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소년

[천방지축 단편열차 (3)]

by Rudolf

천년소년



1


15년 만에 다시 찾은 구봉산이었다. 15년 전 그때 나이 열다섯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내 인생 전체 중 뚝 잘라 절반의 시기에 이곳에 와보고 다시 그만큼의 세월이 지난 것이다. 그러나 그때 이후로 단 한 시도 그곳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것은 그 당시 기억이 너무도 강렬해서 지금도 바로 내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생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마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동일할 것이다. 나는 그때의 일로 인해 전혀 새로운 세상을 보았으며, 또 지금 그곳을 다시 찾으면서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가려고 한다.

15년 전 늦봄 혼자서 구봉산 아랫자락에서 산등성이를 오르다가 평소 가지 않던 길로 들어가 예상치 못한 무성한 숲을 만났다. 구봉산은 전에도 몇 번 오르며 여러 길로 올라가 보았기에 그리 낯설지 않았는데, 문득 호기심 가는 조그만 길이 나 있어서 그리로 올라갔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소로 같았는데 조금 올라가니 길이 끊어지고 갑자기 사방이 막힌 듯한 곳에 다다르고 말았다. 주위가 온통 빽빽한 숲이었다. 그런데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가던 방향으로 그대로 나아갔다. 그리고 아름드리 나무들을 비집고 나가자 갑자기 탁 트인 개활지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에서 본 깊은 산 속의 초원 같은 곳. 그리고 그 건너로는 작은 호수가 보이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이 산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산 속에 저런 호수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구봉산 중턱에 올라가면 그 너머로 큰 호수, 실은 저수지가 저 아래 보이기는 해도 산속에 호수가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남들이 찾지 못한 새로운 호수를 발견한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조금 벌렁거리듯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공위성 사진이 인터넷이나 영화에도 나오고 아주 세밀한 지도까지 만드는 세상에서 아직도 숨어 있는 호수를 발견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렜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사회 부적응자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학원 가는 날보다는 안 가는 날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학원에 안 가는 날엔 무엇을 했을까? 사실 거의 생각이 안 난다. 무엇인가 하긴 했을 것이다.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갔으니까. 나는 친구도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내 주위에는 없었다. 그들이 피한 것이 아니라 내가 피했다. 사람들이 싫었으니까.

정말 싫었다. 사람 만나는 것은 물론 대화하는 것, 심지어 옆자리에 누가 있는 것도 누가 쳐다보는 것도 싫었다. 나는 남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사람들 있는 곳에 가는 것도 싫었다. 그러니 누가 나를 좋아하겠는가.

하지만 단 한 가지 도장만은 예외였다. 나는 킥복싱을 배우러 다녔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물론 도장 사람들은 다 알고, 또 그 사람들을 통해 어느 정도 퍼지기는 했겠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우리 동네가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로 한참 떨어진 도장으로 갔기 때문에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날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네에서는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 가고 나면 혼자서 두세 시간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고 저녁때 도장에 가는 것 외에는 집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 집에서는 내가 학원에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늘 책을 들여다보았다. 성적은 어느 정도 유지해야 했으니까. 물론 나는 집에서는 내놓은 아이니까 사고만 치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하고 그 이상은 묻지도 않고 관심도 두지 않았다. 하긴 낮에는 부모님 모두 일 나가고 밤에는 내가 나가니까 실제로 서로 만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휴일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무조건 킥복싱 도장으로 갔다. 따라서 일주일 내내 부모님과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던 것이다. 우리 집에서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 시절 나는 그 호수를 발견한 뒤에는 다른 곳에는 거의 가지 않았다. 그 호수가 너무도 신비로워 늘 그곳 주변만 맴돌았으니까.

제일 처음 그 호수를 보았을 때 나는 걸음을 멈추고 멀리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호수뿐만 아니라 그 주변 풍경이 모두 낯설다는 것을. 그것은 구봉산 광경이 아니었다. 아니,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치 알프스 산 속이나 저 멀리 북유럽의 깊은 산속 광경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우선 호수 주변으로 솟아 있는 산들은 침엽수로 뒤덮인 깊은 산맥 속의 모습이었고, 호수 주변의 넓은 풀밭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게 어울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호수 가까이로 다가가자 그 풀밭은 깔끔한 상태가 아니라 여기저기 땅이 파이기도 하고 돌멩이나 작은 바위도 이곳저곳 흩어져 있었으며 말라비틀어진 나무둥치도 듬성듬성 보였다. 그리고 그 들판의 풀들은 구봉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아주 억세고 처음 보는 그런 종류였다. 언뜻 보기에는 들판에서 많이 자라는 엉겅퀴나 억새, 바랭이, 쇠무릎, 까마중, 사철쑥 같은 것들처럼 여겨졌지만 어딘지 다른 듯 느껴졌다. 나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란 덕에 그런 들풀 종류는 대강 알고 있었다. 멀찍이에서는 부드럽고 평온한 듯이 보였지만 막상 가까이 가보니 전혀 다른 느낌의 들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 크지 않은 호수 주변에는 울퉁불퉁 못생긴 바위라든지 키 작은 갈대나 여뀌, 달뿌리풀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어딘지 어색해 보이는 풀들이 마구 돋아 있고, 또 다른 곳에는 칙칙한 흙이 비탈을 지어 호수까지 이어져 있어서 결코 깔끔한 느낌을 주는 광경이 아니었다. 단지 멀리에서만 은은하고도 평온하게 보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수의 물은 맑았다. 너무 맑았다. 그 안에 물고기가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맑고 높은 하늘이 비쳐서 짙푸른 색으로 보이는 호수에는 아주 잔잔한 물결만 사르르 흐트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아, 그래, 하늘이 너무 높고 맑았다. 마치 가을하늘처럼. 늘 보아 오던 구봉산의 여름 하늘이 아니라.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기 냄새도 달랐다. 상쾌한 것을 넘어 어쩐지 고산지대에서 느껴질 만한 싸아한 공기.

첫날은 이렇게 호주 주변의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돌아왔다.

그러나 두 번째 날에는 더욱 놀라운 일이 있었다. 소년이 나타난 것이다. 그 당시 내 또래의 소년.

숲을 헤치고 그 들판으로 들어서는 순간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호수 건너편에 서 있는 소년. 하얀 얼굴로 말없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회색 바지에 흰 남방셔츠를 입고서. 두 손은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나는 너무 놀랐다. 조심스러운 생각도 들었으나 내 또래의 소년이 나타난 것이 한편으로는 반가워 그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빨리 가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아이인지. 어쩌면 나하고 잘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호수로 가까이 다가가자 건너편에 서 있던 소년이 갑자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나중에는 아예 몸을 돌려 저쪽으로 뛰어가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도망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불러서 가는 모습이었다. 소년은 뛰어가면서도 몇 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광경에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그냥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 다음날 나는 또 그 호수로 갔다. 이번에는 가슴이 조금 설렜다.

그러나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소년은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나는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내가 정말로 소년을 본 것일까? 환상? 아니면 착각? 그것도 아니면 내 상상.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두 눈 똑바로 뜨고 틀림없이 보았으니까.

그러나 그 뒤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마음도 시들해져 그 호수에 가는 것도 뜸해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가지 않게 되었다. 그 뒤 얼마 안 있어 우리 집은 멀리 이사했다.



2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다시 그 호수로 향하고 있었다. 산 주변은 너무도 달라졌다. 산 중턱을 관통하는 큰 도로가 두 개나 나 있으며, 산 아랫자락은 아파트 천국이었다. 그리고 별장식 빌라도 여기저기 들어서 있었고, 골프장까지 세워져 있어서 세상 변한 것이 실감 났다.

그러나 내 마음속엔 15년 전 산의 모습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15년 동안 단 한 시도 그 산을 잊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5년 세월 동안 순간순간 그 호수로 가보고 싶은 충동이 수없이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곳을 보물처럼 숨겨두고 가능한 한 찾아가지 말자고 스스로 타이르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마음속에만 남겨두는 것이 옳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그곳은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곳인지도 모른다. 내 머릿속에만 있는 곳. 내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곳. 사실 그렇지 않은가. 그런 곳이 실제로 있다면 벌써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숲길에서 조금만 벗어나 나무들을 헤치고 들어가면 나오는 곳인데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산이나 강이나 요즘은 모두 정비사업을 통해 단장하고 개발되고 해서 공원화되기도 하고 등산로도 생기고 보호림으로 지정되기도 한다. 게다가 항공사진이나 인공위성 촬영 등으로 어느 한구석 숨겨질 리 없는 것이다. 또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들로 강으로 가서 곳곳을 파고들지 않겠는가. 따라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 호수는 실재하지 않는 곳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여러 번, 아니 수십 번 그곳에 갔었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내게 핸드폰이 있었다면 사진이라도 찍어놓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림으로라도 남겨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떻든 그 호수는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다. 상상이 아닌 것이다.

아파트 옆으로 돌아서 잠시 올라가자 산 입구가 나왔다. 산행로가 세세히 표시된 커다란 안내판과 그 옆으로는 깔끔하게 지어진 공중화장실과 각종 운동시설을 갖춘 자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 한쪽 옆에는 서양동화에서 나오는 알록달록한 색의 마법의 성이 세워져 있었고, 여러 대리석 조각 작품이나 매머드나 공룡 조각상들도 여기저기 설치해 놓았다. 그 부근을 옛 기억을 되살려 여기저기 살펴봤으나 도무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해 있었다.

나는 산행로 안내도 앞에 서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정상까지 올라가는 루트는 셋. 중간중간에 자그마한 암자와 기도원도 있고, 말이 폭포지 실은 5m도 안 되는 바위 아래로 가늘게 몇 줄기 떨어지는 곳에 거창하게 이름을 붙여놓고 어디에서 끌어왔는지 고려 시대의 어느 중이 선녀를 만나서 어떻게 했느니 하는 되지도 않는 사연을 요란하게 갖다붙인 설명도 있었다.

나는 그냥 무덤덤한 마음으로 그런 것들을 훑어보았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제일 왼쪽의 것으로 산 정상을 비스듬하게 올라가는 코스였다. 그 중간에, 산행로에는 표시되지 않은 숲길로 들어가면 된다.

지금 가보면 그곳을 알아볼 수 있을까?

꽤 궁금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산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곳곳에 크고 작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계곡 옆으로는 여러 형태의 난간도 설치되어 있으며, 가파른 곳에는 돌계단도 만들어 놓아 산에 오르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렸을 때 혼자 오르며 느꼈던 호젓함이나 눈에 익었던 정다움 같은 것은 없었다. 게다가 그때보다 숲이 훨씬 무성해진 것 같아 옛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잘 다듬어진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발이 아니라 추억으로 그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어느 정도 오르자 어딘지 눈에 익은 듯한 곳이 나타났다. 바위와 산 정상이 보이는 각도 등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찾는 곳이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15년 전의 기억. 갑자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지나간 시간들이 눈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동안 참 힘든 세월을 보냈다. 특히 청소년 시절 한없이 방황하며 보냈던 그 길고 긴 터널. 그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술과 담배, 가출, 싸움, 도둑질, 좌절, 자살시도…….

나는 지금 전도사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일하지는 않는다. 의정부 예비군훈련장 근처의 폐가 비슷한 곳에 청소년보호소를 만들어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데려와서 돌보고 있다. 나 포함해서 다섯 명이 운영한다. 아이들은 많을 때는 스무 명이 넘고, 보통 열 명 내외다. 나와 다른 한 교사는 그곳에서 함께 먹고 자며, 나머지 세 명의 교사가 출퇴근한다. 그러나 말이 교사지 실제로는 막노동꾼이다. 우리 다섯은 고정된 직장은 없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고물도 줍고, 환경미화원 보조, 이삿짐, 막노동, 신문배달, 우유배달, 야간경비, 심지어 주택개발지 철거용역 일도 한다. 철거용역을 할 때는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오는 보조금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 처음에 멋모르고 후원금 받았다가 얼마나 시달렸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정식으로 등록된 단체도 아니다. 그냥 몇몇이 모여서 길거리 아이들을 모아 보호해 주고 살아갈 길과 공부할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싸움도 많이 했다. 패싸움은 물론 일대일로도. 킥복싱 도장에 나가면서 격투기 세계로 나가볼까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링에도 올라가 킥복싱과 격투기 시합 모두 경험했다. 정식대회에 나간 것은 아니고 도장 내에서 스파링 형식으로 시합을 뛰었다. 그렇게 해서 총 12전 1승 8패 3무의 성적. 1승은 정신없이 주먹 휘두르다 얼떨결에 상대방 턱을 명중시켜 KO로 끝낸 것이다. 그러나 그전까지는 실컷 두들겨 맞기만 했다.

도장 간 패싸움, 길거리 건달들과 막싸움, 마음에 안 드는 인간과 일대일 싸움, 괜히 시비 걸기도 하고 걸리기도 하고…….

그러나 주로 맞았다. 전체적으로 힘이 조금 달리기 때문이다. 키도 그렇고. 그래도 싸움할 때는 정신없이 덤벼들었다. 그래서 상대방이 기가 죽어 물러나거나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소주병 깨뜨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마를 꿰매기도 하고, 칼에 찔리기도 했다. 찌르기도 했지만. 한마디로 악바리였던 것이다. 그 탓에 늘 여기저기 멍들고 터지고, 반창고 덕지덕지 붙이고 얼음찜질하고 사우나 가서 몸 풀고……. 그래도 될 수 있으면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하도 많이 다쳐서 어떻게 치료하면 되는지 도가 텄을 정도니까. 어릴 때부터 집에서 늘 얻어맞아서 이력이 난 덕일 것이다. (그 아버지 ㅅㄲ한테. 그래도 부모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되잖아.) 어떻든 그런 중에도 다행인 것은 한 번도 경찰 신세는 지지 않았다. 그전에 이미 도망갔으니까. 싸울 때 앞장선 것처럼 도망칠 때도 제일 먼저였다. 망나니짓 하며 돌아다닐 때도 절대로 경찰에 기록을 남기지는 말자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도 싸움을 많이 해서 결국 도장에서 쫓겨났다. 싸움질하면서 돈 뺏은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낸 세월. 대학은 당연히 못 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정말 어느 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머리가 굳어버려 제대로 공부가 될 리 없었다. 그래서 3수 끝에 지방 촌구석의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웬 신학교?

맞다. 회개한 것이다.


어느 날 중학교 여자애들 삥 뜯다가 커다란 덩치한테 붙잡혔다. 좀스럽게 비린내 나는 애들이나 후리고 다니고 말이다. 정말 창피한 짓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정도까지 밑바닥으로 몰리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이따만 한 덩치한테 걸렸는데, 그 인간은 왠지 내 몸에는 손 하나 대지 않았다. 그 대신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통째로 내미는 것이었다.

“가져가.”

“…….”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멀뚱히 뜨고 덩치를 쳐다보았다.

“어린애들 괴롭히지 말고 나 같은 놈 털어봐. 자신 없으면 이거 가지고 꺼지고.”

“ㅆㅂ!”

나는 그냥 뒤돌아서 도망쳤다.

그날 나는 죽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쥐약 사먹을 돈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불 다 꺼진 건물에 몰래 들어가 계단으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떨어져 죽으려고. 그러나 옥상문은 닫혀 있었다. 그래서 계단참에서 그날 밤 쓰러져 자버렸다. 마침 한여름이라 얼어죽진 않았다.

그런 식으로 한 달간 헤매고 다니다 그 덩치를 우연히 또 만났다.

“야, 너 이리 와봐.”

돌아다보니 두 손을 뒷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덩치가 노려보고 있었다.

“너 집 없지?”

나는 노려보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잡아먹진 않을 테니까 따라와.”

나는 기가 막혀서 말도 못 한 채 멀어져 가는 덩치의 운동장만 한 등짝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덩치가 저 멀리까지 가서 돌아섰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까딱하며 오라고 표시했다.

나는 그대로 덩치를 따라서 갔다, 전철을 타고 의정부로 간 것이다. 그리고 허름한 양철지붕 헛간 같은 곳으로 갔다. 지금 내가 길거리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다.

생각하면 참 웃기는 일이다. 그곳에서 덩치가 하라는 대로 하면서 심부름도 하고 도망갔다가 다시 붙잡혀 오고 하면서 청소년 떠돌이들을 돌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공부했다. 학비나 공부에 필요한 모든 것은 덩치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마련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신학교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덩치가 야간 창고지기를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는 중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죽고 만 것이다. 나쁜 놈!

그 뒤부터 청소년보호소는 내 책임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문제가 생겼다. 내 마음이 변한 것이다. 나는 사람들 몰래 선교센터에 다니며 해외선교사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볼리비아나 에콰도르 둘 중 한 곳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곳에 가면 적어도 10년은 돌아올 수 없다. 의무적으로. 하지만 그런 규정은 필요도 없다. 나는 남미로 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떠나기 전에 15년 전 보았던 그 호수와, 특별히 그 소년을 다시 보기 위해 오늘 이곳에 온 것이다.



3


틀림없다. 눈에 익은 그 수풀. 다른 곳은 다 변했는데 신기하게도 그 부근만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좀 달라지기야 했겠지. 그러나 전체 모습은 15년 전 그대로 같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성큼성큼 수풀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쯤에서 호수 들판이 나오겠다 싶은 곳까지 가자 정말로 갑자기 너른 들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호수.

아, 옛날 그 모습 그대로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늘은 가을처럼 높고 짙푸르며, 공기는 맑고도 싸아한 느낌. 들판은 멀리서 보면 푹신한 풀밭 같았으나 호수 쪽으로 걸어가며 보니 역시 거친 광야 느낌. 그리고 무엇보다도 궁금한 것, 그 소년. 하지만 내가 호수 가까이 갈 때까지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알았다. 소년이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옛날에도 첫날에는 소년이 없었으니까.

나는 다음날 또다시 그 호수로 향했다. 그리고 예감했다. 오늘은 만날 수 있으리라고.

정말로 소년이 있었다.

나는 황홀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믿어야 했다. 나는 머리가 좀 나쁘기는 하지만 적어도 IQ가 80 이하는 아니다. 그보다는 좀 위일 것이다. 안경도 끼지 않았다. 한때는 담배를 많이 피웠지만 지금은 끊은 지 한참 됐고, 물론 대마초 같은 것도 더 이상 하지 않고 이상한 약도 먹지 않는다. 한때는 며칠 굶어서 헛것이 보였을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한참 오래 전 일이다. 군대는 갈 필요가 없었는데도 신학교 졸업하자마자 자원해서 들어갔다가 하사관 시험에 떨어져서 그냥 제대해 버렸다. 즉,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청년이라는 뜻이다. 그런 내가 헛것을 볼 리 만무했다. 15년 전에도 그렇고.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호수로 향했다.

아아, 소년.

그 소년.

작은 호수 가까이로 갈 때까지 소년은 건너편에 선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15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소년의 눈.

15년 전에는 어떠했지?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어떻든 그 눈에는 어딘지 슬픔이 어려 있는 듯했다. 옛날 눈은 어땠을까? 아, 그 눈…….

마음이 답답했다. 그 눈을 다시 잘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소년은 돌아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뛰어갔다. 도망갔다. 저 멀리로 달아났다.

안 돼.

나는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호수가 작으니까 가장자리를 따라 돌아가서 쫓아가면 붙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았으나 마음만 그러할 뿐 몸은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서서 소년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소년이 사라진 들판, 그리고 호수. 그곳에는 태고의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또 호수로 갔다. 그러나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소년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 다음날도 나는 호수로 갔다. 그 다음날도.

그리고 나는 결국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4


나는 우선 미국의 선교본부로 가야 한다. 그곳에서 어학을 공부한 뒤 최종적으로 선교지로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선교지로 가서도 현지적응 훈련을 또 받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최소한 10년은 선교지에서 사역해야 한다. 지금 생각으로는 영원히 그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생각이지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부터 15년 뒤 다시 한국에 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소년을 만나기 위해.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다음 또다시 15년 뒤에 그곳에 갈 것이다.

그럼 그 소년은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무도 알지 못하는 호수와 소년. 과연 그 둘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혹 환상이나 착각은 아닐까? 그러나 이 질문은 이미 끝난 일이다. 나는 내 이성을 믿는다. 내가 본 것을 믿는다. 이것은 내 신앙과 마찬가지로 내가 굳게 믿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 이 말을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나만의 비밀이다.

그러나 그 호수에 다녀온 뒤 나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거창하게 말하면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회의가 드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얼마 뒤면 미국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다시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지는 곳으로 가야 한다. 내가 누구이기에 그러한 길을 가는 것일까? 어린 시절을 낭비한 것에 대한 속죄인가? 아니면, 미래가 없는 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함인가?

사실 이 질문은 훨씬 전부터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알겠지 하고 덮어버리고 말았었다. 그렇지만 그 호수에 다녀오고 나서는 이 질문이 더욱 크게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는 지난 15년간 늘 그 소년만을 생각하며 지내왔다. 잠잘 때도 방황할 때도, 도둑질하고 싸움질할 때도, 맞을 때도 때릴 때도, 집이 그리울 때도,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때도, 신앙의 길에 들어섰을 때도 나는 그 소년이 그리웠다. 소년이 나에게는 또 하나의 신앙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이번에 소년을 만났을 때 소년은 또다시 떠났다. 그렇게 될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래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서는, 아니 적어도 이 대한민국에서는 안식할 곳이 없다. 만일 그 호수가 나의 안식처가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나를 위한 자리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년이 떠났듯이 내게는 머물 곳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15년 뒤 다시 소년에게, 그 호수로 가야 한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냥 가야 한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고 괴롭다. 그 세월을 또다시 어떻게 버틸 것인가?

지금으로선 자신이 없다. 그 안에 나는 지칠 것 같았다. 포기할 것 같았다.

혹 신앙이 나를 극복하게 해줄까? 그러나 본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분명 낙오될 것이다. 그리고 15년을 못 참고 그 호수로 달려갈 것 같다. 차라리 그 호수로 몸을 던진다면…….

나는 사흘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금식기도를 하기로 했다. 신앙의 힘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포기의 용기를 내려고.



닷새 뒤에 아이들이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러나 기쁘지는 않았다. 그냥 덤덤할 뿐이었다.

다시 닷새 뒤 나는 보호소에서 나갔다. 그리고 걸었다. 다리가 아플 때까지, 몸이 지칠 때까지 걸었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그 자리에서 울었다. 처음이다. 이렇게 운 것이.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렇다. 매 맞아도 울지 않았던 나다. 신앙의 길에 들어섰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고개 빳빳이 들고 한 과정씩 밟아나갔을 뿐이다.

나는 한참 운 뒤 아무 생각 없이 몇 시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보호소 교사에게 전화했다.

미국으로 떠나기 일주일 전, 나는 오래전에 다녔던 킥복싱 도장을 찾았다. 그동안 수없이 많이 가고 싶었지만 그곳에서 쫓겨난 부끄러움 때문에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 15년간은 한국에 돌아올 수 없다. 한때는 그곳에서 꿈을 품고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 옛 정리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누리고 나눈 뒤 떠나고 싶었던 것이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나는 도장으로 향했다. 없어졌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그 도장이 옛 그 자리에, 옛 그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리라 생각했다.

그래, 맞았다. 도장은 있었다. 간판도 그대로였고. 주변이 많이 변하기는 했어도 도장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반가웠다. 정말 반가웠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울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도장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본다. 여기저기 흩어져서 잡담하고 운동하고 몸 풀고 하는 사람들 사이를 나는 무뚝뚝하게 지나서 사무실로 향했다.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아는 척하는 사람도 없었고. 도장 안의 장식이나 운동기구의 위치는 많이 바뀐 듯했다. 당연하겠지만.

다행히 사무실 위치는 그대로였는데 문은 바뀌었다. 아니, 바뀐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고치지 않고 그대로 놔둔 탓에 낡을 대로 낡아서 바뀐 것으로 보였을 뿐이다. 갑자기 옛 추억이 떠올랐다. 코끝이 매워지려고 한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때 갑자기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고 한 남자가 나온다.

옛 그 관장. 그러나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관장의 눈이 동그래진다.

“야, 너……?”



5

관장은 사무실로 여러 사람을 불러들여서 나를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전도사가 되었다는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한다. 그 사실이 무척 신기한 모양이다.

“나도 사실은 얼마 전부터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성당이나 교회나 그게 그거 아냐? 마누라 등살에 못 이기는 척 나가준 거야. 뭐 가보니까 좋긴 하더라.”

관장은 싱글싱글 웃으며 말한다.

“그런데 남미로 가면 선교사가 되는 거야?”

“거기에 가도 여전히 전도사예요.”

“목사는 언제 되는 건데?”

“에이, 거기까지는 못 갈 것 같은데요. 하도 지은 죄가 많아서.”

“알긴 아는구나.”

관장은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는다.

“그럼 언제 떠나는 거야?”

“일주일 뒤에요.”

“그렇게 빨리……?”

관장의 눈은 옛날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세월 때문이겠지만. 그러나 그 날카로운 눈매만은 그대로였다.

“사실 나 너를 굉장히 많이 아꼈다. 네가 말썽만 안 부렸으면 절대로 안 내보냈을 거야. 그런데 왜 그때는 그렇게 살았니? 너처럼 착한 애가.”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냥 관장의 눈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에 추억이 어리고 아쉬움이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코끝이 다시 매워졌다. 젠장.

“저 오늘 스파링 한번 하면 안 될까요?”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관둬, 인마. 괜히 다쳐서 비행기 타지 못하면 어쩌려고.”

“아뇨. 그냥 가볍게 몸 한번 풀어보고 싶어요?”

관장은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와.”

관장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는 관장을 따라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정순이 오라고 해.”

관장이 누군가에게 말한다.

“아뇨. 남자랑…….”

관장이 나를 돌아다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이게 아직도 깡다구는 좋네. 괜히 다치지 말고 여자끼리 붙어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탈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키 168cm. 몸은 적당한 정도. 여자 체격치고 왜소한 편은 아니다. 남들은 얌전한 외모라고 하는데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성격이. 지금은 성질 죽이고 살지만 한마디로 더러운 성격이다. 나하고 시합 한 번 뛴 친구들은 나를 이겼어도 모두 고개를 흔든다. 그래서 남들하고 가능한 한 부딪히지 않으려 늘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다녔다. 그렇지만 신학교 다니면서부터는 싸움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내 성질을 못 이길 때는 나무들 많이 두드려 팼다. 어쩌다 그 광경을 본 아이들은 그 이후 나를 슬금슬금 피하기도 했다.

나는 외로웠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남자는 사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람이라는 종자들은 모두. 사람들하고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그 이상은 다가가지 않았다. 혼자 있는 것이 편했다. 결혼 같은 것은 물론 관심 없다. 연애도 싫고. 아무튼 무조건 싫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나 직업이 전도사니 사람들을 만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리고 머리가 나쁘니 공부를 더 하거나 신학자 같은 쪽으로 갈 수도 없다. 내가 잘하는 것은 오직 싸움이다. 악바리처럼 바락바락 덤벼들면 내가 아무리 얻어터졌어도 죄다들 나중에는 경기를 일으키고 물러나게 된다. 그렇다고 전도사가 맨날 싸움만 할 수도 없잖은가.

혹 남미로 가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 틈에 섞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곳에서 새로운 환경과 싸워본다? 처절하게.

그렇지만 그 소년.

호수 저편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 소년. 나는 그 눈을, 그 소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느껴본 사랑이고, 아마 마지막 사랑일 것 같다. 적어도 천 년 동안은.

15년 전 그 호수를 다녀온 이후 나는 밤에도 낮에도, 싸울 때도 맞을 때도, 삥 뜯을 때도 도망칠 때도, 신학공부를 할 때도 야간경비를 설 때도, 외로울 때도 힘들 때도, 보초 설 때도 내무반에서도 그 소년만 생각했다. 그 소년 외에 나에게는 남자가 없다.

소년의 모습이 떠오르면 가슴이 저며오곤 했다. 가슴이 아프고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 그것을 가슴이 저민다는 말 외에 다른 말로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 감정에는 아픔까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제기랄.

전도사가 욕하면 안 되는데…….

이 세상 어디에도 마음을 주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는 갑자기 온몸에 맥이 풀렸다.

소년이 그리웠다. [끝]


[다음 화 '천년이 지나고'로 계속]

이전 08화간다간다 내 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