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악장 | 그래서 네 뿌리 밑에 가서
제4악장
나, 이제는 강수해로 다시 돌아온 나는 죽은 김명연이 내게 써주었던 시를 꺼내 보았다.
풀
― 초몽(草夢) 남궁벽(1894~1922)
풀, 여름 풀,
요요기(代代木) 들(野)의
이슬에 젖은 너를
지금 내가 맨발로 삽붓삽붓 밟는다
애인(愛人)의 입술에 입맞추는 마음으로
참으로 너는 땅의 입술이 아니냐
그러나 네가 이것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내가 죽으면 흙이 되마
그래서 네 뿌리 밑에 가서
너를 북돋아 주마꾸나
그래도 야속다 하면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네나 내나 우리는
불사(不死)의 둘레를 돌아다니는 중생(衆生)이다
그 영원(永遠)의 역로(歷路)에서 닥드려 만날 때에
마치 너는 내가 될 때에
지금 내가 너를 삽붓 밟고 있는 것처럼
너도 나를 삽붓 밟아 주려무나
바보 같은 놈. 이게 뭐냐? 보통 영화나 연극, 소설 같은 데에서는 여자가 죽고 남자는 그것을 보고 비통해하지 않니? 그런데 그 반대가 되었잖아. 이게 좋냐? 너는 더 이상 생각도 후회도 없는 세상에 들어가 망각에 빠져 있겠지만, 나는 평생 네 생각을 품고 살아야 하잖아.
내가 남아 있는 생애 동안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말해 봐.
날더러 어쩌라고?
나는 지금 바닷가를 걷고 있어. 겨울, 12월의 바다를. 네가 죽은 그 화려한 호수도 아니고, 게다가 나에게 야차와도 같았던 그 끔찍한 밤이 아니라 벌건 대낮에. 그런데 한 가지 다행스럽게도 지금 주변이 아주 환하지는 않단다. 하늘은 잔뜩 흐려 있어. 내 마음처럼. 명(明)도 아니고 암(暗)도 아닌 상태.
이런 날 사실은 너를 생각하기 딱 좋단다. 그렇잖아. 환한 대낮에는 네 죽음보다는 살아 있는 내가 중요하고, 캄캄한 암흑의 밤에는 시퍼렇게 두 눈 뜨고 살아가는 나보다는 시커먼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네가 더 많이 떠오르는 것, 그거 당연한 거 아냐?
그런데 이런 날, 밤도 낮도 아닌 이런 우중충한 날에는 나는 우리 둘 다를 생각한단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딱 중간상태. 우리 둘을 합쳐서 반으로 탁 자르면 그렇게 되잖아, 이 병신 자식아!
나는 이쯤에서 주저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리도 풀려서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버텼다. 온 힘을 다해서. 그전 같으면 이런 생각 중간쯤에는 눈물도 흐르고 그랬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시들해진 모양이다. 내 얼굴에는 눈물 흔적 대신 겨울 바닷바람이 불어와 생긴 얼얼함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긴 그 일이 있고 나서 5년이 흘렀는데 이제는 그렇게 될 만도 하지.
하지만 그 5년의 시간 동안 나는 엄청 망가졌다. 그 일들을 어떻게 다 말하랴. 너무 부끄러운 그 시간들. 나는 지금 세상에서 숨어야 할 정도로 처참하게 망가져 있다. 그것을 죄다 그 인간 때문이라고 핑계 대기에는 좀 부끄럽다. 어떻든 그렇게 될 정도로 나는 나 자신을 너무도 마구 굴렸던 것이다.
“저 말예요, 그것 좀 치워주실래요? 벗어주실래요?”
“뭐를……?”
“부끄러우세요? 부끄러우면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마셔야지,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 부끄러워하는 게 이상하지 않아요?”
“……?”
“그렇잖아요.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서 가리고 있는 거예요? 자, 봐요. 난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는데, 남자가 그게 뭐예요? 부인이 볼까 봐 두려우세요? 아니면, 나한테 부끄러운 거예요? 차라리 양심에게 부끄러우시라고요!”
그 말을 남기고 뛰쳐나온 날 밤, 나는 울었다. 걸어가면서도 울고, 전철에 앉아서도 울고, 집에 와서도 울고, 꿈에서도 울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울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울었다.
그러나 운다고 해서 내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울고 나서도 나는 또 타락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번은 병원에 찾아갔다. 정신의학과. 그러나 모두 다 털어놓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여의사는 내가 하지 않은 말도 다 들은 것 같았다. 표정이 그랬다. 그래서 무서운 생각이 들어 그냥 나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또다시 타락한 뒤 이번에도 그 여의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이번에도 몇 마디 하지 않고 나와버렸다. 기분이 나빴기 때문이다. 뭐야, 자기가? 신이야, 하느님이야? 뭘 다 안다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재수 없게.
그러나 세 번째 찾아갔을 때는 가까스로 참고 끝까지 견뎠다. 당장에라도 박차고 나오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때는 정말 절실했다. 이러다가 내 인생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실제로 나는 그때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 보다가 두세 가지로 정해놓고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시일만 정하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화가 나고 분했다. 나 자신이 그렇게 끝나는 게. 그래서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한번 더 가보자 하고 그 의사를 찾았던 것이다.
나는 그 의사를 통해 심리치료라는 것을 받았다. 처음에는 시시하게 여겨져서 그만둘까 생각했는데 조금만 기다려 보자 하고 진행했었다. 그랬더니 그것이 정말로 꽤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일탈된 생활이 갑자기 바뀐 것은 아니다.
음악생활도 못 하고, 사회에서 적응도 못 하고, 특히 무엇보다도 나는 인내심이 부족했다. 조금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나 자신을 학대하거나, 그러다가 결국 구역질나는 그 타락을 찾아나서곤 했다.
그래도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나 자신과 싸웠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잊을 수 없었다는 것을. 그날 밤 내 눈앞에서 일어난 그 끔찍한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물론 그렇게 했다고 해서 단 한시도 내가 그 일을 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 극한 상황을 일부러라도 만들어서 빠져들려고 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밤의 일을 결코 잊을 수도 없었고, 그가 암흑의 물속에 빠져들어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고 있기만 했던 나 자신의 무력감과 죄책감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으며, 또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날, 사실은 만난 지 100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곳에 간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와 함께 스위스에 갔었던 다른 이들은 모른다. 우리 둘만의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100일 축하라는 말은 쏙 빼고 다른 사람들을 충동질해서 그 밤 그 먼 거리 루체른 호수로 달려갔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와서라도 어느 누구한테 그 사실을 실토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매일같이 자책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잊기 위해 몸도 마음도 함부로 굴렸던 것이고. 남자들도 많이 만났다. 그리고 탐닉했다. 그러나 결국 그 남자들 모두 떠나고 말았다. 나한테 질려서. 내가 밤낮없이 매달리는 것이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자들에게 몸과 마음을 깡그리 몰입하지 않고는 루체른의 그 밤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참 우스웠다. 그날 밤이 내 생애 첫 키스였을 정도로 나는 조신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그토록 내 가슴을 아프게 한 그가 먼 길을 떠난 뒤 나는 아무에게나 마구 몸을 던진 것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모순.
남들은 나를 욕하겠지.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를 잊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를 잊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한 사랑을 나는 찾아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그런 것은 없었다. 게다가 강렬함을 원할수록 나는 더욱더 망가져 갔다.
내 말 이해할 수 있겠니, 니네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