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진실의 무게 (3)

40대 이야기

by Rud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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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은 하루 종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쉬운 정도가 아니다. 인생 전체를 걸어야 한다. 자기 자신 하나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까지. 그들의 현재와 미래 모두.

덕진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많이 썼지만 아무리 해도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덕진은 자신의 지난날을 더듬어 보았다.

20대 때 공군에서 제대한 뒤 복학해서 대학을 마쳤다. 첫 직장은 제법 그럴듯한 중견기업이었다. 대기업 바로 아래 계열. 그러나 1년을 못 버텼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업무가 특별히 어렵거나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다니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사표 쓰고 나와서 두 번째 직장에 들어갔다. 그곳도 꽤 큰 기업이었다. 바로 그곳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당시 아내는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저 같은 공간을 사용할 뿐 특별한 관계는 아니었다.

덕진은 그 회사에 1년 반 다닌 뒤 사표를 냈다. 먼젓번 직장처럼 어딘지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여기저기 이력서 내러 다닐 때 우연히 대학 동아리 선배를 만났다. 그리고 그 선배가 정치를 한답시고 당시 야당이었던 정당에 들어가 심부름한다는 말을 들었다. 선배의 꿈은 국회의원이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는 그런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 뒤 덕진은 아무 생각 없이 그 선배의 뒤를 몇 달 쫓아다니다 둘이 함께 시민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녹색운동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서 환경정화에 초점을 맞추고 정부나 국회에 법률제정을 촉구하는 문서를 보내면서 자신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찾아다니는 일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하면서 덕진은 그때까지 느껴보지 못한 희열과 보람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뒤 선배가 다시 정치권으로 들어가고 혼자 남게 되자 덕진은 빈민사업 쪽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그 시절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아내를 다시 만난 것이다. 그때 크게 말해서 아내의 눈에는 덕진이 숭고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아내는 첫 회사를 계속 다니면서 덕진을 많이 도와주었다. 그리고 덕진은 자신에게 돈은 없지만 모든 사람에게 행복의 세계를 열어주는 일을 하겠노라고 포부를 밝혔는데, 그 말에 넘어가서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집안이 좋은 아내는 돈은 자신이 벌 테니, 덕진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해내서 꿈을 이루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아내는 직장에서 나와 회사 다닐 때 알게 된 인맥들을 활용해서 무역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여리기 그지없이 생긴 아내의 어디에서 그런 파워가 나오는지 저돌적으로 일을 하면서 회사를 단기간 내에 꽤 큰 규모로 키워놓았다. 물론 거기에는 장인의 배경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원래부터 재력이 튼튼하고 사업수단이 좋은 처가여서 외동딸인 아내를 전적으로 밀어준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실 덕진은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직장생활이나 돈벌이에는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취직할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 아내 곁을 빙빙 돌기만 했다. 그러자 아내는 덕진에게 기죽지 말고 시민운동 계속해 나가라면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실 덕진은 좌절을 많이 했다. 아내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으로 집 안에서는 목소리 한 번 크게 내본 적이 없다. 게다가 휴일에도 집에 있으면 괜히 눈치가 보여 밖으로 나돌곤 했다. 아내는 이러한 덕진에게 오히려 위축되지 않게 하려고 여러 가지로 애를 써주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덕진은 자신이 더욱 초라해 보이고 집에만 들어가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아마 이러한 심리 때문에 밖에서는 오히려 호랑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덕진은 이러한 지난날들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지금 처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앞으로 그 잘난 시민운동이라는 것도 하기 힘들 것 같았다. 자신의 결백은 밝혀졌지만, 그렇다고 끝난 것은 아니다. 그 바닥에서는 일단 큰 구설에 오르게 되면 다시 힘을 얻기가 힘들게 된다. 덕진의 사업은 후원금을 받아서 하는 것이라서 사람들이 기피하게 되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덕진의 나이 40대 중반. 이제 어디에 취직할 수 있겠는가? 무엇을 다시 시작한다 해도 한번 잘못 소문난 뒤 어느 누가 가까이 해주겠는가? 거의 평생 시민운동에만 매달렸다. 그것에 청춘 다 바치고 나서 이제 무엇이 남았는가?

새 출발? 어림없는 소리.

따라서 이제부터 덕진은 백수 중의 백수가 되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차라리 죽으라고 하지!

덕진은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내뱉었다.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돌아다본다. 귀에 리시버를 꽂고 있었는데도 들렸던 모양이다. 덕진은 얼른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빽빽이 들어선 지하철 내의 사람들 중에서 그 남자 외에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덕진은 다음 역에서 플랫폼으로 나가 다음 칸으로 옮겨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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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은 정기우가 나타나기 30분 전쯤에 자신이 정해 놓은 지점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변을 살펴본 뒤 유양천 너머 중랑천 쪽으로 걸었다. 밤이 되자 날은 꽤 쌀쌀해졌다. 그러나 덕진은 긴장을 잔뜩 해서 그런지 추운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뜨끈했던 손인데.

덕진은 손이 얼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할 것 같아 손을 맞잡고 비비면서 천천히 걸었다. 저도 모르게 자꾸 가빠지는 숨을 고르면서.

중랑천 변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자전거만 간혹 지나간다. 그때마다 덕진은 깜짝 놀라 정기우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걷고 있는데, 가로등 아래에서 갑자기 어제 그 소년이 나타났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었는데.

덕진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사실 소년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잘 지내셨어요?”

뭘 잘 지내? 내가 지금 잘 지낼 형편이야?

“그러게요. 편하실 리 없지요.”

뭐야, 이 녀석. 장난 노나?

“장난 아녜요. 전 지금 심각해요.”

뭐 하자는 거야, 지금?

“제가 어제 낸 숙제 하셨어요?”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냐 하면……, 진실의 무게.”

진실……, 뭐?

“진실의 무게.”

이놈이……. 진실의 무게가 무슨 드라마 제목인지는 모르겠는데 난 지금 그런 거 관심 없어.

“드라마 제목 아녜요.”

이놈 봐라.

“아저씨의 진실. 그 무게를 달아보셨나요?”

내 진실? 무슨 진실?

“억울한 것 말고, 진실 말예요.”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냐 하면, 그동안 모든 힘을 다해 거짓을 다 밝혀내셨잖아요. 그렇다면 진실도 밝히셔야 하는 거 아녜요? 거짓은 밝히면서 진실은 왜 안 밝히시는 건가요?”

“지금 뭐 하는 거야? 무슨 진실을 말하는 거냐?”

“윤영지 아줌마하고의 진실.”

“뭐? 윤영지…….”

덕진은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윤영지의 이름이 머릿속에 꽉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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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은 윤영지를 남몰래 돕고 있었다. 윤영지 역시 ‘하늘아’에서 지켜주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나가는 활동비 외에는 덕진의 주머니에서 모두 해결했다. 그리고 윤영지는 그것을 늘 고마워하며 덕진의 일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번은 윤영지의 딸이 갑자기 열이 펄펄 난다고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덕진이 자기 차를 가지고 윤영지와 함께 유치원에 가서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그리고 그날 윤영지 아파트에 돌아가 딸을 재우고 거실로 나온 뒤 덕진과 윤영지 사이에 묘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렇고 그런 상황. 그리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이것이 두 사람의 비밀로만 남아 있었으면 별 탈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영지는 욕심이 났다. 덕진의 허름한 건물.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손에 넣고 싶었다. 그렇지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윤영지의 계획에 의하면 일단 그 건물을 덕진의 단체로 명의를 옮긴 뒤 적당한 기회에 덕진을 구슬려 자신의 명의로 바꾸려 한 것이었지만, 알고 봤더니 그 건물은 덕진 부인의 명의로 된 것이었다. 게다가 그 건물을 팔았다는 말을 듣자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윤영지는 홧김에 평소 덕진과 사이가 안 좋은 주간지에 연락을 했다. 덕진이 자신이 운영하는 단체의 명의로 된 건물을 임의로 팔아서 개인 빚을 갚았다고 하면서. 게다가 자신과 덕진의 관계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것만은 절대 비밀로 해달라면서.

물론 이 사실을 덕진은 모른다.

그러나 소년이 말한 윤영지와 자신 사이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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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과 진실 중 어느 것이 더 무거울까요? 그리고 거짓에 대해 분노했다면, 진실에 대해서도 동일해야 하지 않을까요?”

소년은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저히 소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태도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거짓을 폭로한 것처럼, 진실도 폭로해야 하지 않나요?”

덕진은 할 말을 잃었다. 소년이 말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알겠지만, 그 뜻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혼란스러우신가 봐요.”

덕진은 머릿속이 멍한 상태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남의 거짓을 벌하기 위해 오늘 이 밤에 여기 오신 거잖아요.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거짓, 즉 숨겨진 진실에 대해서도 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덕진은 몸이 굳어져 입을 열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소년은 말을 마치고 미소지으며 돌아섰다. 그리고 걸어간다. 가로등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주변은 희미했다. 그러나 소년의 모습은 아주 명확히 보이는 것이었다. 어딘지 어색한 모습이지만.

소년의 한 발이 허공으로 올라간다. 그러더니 다른 발이 더 높은 허공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덕진은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서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덕진 앞은 어슴푸레한 공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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