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 깨어진 하트의 공주님
[위의 사진 출처] Pixabay.com
소아과 의사 이주영 교수님과 함께 쓰는 '우주 판타지 동화'
이 이야기는 열 명의 아이와 두 선생님이 가을밤 하늘에 풀어놓은 이야기들을 모아서 소설처럼 동화처럼 정리한 것이다. 군데군데 명왕성이나 그 주변 위성들에 대한 해설도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한 원래의 이야기를 각색하기도 했고, 이야기가 제대로 흘러가게 하기 위해 새로운 내용을 집어넣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두서없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하지만, 이 우주 이야기는 열둘의 호모 사피엔스가 상상력을 극대화시킨 우주 서사시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우주 판타지가 나왔는지 모르지는 않는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명왕성을 소재로 해서 만든 이야기도 산더미처럼 많을 것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 역시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이야기가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랑과 갈등과 전쟁과 범죄에 대한 소설과 이야기가 인류에게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듯, 우주 이야기 역시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무궁무진하게 쌓일 것이다. 그러함에도 용기를 내어 우주의 잔별과도 같은 그 모든 이야기들 속에서, 단지 별똥별처럼 잠깐 불타고 사라질지라도 이 작품을 인류 앞에 내놓으려 한다. 비판 없이 그냥 읽어보시고 잠시나마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명왕성 판타지에 젖어보시기를 권한다. 그럼 지금부터 명왕성 에피소드의 막을 올린다.
(잠깐, 이 이야기는 우주 판타지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아이들의 삼층버스 모험은 잠시 뒤쪽으로 미뤄두기로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이 이야기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혹 기대 또는 실망하실 분들을 위해 이 점 미리 밝혀둡니다.)
[이야기] 이순영 어린이 [각색] 유정화 선생님
카이나 공주는 명왕성에서 제일 큰 호수인 명왕호 옆의 조그만 바위에 걸터앉아 호수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검은 보석처럼 맑고 투명한 호수의 표면. 그 속에는 또 하나의 우주가 펼쳐져 있었다. 어두운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그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도 호수 속과 마찬가지로 보석들이 깨알같이 흩어져 있었다.
카이나는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길게.
밤하늘은 저렇게 아름다운데 옆에서 함께 보아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수십만 년 동안 카이나는 혼자서만 이 작은 별에서 살고 있었다.
카이나 공주는 지금 명왕성 남동쪽의 깨어진 하트 가장자리에 있는 호숫가에 앉아 있다. 무너진 사랑을 못 잊어. 만일 그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하트 오른쪽 반인 정남쪽 한가운데에 있는 높은 산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 마라이트 왕자의 품에 안겨서.
명왕성 적도 아래쪽에는 커다란 하트 지역이 있다. 맑고 투명한 다이아몬드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거대한 보석 평원. 그러나 그 왼쪽인 동부의 하트 윗부분은 깨어져 있다. 그곳은 무너진 사랑을 안고 죽어간 영혼들의 눈물과 탄식이 변해서 보석이 된 ‘탄식의 평원’이었다.
아아주 오래 전에 명왕성 주민들은 자체회의 끝에 반란을 일으키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부에서는 다른 왜소행성이나 소행성들과 함께 행동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그 경우 논의과정에서 정보가 새어나갈 수도 있고, 또한 서로 입장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순순히 응해 줄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이 서서 포기하기로 했다. 그동안 여러 번 경험한 바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왕성의 위성들만 포함시킨 명왕성 연합만으로 거사를 일으키기로 한 것이다. 사실 명왕성이 반란을 모의한 것은 그때가 처음은 아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마다 주변 왜소행성이나 소행성들에게 슬쩍 암시를 주어 동참할 의사가 있는지를 떠보았으나, 오히려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여러 번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다. 따라서 명왕성 연합의 힘만으로는 다소 버거운 감도 있지만, 일단 일을 벌여 보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계속 이 상태로 나가다가는 명왕성은 파산하고 다른 행성의 식민지가 되고 만다. 세금도 너무 많고 징집병도 많아서 살아가기 힘들 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모두 군대로 끌려가고 나면 일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태양계 연합정부는 9개 행성에게 모두 동일한 금액의 세금을 부과하는 바람에 별의 크기도 훨씬 작고 인구도 엄청 적은 명왕성으로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태양계 연합의회에서는 오히려 인구비례대로 의원을 선출하기 때문에 명왕성에서는 몇 안 되는 의원 수만 배정받아 늘 불리하고 또 차별까지 받고 있었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었다.
그동안 명왕성은 행성 자격을 지니고 있어서 그나마 다른 행성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역도 하고 중앙정부인 지구에 상원의원을 보낼 수 있었지만, 행성에서 탈락하면 그나마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행성 자격이 있으면 중앙정부에서 각 행성에게 배분된 조직에 들어갈 수 있고, 각종 경연대회에도 행성 대표로 곧바로 결선에 진출할 수 있는 등 유무형의 혜택과 이권이 주어진다. 따라서 행성 자격을 유지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그동안 과도한 차별을 받으면서도 감수하며 버텨왔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행성에서 퇴출시킨다니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주민들의 분노도 극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반란이라는 것 자체가 매우 큰 위험이 따른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성공하면 태양계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아예 태양계에서 추방될 수도 있다.
바로 이 ‘추방’이라는 단어가 명왕성의 주민들에게는 공포의 단어였다. 그렇잖아도 춥고 어둡고 땅이 좁아터진 명왕성에서는 모든 게 열악한 상태였다. 먹고 자고 입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추방까지 된다면 그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거의 멸종 단계에까지 이를지도 모른다.
따라서 명왕성 주민들이 반란을 결정한 것은 최후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
그동안 수억 년간 유지되어 온 행성의 자격이 하루아침에 박탈된다니. 정말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다.
어떻든 결론은 났다.
반란, 즉 싸우는 것이다. 투쟁. 전투. 삶과 죽음.
그러나 그 전쟁에서 명왕성은 참패를 했다. 거의 전멸상태에 이른 것이다. 그것도 단 한 사람의 배신 때문에. 그로 인해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추방당하지는 않았지만 영원한 암흑의 별로 저주를 받아 아무도 가지도 오지도 않는 무인별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단 한 사람, 카이나 공주만 그 별에 남아 영원한 그리움을 겪어야 하는 저주를 받게 되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랑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카이나 공주는 원래 명왕성 주민이 아니었다. 토성 국왕의 외동딸로서 명왕성에 나들이 갔다가 명왕성 국왕의 막내아들인 마라이트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서 반란군인 명왕성 연합군의 편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카이나는 반란이 진압된 다음 태양계 행성추축군의 전쟁재판에서 종신 유배형을 받게 되었다.
이 전쟁에서 진 명왕성 군대의 패잔병들은 우주 저 먼 곳으로 도망쳤는데, 마라이트 왕자도 그중에 끼어 있다는 말도 있고, 포로로 잡혀서 명왕성의 위성인 암흑의 별 케르베로스 지하 어딘가에 갇혀 있다는 소문도 있지만 카이나로서는 그 진위를 알 수 없어서 애만 탈 뿐이었다.
마라이트 왕자가 실종된 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나섰다. 한쪽에서는 혹 마라이트가 살아 돌아와서 다시 반란을 도모할지 몰라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것은 주로 행성추축군의 편에 섰던 사람들의 입장이었다. 그러한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마라이트 왕자를 찾아 명왕성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마라이트에 대한 행방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의도와는 달리 카이나는 마라이트 왕자가 케르베로스 위성의 감옥이 아니라 우주 저 끝에 있더라도 오직 살아 있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렇게 해서 카이나 공주는 돌아오지 않는 왕자를 기다리며 유배지인 명왕성의 깨어진 하트의 광야, 즉 탄식의 평원에 갇혀서 수십만 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제3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