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악장 | 그러면 이렇게 하자
제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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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김명연은 마치 에베레스트 산처럼 보이는 호텔 뒤의 산을 등지고 아래쪽에 펼쳐진 평화로운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높은 산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찍 지는 겨울 태양의 햇살을 받아 은은한 색감으로 장식된 비탈진 넓은 풀밭은 마치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면서 정체 없는 잔잔한 그리움을 선물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서는 느끼지 못할 뿌듯함이 가슴에 꽉 차오르는 것이었다.
5층짜리 건물 여러 동으로 구성된 호텔 제일 위쪽, 고미다락이 있는 집 같은 조그만 매점 건물에는 여러 나라 국기가 걸려 있는데 태극기도 그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 그렇다고 이곳에 한국 고위층 인사가 온 것 같지는 않았다. 호텔 측에 물어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환영하기 위한 것 같지도 않았고. 그게 아니면 혹 다른 한국인 단체관광객이라도 오는 것인가? 아직은 호텔 근처에서 우리 말고 다른 동양인은 보지 못했다. 가는 곳마다 법석이는 중국인조차도. 뭐 그야 어떻든 알프스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보니 마음은 뿌듯했다.
그 정도면 되지 뭘 더 알려고 하는가. 여기에서 만족하고 돌아서면 되지.
어떻든 이렇게 해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알프스의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다. 날씨는 의외로 푸근했다.
우리는 일단 저녁을 먹고 나서 호텔의 조그만 홀에서 열리는 성탄 이브 행사에 가야 한다. 그곳에서 작년에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은 일단 그 사람들의 콘서트를 즐기고, 우리는 내일 그 교회에 가서 성탄예배 후에 연주를 하게 된다. 아주 조그만 교회라고 한다. 알프스 산속 외진 마을이라 교인이 아이들까지 합해서 서른 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외공연이라는 말은 좀 쑥스럽다. 어딘지 거창하게 보이니까. 그냥 외국 친선공연쯤으로 하는 게 좋을 듯. 그래도 우리들의 마음은 꽤 부풀었다. 어떤 공연보다도 기대감이 컸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어떤 언론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에서 장애우 단체나 양로원에 가서 연주했을 때처럼.
어떻든 우리 멤버 여섯이야 작년에도 와봐서 이 동네가 다소 눈에 익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오는 수해는 여러 가지로 기대가 큰 것 같았다. 실제로 큰 공연에서도 좀체 흔들리지 않던 그녀가 이번에는 어딘지 들뜬 느낌이다. 무대가 색달라서 그런가……?
― 사실은 관객을 바로 코앞에 두고 연주하면 마치 입학시험 볼 때 오디션하는 것 같아서 더 긴장이 되어 그런 거예요. 단 하나도 틀리면 안 되니까.
독일에서 공부한 피아노 민희가 통역을 도맡았다. 그러나 굳이 독일어로 하지 않아도 영어만 가지고도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더라도 주민들하고 대화할 때는 역시 독일어가 훨씬 편한 것 같았다. 스위스는 독일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아주 일부이지만 로만슈어도 공용어에 속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언어를 선택하고 싶지 않을 때는 중립어인 영어를 사용한단다. 또한 국제적으로 쓰이는 공식 언어는 프랑스어이며, 스위스는 프랑스어 사용국 연합인 프랑코포니(Francophonie)에 정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다고 한다. 한국도 2016년에 옵서버 자격으로 가입했다나. 별것을 다 아는 민희의 설명에 의하면.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 우리 일곱 명은 방 세 개에 짐을 푼 뒤 우선 함께 모여 간단히 악기를 조율하고서 음을 맞춰보았다. 그러면서 모두들 다른 공연보다 더 긴장이 된다고 했다.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았다.
“긴장하지 마. 평소대로 하면 돼.”
그런데 사실 평소에도 늘 긴장에 긴장을 하고 연주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이번에도 역시 잔뜩 긴장하라는 말인 것이다.
어떻든 긴장하지 말라는 말 때문에 우리는 다소 옥신각신했다. 즐거운 말싸움.
그렇게 해서 저녁식사를 끝내자 그 교회 팀이 도착했다. 호텔에서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고 약간 잡담을 나누었다. 독일어 잘 하는 민희는 일부러 더 나서서. 나머지 영어가 소통되는 몇몇은 일부러 끼어들면서. 그리고 독일어도 영어도 입에 붙지 않은, 그러니까 나를 비롯한 몇몇은 그냥 미소만 지으면서. 그러나 간간이 말하는 땡큐 소리와 음악용어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잘 통하는 색다른 언어도. 바디랭귀지. 미소. 마음과 마음으로 주고받는 대화, 영혼의 대화 등등.
“말이 안 통하면 어떠냐? 알프스인데.”
“알프스가 뭐 어드래서 그런 건데?”
“나도 몰라.”
그 교회의 팀은 모두 열 명이었는데, 막상 공연을 할 때는 한 명이 더 늘어났다. 그 호텔의 웨이터가 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면사포를 쓴 소년, 남자 마술사처럼 시커먼 옷 차려입고 검고 통이 높은 모자를 쓴 소녀, 성탄절 분위기가 나는 옷을 입은 중고등학생 같은, 그러나 키는 어른 못지않게 큰 남자와 여자가 각각 두 명씩, 빨간 목도리를 두른 여자 청년, 그 교회 오르가니스트라고 하는 농사꾼 복장의 중년남자와 그 부인, 허리가 반쯤 구부러지고 머리칼이 온통 하얗게 센 할머니, 여기에 호텔 웨이터, 이렇게 열한 명이 무대랄 것도 없는 좁은 단 위에 올라섰다. 아마 이 행사를 위해 별도로 만들어 매년 사용하는 단 같았다. 작년에도 우리는 바로 그 단에 올라갔었으니까. 이들은 지휘자는 없이 그랜드피아노의 반주에 맞춰 30분가량 캐럴을 불렀다. 만인들이 잘 아는 노래와 자신들이 특별히 고른 노래들을. 그런데 이런 시골 동네 합창단의 화음이 기가 막혔다. 아주 고운 목소리로 마치 빈소년합창단이 온 것과 같은 노래를 불러준 것이다. 도무지 할머니와 어른들이 끼어 있는 소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작년에도 바로 그것 때문에 공연 뒤에 그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초청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그때 우리가 한국에서 음악활동을 한다고 밝혔던 덕도 있지만. 그러고 나서 우리는 즉석에서 피아노를 치며 함께 캐럴을 불러 그곳에 온 사람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던 것이다.
그 공연 뒤 그 팀은 또 다른 곳에 가야 한다며, 내일 만나자고 하고서 일찍 떠났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