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악장 | 내가 죽으면 흙이 되마
제3악장
☃
밤 9시, 우리는 루체른으로 향했다. 사실 그 밤에 그곳에 가면 안 되었다. 렌트한 미니버스로 취리히에서 그 호텔까지 올 때 지도 앱을 보고 왔는데도 무지 고생을 했는데, 아무리 크리스마스 이브의 분위기에 휩쓸린다 해도 그 밤에 거기는 왜 갔단 말인가.
그것은 객기도 아니었다. 여행객의 흥도 아니었다.
그렇다. 바로 운명이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꾸며진 우주의 장난.
작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루체른에 먼저 들러 이 호텔로 왔었다. 그리고 루체른에서 빈사의 사자 상을 둘러보고 난 뒤 유람선을 탔었다. 널찍한 겨울 호수를 유람선으로 달릴 때 그 신났던 기분. 바로 그것을 모두가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작년에는 누리지 못한 루체른 호수의 크리스마스 야경을 올해는 기필코 만끽하자며, 이곳에 오기 전부터 들뜬 마음으로 야간 루체른 호수를 계획했었던 것이다. 사실은 내가 분위기를 많이 띄웠지만. 나 나름대로는 어떤 속셈이 있어서.
그래서 내심으로는 호텔에서 있었던 자그마한 그 행사보다 마음은 루체른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가 있었던 탓에 모두가 한시라도 빨리 떠나고 싶어 했었다. 그랬기 때문에 너도나도 한 마음으로 그 밤 루체른으로 달려간 것이다.
“운명이라는 말 믿니?”
차 안에서 누군가가 불쑥 말했다. 그러나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말을 한 친구가 머쓱한지 한마디 덧붙였다.
“운명이 아니라 숙명인가…….”
“숙명은 복수극 냄새가 나는데.”
“운명보다는 새해 운수가 더 중요하지.”
“운명은 베토벤도 안 믿었을 것 같아.”
“운명은 돌아가실 때 쓰는 말 아냐?”
“한자가 틀려.”
“어떻게?”
“하나는 돌고 돈다는 돌 운(運)자고, 또 하나는 죽을 운(殞)자야.”
“와―.”
“뭐, 기본인데.”
“그런데 하필 왜 이 시간에 운명 이야기를 꺼내는 건데?”
“아니, 뭐 그냥…….”
이렇게 실없는 이야기를 떠들어대며 우리는 알프스의 밤길을 달려갔다.
그리고 한밤중 알프스 산맥 한가운데 호수의 크리스마스 야경을 보고 우리는 탄성을 질렀다. 호수 가장자리로 이어지며 펼쳐져 있는 화려한 장식, 온갖 상점마다 울긋불긋 번쩍번쩍 반짝반짝 명멸하는 빛들 속으로 우리는 녹아들 듯 스며들 듯 그렇게 들어갔다. 호수는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움을 가져다주는 마법의 웅덩이였다. 호숫가를 따라 장식된 화려함을 고스란히 받아 출렁이는 그 물결이 그 화려함을 더욱 증폭시켜 하나의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걸었다. 한없이 걸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동방박사들이 그 밤 마법의 호수 주변으로 모두 몰려들어 그곳은 현란한 별천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 속에 섞여 환상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처음에 우리 일곱은 함께 걸었다. 상점들 사이로, 호수 주변으로, 그리고 호수 위쪽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카펠교 위로, 호수 건너편으로, 호반을 따라 나 있는 도로로.
그러다가 어느덧 둘씩 셋씩 짝을 지어 흩어졌다.
그리고 나는 자연히 수해와 단둘이서 걷게 되었는데, 우리는 둘 다 갑자기 그 밤의 현란함에서 오히려 이방인이 되어 화려함 뒤의 으슥함으로 찾아가게 되었다. 우리의 몸은 서로 찰싹 달라붙어 있었지만, 서양인들처럼 공개된 장소에서 얼굴은 입술은 서로 밀착하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둘은 무언의 합의 하에 그늘을 찾고 있었다. 결국 크리스마스 이브의 호화로움을 거부하며 오히려 도피하기 위해 우리는 루체른의 찬란함 뒤로 숨어들어가게 된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처음에는 선착장으로 가서 야간 유람선을 타고 저 먼 곳으로 가서 내리려 했었으나 예감이랄까 본능이랄까, 어쩐지 그것이 꺼려지는 것이었다. 오히려 유람선을 탔으면 그 비극은 안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인지 모를 것에 이끌려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 밤, 그 화려한 밤, 그러나 조금만 벗어나면 어둠의 공간이 나온다. 저 멀리에서는 인간의 빛들이 명멸하겠지만 그곳에서 살짝만 떨어져도 주변은 온통 암흑천지이다.
우리 둘은 모두 유람선 안의 뭇사람들 시선보다는 어두움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심전심으로. 그곳에서 어떤 갈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았다. 그것이 운명인지도 모르고.
결국 우리는 유람선 매표소 앞에서 돌아서고 말았다. 이것이 정말 운명이 만든 함정이었을까?
어떻든 이렇게 해서 우리 둘, 그녀와 나는 유람선이 아니라 유람선이 만들어내는 흰 거품 물결을 바라보며 호반을 따라 난 긴 도로를 걷게 되었던 것이다. 꼭 달라붙은 채. 그러고 보니 그동안 동료들 눈을 피해 둘이서 슬쩍슬쩍 눈 마주치는 것도 눈치가 보였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속박에서도 벗어난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는 희열을 느꼈던 것 같았다.
이국의 밤을 만끽하는 낭만의 여행객.
아, 그렇게 해서 그녀와 나는 이 세상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는 완전한 자유, 심지어 방종까지도 허락받게 되었다. 이제 이 밤은 완벽하게 내 소유인 동시에 그녀의 소유이고, 우리 둘 공동의 재산이 된 것이다. 나는, 우리는 그 자유를 만끽하리라. 방종 너머로 나아가리라.
그래서 우리는 처음에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어색했으나, 곧 그들과 같은 동류가 되고 말았다. 여기에서 저기에서 나는 쪽쪽 소리에 우리도 거침없이 참여한 것이다.
그리고 어둠은 차츰 암흑으로 우리를, 나를 이끌고 들어갔다. 글자 그대로 끌고 들어간 것이다.
우리는 점차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곳으로 소리도 없이 스며들어갔다. 호반을 따라 난 도로를 걸으며. 그와 동시에 먼 곳의 불빛들이 비쳐서 흔들리고 있는 호수 물결에 우리의 몸도 출렁이는 것 같았다. 또한 그 출렁임에는 리듬이 있었다. 음악인들만 느낄 수 있는 본능적인 리듬.
밤 호수 물결을 따라 먼 곳의 빛들이 금은보석처럼 흩어졌다가 이내 다시 모이더니 금세 새로운 빛을 반사하며 또다시 흔들거렸다. 우리는, 특히 나는 리듬에 예민하다. 그런 내가 아무리 이국의 크리스마스 이브에 빠졌어도 그러한 본능의 리듬을 외면할 리는 없다. 내 몸은 마치 배를 탄 것처럼 출렁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미쳤던 것 같았다. 아니, 나한테는 지금 생각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까 지금이 아니라 그때의 그 상황에서 말이다. 즉, 나는 물결에 비쳐 흔들리는 빛들의 리듬에 취해 호숫가로 다가가서 급기야는 내려가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운명이라는 것이겠지만 그만 발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성탄전야의 호수에 내 몸은 물속으로 잠겨 갔다. 그렇지만 나는 전혀 거부할 수가 없었다. 내 의지와는 달리 내 몸은 허우적거리면서도 내가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차츰차츰 빨려들어가고 있었으니까. 사실 나는 누군가의 비명소리도 들었다. 처음에는 바이올린의 선율처럼 높이 올라가며 밤하늘을 찢었지만 이내 플루트의 탁한 듯하면서도 맑은 음색으로 바뀌고는 또다시 급격히 둔탁한 드럼 소리로 변했다. 그러나 그쯤에서 나는 그것이 내 속, 내 심장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본능으로 알게 되었다. 생명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거창한 팡파르. 프레스티시모(prestissimo). 최대한 빠르게.
나중에 (다른 세상에 가서) 알고 보았더니 그곳은 아주 얕은 물이었다. 호수 가장자리였으니까. 정신만 제대로 차렸다면 헤쳐나올 수 있는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캄캄한 밤중에 물에 빠진 것에 대한 공포감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오히려 깊은 호수 쪽으로 빨려들어간 것 같았다.
이 대목은 사실 너무 어처구니없고 또 억울한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가 나는 것은 그녀를 완전한 내 것으로 만들지도 못하고 겉만 더듬다가 만 채로 나는 떠난 것이었다. 머나먼 길을. 돌아가지 못할 길을.
그렇게 아쉬움만 남기고 떠난다는 것……, 이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그러나 어쩌랴. 이미 그 밤 그렇게 내 생명은 끝나가고 있었는데…….
그리고 나는 꺼져가는 의식 가운데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정말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얼굴을 붉혔다.
스위스 루체른 호수에 빠져죽는 최초의 한국인 여행객은 아마도 나 자신일 것이라고…….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어떤 노래를 들었다. 죽음의 노래.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죽음의 노래였다. 1804년 요제프 하이든이 사망했다는 잘못된 신문기사로 인해 작곡된 〈하이든의 사망을 애도하는 성가(Chant sur la mort de Haydn)〉. 그 곡에서 두 테너와 한 소프라노가 부르는 애절한 노래가 내 귀를 파고들었다.
그 잘못된 사망이 나한테 찾아온 것이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