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이야기
50대 이야기
1
마순영 여사는 하루 종일 분이 안 풀렸다. 사돈 될 집의 고모가 한 말 때문이었다. 의사 사위 얻으려고 자존심 다 내려놨지만, 어제 상견례에서 들은 말은 모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파혼하자고 할 수도 없고, 게다가 딸애가 벌써 임신 5개월이라 무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마 여사는 외동딸 운정을 남편 없이 혼자 키웠다. 운정이 유치원 다닐 때 뺑소니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했기 때문이다. 그 뒤 재가도 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온 것이다. 식모살이부터 시작해서 안 해본 일 없이 다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명동 달러상을 알게 되면서 심부름을 하다가 그쪽 세계로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정사정해서 빌린 돈으로 시작했는데 그것이 의외로 잘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사채놀이와 함께 ‘개인환전영업자’로 등록해서 흔히 말하는 달러 아줌마가 아닌 정식 환전업을 하게 된 것이다. 그 덕에 꽤 많은 돈을 모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업체들이 떼로 몰려 들어온 데다 중국의 요우커들이 위안화와 카드를 주로 사용하는 바람에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전 같으면 하루에 수십 건 환전해 주던 것이 요즈음은 최악의 경우 하루 서너 건도 안 될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해마다 새로이 개인환전상을 등록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장사도 이젠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사채대부업만은 아직 버틸 만하지만, 이것도 조만간 접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2009년 전자어음이 의무화가 된 이후 수입이 반토막 나서 부동산 담보대출과 어음할인 쪽으로 방향을 바꿨지만 이 분야도 최근 들어 내리막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어음은 은행 시스템이나 인터넷으로 발행하는 어음을 말한다. 따라서 마 여사처럼 이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자본을 가진 처지로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모아놓은 돈 안전하게 보관해 두고 노후나 편히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참이었다.
이러한 중에 딸이 몇 달 만에 집에 들어와 임신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상대방은 의과대학 졸업 후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공중보건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마 여사는 무릎을 탁 쳤다.
네년이 그런 재주는 있구나!
대학도 시원찮은 데 다니다가 채 졸업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겉멋만 들어 아이돌 하겠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집에는 들어오지 않고 온갖 곳 쏘다니면서 돈만 있는 대로 날리던 애가 어느 날 집에 들어와 이와 같은 놀라운 말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석 달 만에 집에 들어올 때의 모습이 어딘지 이상하다고 했었다. 늘 바짝 조이고 짧은 옷만 입던 애가 펑퍼짐한 원피스를 걸치고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지레짐작으로 물었었다. 별생각 없이 타박하는 투로.
“너 애 가졌구나?”
운정은 놀랍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5개월이래.”
“아이구, 이것아!”
이 말을 들은 부모라면 당연히 그랬을 것처럼 처음에는 기겁을 했지만, 마 여사는 그 다음에 이어진 대화로 인해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부르게 되었다.
지방대 의대를 나온 의사와 잠시 동거했다는 것이다.
“무슨 과인데?”
“성형외과.”
아이구, 장하다!
하마터면 이렇게 외칠 뻔했다.
네 얼굴이나 내 얼굴 모두 뜯어고치면 되겠구나. 내심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냉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딸애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어쩌려고?”
“책임지겠대.”
옳거니!
하지만 마 여사는 여전히 표정을 풀지 않고 대꾸했다.
“잘하는 짓이다. 식도 안 올린 것들이 무슨 책임을 져? 능력도 안 되는 것들이.”
그런데 딸애는 어딘지 불안한 태도다.
“그래, 어떻게 책임진다는 거야, 그놈이? 멀쩡한 애 그렇게 만들어놓고.”
“…….”
그런데 이년이 왜 이렇게 시무룩해?
“너 어디 아프니?”
그러나 딸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 여사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젊은 애들이 집 나가서 하는 짓들이 죄다 그렇고 그럴 테니 그런 것들 사실 세세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딸이 의사의 애를 가졌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이렇게 해서 빨리 매듭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급히 사돈 될 집안과 연락을 해서 상견례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사위 될 사람의 집안은 완전 콩가루였다. 마 여사 쪽도 만만치 않지만, 그래도 재산은 있잖은가. 그런 데다가 사위 쪽 고모가 나와서 한다는 말이 자기네 집안은 조선말까지는 대갓집이었는데 그 후 독립운동한다고 재산 다 말아먹고 자손들 교육도 제대로 못 시켜서 지금의 이 꼴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 사연까지만 말했으면 민족적 울분을 공유한 단군의 자손으로서 고개 숙여줄 만했지만, 그 뒤에 한 말이 마 여사의 속을 뒤집어놓고 말았다.
“우리 애 말을 들어보니 그쪽은 사채놀이로 재미 좀 봤다고 하더군요. 그놈의 사채 때문에 우리 집안이 박살이 나서 사채나 이자라는 말만 들어도 이가 갈리는데, 이제 사채놀이업자랑 사돈까지 맺게 됐으니.”
이 말이야 사실 틀린 게 하나도 없어서 좀 심하긴 했지만 참자고 했다. 의사 사위 본다는데 그깟 것 눈 딱 감고 넘어가면 그뿐이다. 그리고 사실 그 바닥에서 근 20년 이상 굴러다니다 보니 안 들은 말이 없다. 고모가 하는 말 정도는 점잖은 편에 속한다. 사돈 될 사람한테서 들어서 조금 무안할 뿐이지. 그런데 그 다음 말이 마 여사의 속을 저 깊은 곳까지 긁어놓고 말았다.
“우리 애가 왜 하필 그런 기생충 같은 집과 엮였는지 모르겠네……. 어디 여자가 없어서. 꽃뱀 같은 애한테.”
사실 여기에서 마 여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 옳았다. 그렇잖아도 막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 하고 주먹은 불끈 쥐어지고 있었지만 다행히 다리만은 마음과는 달리 바닥에 딱 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반면에 오히려 운정이 발끈하며 일어서려 하고 있었는데, 마 여사는 저도 모르게 팔을 뻗어 딸의 팔을 꽉 붙잡았다. 그 바람에 딸애가 ‘아야!’ 하고 소리치며 팔을 비틀어 빼다가 테이블을 강하게 탁 쳐서 식탁이 덜컹 소리를 내며 기우뚱해진 탓에 음식물 일부가 쏟아지고 말았다.
마 여사는 그제야 얼른 일어나서 식탁에 엎질러진 음식을 치우고 닦고 하면서 분위기가 흐트러졌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끝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마 여사는 그 고모라는 인간이 한 몰상식한 말 때문에 며칠 동안 속을 끓였다. 생각 같아서는 의사고 임신이고 다 때려치우고 딸애 데리고 자기가 목줄 쥐고 있는 파산 직전의 산부인과 찾아가서 협박도 하고 돈도 왕창 쥐어주고 해서 뱃속 애를 지우고 싶었으나, 심호흡을 수십 번도 더 하면서 마음을 달랬던 것이다. 게다가 그 고모라는 인간이 한 말이 사실은 수백 번도 더 들었던 악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채놀이 하면서 그런 말 안 들은 사람이 없으니까.
참자. 참자. 참자……. 참을 인자 세 번, 아니 열 번, 백 번, 천 번이라도 하자…….
마 여사는 결국 참아냈다. 아비 없이 불쌍하게 큰 딸애 운정의 미래를 위해서.
의사 사위 보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운정의 꼴에. 그래, 참길 잘했다.
후우―.
마 여사는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는 오히려 사돈집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흔히 하는 말로 사위 하나밖에 볼 것 없는 엉망진창 집안이었다. 시어머니 될 사람은 위암, 대장암, 췌장암이 겹쳐서 몇 달 못 간다고 하고 상견례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운정에게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돈댁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시집살이가 그만큼 줄어들 테니까. 그리고 그 밉상 고모라는 인간도 오래전에 남편을 병으로 잃고 아들만 하나 있다는데, 운정 얘기를 들어보니 직업 없이 동네 건달로 지내는 모양이었다.
흠, 그 녀석은 김 실장 아래로 들어가게 하면 되겠군.
김 실장은 마 여사 아래에서 사채 안 갚고 미적거리는 인간들 해결해 주는 일종의 청소부였다. 그래서 그 밑에서 일하게 해주면 그 고모라는 인간 마 여사한테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올 것이다.
흥, 그 꼬라지 한 번 제대로 봐야겠군. 그때도 내 앞에서 고개 빳빳이 들고 또 헛소리할지.
그런데 문제는 시아버지가 될 인물이었다. 택시 운전을 하다 한밤중에 횡단보도 건너던 모녀를 쳐서 사망사고를 내고 도주했다가 붙잡혀 지금 교도소에 있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 때문에 사위 될 사람이 엄청 고생을 한 모양이다. 합의금 만들어주느라 대출도 받고, 아르바이트 과외도 무지 하는 바람에 의대에서 1년 휴학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낙제 같지만. 하긴 그게 그거지 뭐. 아니, 그럼 제 아버지 재판받는 데 두 눈 멀거니 뜨고 있을 아들이 어디 있겠는가. 뭐라도 해서 변호사 비용 만들어 대야지. 더군다나 의대생인데. 그러나 어떻든 앞으로 1년만 있으면 출소한다고 하니, 약간 걱정도 된다. 자신의 딸이 전과자 시아버지 밑에서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다 따지면, 뭐 마 여사 딸이라고 온전하겠는가 말이다. 여기저기 쏘다니며 별 이상한 짓 다 한 것을 마 여사는 잘 알고 있다. 애도 몇 번이나 지웠고. 마 여사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어디 가서 죄짓지나 말라고 용돈만 풍성히 쥐여주었다. 그러니 그 집이나 이 집이나 피장파장인 셈이다. 하지만 의사 사위 데려오면 그 모든 것이 깨끗이 정리된다.
집에 돌아와서 그 다음날 마 여사는 자기가 부리는 형사에게 그 뺑소니 사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왜 무슨 일 있습니까? 그런 걸 다 물어보고.”
“그냥 그런 사람이 있는지만 알아봐 줘. 다른 건 필요 없으니까. 급한 건 아니니까 아무 때나 전화해.”
“아뇨. 가만있어 봐요. 지금 찾아볼 테니까……. 음……. 잠깐만요. 음……. 아, 여기 있네. 맞아요, 그 인간. 이거 아주 나쁜 놈일세. 두 사람이나 치고…….”
“됐어. 그 정도면.”
“아니, 왜요? 이놈 때문에 문제 있었던 거예요?”
“아냐, 아냐. 됐어. 나중에 연락할게.”
“요즘 왜 그렇게 뜸하십니까? 재미 좋으신 모양이에요. 너무 혼자만 재미 보시면 안 되죠.”
“알았어. 일 생기면 알려줄게.”
마 여사는 전화를 끊고 나서 혀를 끌끌 찼다. 썩을 인간 같으니라고…….
그런데 하필 그런 인간하고 사돈 맺게 생겼으니 참 팔자도 기막히군.
“하긴 나 역시 뭐 깔끔하게 살아온 것은 아니니까…….”
마 여사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누가 들었나 하듯이 얼른 주위를 돌아다보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겪어온 지저분한 일들이 갑자기 지겹게 느껴졌다.
마 여사는 그렇잖아도 이 지겨운 사채놀이 그만하고 싶은 차였다. 더 이상 사람들 목 죄어 피 빨아먹는 짓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깔끔하게 이 사업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마 여사는 세상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이 물불 안 가리고 돈을 그러모았다. ‘물불 안 가린다’는 뜻이 무엇인지 짐작할 것이다. 그동안 차마 입으로 담지 못할 짓거리 엄청 저지른 것이다. 그래서 마 여사도 인간인 이상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 절에도 다니고 교회에도 가고 했다. 그 덕에 지금 절에 가면 보살이요, 교회에 가면 집사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하니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사돈집 구제해 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이 그동안 저지른 짓 일부나마 갚는 것이 아니냐고 마 여사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러고 나니까 그 고모라는 인간을 비롯한 그 집안 모두가 측은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쇠뿔도 단숨에 빼랬다고, 마 여사는 거사를 속히 치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운정의 배가 더 불러오면 웨딩드레스 입고 나타나기가 좀 거북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시일을 질질 끌다가 사돈 될 양반들이 꼬장이라도 부리면 의사 사위 물 건너간다.
좋아, 해보자!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