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엽서

by Rudolf


여섯 번째 엽서


정욱은 또다시 진흙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에 잠긴다. 과거의 기억 속으로.

정욱과 도희는 자주 싸웠다. 특히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도희는 아버지를 따라 포르투갈로 가서 공부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나 정욱은 포르투갈은 유럽의 변방이라는 생각이 앞서서 자신과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도희의 생각은 달랐다. 유명한 누노 마테우스(Nuno Mateus)와 호세 마테우스(José Mateus) 형제뿐만 아니라 건축가인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Álvaro Joaquim de Melo Siza Vieira)와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Eduardo Souto de Moura) 같은 이들은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으며, 그밖에 유명한 미술계 인재들이 많다고 했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큐레이터인 주앙 피냐란다(João Pinharanda), 건축가인 호세 페드로 크로프트 (José Pedro Croft), 화가 조아킹 호드리고 카르도조(Joaquim Rodrigo Cardoso), 사진작가이자 시각예술가인 엘레나 알메이다(Helena Almeida) 등은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다고 했다. 또한 1911년에 리스본 옛 도심의 중심가에 세워진 시아두 국립현대미술관(MNAC, Museu Nacional de Arte Contemporânea do Chiado)은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평소 미술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던 도희가.

물론 이러한 사실 중 일부분은 정욱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포르투갈 미술계에 대한 인식이 낮을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한국의 미술계에서 밥 먹고 살려면 미국이나 유럽의 주류세계로 들어가서 공부해야 한다고 반대한 것이다.

그러나 도희는 좁디좁은 데다가 고리타분한 편견에 치우친 한국을 떠나 유럽 쪽으로 진출하겠다고 하며 포르투갈행을 고집했다. 그러고 나서 대판, 아주아주 크게 싸운 뒤 그녀는 리스본으로 훌쩍 떠난 것이다.

고집불통 현도희.



그러나 그 고집 덕분에 대학생 신분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니 학생 때 전혀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한 정욱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욱은 포르투갈에 가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서 자신은 미국으로 갔던 것이다. 하지만 몇 개월 못 버티고 돌아오고 말았다. 여러 가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정욱의 병은 깊어갔다. 폐결핵. 그런데도 정욱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고서 몸을 함부로 굴리기 시작했다. 좌절감, 패배감, 열등감 등등으로.

정욱은 진흙으로 두 사람을 빚었다. 남자와 여자. 남자가 한 팔로 여자의 어깨를 두르고, 여자는 머리를 살짝 남자 어깨에 두른 모습. 정욱은 절대로 자신과 도희를 의식하지 않고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완성된 뒤에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작품을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고 나니, 그것은 자기들 두 사람, 즉 도희와 정욱 자신이었던 것이다. 정욱은 의아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작품의 모습이 실제와는 아주 달랐던 것이다. 남자는 정욱과 너무 달랐고, 여자는 도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정욱의 눈에는 자신들 두 사람, 즉 도희와 정욱같이 보였다.

이것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정욱은 자신의 생각을 확인시키려는 듯 두 사람의 진흙 모습을 또 다른 엽서에 스케치했다. 자신이 본 대로 그리고 나서 정욱이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정욱의 생각이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서.

잠시 뒤 스케치가 끝났다.

그러고 나서 진흙 테라코타와 비교해 보았다. 그러나 그림은 테라코타와 달랐다. 틀림없이 정욱은 자신의 두 눈으로 본 대로 그렸는데. 그런데도 엽서의 스케치는 정확히 정욱과 도희였던 것이다.

이럴 리가 없지. 내 눈이 잘못 볼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정욱 자신은 눈으로 그리지 않고 마음으로 그렸단 말인가?

“바보.”

정욱은 중얼거렸다.

“그래, 바보.”

또다시 중얼.

“바보, 바보, 바보…….”

정욱은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엽서에 발신인과 수신인을 썼다. 이정욱, 현도희. 영문으로. 그 다음에 우표를 꺼내어 꼼꼼히 붙였다. 톱니바퀴가 어긋나지 않도록.

그런 다음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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