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속의 사람들 (3)

50대 이야기

by Rud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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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금이 끝났다. 결혼식 비용만 빼놓고 싹싹 그러모은 돈을 보낸 것이다. 부동산과 증권은 대출한도를 넘겼다. 거의 실거래가 다 받았다. 그 인간들 그동안 마 여사한테 코 꿴 것이 많아서 그렇게 해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마 여사는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 설사 빈털터리가 된다 해도 딸애한테 의사 남편 구해주는 것으로 만족하자고 생각했다. 딸과 사위는 마 여사에게 고개를 푹 숙여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하지만 사실은 그 사위도 마 여사 것이다. 마 여사가 차용증을 받게 되면. 그러나 그것은 신혼여행 다녀온 뒤 해결하면 된다. 그전에 그런 얘기 꺼내서 괜히 분위기 깨고 싶지 않았다.

이제 한숨 놨다.

마 여사는 기지개를 크게 켜려고 팔을 들어 뒤로 돌리다가 문득 멈췄다.

아, 목사님!

그 소년의 정체가 무엇이든 모든 문제가 해결된 지금으로선 그 애 말처럼 목사님 문제 하나만 남았을 뿐이다. 호사다마라고 했다지.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껄끄러운 일이 꼭 끼어든다고. 무슨 일에서든 적어도 하나쯤은 생기는 법이니까. 그러나 뭐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최악의 경우 망신당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교회 안 나가면 그만이다. 절에만 열심히 가면 되지 뭔 살판 났다고 절하고 교회하고 동시에 다녀.

마 여사는 이렇게 생각하니 괜히 배짱도 생긴다. 그러면서도 찜찜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에라, 될 대로 되라.

마 여사는 예약해 놓은 마사지숍에 전화를 걸어서 두 시간 일찍 갈 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말해 두었다.

오늘은 그냥 하루 푹 쉬어야겠다. 아무 생각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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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여사는 은근히 소년이 나와주길 기대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지친 모양이군. 하긴 별 상관없다. 어디에서 온 애인지 모르지만 신경 쓸 필요 없다. 오늘은 마 여사 생애에서 가장 기쁜 날이다. 그런 날 이상한 애한테 아침부터 시달리지 않는 게 오히려 편하지.

마 여사는 오늘은 하루 종일 마음을 넉넉히 갖자고 생각했다. 손님들도 많이 올 것이다. 마 여사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행사이니까. 마 여사 장례식이야 마 여사 자신은 모를 테니 알 바 아니고. 이제부터는 의사 사위 얻어서 평생 우아하게 살 거다. 그동안 번 돈 다 그렇게 쓰기 위해 악착같이 모은 거니까.

마 여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색이 참 곱구나. 너무 보기 좋다. 좋은 날, 좋은 징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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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여사는 헤어숍에서 운정을 데리고 호텔로 갔다. 호텔 사장까지 나와서 맞아준다.

마 여사는 운정과 함께 신부 대기실로 들어갔다. 헤어디자이너를 포함해서 시중들기 위해 따라온 사람들만 다섯이다. 카메라와 비디오 담당자들도 함께 따라오며 계속 촬영을 하고 있었다.

내 딸 운정아, 부디 행복하거라. 현운정. 축하한다. 오늘 이 순간을 맞기 위해 내가 그동안 온갖 모진 일 다 감당했다. 너는 이제부터 탄탄대로로만 가면 된다. 모든 궂은일은 내가 다 맡았으니까. 네 아버지가 지금 네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것은 다 그 양반 복이 그것밖에 안 돼서 그런 것이니까 할 수 없는 일이고, 너는 내 복뿐만 아니라 먼저 간 아버지가 받지 못한 복까지 다 받거라, 내 딸아.

마 여사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얼마 만에 나오는 눈물일까…….

마 여사는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눈물이 나려 한다. 자꾸만. 어디 가서 실컷 울어버릴까…….

마 여사는 선녀 같은 딸애의 모습을 한번 쳐다보고 화장실로 갔다. 눈물로 화장 지워지면 안 되겠기에 조심조심 눈물 찍어낸 뒤 화장실 한 칸에 들어가 변기 뚜껑 위에 그대로 앉았다.

그런 다음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핸드백을 뒤져 종이 하나를 끄집어냈다. 오랫동안 읽던 글이 하나 있다. 종이에 써놓은 글. 하도 펴서 읽고 또 읽어 종이가 닳으면 또 다른 종이에 옮겨 적어놓곤 했던 글. 며칠 전에도 새 종이에 옮겨적었다. 이번 혼사까지만 읽자고 하고서 특별히 새 종이에 정성 들여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쓴 글이다. 남들이 보면 웃기도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할 것 같아서 절대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글. 심청전에서 나오는 한 대목을 오랫동안 고치고 고쳐서 써놓은 글이다. 웬 심청전이냐 하겠지만 운정이 어려서 제 아버지를 잃었을 때부터 이 다음에 크면 그 대목에 나오는 것처럼 귀인 중의 귀인을 만나라고 소원하며 베껴놓은 것이다.


“짐이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것이 아주 기이했소. 그래서 어제 뱃사람들이 가져온 꽃을 자세히 살펴보니 갑자기 꽃은 간데없고 한 낭자가 곱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니겠소. 그 모습이 황후의 자태인데,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러자 문무대신들이 아뢰기를,

“황후께서 승하하신 뒤 하늘이 그를 아시고 좋은 인연을 맺어주시고자 보내주셨습니다. 국운이 날로 성하고 한울님이 보우해 주시니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송나라 황제가 심청이를 맞이하는 장면. 마 여사는 운정이 어렸을 때부터 이 장면을 수도 없이 그렸다. 마 여사 자신의 신세는 끝장났으나 하나뿐인 딸이 부디 귀인을 만나 마 여사가 누리지 못한 복을 영원토록 누리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러면서 그 글을 펼쳐보았던 것이다.

지금 운정의 입장에서는 정 서방 같은 의사가 귀인 중이 귀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둘이 앞으로 잘 살아간다면 이제 마 여사는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맞았으니 그 종이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아주 잘게 잘라서 변기 속에 집어넣고 물을 내렸다.

잘 가라, 글아. 그 글을 통해 미래를 꿈꿀 때 마음이 부풀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이 현실이 된 것이다. 고맙다, 심청아. 마 여사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그 끝에 한마디 덧붙였다. 웬 심청이? 그러면서 혼자 싱긋 웃었다. 심청이든 아니든 상관없어. 이제는 끝났으니까.

마 여사가 화장실에서 나와 운정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코너를 도는데, 그 복도 한복판에서 소년이 보이는 것이었다.

아니, 얘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안녕하세요. 저 너무 나무라지 마세요.”

뭣이? 어서 썩 꺼져!

마 여사는 말이 미처 입에서 나오지 않아 마음속으로 외쳤다.

“네, 갈 거예요. 더는 올 일이 없거든요.”

빨리 가! 마 여사는 속으로 말하며 손을 저었다. 누가 볼까 봐 걱정스럽기도 해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갈게요.”

소년의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저는 아주머니의 양심이자 과거예요.”

소년은 이 말만 하고서 고개를 살짝 숙인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더니 소년은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말한다.

“미래는 아주머니 것이고요.”

소년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보고 곧장 걸어갔다.

그런데 그 걷는 품이 좀 이상했다. 한 발이 허공으로 올라가는 듯하더니 다른 한 발이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마치 계단을 오르듯. 보이지 않는 계단.

마 여사는 주변에 다른 사람이 없나 돌아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더니…….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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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여사는 허겁지겁 신부대기실로 가고 있었다. 소년의 말에 마음이 심란해진 채.

“재수 없는 놈. 남의 잔칫집에 와서 악담을 해?”

괘씸했다. 한 번만 더 나타나면 요절을 낼 테다. 마 여사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도 혹 뭔가 좀 미진한 구석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차, 목사님!

마 여사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어 김 실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렇잖아도 오늘 좀 일찍 나와서 이것저것 살펴보라고 해놨었는데 아직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오늘 같은 날 알아서 좀 빨리빨리 와줘야지.

그러나 김 실장 전화의 전원이 꺼져 있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왜 하필 오늘 이러는 거야……?

마 여사는 김 실장이 전화를 받으면 빨리 오라고 채근을 하고서, 오늘 무엇보다도 목사님을 책임지라고 말해 주려 했었다. 목사님 옆에 앉아 있다가 예식이 끝나면 무조건 모시고 나가서 강제로라도 차에 태워 근처 아주 고급 레스토랑으로 모시고 가라고. 핑계는 김 실장이 알아서 만들고. 아차, 그러면 접수는 누가 맡지? 아, 그거는 아래 애들 시키라고 하면 되겠지 뭐.

마 여사는 두어 번 더 김 실장에게 전화한 뒤에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빨리 오라고. 그리고 전화 좀 꺼놓지 말고 냉큼 받으라고.


마 여사가 신부대기실에서 운정의 옷매무새를 다듬어주고 있는데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운정의 친구 하나가 나가더니 다시 들어와서 마 여사에게 다가와 말했다.

“어머니를 찾는데요. 나가 보셔야겠어요.”

마 여사가 문 밖으로 나가니 민 과장이 서 있었다. 약간 당황한 얼굴로. 민 과장은 김 실장 아래에서 궂은일 도맡아 하며 마 여사의 혀처럼 구는 녀석이다. 게다가 다른 애들보다 생김새가 곱상해서 주로 남들 앞에 내세우는 일을 맡겼었다.

“무슨 일이야?”

“좀 이상한데요.”

마 여사는 가슴이 철렁했다.

“뭐가?”

“아무도 안 보이는데요.”

아, 그래. 그렇잖아도 마 여사는 정 서방이 벌써 왔어야 하는데 왜 지금껏 안 오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 여사는 얼른 핸드폰을 꺼내어 정 서방에게 전화했다. 안 받는다. 아니,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마 여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얼른 김 실장에게 다시 전화했다. 그러자 역시 아까처럼 전원이 꺼져 있다고 하는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다.

마 여사는 갑자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손도 그러했지만 민 과장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억지로 힘을 주었다.

“김 실장 찾아!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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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 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정 서방과 김 실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여전히 전원이 꺼져 있다는 음성만 나올 뿐이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신랑 쪽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쪽 하객들도 하나도 없었고.

마 여사는 핸드폰으로 보내온 병원 인수 서류를 뒤져서 상대방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역시 전원이 꺼져 있었다. 부동산중개인은 김 실장 자신이니 그곳으로 연락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고. 그놈은 20년도 더 전에 복덕방 근처에서 어물거리다가 공인중개사 제도 초기에 면허를 땄으나, 그 뒤 장롱 속에 처넣고 마 여사 밑에 들어와 온갖 사기 다 치고 다녔었지.

마 여사는 정 서방 아버지에 대해 문의했던 형사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했다. 자세한 사정은 말할 수 없으나 아주아주 급한 일이라고 하면서 부탁했다. 형사는 투덜거렸지만 마 여사 말을 안 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그렇게 엮여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날 오후 마 여사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정 서방, 아니 정진수 그 새끼를 비롯해서 그 고모라는 인간 모두 가짜였다. 죄다 김 실장이 꾸며서 만들어낸 연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들 어제 오후에 중국으로 다 날아갔다. 마 여사가 보낸 돈은 여러 계좌로 쪼개어 보내고 또 몇 단계 거쳐서 흩어진 다음 다 찾아갔을 것이다.

경찰에서는 그놈들 죄다 잡아들이는 데 몇 달, 아니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못 찾는다는 소리다. 그리고 돈 역시 되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마 여사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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