 잔을 들고 함께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황보 사장이 시선은 그대로 창밖을 향한 채 말을 꺼낸다.
“아까 기자가 다녀갔어.”
뭐 그런 일은 여러 번 있다. 시민운동이라는 것을 하다 보면 때로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하고 표적이 되기도 한다.
“나한테는 연락이 안 왔는데.”
덕진은 이렇게 대꾸하면서 얼른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혹 자신이 놓친 전화나 카톡이 있나 살펴보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의 마음으로 살며시 큰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사무실 문제는 아니니까. 사실 덕진은 사무실 임대료가 항상 마음에 걸려 있었던 차였기 때문이다. 너무 싸서 늘 미안한 마음이니까.
“나한테 숨기는 거 있나?” 황보 사장이 다시 입을 연다.
“……?”
덕진은 얼굴을 들고 황보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황보 사장은 아직도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덕진은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다.
몇 초 흘렀다.
황보 사장이 드디어 시선을 창밖에서 덕진에게 옮겼다. 그러나 그 얼굴은 차가운 표정이었다. 물론 평소에도 나긋한 얼굴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법 위엄은 있었다. 적어도 사자 갈기에는 어울렸던 것이다. 물론 이번 표정도 사자 갈기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어딘지 힐난하고 문책하는 그런 험한 얼굴이었던 것이다.
덕진은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어서 황보 사장 얼굴이 아니라 사자 갈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황보 사장이 주머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어 탁자에 올려놓는다. 덕진이 바라보자 한 주간지의 기자였다. 물론 그 주간지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친하다는 뜻은 아니다. 언론사 사람들은 적어도 한두 번은 모두 만나서 명함을 주고받고 했으니까 그런 면에서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시민운동을 하다 보면 서울이나 지방의 신문을 비롯해서 TV, 주간지, 월간지, 계간지 기자는 물론 하다못해 유튜브 방송 담당자들까지 만나지 않을 수 없고, 또 그 사람들한테 인심도 얻어놔야 한다. 그러나 그 주간지 기자는 어딘지 모르게 처음부터 정이 가지도 않았고, 또 그렇다 보니 살가운 대화 한번 나눈 적도 없었다. 그저 먼 산 바라보듯 하는 그런 사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주간지에 덕진의 기사가 좋게든 나쁘게든 나온 적도 없었다.
그랬던 기자가 전화도 하지 않고 덕진의 사무실에 찾아온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게다가 황보 사장하고 대화까지 한 것 같은데, 그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황보 사장과 그 주간지는 노선이 달라도 너무도 달라 황보 사장의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을 다른 매체에서는 대문짝만하게 다루어도 절대로 그 주간지에서는 단 한 줄의 서평도 안 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주간지가 서적, 특히 인문서적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이긴 했지만.
따라서 그 기자가 다녀갔다는 것은, 게다가 황보 사장과 대화까지 했다는 사실은 예삿일이 아니다. 그리고 ‘숨기는 거’라는 말이 나온 것을 보면 황보 사장이 아니라 덕진에 대한 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숨기는 것이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
“그 건물 어떻게 된 거야?”
“무슨 건물?”
“한 소장이 빼돌린 건물.”
빼돌려?
“무슨 소리야?”
“한 소장이 한 일을 한 소장이 모른다는 거야?”
덕진은 벌떡 일어났다.
지금까지 신세 진 것은 신세 진 거다. 그렇지만 이 말만은 참을 수 없다. 그동안 시민운동 한답시고 마누라 등골 다 빼먹고 이제 길거리에 나앉게까지 생겼는데 건물을 빼돌리다니?
덕진이 몸을 돌이켜 자리에서 나가려 하자 황보 사장이 다소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한다.
“앉아. 흥분하지 말고.”
덕진은 눈물이 왈칵 솟을 것만 같았다.
계집애같이…….
덕진은 주먹을 불끈 쥐고 몸을 돌려 황보 사장을 노려보았다.
황보 사장이 약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인다. 그리고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다시 말한다.
“일단 앉아.”
황보 사장의 목소리가 좀 전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덕진은 멈칫거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커피숍 사람들 몇이 돌아다보고 있었다.
덕진은 마음을 억누르며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커피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가 아주 썼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니까 알아듣게 말해 봐.”
덕진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황보 사장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나직이 말했다.
그러자 황보 사장이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탁자에 내려놓은 명함을 한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연다.
“이놈이 한 소장 뒤를 다 캐고 다니는 모양이야. 요즘 심 사장 사업이 안 좋아 많이 힘들었잖아. 지원해 주는 것도 줄이고. 그래서 여러 소문이 돈 것 같아.”
심 사장은 덕진의 부인 심경희를 말한다.
덕진은 쓴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셨다. 좀 전보다 더 썼다.
“게다가 그쪽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던 모양이야. 그 기자 놈 말로는 자기가 알아보니까, 심 사장이 한 소장 단체에 기부한 건물을 불법적으로 팔아서 빼돌렸다고 하는 거야. 그 말 어떻게 된 거야?”
덕진은 커피잔을 황보 사장에게 집어던질 뻔했다. 그 대신 이번에도 벌떡 일어섰다. 그 기세가 너무 지나쳤는지 이번에는 탁자가 덕진의 무릎에 걸려 앞으로 밀려나고, 의자도 뒤로 확 밀려서 뒷자리 의자까지 덜컹거리며 옆으로 삐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탁자에 놓인 잔이 쓰러지며 커피가 다 쏟아졌다. 그 탓에 황보 사장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의자가 뒤로 밀리면서 벽에 쾅 하고 부딪혔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뒤돌아보고, 직원 한 사람은 커피를 내려놓다가 깜짝 놀라 돌아보다가 커피를 엎질렀는지 당황해하며 테이블에 놓인 휴지를 급히 빼내어 닦는다.
덕진은 뒤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 커피숍을 나갔다. 그리고 사무실에 가서 의자에는 앉지 않고 두 손으로 책상을 짚고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경찰서에서처럼 보이는 것은 다 집어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출판사 직원들은 덕진의 그런 모습의 의미를 알고 있는 듯 모두들 숨죽이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낡은 건물은 처음부터 덕진의 아내 소유였고, 단 한 번도 명의가 바뀌거나 덕진의 단체에 속한 적도 없었다. 따라서 그 건물을 통해 어떤 이익을 얻든 덕진이 하는 시민운동 단체와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그 이익을 덕진의 사업에 기부한 일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건물을 팔든 말든 남이 상관할 일이 아니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