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 우주의 세레나데
[위의 사진 출처] Pixabay.com
다섯 번째 이야기 | 우주의 세레나데
[이야기] 오윤미 어린이 [각색] 유정화 선생님
다크아이는 거의 날마다 카이나에게 찾아갔다. 카이나가 하트 북부지역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해서 자신의 말만 들으면 하트 외부뿐만 아니라 명왕성 전체 어디든, 심지어 고향인 토성에까지도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사실 이것은 태양계 중앙정부인 최고원로원의 승인이 필요한 것이지만, 다크아이에게는 그런 제약 같은 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떠한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나 공주님, 저와 함께 저 북극에 가보시겠습니까?”
“저는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하하,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제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되거든요.”
“그래도 저는 가지 않겠어요.”
“제 흑비마(黑飛馬)를 타고 함께 북극의 얼음산에 올라가 저 높은 북극성까지 날아가 봅시다. 그곳에서 천하만국을 보여드리지요. 원하신다면 그곳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공주님의 그 아름다운 손에 입맞춤만 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요.”
“그럴 수는 없어요. 저는 마라이트 왕자님과 약속한 사이예요. 혹시 그분의 소식을 알고 있나요? 아신다면 알려줄 수 있을까요?”
“저런. 아직도 그 비겁한 인간을 못 잊고 있군요. 공주님을 이곳 어두운 별에 내버려두고 저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친 그 초라한 인간을.”
“아니에요. 왕자님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절대로.”
“그럼 지금 마라이트 왕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난 몇 십만 년 동안 단 한 번이라도 공주님을 찾아온 적이 있던가요? 나밖에 누가 공주님을 찾아왔었던가요?”
“알려주세요. 지금 왕자님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를 어디에든지 데려다줄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를 그분에게 데려다주세요.”
“그놈은 비겁하게 우주 어딘가에 혼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을 텐데, 그런 겁쟁이를 왜 찾으시는 겁니까?”
“아니에요. 그분은 겁쟁이가 아니에요. 아마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어서 어디인가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죽었을 겁니다.”
“아니에요.”
“죽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공주님이 수십만 년 동안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안 나타날 리가 없지요.”
“아니에요. 왕자님은 은하수가 갈라지는 날 다시 오시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 말을 믿어요.”
“은하수가 갈라진다고?”
“네, 그래요.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어요.”
“미쳤군. 은하수가 갈라진다는 것이 말이 돼요? 은하수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저기 저 모습 저대로 흐를 겁니다.”
다크아이는 왼손을 쭉 뻗어 밤하늘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아름다운 은하수를 가리켰다.
“그래도 저는 그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은하수가 갈라진다면 그 물이 넘쳐 온 우주가 잠길 텐데, 그러면 나나 공주님이나 마라이트나 모두 다 끝장나는 겁니다. 그런 날 마라이트가 온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주가 사라지는 날이 될 텐데.”
“저는 그래도 좋아요. 우주가 무너지고 사라진다 해도 단 1초만, 아니 1초의 억만 분의 1의 순간만이라도 그분을 볼 수만 있다면 만족하겠어요.”
“허허, 미쳤군, 미쳤어. 공주님, 너무 오랫동안 이 어두운 곳에 혼자만 남겨져 있어서 외로움 병에 든 겁니다.”
“아무렇게나 생각하세요. 상관없어요.”
“저하고 같이 제 흑마성에 가시지요. 그곳에 가면 평생, 아니 영원토록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싫어요. 저는 여기에서 왕자님을 기다릴 거예요. 이곳에서 기다리다 죽는다 해도.”
다크아이는 결국 으드득 이를 갈면서 떠나가고 말았다. 이 말만 남기고서.
“내가 꼭 그놈 시체를 가져다 보여주리다.”
다크아이가 떠난 뒤 카이나 공주는 검은 호수 속을 들여다보며 탄식했다. 그리고는 피리를 들어서 불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밤하늘 속으로 가느다라면서도 가슴을 녹이는 선율이 흘러나간다. 마치 은빛 줄기처럼. 그와 동시에 검은 호수의 표면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살랑살랑 물결이 일었다. 그리고 저 먼 곳에서 오는 태양 빛과 별빛과 은하수 빛이 흔들리는 물결에 반사되어 사방으로 은빛 반짝임이 흩어진다. 카이나의 은백색 기다란 머리칼도 호수에서 나오는 미풍에 살며시 흩날리며 공기를 흔든다. 그와 동시에 카이나 공주가 부는 피리의 선율이 흔들리는 미풍을 타고서 온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검은 하늘로, 검은 유리 같은 하트의 지역으로, 탄식의 평원을 넘어서 아스라이 멀리 별빛들이 보석처럼 흩어져 있는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카이나는 피리를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피리의 가느다란 선율이 지나간 우주의 밤은 점점 더 깊어가기만 했다.
카이나 공주는 피리를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은하수가 흐르는 곳을 바라보며 팔을 벌렸다. 그런 다음 입술을 벌려 노래를 했다. 조금 전 피리로 불었던 그 곡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달콤한 꿈은 사라져 버렸지요
옛날의 추억들도 사라지고
지금의 시간들은 고달프며
멀고 먼 앞날은 어둡기만 할 뿐
이제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답니다
삶의 기쁨과 행복조차도
그 대신 오직 오랜 옛날을
그리워할 뿐이지요
그러나 누구를 그리워해야 하나요
나에게는 평온도 안식도 없으며
누구를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답니다
오직 죽고 싶은 마음
이 어두운 땅에 힘없이 누워
하늘에서 빛나는 별들 아래에서
외롭게 갇힌 채
우주의 시간은 한없이 흘러가고
또 끊임없이 사라져 가면서
이 땅에서 지닌 티끌만 한 소망마저도
모두 삼켜버리고 있답니다
그렇게라도 사라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그리운 사람 곁으로
저 우주 너머로 갈 수만 있다면
수백억 년 전 태양계를 지배했었다는 인간의 옛 선조들이 만들었다는 노래. 철학자인 니체라는 사람의 시 ‘달콤한 꿈은 사라지고(Entflohn die holden Träume)’를 카이나 공주가 자신의 처지에 맞게 고친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이다.
카이나는 마라이트 왕자가 그리울 때마다 이 노래를 불렀다. 피리로, 노래로.
노래가 끝난 뒤 카이나는 추억과 그리움이 가득한 눈으로 우주 저 끝을 바라보았다.
아, 왕자님은 언제 오시려나…….
[제7화]로 계속
[사진 출처]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