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 다크아이의 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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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문세희 어린이 [각색] 유정화 선생님
카이나는 검은 호수 옆 바위에 앉아 은빛 피리를 꺼내어 불고 있었다. 카이나의 은백색 머리칼과 잘 어울리는 잔잔한 은빛의 기다란 피리. 마라이트 왕자는 카이나가 불어주는 그 피리 소리를 너무 좋아했다.
명왕성 북극에 있는 얼음의 성 누각에 앉아 카이나가 피리를 불어줄 때마다 마라이트 왕자는 카이나 앞에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마치 피리의 선율을 호흡하듯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환희에 찬 표정을 지었다.
“아, 너무도 아름답소, 그 선율. 내 마음이 녹는구려.”
카이나는 피리에 입을 댄 채 마라이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카이나의 눈은 왕자의 시선을 따라 하늘 끝으로 향했다. 은하수와 북극성과 카시오페아가 옆으로 나란히 흐르는 우주의 공간.
카이나가 긴 호흡으로 내뿜는 선율들은 밤안개 보석이 되어 칠선지 악보 사다리를 타고서 구불구불 하늘로 올라가 별들 사이로 스며들어가 흩어지고 있었다.
카이나와 마라이트는 다 같이 그 선율의 사다리를 타고서 함께 밤하늘의 우주로 떠올랐다. 두 사람의 발은 이미 얼음성에서 떠나 꿈속으로 들어가 있었고, 무수한 별에서 나오는 맑은 빛들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얼음성은 모두 순백의 보석이 되어 맑고 순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은 아마도 온 우주가 운행을 멈추고 이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마라이트는 가슴이 벅차서 카이나 공주에게 손을 내밀어 피리의 색과 동일한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려 했다.
그때 갑자기 카이나는 피리를 멈추었다.
그 순간 우주가 잠에서 깨어난 듯 갑자기 부산해진다.
그리고 카이나는 저 먼 밤하늘 한 곳으로 시선을 모으고 숨을 멈췄다.
“안 돼…….”
카이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소리는 카이나의 입에서는 나가지 않고 머릿속에서만 맴돌며 울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마라이트 왕자가 황홀한 눈빛으로 카이나를 바라보면서 막 머리칼에 손을 대려 하는 순간이었다.
“안 돼…….”
카이나의 말이 신음과 함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마라이트는 깜짝 놀라 손을 멈췄다. 그리고 당황한 표정으로 얼른 손을 거두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안 돼…….”
카이나의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그 목소리에는 절박함에 담겨 있었다.
마라이트는 이번에는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서 카이나의 눈길을 좇아 밤하늘을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 커다란 개 한 마리가 하늘 저편에서 뛰쳐나와 지나가는 모습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늘 저 끝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지옥문을 지키는 저승의 개 케르베로스였다. 마라이트 왕자는 그 개의 머리 셋을 보았던 것이다. 세 개의 머리가 달린 지옥의 파수견. 망자의 나라 하데스의 사냥개. 그 저주의 개가 하늘 저 끝에서 뛰쳐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곧 우주에 저주가 닥쳐올 것이다. 우주의 저주. 무서운 전쟁의 저주.
명왕성의 멸망을 위해 호시탐탐 노리며 명왕성 연합에서 빠져나가 태양계 행성추축군의 개 노릇을 하는 케르베로스 위성의 두목 배신자 다크아이. 그리고 바로 그 다크아이의 깃발에 그려진 저주의 개 케르베로스. 다크아이는 머리가 셋 달린 돌연변이 기형으로 태어난 시커먼 사냥개 케르베로스를 자신의 위성인 케르베로스 별의 상징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깃발에도 그 개를 집어넣은 것이다.
다크아이는 원래 명왕성의 가장 큰 위성인 카론의 장수였으나. 카론의 수비대장이 명왕성의 국왕과 함께 연합군을 결성하고 행성추축군과 맞서는 것에 불만을 품고서 자기 부하들을 이끌고 카론의 변방에 있는 저승의 강을 건너 탈출해서 케르베로스로 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행성추축군이 대주는 자금을 받아 우주를 떠돌던 망나니들을 모아서 군대를 형성하고 호시탐탐 명왕성을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죽음의 군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곧이어 케르베로스가 만든 암흑군의 대규모 침략이 시작될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 침략군의 선봉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의 성주 아이겔, 즉 카이나 공주의 외삼촌인 것이다. 하지만 저들이 어디를 침략할지는 알 수 없었다. 아이겔 성주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매형인 토성의 셰인 국왕에게 반감을 품고 있으면서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다크아이가 은근히 다가와 자신에게 협력해 주면 아이겔이 토성을 차지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한편, 다크아이에게는 다크클리프라는 누나가 있었는데, 다크클리프는 토성의 국왕 셰인의 먼 조카뻘인 머저루 남작의 부인이었다. 이 다크클리프는 아주 영악한 여자여서 왕위 계승자인 카이나가 명왕성으로 유배당하자 셰인 국왕이 죽으면 자기 남편 머저루를 그 자리에 앉히려고 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머저루 남작은 사람은 좋지만 머리가 둔해서 다크클리프가 머저루 뒤에서 조종하면 자기 마음대로 토성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크아이는 누나인 다크클리프를 끔찍이도 싫어해서, 누나가 남편 머저루를 이용하여 토성을 쥐락펴락하려는 음모를 알아차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막으려 하고 있었다. 다크아이 자신이 토성의 국왕 자리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이나는 벌떡 일어섰다. 그 바람에 피리를 손에서 놓쳐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카이나는 자신이 피리를 놓친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케르베로스가 지나간 우주의 한 지점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명왕성 북극의 높은 산에서 회오리와 같은 얼음바람이 불어 내려오며 카이나의 머리칼을 어둠 속으로 흩날렸다.
헝클어진 은백색의 머리칼이 얼굴을 감싼 채 휘날리고 있었지만, 카이나는 얼굴과 몸이 굳어진 채 시선을 우주 한 곳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카이나 옆에 있던 마라이트 왕자 역시 몸이 굳어진 채 우주 저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카이나는 마라이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창백해진 왕자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어서 가세요.”
왕자도 고개를 돌려 카이나를 바라보았다. 왕자의 얼굴은 굳어 있었으나 그 눈은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카이나는 그 눈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라이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케르베로스가 사라진 하늘을 쳐다보다가 주먹을 굳게 쥐었다.
“나를 기다려요.”
마라이트는 다시 카이나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꼭 다시 올 테니, 그때까지 몸 건강히…….”
마라이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성벽 저쪽에 서 있는 백마 페가수스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날개 달린 백마는 발굽소리를 내면서 마라이트 쪽으로 다가왔다.
마라이트는 뛰어서 페가수스에게 다가가 펄쩍 말 등으로 올라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카이나를 돌아다보았다.
“은하수가 갈라지는 날 다시 오겠소!”
마라이트 왕자가 외치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한 손을 번쩍 들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손으로 말고삐를 당기자 페가수스는 커다란 은빛 날개를 활짝 폈다. 그와 동시에 페가수스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페가수스는 카이나 주변을 한 바퀴 크게 돈 뒤 케르베로스가 사라진 하늘과는 반대편 우주로 날아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카이나는 페가수스가 날아간 방향으로 한 손을 든 채 망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조심하세요. 몸 건강히…….”
말은 없이 마음으로만 중얼거리는 카이나는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러고 나서 카이나는 수십만 년간 마라이트 왕자를 보지도 못하고 소식도 듣지 못했다. 간혹 들려오는 어지러운 소문만 귀에 스쳐갔을 뿐.
그러면서도 카이나는 왕자가 마지막에 한 말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은하수가 갈라지는 날 다시 오겠소.”
이 말이 카이나가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는 죽음의 별 명왕성에서 오늘도 버티고 있는 힘이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만 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는 마라이트 왕자를 기다리다가 카이나는 지쳐 갔다.
꿈에서도 생시에도 그리운 마라이트 왕자님.
어떻게 하면 다시 볼 수 있을까……?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그 다정한 미소를 볼 수 있을까? 단 한 번만이라도 왕자님에게 피리를 불어주며 둘이서 함께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볼 수 있을까?
카이나는 이렇게 마라이트를 기다리며 명왕성의 길고 긴 밤을 쓸쓸하게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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