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순덕의 평범한 이야기

[천방지축 단편열차 (2)]

by Rudolf

송순덕의 평범한 이야기



1


잔뜩 흐렸던 하늘에서 갑자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을 보고 순덕은 얼른 가게 밖으로 나가 도로 쪽에 세워놓은 자전거들을 안쪽으로 들여놓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그런 것 상관없다고 말했지만 순덕은 어쩐지 비 맞으면 자전거들이 상하거나 녹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대로 놔둘 수가 없었다. 마침 손님이 한 분 가게 안으로 들어와 있었지만 탁자 의자에 앉아 카탈로그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응대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자전거들을 모두 가게 밖 차양 밑으로 대강 밀어넣고 나서 가게로 들어가려는데 한 남자가 우산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60대 후반쯤 되는 남자가 가게 입구까지 와서는 조그만 2단 접이식 검은 우산을 접어서 조금 흔들어 빗방울을 대강 털어버리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순덕은 책상 위에 있던 조그만 수건을 집어들어 자기 어깨와 머리에 묻은 물기를 대충 닦았다. 그리고는 남자 손님을 쳐다보았다.

남자는 무엇인가 주저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은 손님을 쳐다보았다가 순덕을 쳐다보았다가 한다. 아마도 누가 주인인지 가늠하는 모양이었다. 순덕이 수건을 내려놓으면서 미소를 지으며 남자 쪽으로 한 발자국 옮겼다. 그제야 남자는 누가 주인인지 판단이 선 모양이다. 남자는 순덕 쪽으로 얼굴을 완전히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금방 말을 꺼내지 못하고 여전히 주저한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남자는 말은 하지 않고 그 대신 이리저리로 고개를 돌리며 무엇인가를 찾는다. 그러더니 포기한 듯한 모습으로 순덕 쪽으로 몸과 얼굴을 돌리면서 묻는다.

“아니, 저……, 세발자전거…….”

“아, 예. 저쪽에 많아요.”

순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아동용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러자 남자는 쑥스러운 듯이 말을 한다.

“어른용 세발자전거를 찾는데…….”

아…….

순덕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갑자기 어떤 장막이 걷히면서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남자가 들어올 때부터 사실은 순덕도 뭔지 모를 부자연스러운 것을 느끼고 약간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른용 세발자전거라…….

그것이 어떤 종류인지는 알고 있다. 카탈로그에서도 본 적이 있고, 영화인가 드라마인가에서도 한두 번 나왔었던 것 같다. 아니, 어떤 사진에서였나? 길거리에서도 본 것 같고. 어떻든 그때는 그런 것 별 의식 없이 보아서 큰 관심을 두진 않았었다. 그러나 아버지 대신 순덕이 가게를 맡은 지난 5개월 동안은 한 번도 그런 것을 찾는 손님이 없어서 어른용 세발자전거는 어딘지 자전거대리점에서 우주선을 찾는 것만큼이나 낯설고 엉뚱하게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순덕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의자에 앉았던 손님이 입을 연다.

“자전거 못 타세요?”

남자는 손님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 예……. 제가 자전거를 타지 못해서……. 어른용……, 그런 세발자전거 여기엔 없나요? 거리에서 가끔 다니는 거 봤는데…….”

남자가 좀 무안한 듯한 얼굴을 하고 떠듬떠듬 대답을 했다.

손님은 의자에서 일어나 자신이 점원이라도 되는 듯이 대리점 안에 있는 자전거들을 주욱 훑어본다. 그러더니 순덕을 한번 쳐다보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런 거 안 보이는데…….”

순덕이 얼른 그 말을 받았다.

“저, 여기에는 어른용 세발자전거는 갖다놓지 않았는데 말씀해 주시면 주문해 드릴 수 있어요. 찾는 분들이 별로 없어서……. 카탈로그에는 나와 있을 텐데…….”

순덕은 얼른 몸을 돌려 탁자 쪽으로 걸어가서 카탈로그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주욱 페이지를 훑으며 끝 쪽을 펼쳤다. 그러나 아무리 뒤져도 어른용 세발자전거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이상하다. 본 것 같았는데…….

순덕은 갑자기 무안해져서 다른 카탈로그를 뒤져서 집어들었다.

“잘 알겠습니다. 다음에 오죠.”

남자는 고개를 까딱하고 돌아선다.

순덕은 괜히 민망해져 다음에 또 오시라는 말도 못하고 남자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자전거 타지 못하는 사람도 다 있네.”

손님도 남자가 나가는 것을 보고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러게요.”

순덕은 손님의 말에 맞장구치듯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갑자기 그 남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못 타는 것이 큰 잘못도 아닌데…….

순덕은 빗속에서 저 멀리로 멀어져 가는 검은 우산을 바라보면서 살짝 자신을 탓했다.



2


순덕은 중학교 수학 교사다. 그러나 여든이 다 되어가는 아버지가 위암으로 입원하는 바람에 1년간 휴직하고 자전거대리점을 대신 맡고 있었다. 어머니는 10년도 더 전에 역시 암으로 돌아가셨다. 대장암.

순덕네는 아들은 없이 딸만 셋인데, 언니 윤덕은 마흔이 가까웠고 미국에 있으며, 가운데는 순덕, 그리고 막내동생 미덕은 화가다. 미덕은 이름 때문에 그렇게 된 모양이다. 순덕은 이름과는 달리 고집이 세지만. 언니는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그곳에서 백인을 만나 결혼했다. 순덕과 미덕은 두 살 차이로 모두 30대 중반인데 둘 다 아직 독신이다. 부모님은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어렸을 때 이북에서 내려와 남한에는 친척이 거의 없다. 아주 먼 사돈의 팔촌뻘 되는 사람만 몇몇 있을 뿐.

아버지는 순덕 자매에게 자전거대리점을 팔라고 했으나, 순덕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는 그냥 놔두기로 했다. 자신이 1년간 휴직을 하고서 운영을 한 뒤 나중에 사정을 보고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자전거포 심부름꾼으로부터 시작해서 평생 자전거와 함께 하신 아버지의 분신과 같은 가게를 간단하게 처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언니와 화가인 동생은 앞으로 누가 자전거대리점을 운영하겠느냐며 그냥 팔자고 했으나, 순덕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역정까지 내면서 순덕이 휴직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결국 순덕의 고집대로 하게 되었다.

소나기 내리는 날 어른용 세발자전거를 찾다가 그냥 돌아간 남자, 아마도 60대 후반쯤 된 것 같은 그분은 그날 이후 순덕의 머릿속에 오래 남아 있었다. 안경을 쓰고 윗머리는 많이 빠져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자전거를 못 탄다…….

순덕 세 자매는 어려서부터 자전거 선수였다. 진짜 선수가 아니라 그렇게 불릴 만큼 잘 탔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시장 어귀에서 조그만 자전거포를 하면서 고장 나거나 고물 자전거를 너무 잘 고쳐 그 근처에서는 소문이 자자했다. 순덕 세 자매도 버려진 자전거를 아버지가 새것처럼 고친 것을 타고 다녔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자전거로 학교를 다녔으니까. 딸 셋 모두.

순덕은 지금까지 자전거 못 탄다는 사람은 처음 본다. 누구나 다 타는 게 자전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세상에서 자전거 타는 것만큼 쉬운 것이 없었으니까. 그냥 안장에 올라타서 페달만 밟으면 된다. 다른 것 하나도 없다. 밥 먹는 것과 같다. 숟가락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밥 떠서 입에 집어넣는 것. 그거 본능 아냐? 쪼끄만 어린애들도 잘만 타던데. 혹 평형감각이 떨어지면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걸까? 달팽이관과 세반고리관, 앞반고리관, 옆반고리관, 뒤반고리관, 골반고리관, 막반고리관 뭐 이런 것들이 고장 나면 평형감각에 문제가 생기겠지. 그러나 일시적으로 고장 나더라도 곧 회복되는 것이 정상 아닐까? 그런데 평생 자전거를 못 탈 정도로 평형감각이 고장 나 있으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혹 자주 넘어질까? 그런 사람들은 늘 어지럽지 않을까?

아이구야, 이런 건 내가 고민할 게 아니지. 음치도 있고, 그림 못 그리는 사람도 있고, 운동감각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자전거 못 타는 사람도 있는 거겠지 뭐. 그렇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 그 남자, 아니 그 노인은 왜 자꾸만 생각이 나는 걸까? 그동안 자전거대리점에 여러 사람이 와서 자전거도 사고 교환도 하고 항의도 하고 환불도 해가고 부품도 사가고 사이클복도 사가고 그랬다. 그 모든 사람들 대강 다 생각이 난다. 그렇지만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특별히 마음에 남아 가슴을 약간이라도 아리게 한 이는 아무도 없다. 그 노인 말고는. 자전거 못 타는 게 큰 죄도 아닐 텐데 말하기 거북해하며 눈치 보듯 물어보고서는, 어른용 세발자전거 구비해 놓지 않은 자전거대리점이 죄송해야 할 텐데 오히려 그 노인이 미안한 듯이 나가버리는 그 모습. 소나기 사이로 작은 검은색 우산 쓰고 멀어져 가던 그 뒷모습이 순덕의 머릿속에 꽤 오래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전까지는 잘 몰랐었는데 의식을 하고서 보니 길거리에서 어른용 세발자전거가 제법 눈에 띄는 것이었다. 전동 세발자전거 말고 앞이나 뒤쪽에 장바구니나 보조 바구니 같은 것을 단 세발자전거 말이다. 그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어른들이 꽤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젊은 엄마들도 아이나 강아지를 태우기도 하고 장바구니 같은 짐 본 것을 싣고 다니거나, 시청이나 구청 직원 같은 이들이 여러 장비를 싣고 가는 것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른용 세발자전거 시장도 꽤 되는 것 같았다. 순덕은 ‘시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나도 장사꾼 다 됐군.

아무튼 그 노인이 눈치를 보며 어른용 세발자전거를 찾을 일이 아니었다. 그것을 제대로 공급해 주지 못하는 대리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어디서나 편하게 구경하고 살 수 있게 해주지 못하고 대중적인 상품만 갖다놓고 파는 것이 문제지. 그래서 순덕은 본사에 문의해서 어른용 세발자전거를 갖다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어디에서 주문받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순덕은 구구히 설명하기 귀찮아 대강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일주일이 넘도록 제품을 갖다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전화했더니 제품 유통에 약간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인즉 이러했다. 요즈음 값싼 외국산 어른용 세발자전거가 많이 들어오는 바람에 비싼 한국산은 잘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가격 차이가 두 배 이상 나기 때문이란다.

그 말을 듣고 순덕은 인터넷에 들어가 보았다. 그랬더니 역시 그 말이 맞았다. 물론 값이 싼 대신 제품에 문제가 있거나 고장이 났을 때 어려움을 겪는 모양이다.

순덕은 저도 모르게 머리를 흔들었다.



3


순덕은 아버지 병실로 갔다. 며칠 전 의사에게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었다. 동생 미덕은 벌써 와 있었다. 미덕은 조그만 스케치북에 아버지가 눈을 감은 채 잠자는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늙고 병든 아버지. 그러나 어딘지 평온한 모습이었다. 살이 쏙 빠지고 쭈글쭈글한 얼굴에 며칠 면도를 하지 않아서 희고 잔 수염이 약간 거칠게 돋아나 있다. 동생이 그리고 있는 스케치를 들여다보니 아버지의 모습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사진보다 더 사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주변의 불필요한 것들 다 빼고 얼굴 부분의 특징적인 면만 부각시켜 간략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지게 한 것이었다. 미덕은 어려서부터 말이 별로 없었다. 그 대신 간단한 그림이나 기호 같은 표시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나타내곤 했다. 그래서 그때는 주변에서 모두 참 별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탓에 자매들끼리 자주 싸우기도 했었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탓으로.

순덕은 미덕이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아무 말 않고 의자를 갖다놓고 옆에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미덕이 완성된 그림을 들어올려 보여주자 순덕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내밀었다.

그러나 미덕은 아무런 표정이나 말도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바라본다. 지긋한 눈빛. 미덕은 아버지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았다. 옛날부터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는 말이 있다며 ‘아이구 우리 셋째 딸, 우리 셋째 딸’하고 늘 싱글벙글하셨다. 게다가 딸 셋 중 셋째가 가장 귀엽고도 예쁘게 생겼다. 똑똑하고 재주가 많기는 언니인 윤덕이 최고였고, 둘째 순덕은 앞에서도 밝혔지만 고집이 셌다. 그런 탓에 야단도 많이 맞고 자랐다. 원래 둘째는 사근사근하다는 말이 있지만, 순덕은 그와는 정반대였다.

순덕과 미덕은 조그만 아파트에서 아버지와 함께 산다. 그러나 미덕은 주로 자그마한 자기 아틀리에에서 생활하며 가끔 집에 와서 옷가지와 반찬을 가지고 간다. 그래서 아버지가 입원한 뒤로는 거의 순덕 혼자서 사는 셈이 되었다.

순덕이 미덕과 함께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데 미국의 윤덕 언니에게서 카톡 전화가 왔다. 서울이 아침 6시면, 미국 보스턴은 그 전날 오후 5시가 된다. 따라서 미국의 언니와 통화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에만 해당한다. 한국이 13시간 먼저 가는 것이다. 이런 사실이 어떤 때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 시간을 달리해서 산다니. 서울에서 오늘을 산다면 보스턴에서는 어제를 사는 것이다. 반면에 서울과 런던은 9시간의 차이가 난다. 이것도 서머타임이면 더 복잡해진다. 한 시간씩 당겨지는 것이다. 아니, 그 반대인가? 아이고, 골치야. 참 힘들게들 산다.

각설하고, 윤덕 언니는 전화를 받자마자 운다. 머리도 똑똑하지만 원래부터 정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눈물 많고 감정 풍부하고 감상에 제일 많이 젖고 그랬다. 그에 비하면 순덕은 다소 밋밋한 편이다. 셋째 미덕은 아예 얼음이고. 그 셋의 감정을 다 합해서 삼등분했으면 좋으련만.

윤덕의 울음 섞인 소리에 순덕도 코끝이 매워진다.

“의사가 뭐래?”

윤덕이 간신히 감정을 달래고서 묻는다.

“많이 가면 사흘이래. 어쩌면 오늘내일…….”

그 말에 옆에 있던 미덕이 흑 하고 두 손에 얼굴을 파묻는다. 늘 냉정했던 동생의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나 비행기 표 샀거든. 내일 아침에 떠나. 스티브하고 같이 가. 회사에 휴가 냈어.”

“애들은?”

“어머니가 버지니아 주에서 오셨어.”

“워싱턴에 계시지 않았어?”

“응,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사시다가 적적하시다고 보름 전에 이모님 집으로 가신 거야.”

“그랬구나…….”

“여기 당분간 와 계실 것 같아.”

“언니 학교는 어떻게 하고?”

“괜찮아. 휴강하면 돼.”

“내가 공항으로 차 가지고 나갈게.”

“아냐. 공항버스 타고 가서 택시로 갈게.”

순덕은 윤덕과 한동안 통화하다가 미덕을 바꾸어 주었다. 그러나 미덕은 응 응 응 하면서 대꾸하는 소리 외에는 별로 말을 하지 않았다.



4


순덕은 가게를 넘겨주기 전에 한 번 더 가게 내부를 꼼꼼히 살폈다. 아버지가 60년 넘게 이끌어온 가게다. 자전거포 심부름꾼으로 들어가서 청소하고 배달하고 수리하면서 배우다가 주인 마음에 들어 넘겨받았다. 주인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장기에 걸쳐 조금씩 갚아나가기로 하고 물려받은 것이다. 그 뒤 그곳에서 신혼살림도 시작하고 딸들도 낳았으며, 시장이 현대식으로 바뀌게 되자 조그만 점포 하나를 분양받아 자전거대리점을 시작했고, 그것이 조금씩 커져서 옆 가게를 인수하여 확장하고, 그곳에서 딸을 대학 보내고 유학 보내고 시집보냈다. 비록 아직 두 딸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꿈이 어려 있고 나름대로 자부할 만한 결실도 맺은 그 가게를 결국 처분하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개월 만에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인수인계 작업을 다 끝내고 오늘 송씨 가족의 이름으로 하는 영업의 마지막 날이 된 것이다. 내일이면 새 주인이 아침에 나와서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밤이 되면 불을 끄고 나가겠지.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가게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이미 많은 눈물을 흘려 더 이상 남아 있는 눈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열쇠를 돌려 자물쇠를 잠그고 돌아서는 순간 눈물 한 방울이 순덕의 눈에 맺혔다. 그동안 남들 몰래 숨겨두었던 비밀의 한 방울 같았다. 그러나 이게 정말 마지막이겠지.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가게 앞으로는 절대 지나가지 않을 테니까. 만일, 만의 하나, 억의 하나 조의 하나 혹 이 앞을 지날 일이 있으면 그때는 눈물이 아니라 소나기가 퍼부어 내리리라.

순덕은 옷깃을 바짝 올리고 코트 앞섶도 꼭꼭 여민 채 가게 뒤쪽 쓰레기통 옆의 조그만 공간에 세워둔 차로 걸어갔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겨울 하늘이 참 맑았다. 별들이 많이 보인 것이다.

순덕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주욱 살폈다. 그러나 하늘 한쪽이 다른 건물에 가려서 안 보인다. 순덕은 다시 도로 쪽으로 나갔다. 그러나 가게 방향으로는 일부러 눈을 안 돌리고 도로 반대쪽 방향으로 돌아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나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밤늦기는 했지만 아직도 켜져 있는 가게와 건물들의 환한 불빛, 그리고 도로를 따라 주욱 늘어선 가로등 불빛 등에 방해를 받아 별들이 아까보다는 좀 흐리게 보였다. 아쉬웠다. 원래 모든 일의 마지막은 화려한 피날레로 장식해야 멋들어지는 법이다. 연말이면 길거리마다 상점마다 화려한 장식으로 꾸미고 올드랭사인이 요란하게 울려퍼지는 것처럼.

순덕은 다소 실망하여 하늘에서 눈을 거두고 돌아서서 다시 가게 뒤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한 발을 옮기려 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발을 멈추고 몸을 약간 뒤로 돌려 하늘을 비스듬히 올려다보았다. 보였다. 생각보다는 작고 희미하지만 그래도 눈에 금방 띄었다. 그 순간 그 별이 갑자기 가로등 크기만큼 순덕의 마음에 자리 잡는 것이었다.

시리우스. 밤하늘에서 달 말고는 가장 밝은 별. 지구에서 8.6광년, -1.47등급.

겨울철에만 나타나며 남동쪽 하늘에서 푸른색으로 빛나는 별이다. 그러나 순덕이 찾고 있는 것은 그 별 하나만이 아니다. 어딘가 더 있을 것이다. 먼지와 매연으로 오염된 밤하늘 바다에서 등대를 찾아야 한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 정확히 말하면 여섯 개의 등대 별. 순덕은 눈을 크게 뜨고 시리우스를 다시 확인했다. 지구에서 밤하늘을 바라볼 때 가장 밝은 별 시리우스. 동양에서는 파란색으로 빛나서 늑대의 눈이라는 별명인 천랑성(天狼星)이라고 붙여주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큰개자리의 일등성에 해당한다.

시리우스에서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가면 오리온자리의 삼태성이 나타난다. 그 삼태성 아래로 눈을 돌리면 오리온자리의 주별인 리겔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쪽으로 곧장 올라가면 황소자리의 눈에 해당하는 붉은빛 알데바란. 그곳에서 비스듬히 왼쪽으로 하늘 꼭대기로 더 눈을 향하면 마차부자리의 α별인 카펠라가 있고, 그곳에서 이번에는 왼쪽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가면 쌍둥이자리 별 중 동생인 폴룩스가 나타난다. 여기에서 또다시 곧장 아래로 내려가면 작은개자리의 프로키온이 보인다.

지금 말한 이 여섯 개의 별을 이으면 거대한 육각형이 된다. 이것이 바로 겨울 밤하늘의 초대형 다이아몬드인 것이다. 웅장한 밤하늘의 거의 4분의 1을 뒤덮고 있는 이 다이아몬드는 1년 사계절의 밤하늘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도 웅대한 모습이다. 여름 밤하늘에서 거문고자리의 베가(직녀),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견우), 백조자리의 데네브가 수놓는 거대한 삼각형보다도 훨씬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순덕의 가슴에서는 이 세상 모든 별자리, 심지어 은하수보다 이 다이아몬드는 훨씬, 훠얼씬 더 크다. 백만 배, 천만 배, 억 배, 조 배, 경 배보다도 크다. 그리고 영원히, 영원히 우주가 무너지고 무너지고 무너져도 그 다이아몬드는 순덕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바보 같은 놈이 남겨주고 떠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놈은 군대 가기 전날 밤 남산에 올라 그 다이아몬드를 순덕에게 주었다. 천문학과 다닌답시고 겉멋 부리며 별자리 이야기나 늘어놓다가 군대 가는 처지에 돈은 없으니 하늘에 있는 저 거대한 다이아몬드나 선물하겠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놈은 그 뒤 한 달도 못 되어 죽었다. 군대에서 훈련받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트럭을 타고 산자락으로 올라가던 중 차바퀴가 미끄러져 트럭이 비탈로 굴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안에 탄 다른 군인들은 모두 멀쩡한데 그놈만 크게 다쳤다. 그리고 나서 이틀 뒤에 죽었다고 한다. 그 나쁜 놈은 밤하늘에다가 다이아몬드만 그려주고 그렇게 떠난 것이다. 그것이 순덕의 첫 연애이자 마지막 연애 스토리다. 옛날 순정소설에서처럼 애나 남겨주고 떠났으면 애지중지 키우련만, 목에다 걸 수도 없게 중천 하늘에다가 떡하니 다이아몬드만 걸어놓고 저 혼자만 가버렸으니 손으로 떼어서 목에 걸 수도 없고, 그저 그림의 떡으로만 남게 된 허무한 보석.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동안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오늘 갑자기 생각난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렇게 저렇게 해서 몇몇 남자를 만났으나 모두가 얼마 안 가서 깨지고 말았다. 아니 그래, 살아 있는 남자들이 죽은 그놈만 못하다고 여겨지니 어쩌자는 말인가. 그런 덕에 현대판 춘향이도 아니고 지금껏 수절 아닌 수절을 하다가 나이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 나쁜 놈 추억이나 파먹고 평생 살아야 할 팔자인가 보다. 그러니 오늘 갑자기 그 다이아몬드가 생각난 것이겠지.

순덕은 기껏 애써서 찾아낸 다이아몬드에게 한숨으로 화풀이한 뒤 자신의 속마음처럼 시커먼 모습으로 서 있는 차 쪽으로 걸어갔다. 뭐 애초부터 검은색 차였지만 더 시커멓게 보인 것이다.



다음날 아침 순덕은 평생 절대로 발걸음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자전거대리점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한 가지 말하지 않고 온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한 노인이 찾아왔다가 그냥 나간 어른용 세발자전거. 순덕은 결국 그 자전거를 하나 가게에 갖다놓았다. 그래서 혹 나중에라도 그 노인이 다시 찾아올지 모르니 아무리 안 팔려도 반품하지 말고 그냥 놔두라고 당부해 두려 한 것이다. 이것을 전화로 부탁해도 되겠지만 어쩐지 그 일만은 직접 만나서 말해 주어야지 순덕의 마음이 올바로 전달될 것 같았다.

학교로 다시 복직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있었기에 그동안 못 해봤던 것 하나하나 다 경험해 보자고 작정하고 오늘부터 아무 거라도 시작하려던 참에 갑자기 그 생각이 나서 서둘러 가게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게가 눈에 들어오자 바로 어젯밤 이별하고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몇십 년은 된 것같이 낯선 모습으로 느껴진다. 허 참, 이게 웬일이래……. 순덕은 혹 그 가게를 다시 보게 되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던 참이다. 그런데 그 반대로 하룻밤 사이에 남의 가게로 금방 둔갑해 버린 것이다. 청춘 때 만난 남자는 지금껏 잊지 않으면서 아버지 가게가 남에게 넘어간 것은 별일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거야? 정말 그런 거야? 아무리 인간의 마음이 간사하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그러나 막상 가게 앞까지 가니 마음이 울렁거리는 것이었다. 아니, 북받친다고나 할까, 무엇인가 감정이 저 속에서 치고 올라오는 느낌이다. 그럼 그렇지…….

어, 그런데 가게 문은 열려 있었다. 한겨울이라 문 열어놓으면 난방비 엄청 올라가는데 그러면 안 되잖아. 순덕은 한마디 꾸짖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데다 또 하나 눈에 거슬리는 게 있었다. 아버지도 그랬지만 순덕 역시 아버지가 하던 것을 오랫동안 봐와서 그랬는지 창문 밖에 전시해 놓은 자전거들의 바퀴들이 똑같은 각도로 꺾여 있지 않고 뒤죽박죽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반대로 꺾여 있는 것도 있었다. 대체 누가 그랬어? 한마디 해줘야겠는데.



순덕이 기세가 등등해서 가게 가까이로 다가가는데, 열려 있는 문 안에서 어떤 그림자가 보이더니 이내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두툼한, 그러나 허름한 외투에 털실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검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나오는 사람, 아니 노인. 그리고 그 뒤로 한 남자가 문간까지 나와서 노인의 등 뒤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가래침을 탁 뱉는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아니, 자신과 가게 매매계약을 할 때 왔던 사람이 아니다.

저것은 또 무슨 짓이야? 손님 뒤에다!

순덕은 뒷목에서 핏대가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순덕은 기세등등하게 가게로 향했다. 고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야. 똑바로 교육을 시켜놔야겠어. 그러다 손님 다 떨어져 나가면 어쩌…….

순덕은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그 노인. 맞다, 지난여름에 왔었던 그 사람. 까만 우산. 오늘은 모자 눌러쓰고 목도리 칭칭 두르고 있어서 얼굴이 반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표정이나 전체 분위기가 바로 그 노인이었다. 사실 그 노인이 다녀간 뒤 순덕의 머릿속에는 영화의 스틸 컷 장면처럼 노인의 모습이 여러 장 남겨져 있었다. 처음 가게로 들어와서 멈칫멈칫하며 눈치 보던 모습이랑 자신 없이 어른용 세발자전거 물어보던 것, 무엇인가 체념한 듯 몸을 돌려 나가던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나기 속에서 검은 우선 쓰고 저 멀리로 멀어져 가던 모습. 그동안 다시 오지 않을까 하고 그저 막연히 생각만 했었던 그 노인이 계절이 바뀌고 환경이 바뀐 무대에서 옷 역시 다르게 입고, 그러나 그때와 동일한 느낌으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그 순간 순덕은 잘못 정렬된 자전거나 손님 뒤에서 무례하게 행동한 낯선 사람에 대한 생각은 싹 지워지고 그토록 기다리던 임이라도 만난 듯 반가운 마음으로 노인에게 다가갔다.

노인도 순덕을 알아보았는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두워 보였던 얼굴이 다소 환해지는 듯이 느껴졌다.

순덕이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섰다.

“저, 혹시 어른용 세발자전거 때문에 오셨어요?”

노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는 표정이다.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듯이 노인의 얼굴이 펴지며 입을 연다.

“맞아요. 나 기억하시나 보오? 저번 여름에…….”

“그럼요. 기억하죠. 그때 소나기 쏟아지던 날…….”

“아…….”

노인이 입을 벌린 채 눈을 밝게 빛내며 쳐다본다.

“그때 말씀하셨던 어른용 세발자전거 갖다놨어요. 들어가서 보실래요?”

노인의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밝아진다.

순덕은 노인을 이끌고 가게로 향했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발걸음 힘차게.

닫힌 문을 밀고 들어가자 안에서 조금 전 보았던 남자가 서 있었다. 아마 밖의 광경을 다 보았으리라.

남자는 당황한 듯한 모습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뭐라고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순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어른용 세발자전거 이리 가져다주시겠어요?”

남자는 고개를 돌려 그 자전거를 보면서 눈망울을 굴린다. 지금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는 듯한 모습이다.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순덕은 탁자 뒤의 의자를 가리키면서 말을 하고 얼른 몸을 돌려 가스스토브를 탁자 쪽으로 밀었다.

“밖이 많이 추우시죠? 잠깐만 앉아 계세요.”

순덕은 여전히 우물쭈물하며 서 있는 남자를 무시하고 직접 그 세발자전거 쪽으로 가서 탁자 앞으로 끌고 왔다.

“이 자전거 일부러 제가 갖다놓은 거예요. 손님이 저번 여름에 오셔서 말씀하시고 나서 곧바로 가져왔어요. 팔려고 한 게 아니라 전시용으로요. 그래서 싸게 드릴 수 있어요. 3분의 1 가격에 드릴게요. 원하시면 더 싸게 드릴 수도 있어요. 괜찮으시겠어요?”

남자 직원이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한다.

순덕은 남자를 돌아다보며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남자의 눈이 조금 움찔하는 것 같았다.

순덕은 다시 노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번 타보세요. 편하신지 살펴보세요. 이 안에서 조금 왔다갔다 하셔도 돼요.”

노인은 남자와 순덕을 번갈아 바라본다.

순덕이 미소 지으며 노인의 팔을 살며시 잡고 이끌었다.

“올라가 보세요. 편하실 거예요.”

노인은 여전히 남자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제가 어제 먼지 다 닦아놨거든요. 괜찮으세요. 타보세요.”

노인은 마음을 굳혔는지 자전거 핸들을 한 손으로 붙잡고 안장으로 올라탔다.

“편하시죠?”

순덕이 미소 지으며 말을 했다.

“페달에 발 올려놓으시고요.”

순덕은 핸들 중앙을 잡고 노인의 두 발이 모두 페달로 올라갈 때까지 붙잡고 있었다.

“페달 한번 밟아보세요. 이 안에서 조금 타보셔도 돼요.”

노인이 순덕의 얼굴을 쳐다본다. 순덕은 환하게 미소 지어 주었다. 노인이 다리에 힘을 살짝 주는 것 같았다. 자전거가 앞으로 움직인다. 순덕은 가스스토브를 한쪽 옆으로 밀어놓았다.

노인은 앞으로 5미터 정도 나아갔다가 멈춘다.

“오른쪽으로 회전해 보세요.”

노인은 페달에서 다리를 떼고 바닥에 내렸다가 다시 올려놓는다. 그리고 핸들을 돌리고서 발에 힘을 준다. 자전거가 부드럽게 회전한다.

“여기가 좁아서 시운전하기가 좀 불편하시면 밖에 나가서 해보실래요?”

노인이 고개를 돌려 순덕을 바라본다.

순덕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서 문으로 갔다. 그리고는 문을 활짝 열었다.

노인은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문 밖으로 나갔다.

순덕은 문 밖에 서서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앞으로 갔다가 회전했다가 내려서 뒤로 움직인 뒤 다시 올라타서 앞으로 가고 이리저리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자전거에서 내려 핸들을 붙잡고 가게 쪽으로 끌고 왔다.

순덕과 노인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괜찮으세요? 마음에 드세요?”

노인의 얼굴이 무척 밝아졌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다.

“아주 좋네요.”

노인을 만나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밝은 목소리.

“다행이네요. 겨울이니까 빙판길에서는 타지 마세요. 그리고 불편한 게 있으면 아무 때나 가지고 오세요. 다 고쳐드릴게요. 또……, 며칠 타보시다가 혹 마음에 안 드시면 반품하셔도 돼요.”

“아녜요. 다 좋은 것 같은데…….”

순덕은 자전거 설명서를 찾아서 펴 보이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노인은 눈을 반짝이며 진지하게 들었다.

“지금 겨울이라 빙판길이 많아요. 조심하셔야 돼요.”

순덕이 마지막으로 말을 덧붙였다. 노인은 보이지 않을 듯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노인은 흡족해하며 그 세발자전거를 사서 끌고 나갔다.

순덕은 가게 남자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고, 자전거 가격의 3분의 2는 자신이 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신용카드를 꺼내어 내밀었다.

남자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서 쩔쩔매다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가게 구석으로 간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소리가 다 들리진 않았지만 가게를 인수한 사람과 통화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남자가 돌아왔다.

“제 매부에게 전화했더니 그냥 가셔도 된답니다.”

“아녜요. 결재해 주세요. 저 할아버지한테는 제가 지난번에 3분의 l 가격으로 드린다고 이미 말씀드려 놨어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남자는 카드를 받고는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순덕은 눈으로 말했다. 어서 결제하세요.

남자는 큰 결심이라도 한 듯이 신용카드 기계를 꺼낸다.



순덕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가서 한마디 하고 올까……?

그 처남이라는 남자가 가게 문 앞에서 손님 뒤로 가래침 뱉는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을 거야. 아무리 아침 첫 손님을 허탕 쳤다 해도.

아버지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순덕의 마음속을 파고든다.

괜히 팔았나 봐. 다시 무르자고 할까…….

순덕은 며칠 동안 그 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끝]


[다음 화 '간다간다 내 님이'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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