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악장 | 너를 북돋아 주마꾸나
제5악장
명연과 나 수해는 처음에는 토닥거리다가 가까워졌다. 그는 나보다 다섯 살 위다. 그런데 그는 얼마나 건방을 떨고 다녔는지.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한국 최고의 음악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것에 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신동 소리를 들은 데다가 단 한 번도 엘리트 코스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상이라는 상은 다 휩쓸었고. 하긴 주변에서도 그의 실력은 모두 인정해 주고 있었다.
그러면 삼수 끝에 추가합격자로 간신히 음대에 들어간 나는 지지 않고 대꾸해 주었다.
“그래 봤자 국산품 애용이지 뭐.”
“한류의 힘을 모르시는군.”
“세계화도 필요하지.”
“뭐 상관없어. 다 그게 그거니까. 실력이 우선이지.”
늘 국산 순종을 내세우던 그 사람.
그런데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상복이 없었던 모양이다. 특히 국제적인 분야에서는. 말은 안 하지만 여러 번 도전했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해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 사람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여러 면에서 많이 삐딱해져 있는 것이겠지.
이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나를 그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약간 억지이긴 하지만. 나는 사실 국제적인 콘테스트에는 나가본 적도 없다.
어떻든 그는 유별나게 국내파라는 점을 강조하고 목에 힘을 주고 다녔지만, 사실 활동 그 자체는 좀 초라했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너무 자부심이 강해 사람들하고 타협이 잘 안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사람처럼 순수 국내파여서, 게다가 상복도 없는 편이어서 그의 자부심과 울분과 소외감을 공유하고 있었던 탓에 우리는 만나자마자 급속도로 가까워지게 되었던 것 같다.
게다가 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아니지, 이해가 되기는 하지. 조금 별난 면이 있었으니까.
“나는 음악계가 장르별로 대결을 한번 벌였으면 좋겠어. 공개적으로.”
“그런 생각은 왜 해?”
“어차피 세상은 경쟁이야.”
“상부상조가 어때서?”
“그거야 당연하지. 내가 말하는 경쟁은 그게 아냐?”
“그럼 뭐?”
“경쟁을 통한 상호 상승효과.”
“국내파, 해외파?”
“그것도 아니고.”
“어려워라. 쉽게 살자고요.”
“우리나라에서 경쟁을 통해 둘 다 이긴 사례가 뭐가 있을 것 같아? 정치 빼놓고.”
“그런 것도 있었어?”
“예를 들어 옛날 가요에서 남진과 나훈아. 프로야구에서 최동원과 선동렬. 소설에서 이문열과 황석영…….”
“고리타분한 거 말고, 요즘 예를 들어봐요.”
“너하고 나.”
“됐네요. 그런데 가요는 좋아해요?”
“당연.”
“남진과 나훈아?”
“한 가지씩만.”
“뭔데?”
“한 사람한테서는 노래 하나. 또 한 사람한테서는 가사 하나.”
“별나다. 제목이 뭔데?”
“하나는 사랑의 편지, 또 하나는 찻집의 고독.”
“찻집의 고독은 알겠는데, 사랑의 편지는 모르겠는걸.”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그럼 이 이야기가 왜 나온 거야?”
“심심해서.”
“아이고 참……. 그런데 소설도 읽어요?”
“읽지. 소년이 온다.”
“누가 온다고?”
“무식한 거 티 내지 말아라.”
“뭐 제대로 읽기나 한 거야?”
“책만 사놓고 아직 안 읽었다.”
“그렇겠지.”
위에서 밝힌 대로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여러 면에서 자부심보다도 울분이 더 컸다. 그래서 나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유럽 쪽으로 나가볼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어서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곡도 쓴다.”
“하나만 하시지.”
“원하면 줄 수도 있어.”
그가 나를 위해 곡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사실은 전에 써놓은 것인데 나에게 주기 위해 정성껏 다듬었다고 한다.
나는 그 곡을 한번 불어보고 나서 그런대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성을 생각해서 내 나름대로는 살짝 편곡까지 해서 열심히 연습해 보았다.
어느 날 방송에 잘 나가는 선배를 만난 일이 있어서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누구라고는 말하지는 않고 최근에 곡을 하나 받았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녹음을 해서 보내달라고 한다. 웬만하면 방송에서 첫선을 보이겠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큰 기회다 싶어 며칠 동안 온 힘을 기울여 연주한 것을 보내주었다.
그러나 며칠 뒤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거 내가 아는 사람 작품 같은데? 내 말 맞지? 영혼이 없어, 곡에. 이런 거 방송에서 내보냈다가는 나 쫓겨난다.”
그래, 맞다. 그 인간은 그 영혼을 고이 감춰두었다가 나중에 스위스의 한 호수에 집어 처넣었지. 작품에 넣기에는 너무 심오하니까. 뭐 그래도 작곡이 전공이 아니니까 봐줄 만하기는 했지만.
어떻든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는 그를 약 올리려고 은근히 마음을 떠보았다.
“저번에 나 준 거……. 그 곡 있잖아…….”
그는 말은 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나 그 눈에 어떤 기대감이 꽉 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잠시 망설였다.
“말해 봐. 그게 뭐……. 문제라도 있는 거야?”
그러나 그의 눈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부심 같은 것으로 빛나고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올 그 다음 말에 기대감이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차마 말을 못 하고 그의 눈을 살짝 피했다.
사람은 정말로 영악한 존재다. 아니, 단어 선택이 잘못되었다.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지. 말하지 않아도 알고,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는 것. 좋게 말하면 이심전심이 되겠지만, 그런 것은 좋은 경우에나 써먹는 말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만…….
어떻든 그 역시 내 눈을 피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것이리라.
“그 작품 벌써 녹음해서 보냈는데…….”
간접목적어가 빠지긴 했지만 나는 직감으로 그가 그 곡을 직접 녹음해서 외국 어느 기관에 포트폴리오 중 하나로 보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나는 약간 당황스러워서 나의 경솔함과 그의 무안함을 무마시키기 위해 속사포처럼 다른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포트폴리오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우리는 스위스로 날아갔던 것이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