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악장 | 그러나 네가 이것을 야속다 하면
제1악장
☃
나 강수해는 해안가 길을 한없이 걷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참으로 매서웠다. 그래도 도시의 바람에는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아련함이었다. 검푸른 바다가 주는 가슴 뭉클한 그리움들.
그래, 그리움‘들’이었다. 복수의 그리움. 그리움 속의 그리움. 그리움 너머의 그리움. 그리고 겨울바다가 주는 그리움.
하지만 그 그리움들은 정체가 없다. 대상도 없다. 그저 그리운 것이다.
누구를? 무엇을? 왜?
그러한 것들은 없다. 그래도 그리운 것이다.
바다를, 먼 바다를 바라보면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더구나 혼자서 바다를 바라본다면. 더군다나 한없이 넓게 펼쳐져 있는 바다는 아무런 파도도 없이 그저 고요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파도 소리가 한없이 들려오는데도.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파도를 일으키지 않는 고요한 바다와 같다.
1600년대에 스페인의 유명한 기상주의자인 그라시안(Baltasar Gracián)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란다. 스페인에서 발생한 기상주의(奇想主義)는 콘셉티스모(conceptismo)라고도 하는데, 간결하면서도 의미가 깊은 촌철살인과 같은 말을 만들어내는 사유방식에 속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나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바다보다는 그냥 넓게 퍼져 있는 바다가 더 좋았다. 그런 바다는 왠지 모르게 그리움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리움에 빠져 걷고 있는 것이다. 한겨울 서해안의 긴 바닷가 길을 따라서. 그러면서도 굳이 또 하나의 노스탤지어를 애써 찾아내서 나 스스로를 주인공화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주인공 역할만 바뀌었을 뿐 실제의 노스탤지어이다. 내가 그가 되어 그가 나를 바라보는 노스탤지어.
몇 년 전, 12월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무척 바빴다. 크고 작은 연주회가 줄을 잇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송년, 성탄, Adieu, 메시아, 송구영신, 결산, 갈라(gala, 축제), 여기에 특색 있게 하기 위해서 개성 있는 말들을 조금씩 더할 뿐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들을 따라다녀야 하는 이들도 분주하지만, 이것들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들도 보통 바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콘서트도 준비해야 하지만 남들의 콘서트에도 가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말이 지나면 몸무게가 주욱 빠져야 하는데도 오히려 그 반대가 된다. 가는 곳마다 주고 먹고 하는 탓에. 그래도 우리는 즐겁다. 연말 한철은 마치 환상 속에서 사는 듯하다. 음악에 취하고, 휘황한 장식에 취하고, 사람들에게 취하고, 감흥에 취하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헤어짐에 취한다. 모두가 떠나기 때문이다. 음악이 끝나면서 세상도 끝나고 사랑도 끝난다……. 그녀와 나처럼.
그러나 그해 12월 우리는 전혀 바쁘지 않았다. 아니, 조금만 바빴다. 해외공연을 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깐, 절대 거창하게 생각하기 없기. 우리를 초청한 것은 알프스 산골 조그만 동네의 또 조그만 호텔에서 가까운 아주아주 조그만 교회였기 때문이다. 융프라우와 베른 주의 아이거(Eiger) 산(山) 꼭대기인 노스페이스(Northface) 중간 어디쯤에 있는 전형적인 알프스 교회.
우리 팀은 그 전 해의 말에 모든 공연을 끝내고 성탄절과 신년에 이르는 긴 연휴에 알프스를 관광했다. 그때 그림과 같은 한 호텔에 머물렀었는데, 성탄 전야에 그곳의 조그만 홀에서 자그마한 행사가 있었다. 근처 교회의 아이들이 와서 성탄 연극도 하고 노래도 부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깜찍하고도 흥에 겨워서 그 교회 인도자에게 허락을 받아 우리 팀이 특별협찬을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자 그 인도자도 우리의 미니 오케스트라가 너무 좋았다고 하면서, 혹 다음 해에 자기 교회에 와서 연주해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멀고 먼 동양 끝에서 온 한국인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하고는 지구 반대편이 있지요. 그런데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우리와 함께 해주신 것 정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우리가 더 고맙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그쪽 목사님이 불쑥 말하는 것이었다.
“혹 내년에도 여기에 오실 수 있나요? 우리 교회에 와서 함께했으면 좋겠는데…….”
의례상 하는 말이겠거니 하면서도 우리는 마음이 들떠서 그러겠노라 대답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우리는 1년 내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정말로 가야 하는 것인지……. 게다가 우리를 초청했다고 해서 그 조그만 교회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체력도 문제다. 연말 각종 공연을 끝내고 나면 다들 지쳐서 푹 쉬고 싶은데도 작년 말에는 무리를 해서 억지로 여행을 한 것이기에 올해 또다시 알프스에 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가까운 아시아 국가라면 모를까. 그리고 작년에 갔었던 인원이 모두 다 간다는 보장도 없다. 물론 우리 오케스트라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현악사중주를 바탕으로 해서 조금 더 보강한 일곱 명의 그룹이니까.
“그런데 너는 왜 덜컥 간다고 대답한 거냐? 네가 우리 대표도 아니고.”
“정말로 오라고 하는 줄 몰랐지 뭐…….”
“그럼 네가 비용 다 대라. 아니면, 어디 가서 스폰서 구해 오든지.”
“혹시 우리 이렇게 광고하면 어떨까? 스위스에서 초청받았다고.”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약속했다고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데도 우리는 다시 마음을 모아 그곳에 갔다. 12월 23일 비행기를 타고서. 인원은 작년과 동일한 일곱 명이지만, 한 사람이 바뀌었다.
플루트. 바로 그녀. 즉, 나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라고 표현한 것은 내가 그로 바뀌어 나를 바라보겠다고 서두에 밝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의 일정 부분은 모든 시점(視點), 즉 시야를 그에게 두고서 그가 살아오고 경험한 모든 것을 추측해서 이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작년의 알프스 일을 마치 내가 그가 된 것처럼 설명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복잡한 구도로 글을 쓰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곧 알게 된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