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파스로 그린 12월 (7)

제7악장 | 너도 나를 삽붓 밟아 주려무나

by Rudolf

제7악장

너도 나를 삽붓 밟아 주려무나



수련을 그리는 것도 마음이 안정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이곳저곳 다니며 막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도 나는 재미를 붙여 나 자신에게서 뛰쳐나가 방황하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내 본업인 플루트에도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나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는 데에 있었다. 어쩌면 음악계에서 매장당할 수 있을 정도로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내 화려한 남자편력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내 눈 앞에서 죽어간 남자에 대한 보복의 성격이 더 강했던 것 같았다.

그는, 그 김명연은 주류세계에서 다소 소외되어 있었지만 그의 실력은 이미 평판이 나 있어서 한편으로는 기대감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주변에서 그를 주시하고 있었을 정도로 음악세계에서는 귀중한 미래자산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처구니없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의 존재 자체에 늘 불안감을 느꼈던 이들의 안도감이 뒤섞인 복합감정의 표출이었으리라. 나를 향한 그들의 거부감은. 내 일탈도 문제이긴 했겠지만.

물론 그에 대해 나는 승복하고 있다. 이 역시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그를 부활시킬 것이다.

비록 한동안 일탈이 있었지만 나는 바로 그고, 그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그 방법은 모른다. 하지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라는 공간이 있고, 미래라는 시간이 있기에 나는 그 좌표 어디에서건 그를 찾아내어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루체른 호수의 그 시커먼 물에서 그를 꺼내어 아케론 강을 오히려 거슬러 건너오게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내겐 너무 힘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나는 오랜만에 그를 위해 웃었다. 웃어주었다. 미래의 웃음을 미리 맛보기 위해. 그리고 축배를 들었다. 냉수 한 잔으로. 이제 다시 술을 입에 대면 이전보다 더 깊은 곳으로 굴러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나는 물 잔을 든 것이다.

“나는 물잔, 너는 술잔.”

“나는 싸나이, 오빠는 쫌생이.”

“나는 승리의 축배를 위해서 남겨놓았을 뿐이야.”

“맨날 써먹는 말씀.”

“좀 져봐라. 꼭 늘 그렇게 나한테 이겨야 하니?”

“Libiamo, libiamo ne’ ieti calici, che la belleza infiora.”

“들어라 들어라 축배를 들어라. 청춘의 꿈은 피어나리.”

“E la fuggevol ora s’inebrii a volutta.”

“살같이 흐르는 덧없는 시간들, 잔을 들어 즐기세.”

“Libiamo ne’ dolci fremiti che suscita l’amore.”

“달콤한 꿈에 취해서 사랑을 불러보세.”

“내가 꼭 선창해야 돼요?”

“나는 술도 못 마시는 쫌생이니까.”

“술도 못 마시면서 군대는 어떻게 갔대?”

“요즘 군대 술 안 마셔도 뭐라 안 해.”

“교회도 안 다니잖아.”

“교회가 나한테 안 다니는 거지.”

“뭔 말이래…….”

사실 나는 그를 위해서 물 잔을 들어준 것이다. 술이라곤 반 잔도 못 마시는 남자 김명연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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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찾기로 했다. 그래서 그가 써준 악보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없었다. 어디를 뒤져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녹음해 둔 USB도 찾을 수 없었다. 그 곡을 보낸 선배에게도 확인해 보았더니 자신에게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의 가족에게 물어볼 수는 없다. 그쪽에게 나는 증오스러운 존재였으니까.

나는 기억을 더듬어 그 음들을 살려내려 했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으나, 어느 날 몇 소절이 생각나자 거짓말처럼 그 전체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정신없이 악보에 옮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재현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떻든 주요 부분을 포함해서 그 주제 자체는 재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곡에다 나는 그날 밤을 삽입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3부로 나누어 만들기로 했다. 게다가 비발디가 작곡한 최초의 순수한 플루트 협주곡인 《플루트 협주곡 Op.10》의 여섯 곡 중 앞의 세 곡인 〈바다의 폭풍〉, 〈밤〉, 〈홍방울새〉를 본 따서 각각 〈호수의 폭풍〉, 〈그 밤〉, 〈두견새〉로 이름을 지었다. 물론 이 형식과 제목은 앞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간 나는 잠시 멈칫했다. 내가 과연 이 곡을 가지고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내 실력으로 그것을 완성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다른 이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랬다.

그래서 일단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일에 몰두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지 공부에도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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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본다면 해피엔딩이다. 결과와는 관계없이. 그러나 인간의 삶이 다 그렇고 그렇던가. 나 역시 인간의 하나이다. 그러니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일단 방황은 해주어야 한다. 기승전결은 따라주어야 하니까.

나는 이전과는 방향이 다른 심한 방황으로 들어갔다. 순서에 입각해서. 그러나 고통스러웠다. 가장 먼저 내게 온 시련은 열등감이었다. 나는 아무리 해도 그가 만든 것 이상으로는 조금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이미 영혼이 없다고 판결을 받은 그 곡의 상태에서 단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했다. 게다가 그 곡을 불면 불수록 내 영혼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곡은 거기까지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선 주제가 약한 느낌이었다. 아니, 모호하다고나 할까. 이런 곡을 대체 왜 만든 거야? 무슨 목적이었냐고? 그저 화려하게 불어대기만 하면 되는 거야? 높낮이를 극심하게 해놓고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는 롤러코스터를 맛보게 하겠다는 거야 뭐야…….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곡을 처음 받았을 때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자꾸만 귀에 들어왔다. 웅장하게 연주되는 부분이 있어서 좋기는 했지만, 특히 그 롤러코스터가 다른 감흥들을 죄다 갉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천국과 지옥. 그 부분을 순화시킬 방법이 없을까……? 천국과 지옥을 가깝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오히려 더 멀리 떨어뜨려 극과 극으로 나뉘게 할까?

그 사람이 그 곡을 처음에 만들었을 때는 루체른 호수를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그 천국과 지옥은 어쩌면 루체른의 그 호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체른의 밤. 그때의 그 천국과 지옥은 가까운 것일까, 먼 것일까? 아니, 그 둘을 가까이로 끌어다놓아야 하는가, 아니면 더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 하는가? 그는 그 둘 중에서 어느 것을 원할까?

만일 이 부분만 해결하고 나서 이것을 두 번째 곡 〈그 밤〉으로 만든다면 앞뒤의 다른 두 곡도 훨씬 돋보이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나는 지독한 무기력증에 빠지고 말았다.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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