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이야기 | 고미니 병사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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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조준 어린이 [각색] 배심규 선생님
케르베로스 위성에서는 고미니 병사가 불안한 마음으로 성벽 위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흑마성이 모두 잠든 새벽 2시. 주변이 암흑으로 뒤덮여 있을 때 경비대장이 고미니에게 찾아왔다.
“누구냐? 멈춰서! 지옥!”
“횃불! 나다, 나. 경비대장.”
“앗, 대장님. 근무 중 이상 무.”
“좋았어. 특이사항 없지?”
“네, 없습니다.”
“음, 좋아. 내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는데…….”
“…….”
“고향에는 누가 있나?”
그 순간 고미니는 눈물이 왈칵 솟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경비대장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고미니는 간신히 눈물을 참고 대답했다.
“부모님하고 남동생 둘, 여동생 셋이 있습니다. 할머니도 계시고요.”
“오, 다복한 가정이군. 모두 잘 있는 거겠지?”
“네, 그럴 겁니다. 연락이 안 되어 모르긴 하지만.”
“괜찮을 걸세. 내가 따로 알아보고 나서 알려주겠네.”
“감사합니다, 경비대장님.”
“흠, 그런데 말야…….” 경비대장은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고미니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겠나?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고, 그냥 뭐 하나만 전달해 주면 되는 건데…….”
“그럼요. 당연히 해드려야죠. 제 가족 소식을 알아봐 주신다는데, 더 큰 일도 해드릴 수 있습니다.”
“흠, 그럼 말야……, 내일 이 시간에 누군가가 여기에 올 텐데, 그 사람에게 이거 하나만 전해 주면 돼.” 경비대장은 조그만 흰색 통을 하나 내밀었다. “이것을 건네주면, 그 사람이 또 무엇인가를 줄 거야. 그것을 잘 받아서 경비임무가 끝나는 대로 나한테 와서 주면 돼. 어때? 할 수 있겠나?”
“그럼요. 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잘 부탁하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절대 남들한테 하면 안 돼. 극비사항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근무 잘 서게. 흠.”
다음날 고미니는 하루 종일 고민을 했다. 이 사실을 동료에게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함께 근무하는 동료 셋은 전혀 비밀이 없었다. 혹시 셋 중 하나가 비밀을 숨기고 있다가 발각되면 셋 모두 즉석에서 처형되기 때문이다. 고미니는 몇 년 전에 그런 경우를 직접 보았다. 다른 부대에서 근무하는 신병 하나가 고향에 보내는 편지를 몰래 써서 감춰두었다가 기습적인 관물수색에서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흑마성 전체 병사들이 도열해서 선 가운데 그 병사를 포함해서 세 병사가 끔찍한 화형에 처해졌던 것이다. 그날 그 병사들이 지르던 비명소리를 고미니는 절대 잊지 못하고 있었다.
고미니는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휴식시간에도 동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마음이 너무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비대장이 부탁한 일인데 안 들어줄 수도 없었고, 또한 고향의 소식을 알려준다고 하는데 어떻게 거절한단 말인가. 따라서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대감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과 다섯 동생의 소식을 그동안 전혀 듣지 못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고향 소식을 알려준다니 얼마나 가슴이 벅찬 일인지. 게다가 부모님이 부대에서 보내주는 돈을 잘 받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적지 않은 금액이기에 그 돈이면 부모님 병원비는 물론이고 동생들 학비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을 것이다. 부모님이 워낙 검소한 분들이기 때문에 아마 절약을 잘 해서 멋진 집과 땅을 샀을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이냐……. 고미니는 이러한 마음 설레는 생각으로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밤 한밤중 2시, 정말로 어떤 사람이 나타났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게 성벽 틈에서 살금살금 다가오는 것이었다. 고미니는 처음에는 겁이 더럭 났다. 그러나 경비대장의 말을 믿기로 했다.
상대방은 온통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주변과 구분이 잘 안 되었다. 그리고 얼굴은 검은 천으로 가리고 눈만 내놓고 있어서 얼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몸집은 호리호리하고 이곳 병사들보다 키도 약간 작은 듯한 데다가 몸매 역시 억센 남자들하고는 달라 혹시 여자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흑마성에는 모두 남자뿐이어서 여자를 본 지 수천 년은 되었던 것이다.
고미니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자가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여자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다가왔다.
고미니는 멍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여자가 바로 앞까지 다가와 손을 내민다.
그제야 고미니는 흰색 통이 생각났다. 그래서 얼른 주머니에서 꺼내어 건네주었다. 그러자 여자는 통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흰색 통을 윗도리 품속에 집어넣고 그 대신 다른 통 하나를 꺼내는 것이었다. 검은색 통이었다. 흰색 통과 같은 크기.
고미니가 그 통을 받자마자 여자는 사라졌다. 성벽 밖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고미니가 깜짝 놀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여자는 성벽 돌 틈을 손으로 잡고 발로 디디고 하면서 재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여자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광경을 본 고미니는 머릿속이 멍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 손에 쥐어진 검은 통을 보고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미니는 여자가 사라진 뒤 성벽 아래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혹 여자가 사라졌을 법한 방향도 조심스레 살펴보았으나 의심스러운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치 여자는 이곳에 왔다간 사실이 없는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고미니는 보초를 서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지금 이 장면을 혹 누군가가 보았다면 정말로 엄청난 일이 벌어진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고미니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혹 누군가가 숨어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살폈다. 물론 이 한밤중에 밖에 나와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특히 이 성벽 위로는. 그래도 고미니는 가슴이 마구 두근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고미니는 근무 중 내내 불안감에 시달리다가 보초 교대 후 경비대장에게 가서 검은 통을 건네주고 돌아온 뒤에야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제13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