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속의 사람들 (2)

50대 이야기

by Rudolf

2


마 여사는 2주일 뒤 토요일 날짜로 큼직한 호텔의 최고급 레스토랑을 예식장으로 예약했다. 아직까지는 드레스로 잘 가리면 배 부른 것은 적당히 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쪽 집안에서 이것저것 가릴 시간을 주지 말고 속전속결로 진행해야 한다. 결혼식에 들어가는 일체의 비용은 마 여사가 모두 대겠다고 했다. 사돈댁 함도 받지 않고. 하긴 요즘 젊은 애들 자기 혼자 함 지고 간다고 하더라만. 등에 지는 것도 아니지. 차에 넣어 집 앞에서 내려 들고 가는 거지. 그리고 저쪽 집에서도 격에 맞게 옷이라도 해 입어야 하니 그에 필요한 비용도 넉넉히 보내주자고 생각했다. 안 받겠다고 하면 그만이고, 신혼여행은 사위가 군인 신분과 비슷해서 외국에는 갈 수 없을 테니 제주도에 가서 푹 쉬고 오라고 하면 된다. 신혼집은 강남에 있는 아파트 세입자 돈 주고 내보내면 된다. 혹 날짜가 좀 늦어지면 마 여사의 넓은 집에 와서 당분간 지내게 하면 될 것이고.

게다가 모든 비용을 마 여사가 부담하는 대신 주도권도 쥐고 싶었다. 뭐 사실 주도권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파격적인 시도를 해보고 싶은 것이다. 즉, 딸 운정을 마순영 여사 자신이 손을 잡고 데리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도 없고, 친척 중에 어른이 있기는 하지만 구질구질한 그 사람들에게 맡기고 싶지도 않고, 또 이 얘기 저 얘기 들어보니 어머니가 딸을 데리고 들어가는 경우도 가끔 있더라고 하니 마 여사가 남들 안 하는 짓을 벌이는 것도 아닌 셈이다.

주례는 사위에게 알아보라고 하면 대학에서 학장이나 교수 정도로 해결될 것이다. 대개들 그러니까. 물론 마 여사 주변에서 딸내미 시집갈 때 자신이 주례 서겠다고 나대던 인간들이 여럿 있었지만 그런 종자들 막상 단상에 서면 희한한 소리나 지껄이다 말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약간 곤란하기도 하고.

마 여사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도 운정의 결혼 주례는 자기라고 그전부터 말을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거야 신랑 쪽에서 해결했다고 하면 되겠지만, 문제는 목사님의 거침없는 입이다.

한번은 목사님이 교회 안수집사 아들 결혼식에 갔다가 찬송과 기도 순서가 없는 것을 보고 결혼식 끝나자마자 혼주 인사하는 곳에 가서 많은 사람들 앞에 두고 안수집사 박탈하겠느니 마느니 하며 난리를 친 일이 있다. 교인이 교인답지 못하게 세상문화에 휩쓸리면서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하면서. 그 뒤 그 사람은 결국 교회를 떠나고 말았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점잖던 목사님이 신앙문제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남의 사정 안 봐주는 것이다.

사실 마 여사는 교회는 교적에서 제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다니고 있고, 그보다는 절에 더 열심히 나가고 있어서 결혼식에 스님들도 왕창 올 것이 뻔하다. 그러면 그 목사님이 어떻게 나올지 눈에 선하다. 망신도 망신이겠지만, 의사 사위에게 그 꼴을 어떻게 보이느냔 말이다. 한쪽에서는 스님들이 목탁치고, 또 한쪽에서는 목사님이 핏대를 올려가며 사탄이니 마귀니 하고 난리를 칠 텐데.

아이고…….

원래 양다리 걸치는 게 마 여사 체질에도 안 맞는 것이었으나, 항상 어딘가 허하고 마음 한구석에 늘 찜찜한 것이 남아 있어서 저도 모르게 절과 교회 찾아다니며 헌금이나 시주를 넉넉히 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양쪽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오늘과 같은 일이 생길 줄은 생각을 못 했었다. 게다가 한 달 정도 교회에 안 나가다 보니 속장이라는 사람이 여러 번 전화해서 이것저것 캐묻는 바람에 마 여사는 변명이라고 한다는 것이 그만 딸애 결혼이 코앞이어서 바빠서 못 나갔노라고 말을 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어떻든 이런 와중에 운정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이것을 보고 저것을 고르고 하다가 다투기도 하면서 한 주가 후딱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사람들한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요즘 이상한 일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어떤 소년이 나타난 것이다. ‘나타났다’는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글자 그대로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으니까. 2~3일에 한 번꼴로. 그것도 늘 같은 시간에. 이른 아침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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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처음에는 딸애가 집에 들어오던 날 아침이었다. 마 여사는 운동신경이 둔한 편이라서 스포츠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몸이 둔해지고 살도 쪄서 겸사겸사 골프라는 것을 해보려 시도했다. 그래서 무작정 골프연습장이라는 데를 가서 둘러보니 코치라는 사람이 와서 이것저것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대답했다. 운동신경 제로. 건강을 위해서 골프라는 것을 해볼까 한다고. 그랬더니 레슨비용을 포함해서 이것저것 알려준다. 그래서 무조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나 딱 사흘 나가고 그만두었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이 하도 많아서. 그 뒤 얼마 지나 누구 말을 들어보니 스크린 골프라는 데를 가보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직접 안내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참견도 하지 말라는 조건을 달아서 혼자서 마구잡이식 골프를 시작한 것이다. 물론 말은 이랬어도 계속 이 사람 저 사람 다가와서 이렇게 하는 게 좋네 저렇게 하는 게 어떻네 하며 참견을 하기에 한마디로 딱 잘라 말했다.

“나 혼자 할게요.”

마 여사는 평범하게 말했는데, 상대방은 빙산보다도 더 차갑게 들렸는지 그 뒤부터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소문이 다 났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뒤부터는 아무도, 정말로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머쓱하기는 했지만 마 여사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마구잡이로 골프채 휘두르며 스트레스 팍팍 풀고 나오곤 했다. 운동이 되건 안 되건 상관없이. 하지만 그것도 운동이라고 그렇게 마구 휘두르고 나면 온몸이 풀리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별일이 없는 한 새벽마다 그곳에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즉 앞에서도 밝혔듯이 딸 운정이 몇 개월 만에 집에 들어오던 날 아침, 골프채 실컷 휘두르고 나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 웬 소년이 저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마치 마 여사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그런데 소년의 모습이 어딘지 어색했다.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초등학교 4~5학년 정도 될까. 생김새는 깔끔했는데, 그 새벽에 스포츠센터 앞에서 그런 아이가 서 있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니어서 마 여사는 소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혹 자기 식구를 기다리는 모양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안녕하세요?”

어랍쇼? 누구지?

응, 그래……. 그런데 누구……?

“소년이에요.”

마 여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앞으로 자주 뵐 거예요.”

누구니?

“소년.”

이 녀석이…….

마 여사는 소년 옆으로 비켜서 가려고 발을 내디뎠다.

“따님 소식 아세요?”

뭐?

마 여사는 걸음을 멈칫하고 소년을 노려보았다.

이놈 봐라. 너 누구냐?

“소년이라고 했잖아요.”

“네가 우리 운정이를 아니?”

“그럼요. 잘 알아요.”

“어떻게 아는데?”

“그냥 알아요.”

“그래서?”

소년은 정중하게 인사하듯 허리를 살짝 굽힌다.

“내일모레 다시 올게요. 이 시간에.”

그리고는 더는 말이 없이 뒤돌아서더니 걸어가는 것이었다.

마 여사는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라서 소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기만 했다.

그리고 소년은 일정한 보폭으로 곧장 앞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뒤에서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오는 기척이 있어서 마 여사는 뒤돌아보았다. 어떤 젊은 남자였다. 두 사람이 눈이 잠깐 마주쳤으나 마 여사는 그 눈을 피하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없었다.

곧고 긴 길이어서 벌써 다 걸어갔을 리는 없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마 여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소년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사라졌다.

그러나 마 여사는 살짝 고개만 갸웃했을 뿐 더 이상 소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낮에 운정이 석 달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 그때도 마 여사는 소년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 다음 이틀 뒤, 또다시 스포츠센터 앞에서 소년을 만났다. 아니, 나타났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문을 열고 나오다 마주친 것이다. 소년이 저 앞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아무도 없는 곧은 길 중간에서.

마 여사는 그 자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야 지난번에 소년이 한 말이 생각났다. 이틀 뒤에 다시 오겠다고 한 것. 그리고 운정에 대해 말한 것.

소년이 마 여사 앞까지 와서 걸음을 멈춘다. 곱상하게 생긴 모습. 잔잔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마 여사는 멍한 눈길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잘 지내셨어요?”

너 누구니?

“소년요. 저번에 그렇게 말씀드렸잖아요.”

“너희 집 어디니?”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 여사도 따라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하늘.

참 맑구나. 하늘이 저렇게 맑은데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머릿속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느라.

마 여사는 다시 소년을 바라보았다.

집이 어디냐니까……?

“저 하늘요.”

요놈 봐라?

“따님 일 잘 되겠지요?”

소년이 느닷없이 말을 한다.

마 여사는 지난번처럼 이마가 찌푸려졌다.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저는 다 알아요.”

뭘 아는데?

“따님에 대해서. 그리고 아주머니에 대해서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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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여사는 소년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더는 상대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소년 옆을 지나쳐 걸어갔다.

“모래성이라는 말 아시죠?”

마 여사는 그 말을 무시하고 그냥 앞으로 나아갔다.

“사흘 뒤에 다시 올게요.”

마 여사가 두어 걸음 더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야단을 치려는 마음으로.

그런데 소년이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이틀 전 새벽에 문 앞에서 보았던 그 젊은이가 문을 막 열고 나오는 참이었다.

그 사람이 멈칫하면서 마 여사를 바라본다.

마 여사는 얼른 몸을 돌려 걸어갔다.

마 여사는 집에 갈 때까지는 소년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그러나 집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잊고 말았다.

그리고 사흘 뒤 새벽, 스포츠센터 문을 열고 나오다 또다시 소년이 걸어오는 것을 본 마 여사는 이번에는 가슴이 철렁했다.

저 애 뭐야? 스토커? 저 조그만 애가?

“잘 지내셨어요? 마음이 복잡하시죠?”

“너 누구니? 누가 보낸 거니? 너 부모님은 있어? 집이 어디야?”

“한 가지씩 대답해 드릴게요. 우선 저는 소년이고요, 둘째 저는 누가 보내서 온 게 아니고 제가 스스로 온 거예요. 그리고 부모님? 제가 사는 곳에서는 그런 개념 없어요. 그리고 마지막 질문, 저번에 알려드렸잖아요.”

소년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누군지 궁금하시다면 좀더 알려드리죠. 저는 양심이에요. 아주머니의 양심.”

소년은 이렇게 말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고약한 녀석.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네 집이 하늘이야?”

마 여사는 하늘을 보지 않고 물었다.

소년은 대답 없이 마 여사를 바라보기만 한다.

버릇없는 녀석. 못 배워먹었구나.

“저는 땅에서는 배우지 않았지만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아요.”

뭐라는 거야?

“모르셔도 돼요.”

이놈이.

“저 나무라지 마세요. 아주머니부터 돌아보셔야 해요.” 소년은 몸을 뒤로 돌이킨다. 그와 동시에 또 말을 했다. “이틀 뒤에 오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소년은 걸어갔다. 아무도 없는 빈 길을.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마 여사는 저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지난번 그 남자. 마 여사는 약간 무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 뒤로도 소년은 이틀, 사흘 간격으로 계속 왔다. 그리고 뜻도 알지 못할 말을 하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 여사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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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 여사는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순간 벌떡 일어났다.

“그래, 맞아. 병원을 차려주자.”

마 여사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사실 얼마 전에 갑자기 운정이 기묘한 표정으로 마 여사를 바라보는 일이 있었다.

이년이…….

“엄마, 나한테 무슨 선물을 해줄 거야?”

“무슨 소리야? 니들 결혼 준비 다 해주고, 집 주고, 혼수까지 다 마련해 주는데 뭐가 더 필요해?”

“겨우 그거?”

“얘가…….”

“엄마.”

요것 봐라.

그러나 사실 운정은 어렸을 때부터 미운 짓은 골라서 해왔어도, 단 한 번도 먼저 나서서 무엇을 해달라 사달라 조른 적은 없었다. 그래서 하는 짓마다 못됐긴 하지만 어느 날이건 저가 해달라는 것은 무조건 다 해주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건. 마 여사는 자기 자신과 약속한 그것 하나만은 꼭 지켜주리라 마음속으로 맹세까지 한 터였다.

그래서 운정에게 말해 보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슨 엉뚱한 요구를 할지 몰라 말은 하지 못하고서.

그러자 운정은 생각지도 못한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서론부터 꺼내면서.

“엄마, 엄마도 내가 그동안 자라면서 한번도 뭐 해달라고 조른 적 없는 것 알지?”

요것 봐라.

“응, 말해 봐. 얼른. 내가 그랬어, 안 그랬어?”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갑자기?”

“얼른 말해 봐. 나 한번도 안 그랬지, 그지?”

“그래, 알았어.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

“엄마, 실은……. 나 이거 말해도 되지?”

“얘가……. 하기 싫으면 그만둬.”

마 여사가 거실 소파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운정이 얼른 마 여사 치마를 붙잡으며 말한다.

“알았어. 얘기할게.”

마 여사가 관심 없다는 듯 자세를 바로 하며 헛기침을 했다.

“엄마, 정 서방한테 병원 하나 지어줘.”

마 여사는 자기가 들은 말이 정말인지 몰라 멍하니 운정을 바라보았다. 병원을 차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지어달라는 것이다.

아니, 아직 군 문제도 다 해결되지 않았고, 또 그거 끝난 뒤에도 경험을 쌓으려면 한참 걸릴 텐데 무슨 병원을 지어줘?

“엄마, 어차피 정 서방에게 병원 하나 차려줄 거잖아. 그거 결혼선물로 미리 사놓으면 안 돼? 나중에 우리가 물려받으면 되잖아. 정 서방 이름으로 사두면 된대. 아무 때나.”

마 여사는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처음엔 딸애가 미쳤다고 생각했었다. 병원 짓는 게 어디 한두 푼이냔 말이다. 그럴듯한 병원 지어주려면 아마 마 여사가 가지고 있는 돈 다 동원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어림도 없는 소리 말라고 고함치듯이 하고서 벌떡 일어났었다.

그러나 오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사람 등골 빼먹는 사채놀이 사실 이젠 지겨워졌다. 따라서 앞으로 노후도 생각한다면 병원 지어놓고 품위 있게 지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중에 땅값, 건물값 오른 뒤에 비싼 돈 들이지 말고 지금 적당한 건물이라도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갑자기 당장에 병원 건물 지을 수는 없는 일이니.

그리고 마침 마 여사가 사는 동네의 고급주택가 근처에서 최근에 병원 건물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던 게 생각났다. 건축 현장 앞에 무슨무슨 병원 신축공사장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병원 옆으로 요양병원도 함께 짓는 것 같았다. 그러나 웬일인지 최근에 그 두 곳이 모두 공사가 중단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사실 좀 알아봤거든. 우리 집에서 얼마 안 가면 병원 신축공사 하는 데가 있는데, 그 옆에 요양병원도 같이 짓는 거래. 그런데 그거 부도났다나 봐. 그래서 여기저기서 눈독 들이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야. 거기 장소가 좋잖아. 큰길가에다, 그 근처에 그런 규모의 병원이 없거든. 내가 나름대로 다 알아봤어.”

요것이 제 어미 닮아 돈 냄새는 잘 맡는구나.

마 여사는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고 영악한 게 어딘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너 그런 거 어디에서 들은 거야?”

“누가 자세히 알려줬어. 알아서 나쁠 것 없잖아.” 운정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마 여사 팔을 끼고 올려다보았다. “엄마도 한번 알아봐. 그 정도 실력 안 돼?”

요거, 요거, 요것 봐라……. 마 여사는 주먹이 올라갈 것만 같았다.

그 말을 듣고 운정에게 타박을 했지만, 아주 잊어버리지는 않고 마음 한 켠에 묻어두고 있다가 오늘 그에 대한 생각이 퍼뜩 떠오른 것이다.

그래, 맞았어. 사실 마 여사 자신도 언젠가는 사위에게 병원 하나는 차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생각이 난 김에 한번 알아보기나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 여사는 그 생각이 식기 전에 급히 자기 수족과 같은 김 실장에게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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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 여사는 그동안 자신이 여기저기 다니며 뿌려준 돈이 얼마인지 생각해 보았다. 사실 생각도 잘 안 난다. 엄청 돌아다녔으니까. 명동에서 환전상과 사채업을 하려면 사람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 하니까. 그러나 마 여사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되돌려 받은 적이 없다. 그것은 이 바닥에서는 다 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 치우는 데 그동안 들어간 돈 다 빼낼 생각이다. 어쩌면 그 사실 모두들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마 여사가 외동딸 결혼 소식을 알리자마자 난리가 났다.

그것은 마치 팡파르가 울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전화통에 불이 났고, 신랑은 어떤 사람이냐는 말이 빗발쳤다. 그러나 그것만은 그냥 공개할 수가 없다.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것은 결혼식장에서 밝히겠다고 하며 수수께끼 속에 감추어두었다. 그러자 오히려 더욱 호기심을 나타내어 큰 화제가 되고 말았다.

마 여사는 마음속으로 통쾌함을 느꼈다. 내 보물단지를 호락호락 보여줄 수는 없지. 그 대가를 지불해야 돼. 내 일생에 단 한번 받는 대가.

핸드폰이 울렸다. 김 실장이었다.

“그래, 어떻게 됐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저쪽 놈들 몸이 달았어요. 완전 도산 일보 직전이라는데, 잘 하면 반값에 넘겨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양념을 좀 진하게 쳤거든요. 겁을 잔뜩 집어먹던데요.”

마 여사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 일생일대의 호사 중 호사인데 남들한테 눈물 흘리게 할 필요는 없지. 잔칫날엔 오히려 베풀어야 하는 거 아냐?

“알았어. 그런데 너무 쥐어짜지 마. 잘못하면 내 잔칫상에 재 뿌리는 게 되니까. 적당한 선에서 합의보고, 그 대신 이번 주 안에 해결해.”

마 여사는 약간 흥분이 되었다. 기왕이면 결혼식 날 두 아이에게 마 여사 인생 최대의 선물을 모든 하객들 앞에서 멋지게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김 실장 솜씨라면 알아서 금액 잘 조절해 놓을 것이다.

마 여사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점검한 뒤, 전체를 다 동원해 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 명동 바닥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이제부터는 우아한 사모님으로 남을 테니까. 나머지 인생 멋지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병원은 의사밖에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사위 명의로 인수한 다음, 그 금액의 두 배에 해당하는 차용증을 사위에게서 받을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은 두 아이가 제주도로 신혼여행 다녀온 뒤에 진행하기로 했다. 결혼식 전에 분위기 깰 필요는 없으니까.

이렇게 하고 나니까 은근히 한 가지가 걱정된다. 사실 그 부분이 늘 찜찜해서 한밤중 그 생각에 잠이 깨서 뒤척이기도 했었다.

그년 그 아기, 정 서방 씨 맞겠지? 아무렴 그럴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년이 벌써 뒤로 빼도 한참 뺐을 테니까.

마 여사는 이렇게 자신을 위로했지만, 아무래도 한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늘 목구멍에 얹힌 채로 남아 있을 테니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 부분이 걸려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다.

그래서 여러 번 눈치를 보다가 딸애를 불렀다. 약간 딱딱한 투로.

그러자 운정이 약간 불안한 기색을 내보이며 다가온다. 그 모습을 보니 이번에는 마 여사가 더 불안해졌다.

저년이…….

마 여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정 서방 씨 가진 거 맞지?”

운정이 멈칫한다. 마 여사는 마음이 철렁했다.

“그런 건 왜 물어?”

“대답해.”

“아니, 왜? 왜 그러는데? 이제 와서 그런 얘기 왜 꺼내는데?”

“이것아…….”

마 여사는 숨이 콱 막혔다.

운정이 갑자기 울상이 된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기세다. 그러더니 잠시 뭐라고 말할 것처럼 입을 움직거리다가 갑자기 홱 돌아서서 뛰듯이 걸어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문을 쾅 닫으며.

마 여사는 현기증이 일었다.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지. 내가 이러면 안 돼. 정신 차리자.

마 여사는 약간 휘청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가까스로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등을 기대고 고개를 젖혀서 뒤로 깊숙이 파묻었다. 그런 뒤 눈을 감았다.

그렇게 10여 분 지났다.

마 여사는 다시 눈을 뜨고서 몸을 추스른 뒤 소파에 똑바로 앉았다. 그런 다음 잠시 후에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뭐 상관없어. 어차피 정 서방 씨가 맞을 테니까.”

마 여사는 남들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안 맞으면 맞게 하는 게 마 여사가 명동에서 배운 원리다. 모든 것은 다 맞게 되어 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놓으면 되니까. 안 맞으면 맞게 만들어놓는 것, 이것이 마 여사가 명동 바닥에서 배운 최고의 법칙이다. 그동안 이 법칙 하나로만 지금을 이룬 것이다. 그렇다고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평생 먹고 살 만한 것은 만들어놨다.

“그러면 아무 문제 없는 거잖아.”

마 여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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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 여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병원 매입을 서둘러 매듭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재산을 총동원해서라도. 그리고 그 일도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느낌.

이제 남은 것은…….

아, 그래. 목사님.

이 문제는 참 찜찜하다. 제일 좋은 것은 목사님이 예식장에 오지 않게 하는 것인데 그게 가능할까? 좋은 방법 없을까?

아 참, 또 하나 있다. 별것 아닐 수도 있는데……, 그 꼬마. 이름이 소년이라고 한 고 녀석. 그놈이 영 마음에 걸린다. 어제 새벽에도 와서 묘한 말을 하고 갔단 말이다. 아주 맹랑한 녀석이란 말야.

“다 이루어가고 있으시네요. 좋으시겠어요.”

“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 지껄이는 거냐?”

마 여사는 짜증이 났었다. 2~3일 간격으로 나타나서 별 의미도 없는 말을 하고 가는 녀석. 그런데도 그런 말들이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특히 오늘 새벽에 한 말은 더욱 그랬다.

“모래성도 제법 오래 가네요.”

모래성. 그 의미는 모르는 바 아닌데, 뭐가 모래성이지? 내가 지금껏 쌓아올린 모든 것을 비아냥거리는 말인가? 뭐 그럴 수도 있다. 인생 자체가 모래성인데, 그 안에서 이룬 것들 죄다 모래성이 아니면 뭐겠어? 죽으면 다 소용없는 것들, 아등바등 쥐고 있으려 발버둥 치지만 결국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들. 신기루.

그래, 맞다. 모래성. 그런데 그런 꼬마 녀석이 왜 그렇게 당돌한 말을 하는 거냔 말이다. 갑자기 나타났다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면서. 도대체 그놈 정체가 뭐야?

마 여사는 소파에 등을 깊에 파묻었다.

그렇잖아도 머릿속이 어수선한데 그런 놈 생각은 그만하자. 현실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마 여사는 눈을 감았다.

자, 심호흡부터. 하나……, 둘……, 셋…….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김 실장.

“음, 그래, 어떻게 됐어?”

“금액 조절 잘 해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겠습니다.”

“너무 조인 거 아니지?”

인륜지대사를 치를 때는 너무 몰인정하게 하는 게 아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다른 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약간은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돼.

“그럼요. 저쪽에서도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서류작업은?”

“다 마쳐놨습니다. 모두 다 카톡과 이메일로 보내겠습니다.”

“송금은?”

“내일 아침 일찍 하시면 됩니다.”

“금액이 좀 빡빡할 것 같은데.”

“제가 은행에 다 얘기해 놨습니다. 지금 있는 부동산에서 모두 최대한 끌어낼 겁니다. 그놈들 죄다 그동안 우리 단물 쪽쪽 빨아먹던 인간들이라서 알아서들 해줄 겁니다. 하여튼 모든 것 다 동원해서 최대한 금액은 맞춰놓겠습니다. 오늘 중으로 싹 해결될 겁니다. 내일 아침 송금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잘됐네. 그만하면 됐다.

김 실장……, 근 20년간 같이 일했지, 아마. 그동안 애 많이 썼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보기에도 초라한 피라미였었는데 지금은 아주 여우가 다 됐다. 그동안 마 여사 뒤치다꺼리 다 해줬다. 별 지저분한 일들 모두 다. 사람만 안 죽였을 뿐이지. 생각해 보면 그놈도 참 잔인한 인간이다. 인정사정 안 봐주고 끔찍한 일 많이 저질렀다. 마 여사 눈앞에서까지도 그랬으니까. 그럴 때면 마 여사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자리를 슬쩍 뜨곤 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을 이뤄놓은 것이다. 이제는 손 뗄 때가 되긴 했지만.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김 실장한테는 그동안 좀 서운하게 해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한마디 불평도 안 해서 뭐 괜찮은가 하고 넘어갔었지만, 잘 생각해 보니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알았다. 그동안 잘 참았어. 이번 혼사 일만 끝나면 너도 한몫 갖게 해줄게. 그때까지만 참아라. 기왕 여기까지 온 것 조금만 더 기다려라. 일단 딸년 치우는 일이 급하니까, 그것부터 해결해 놓고.

아, 목사님.

왜 그걸 자꾸 잊어버리는 거지? 잘못하면 온갖 사람 다 있는 데서 큰 망신 당하게 된다. 대책을 세워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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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일이네요.”

아니, 이 녀석이…….

“준비는 다 잘 되었죠?”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네 놈이 알 바 아니다. 얘야, 얼른 집에 가거라. 엄마 걱정하신다.

“목사님이 제일 걱정이시죠?”

“뭐라고?” 마 여사는 꼬마한테 대꾸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 저도 모르게 역정이 나서 말을 하고 말았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는 다 안다고 했잖아요.”

“…….”

마 여사는 어이가 없었다. 다른 일은 몰라도 목사님에 대한 것은 마 여사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정의 결혼은 명동 바닥에서는 다 소문난 것이니까 어찌어찌해서 저놈 귀에까지 들어갈 수 있다 쳐도, 어떻게 목사님에 대한 것을 안 거지?

“너 지금 무슨 수작을 하는 거냐?”

“수작이라뇨.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죠.”

“네놈이 무슨 걱정? 남의 일에 왜 끼어드는 거야?”

“남의 일 아니거든요.”

뭐라고?

“아주머니 일이 바로 제 일이에요!”

소년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진다. 소년을 만난 뒤 처음 처음 있는 일이다.

마 여사는 조금 주춤했다.

“저는 아주머니 양심이에요, 양심. 그러니까 제가 바로 아주머니라고요. 그러니 어떻게 걱정이 안 되겠어요?”

마 여사는 한 손을 올려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그런 뒤 머리를 흔들었다.

그만두자. 양심이고 뭐고 듣고 싶지 않으니까 네 마음대로 해라.

마 여사는 소년 옆을 지나 걸어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러나 걸음걸이는 약간 비틀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새벽부터 너무 신경을 썼나…….

“건강 조심하세요. 내일 뵐게요.”

뒤에서 소년이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어쩐지 진심같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니, 그런데 내일 또 나타나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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