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파스로 그린 12월 (6)

제6악장 | 지금 내가 너를 삽붓 밟고 있는 것처럼

by Rudolf

제6악장

지금 내가 너를 삽붓 밟고 있는 것처럼



나는 지금 완벽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음악활동도 하지 못한다. 물론 루체른 사건이 소문나서 그런 면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나 자신이 스스로 무너진 면이 더 많다. 이러한 일들 때문에 한때는 심리치료도 받았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제 내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가족까지도 나한테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성격은 점점 더 괴팍해지고 밤과 낮은 바뀌었으며, 평판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내가 어디에 찾아가도 모두가 피했다. 자살시도도 했다. 마지막 순간에 돌이켰지만. 나는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방황했던 것이다. 그렇게 얌전하고 부끄럼 많이 탄, 게다가 어렸을 때는 음악영재 소리까지 듣던 내가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일까? 하긴 누구 말을 들어보니 이 계통 사람 중에서 소싯적에 그런 소리 한번 안 들은 이 없다 하더라만.

하지만 오직 그 사람, 그 죽음, 그것 하나만이 문제였을까?

혹시 그 사건을 핑계로 그동안 억눌러 왔던 내 쓰레기 본성이 드러난 것은 아닐까?

어떻든 나는 이제 완벽히 혼자가 되고 말았다.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좀 우습지 않니? 살아야 할 때는 죽으려 하고, 죽어도 좋을 때는 살려고 하니. 죽어도 좋은 때? 뭐 그거야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만…….

어떻든 얼마 전부터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권유한 것이다. 나는 달리 할 것도 없어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그림을 시도했다. 재능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도 재미는 있었다. 처음에는 스케치 위주로 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곧바로 물감으로 그렸다. 학교 다닐 때를 회상하며.

그러나 솜씨는 정말 엉망이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그렸다. 그랬더니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그것이 무척 도움이 되었다. 무엇엔가 열중하면 괴로움을 잊게 된다는 게 빈 말은 아니었다. 그림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어도 그랬을 것 같았다. 나는 등산이나 운동 같은 활동적인 것은 잘 못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오래 하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다. 그래서 음악을 하듯 미술을 했다. 그러나 내 그림을 그리지 않고 주로 모네의 그림을 보고 그대로 모방해서 그렸다. 특히 수련을.

나는 대학 때 친구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 가서 수련 연작을 보기 위해 일부러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을 찾은 적이 있다. 모네는 59세 때부터 71세까지 수련을 그리다가 5년간 쉰 뒤 76세에 또다시 그리기 시작해서 백내장 때문에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는 81세까지 계속했다고 한다. 그 박물관에는 모네 말고도 세잔이나 르누아르, 마티스, 모딜리아니와 피카소 같은 화가의 작품들도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인공조명이 아닌 유리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조명을 했다.

그때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고 잔잔한 감동을 받은 것이 기억나서 나는 그 그림들을 모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심리치료도 나한테는 많은 도움을 주었으나 그 이후 나 스스로를 비하해서 또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었다. 물론 그 이전보다는 많이 완화된 상태로. 하지만 그 심리치료가 없었다면 그림 또한 큰 효과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릴 때는 두 가지 기본이 있습니다.” 나한테 그림을 권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관찰 그리고 상상.”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관찰을 중시해야 합니다. 보는 것. 정확히 보는 것. 있는 그대로 보는 것. 그것부터 익혀야 합니다. 상상은 금물. 보이는 대로 그리셔야 해요.”

나는 호기심 있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 다음엔 빛. 색이 아닙니다. 빛. 빛의 방향, 즉 어디에서 빛이 오는지. 밝은 빛인지, 희미한 빛인지. 그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왼손의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고는 나머지 세 손가락은 위로 쭉 펴고서 내 눈앞으로 내민 채 말을 이었다.

“세 번째, 빛이 있으면 그 반대가 있어야 합니다. 그림자. 어두움. 그런데 어둠에도 구분이 있어요. 아주 캄캄한 것, 그보다는 좀 희미한 것…….”

그 다음에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신천지를 발견한 사람처럼 허리에 양손을 올려놓고 말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색을 생각해야 합니다. 색은 빛으로부터 오거든요. 그와 동시에 어두움에서 오기도 하지요.”

그는 이제는 우주를 관통한 것처럼 말을 잇는다.

“우주는 빛과 어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명암. 그것을 정확히 볼 줄 아는 것이 미술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기본을 무시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빛이 없어도, 어둠이 없어도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목격한 사람만이 아는 혜안이다. 나처럼.

그럼 그 혜안은 또 무엇이냐고?

아……, 저, 그러니까……, 그게 뭐더라……?

사실 말로는 표현하기 좀 곤란한데, 다음에 알려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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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한테 최근에 또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여행. 그렇다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다. 돈만 많았다면 온 세계를 돌아다녔겠지만 그런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또한 아직 차도 없어서 멋지게 드라이브 여행도 하지 못한다. 그저 가까운 곳, 한적한 곳 찾아다니며 걷고 또 걷는 것이다. 그리고 배고프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간다. 주말에는 입시생 가르치는 일이 있어서 주로 주중에. 그렇다 보니 조용한 곳을 많이 찾아다니게 되어 그것이 오히려 글자 그대로 힐링에도 도움이 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전철이나 버스 타고 다니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었다. 거기에 가방에다 군것질과 과일, 물병, 베이커리 빵 한두 개, 그리고 캔 커피 비슷한 거 좀 고급으로 넣어가지고 다니면 천하무적이 된다. 부러울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핸드폰과 아이패드에다 큼직한 헤드폰도 있겠다, 거기에 아주 작은 스파이용 같은 쌍안경도 최근에 하나 마련한 덕에 볼 것 들을 것 죄다 듣고 본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 A4 크기의 작은 스케치북과 굵직한 스케치 펜슬, 그리고 크레파스 한 세트가 들어 있는 납작하고도 아담한 케이스. 어떤가, 이 정도면? 천하무적이라는 내 표현이 과히 어긋나지는 않았겠지? 여기에 플루트 케이스까지 넣었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그것은 가방이 아니라 짐이 된다. 플루트야 어렸을 때부터 쉬지 않고 불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불 것이니 ‘여행’이라고 이름 붙인 이 순례 길에서는 사양하기로 했다.

Hey, flute, 실망하지 마……. 어차피 세상은 음악 없이는 못 사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일부러 반 음치 노래를 콧속으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줄은 정말 몰랐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옛 시절, 여중고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꽃 같았던 그 시기. 늘 새침해서 사람들하고 말도 잘 안 하고 눈도 안 마주쳤지.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차갑다고 했었다.

내 마음은 따뜻한데…….

좀 억울했었다. 그래도 나는 늘 한결같았다. 그 당시 아마도 나는 내 안에서 성을 쌓았던 모양이다. 상상의 성, 공상의 성. 그 안에서 나는 늘 공주였다. 외로운 공주. 그래서 저녁 무렵이면 성 위에 위태롭게 앉아 산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플루트를 부는 것이다. 석양을 따라서 울려퍼지는 그 고운 음들……. 그러면 그 소리가 산 너머 너머 너머로 퍼져가서 어느 왕자님 귀에 들리는 것이다……. 아,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간지럽고도 낭만적인 이야기들…….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어딘지 아련한 아픔 같은 것도 느꼈던 것 같았다.

그때 이런 생각도 했었다. 내 플루트 소리를 들은 왕자님은 어떻게 나한테까지 올까……? 말을 타고? 시종들을 데리고? 아니면 심부름꾼을 먼저 보내어 이렇게 말하게 할지도 모르지.

우선 심부름꾼이 성문 앞에 와서 두드리는 것이다.

그러면 문지기 병사가 묻겠지. 거 누구요? 예, 저는…… 저 먼 나라……. 영어 이름이 좋을까,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이름이 좋을까? 한국 이름? 그래 좋아. ‘네, 저 먼 경상도 성주 고을에서 김 아무개 도령님의 심부름으로 온 하인입니다.’ 아니, 분위기 깰 일 있니? 웬 성주 고을 도령? 그보다는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의 아름다운 성에서 샬롱……머시기 왕자님 심부름으로 온 시종입니다’하는 것이 더 낫잖아. 그리고 문지기는 포졸? 병사? 시종? 북 치는 포졸? 에이, 포졸이 뭐냐, 병사나 시종이 낫지…….

이렇게 공상에 공상이 이어지던 그때의 추억들. 거문고가 아니라 플루트를 불면 포졸보다는 병사나 시종, 도령님보다는 왕자님이 어울린다. 내 말 맞지?

이렇게 영양가 없는 공상에 잠기던 시절.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을까? 그러나 그러기에는 이제는 마음도 몸도 너무 망가졌다. 그럼 영혼은? 영혼과 마음은 다른 걸까? 비슷한 거 아냐? 종교적인 것 말고, 현실적으로 말야. 혹 다르다면 마음과 영혼은 어떻게 다를까? 마음은 가슴에 있고, 영혼은 머리에 있나? 좀 어려운데.

하지만 그런 것들은 저 건너 산 속이나 도시 속에 있는 교회나 절 같은 데 다 갖다주고, 나는 이제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이 자연을 즐기는 거다. 하긴 이것도 영혼은 영혼이군. 그렇지만 어딘지 목사님이 말하는 영혼하고는 다른 것 같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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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도 끝도 없는 생각에 빠져 온갖 곳으로 다니며 걷고 쉬고 하다 보면 어느덧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런 날엔 스케치북에 연필 하나 안 댔어도 마음이 푸근해진 채 발걸음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집으로.

그렇지만 그 아릿했던 마음은 곧 깨져버리고 만다. 만원버스와 지옥철 때문에.

그래도 집에 와서 발 씻고 손 씻고 몸 씻고 다 하고 나면 어쩐지 다시 순수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단어 ‘순수’가 떠오른 순간 나는 다시 한번 무너지고 만다. 부끄러워서.

그리고 밤늦게 잠자리에 누우면 또다시 생각나는 것. 호수. 그리고 또 하나, 죽음.

그렇게 해서 그 밤 나는 또다시 괴로움 속에서 보내게 된다.

잠이 들어 온갖 번뇌 우주에서 사라지고, 그 대신 꿈에서는 호수인 듯 산맥인 듯 휘황한 불빛인 듯 어두운 물속인 듯 한적한 산속인 듯 바람 부는 강가인 듯 그러나 내 마음속인 듯 다른 이들 사이인 듯 떠돌다가 깬다. 그리고 그 시점이 한밤중이면 눈물을 흘리고, 아침이면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 허공을 천장을 바라본다.

이렇게 해서 하루의 사이클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 강수해는.

그리고 가끔은 이 사이클을 완성하지 못할 때도 있다. 한밤중 일어나 커튼을 젖히고 창밖의 밤하늘 별들을 올려다볼 때는. 그러면 그 밤 보이지 않는 별들 사이에서, 은하수와 잔별들 사이에서, 혹은 목성과 토성 사이에서 그와 나는 주인공이 되어 수많은 아름다운 전설과 신화들을 창조하게 된다.

차라리 이것이 낫다. 꿈에 시달리는 것보다.

그렇지만 그들 신화가 끝나갈 즈음에는, 달콤한 전설들과 이별할 때가 되면, 나는 또다시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이것은 싫다. 신화와 전설은 달콤하고 가슴이 뭉클했지만.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을까…….

시커먼 물속이라고 나한테 말하지 말라.

누가 말하듯 음부 속이라고도, 죽음의 강 건너라고도 말하지 말라.

그 사람이 애통의 강 아케론(Acheron) 건너에 있다고, 그래서 저승의 뱃사공 카론(Charon)이 노를 젓는 배에 타고 강을 건너가야만 만날 수 있다고도 말하지 말라.

차라리 내 공상 속에서처럼 은하수 건너에 있다고 말하라. 그러면 아무 때나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을 테니. 밤이나 낮이나. 황혼 지는 저녁에도, 사위가 어슴푸레한 신새벽에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꿈속에, 내 마음속에, 바로 내 눈 속에 그 사람은 영원히 남아 있다고 말해 다오, 이 밤의 장막아.


[다음 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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