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진실의 무게 (2)

40대 이야기

by Rud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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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그 기자의 주간지에 기사가 하나 실렸다.


한 진보 시민운동가의 두 얼굴


그러나 덕진이 보기에 우선 제목부터가 틀려먹었다. 진보라니? 덕진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진보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다. 실제로도 투표할 때 진영을 보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 표를 준 것이다. 게다가 대한민국 현실에서 진보와 보수가 어디 있는가? 진정한 진보와 보수의 가치가 대한민국에서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가짜 진보와 가짜 보수는 있을망정. 덕진은 서구에서 싹트고 자란 진보와 보수의 논리는 대한민국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언론에서 국민을 자기들 편의에 맞게 편을 갈라놓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야만 적어도 한쪽 편의 고정적인 숫자만큼은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둘로 찢어 편싸움하게 만들어놓고 즐기는 집단이 바로 언론과 정치라고 덕진은 늘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더욱 마땅찮은 것은, 그 기자는 단 한 번도 덕진과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전화나 이메일이나 카톡 등 어떠한 형태로든 접촉해서 확인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덕진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확신에 찬 기사를 쓰고, 또한 진보나 보수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그 기자가 덕진 한 개인뿐만 아니라 기자와 반대되는 진영을 뭉텅이로 매도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덕진은 생각했다.

그 뒤 한 달 동안 이어지는 여러 매체의 기사와 뉴스에 덕진의 가족은 엄청나게 시달렸다. 두 딸은 우울증에 걸릴 정도였고, 아내는 몸져눕기 직전이었다. 그동안 여러모로 지원하고 후원해 주며 돕던 모든 사람이 다 떠나갔다. 후원금 보내주던 기관과 업체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도와주던 사람들한테서 환불해 달라는 요청도 무더기로 쏟아져 들어왔다. 전화, 카톡, 이메일, 편지는 물론 직접 찾아와서 항의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덕진의 아파트와 사무실 앞에는 여러 매체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사진 찍고 인터뷰하자고 법석을 떨었으며, 심지어 두 딸의 학교로도 찾아갔다. 더군다나 아내의 회사가 망한 일까지 상세히 보도했으며, 그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재산을 빼돌린 것처럼 기사가 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경찰과 검찰, 세무서에서 조사가 나오고.

그 탓에 덕진의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갔다. 덕진은 출판사 사무실에서도 나오게 되었고, 함께 일하던 사무원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사무원만은 끝까지 덕진을 믿어주는 것 같았다. 그 사무원이 모든 회계를 담당하고 있었으며, 덕진이 모금액에서 단 한 푼도 가져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진은 자신이 만든 비영리단체인 ‘같은하늘아래에서’, 줄여서 ‘하늘아’의 모든 입출금과 회계장부 및 은행계좌 관리를 그 사무원이 전담토록 했으며, 덕진은 아예 장부 자체를 보지도 않고 전담 회계사에게 직접 감사케 하고서 그 결과만 보고받았다.

그러나 세상은 어떠한가? 그것은 상상에 맡긴다.

덕진은 자신의 기사가 나간 언론사마다 찾아가서 직접 해명했다. 그리고 정정 보도를 요청했다. 그러자 그것이 오히려 언론압박이니 협박이니 하는 말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두 달 정도 지나자 언론에서도 시들해졌는지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덕진의 집은 초토화되고 말았다. 두 딸 모두 정신적 충격과 학생들의 따돌림으로 인해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어서 휴학하기에 이르렀다. 말이 휴학이지 대학도 아니고 고1과 고3이 1년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한 학기도 아니고. 게다가 두 아이는 심한 좌절감과 사회에 대한 배신감으로 성격마저 이상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렇게 온순하고 착하던 아이들이 공격적이고 비관적으로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따라서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아이들을 앞으로 어떻게 공부시키고 이끌어주어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

경찰과 검찰, 그리고 세무서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근 6개월이 지난 뒤 결국 덕진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끝난 것은 아니었다. 감사 결과와는 무관하게 사람들은 여러 형태로 덕진의 가족을 괴롭혔다. 처음 언론에 언급될 때의 그 이미지에서 별로 나아지지 않은 것이다.

덕진은 언론사를 고소하고 언론중재위원회에도 호소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끔찍하게 더뎠다. 그렇다고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만 질질 끌면서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흐지부지되고 만 것이다.

게다가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덕진이 사무원인 미혼모 윤영지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소문까지 난 것이다. 그리고 그 진원지를 캐보니 결국 기자, 즉 처음에 기사를 낸 그 인간이라는 심증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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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은 인터넷을 다 뒤져 댓글을 모두 조사했다. 그리고 악플 화면을 모조리 캡처해서 모아놓았다. 악질 기사도 지방지나 유튜브, 그리고 개인 블로그까지 모두 뒤져서 찾아냈다. 그리고 덕진이 호랑이인 것을 증명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덕진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과 시민운동을 모두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그 주간지 정기우 기자를 한 달 이상 뒤쫓아 집과 그 가족을 상세히 조사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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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은 집을 나섰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게다가 아내와 몹시 싸웠다. 사무원 윤영지와의 소문 때문이었다.

사실 윤영지는 처음 기사가 날 무렵부터 ‘하늘아’를 그만두겠다고 했었는데 덕진이 간신히 설득해서 한 달 정도 더 일하고는 결국 나가고 말았다. 더 이상 할 일도 없었고, 활동비도 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 회계장부 감사 등으로 인해 여러 군데 불려다니면서 꽤 많은 곤욕을 당했다. 덕진과 공모해서 자금을 유용하거나 빼돌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받았다.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윤영지 역시 덕진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소문으로 인해 고통 받게 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공적이든 사적이든 더 이상 연락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모든 일을 곱씹으면서 덕진은 터덜터덜 걸었다. 막상 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동안 가까이 지냈던 사람이 모두 다 피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 고물차마저 끌고 다닐 형편이 아니었고, 주머니에는 몇 푼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어디 가서 돈 만 원 빌릴 곳도 없었고. 아내는 저당 잔뜩 잡혀 있는 아파트 팔아버리고 두 딸과 함께 친정으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그러면 더더욱 덕진은 갈 곳이 없어진다. 덕진 자기 때문이 이 지경이 났는데 무슨 낯으로 처가에 들어간단 말인가. 처가는 집안이 꽤 왕성해서 아내와 두 딸이 얹혀산들 크게 부담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 아내의 사업도 처가 쪽에서 많이 도와주어 제법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야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지만. 반면에 덕진 친가 쪽은 부모님은 모두 오래전에 타계한 데다 형제 셋이 있지만 서로 사이가 극히 안 좋아 거의 연락조차 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형과 동생이 모두 형편이 썩 좋지 못해 덕진이 비빌 만한 곳이 못 된다. 한마디로 덕진은 갈 곳이 없는 것이다.

우울했다.

그리고 덕진은 저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있었다. 두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러한 것을 덕진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정기우 기자의 집 근처로 가고 있는 것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덕진의 발이 저절로 그리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덕진은 해 질 무렵 정기우가 사는 빌라 근처에 도착했다. 전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갈아타고서. 빌라 근처에는 중랑천이 흐르고 그 옆으로 의정부를 지나 서울까지 자전거 도로가 이어지며 그 주변으로 공원과 나무숲이 조성되어 있었다.

덕진은 양주시청 옆 중랑천과 유양천 주변을 샅샅이 살폈다. 정기우가 밤에 그 근처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아두었기 때문이다. 집은 양주 시내이지만 제법 먼 거리까지 도는 모양이다. 게다가 낮이면 몰라도 밤이라면 대개 자신이 늘 다니는 곳만 돌 확률이 높다.

덕진은 정기우의 얼굴을 잘 안다. 서로 직접 만난 것은 단 한 번 잠깐뿐이지만, 인터넷 자료 등을 통해 얼굴을 완전히 익혀놓았다. 반면에 덕진은 시민운동 한다고 돌아다녔지만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마도 정기우는 덕진의 얼굴을 정확히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덕진의 기사가 여러 매체에서 나오기는 했어도 덕진의 얼굴이 정면으로 나온 것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모두 옛날 이러저러한 활동을 할 때 단체로 찍힌 사진 정도만 인터넷에 돌아다닐 뿐이었다.

덕진은 저녁 내내 유양천 부근을 어슬렁거렸다. 사람들의 습관은 대개 일정하다. 산책이나 운동의 경우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일정한 곳을 일정한 시간에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덕진이 한 달 동안 관찰한 결과 정기우는 화요일에는 똑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유양천 근처에 나타났고, 목요일에는 두 번만 그곳을 지나갔다. 다른 날엔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덕진은 화요일로 정했다.

계절이 10월 말로 접어들고 있어서 정기우가 유양천 근방을 지나가는 시간에는 사람이나 차도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CCTV이다. 양주시청 근방이라서 여러 군데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덕진은 모자와 마스크나 목도리 등으로 얼굴을 철저히 가리고 걷는 자세도 완전히 바꿀 것이다. 그를 위해 한 달 이상 다른 형태의 걸음걸이를 연습해 두었으며, 등을 구부정하게 해서 키를 작게 보이도록 할 생각이었다. 과도도 이미 서울 변두리의 재래시장에서 적당한 것을 마련해 둔 상태다. 이런 식으로 해서 덕진이 계획하고 있는 장소는 주택은 거의 없고 비닐하우스와 농가가 약간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인적도 꽤 드문 편이다.

하지만 덕진은 자신이 하려는 일이 정당한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서 그런 경우를 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덕진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덕진은 괴로웠다.



월요일 밤. 지금 덕진은 자신이 정한 위치에 와 있다. 정기우는 내일 화요일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불이 거의 꺼진 시청 건물이 멀찌감치에서 보인다. 주변 마을이나 가끔 지나가는 차량, 근처 주택이나 상점에서 나오는 불빛들. 그러나 주변은 어둠침침하다.

내일은 저녁부터 비가 몹시 온다고 한다. 덕진으로서는 오히려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덕진은 이상하게 갑자기 다리가 풀리는 것이었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슴도 마구 두 방망이 치듯 쿵쾅거린다. 주변에는 사람이 없다. 덕진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이마에 두 손을 대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가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가 저만치에서 다가온다.

덕진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대로 앉은 자세에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밤이지만 상대방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희미하지만 주변에 여러 빛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이었다. 초등학생. 언제 나타났는지는 모르지만 걸어오는 품이 덕진을 지나가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덕진을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덕진은 몸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딘지 어색한 소년의 모습. 무엇이 어색한지는 모르겠다. 억지로 표현하면 비현실감? 뭐 그런 느낌이었다.

소년이 덕진이 앉은 곳의 몇 발자국 앞에서 멈춰선다.

“안녕하세요?”

누구니?

“소년이에요.”

?

“정말 소년이에요.”

“빨리 집에 가라.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고. 여긴 어두워서 위험한 곳이야.”

“아저씨 때문에 온 거예요.”

뭐? 덕진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긴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장난하지 말고 얼른 집에 가.”

“정말이에요. 아저씨에게 해드릴 말이 있어서 왔어요.”

“너희 집 어디니?”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덕진도 따라서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대신 밤인데도 흰 구름 몇 조각이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이 녀석이 사람을 놀리나?

“놀리는 거 아녜요. 저희 집 진짜로 하늘에 있어요.”

“알았으니까 빨리 집에나 가.”

“아저씨한테 말해 줄 것이 있다니까요.”

“그래, 알았으니까 어서 집에나 가라. 밤늦게 다니면 안 좋다.”

“고집이 세시네요.”

뭐라고? 이 녀석이…….

“…….”



덕진은 소년이라는 아이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린애하고 입씨름하고 싶지 않아 덕진은 몸을 돌려 걸어가려고 했다.

“제 말 듣고 싶지 않으세요?”

“집에나 가라.”

덕진은 양주시청 쪽을 향해 걸음을 성큼성큼 옮기며 말했다.

소년이 뒤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덕진은 그것을 무시하고 걸음을 빨리 옮겼다.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그러나 덕진은 걸음을 멈추거나 돌아보지 않았다.

“진실의 무게를 아세요?”

진실의 무게? 그게 뭐야?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 제목인가? 덕진은 요즘 그쪽 방면하고는 담을 쌓고 있어서 정확히 알지 못한다. 별 싱거운 자식 다 있네. 기껏 드라마 제목 알려주려고 온 거야? 웃기는 놈.

“내일 다시 올게요.”

덕진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다보았다.

“어디를 온다는 거냐?”

“여기. 이 시간에. 아저씨도 올 거잖아요.”

뭐? 내가 온다고? 어떻게 알았지?

“저는 다 알아요.”

네가 뭘 아는데?

“진실의 무게.”

요놈 봐라. 사람을 놀리는 거야?

“잘 생각해 보세요. 진실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소년은 그 말만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타박타박 걸어간다. 어두운 길 저쪽으로.

덕진은 멍한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하나 이상한 점이 있었다. 소년이 걷기는 걷는 것 같은데……, 길이 아니라, 아니 땅이 아니라 하늘을 걷고 있는 것이었다. 발이 땅에 닿아 있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어둠 속에서도 소년의 모습이 아주 명확히 보이는 것이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듯이.

덕진은 주변을 돌아보며 불빛이 어디에 있는지 살폈다. 그러나 한참 멀리에 보안등이 하나 서 있을 뿐 주변은 어둑했다.

덕진은 다시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 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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