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층버스 명왕성에 가다 (14/15)

열세 번째 이야기 | 명왕성 호수에서 일어난 일

by Rudolf

[위의 사진 출처] Pixabay.com


제3부 | 삼층버스 명왕성 분투기




위의 이야기를 끝낸 뒤 열 명의 아이들은 잠을 자러 갔다. 그러나 두 선생님은 가슴이 벅차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이들이 풀어낸 가을밤 이야기가 너무도 놀라웠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말도 서툴게 하고, 또 말을 하다가 막혀서 잠시 동안 잔별로 가득 찬 밤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면서도 모두 자신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마무리 지었다. 그 이야기들은 두 선생님에겐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보다도 더 재미있고 환상적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 두 선생님은 그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을 자신들이 완성하기로 했다.




열세 번째 이야기 | 명왕성 호수에서 일어난 일

[이야기 및 각색] 배심규 선생님



삼층버스는 명왕성에 도착했다. 그 먼 거리를 순식간에 날아와서 모두들 놀랐다. 적어도 몇 달은 걸릴 줄 알았는데 사흘 만에 도착한 것이다. 그렇지만 명왕성까지 오는 도중에 본 우주의 신비한 광경에 아이들은 넋을 잃을 정도였다. 두 선생님도 물론 마찬가지였고.

그러나 명왕성 표면에 내려앉을 때 약간의 사고가 발생했다. 명왕성 적도 아랫부분에 커다란 하트 지역이 있었는데, 여자아이들이 그곳으로 가자고 했으나 남자아이들은 반대를 했다. 북극으로 먼저 가서 뾰족한 얼음산을 보고 싶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옥신각신하다가 여자아이들 대표와 남자아이들 대표가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명진과 순영이 대표로 나와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열 번째가 되어도 결판이 나지 않았다. 둘 다 계속 같은 것을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제비뽑기를 했다. 유정화 선생님이 종이쪽지 하나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고서 종이쪽지 두 개를 내밀었다. 희준이 남자 대표로 먼저 뽑았는데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그래서 삼층버스는 하트 지역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착륙할 때 하트의 크리스털이 너무 반들반들해서 버스가 금방 멈추지 않고 미끄러지면서 지그재그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때 안전띠를 조금 느슨하게 매고 있었던 연화가 약간 흔들리면서 어지럼증이 생기고 말았다. 이것 때문에 연화는 지구로 돌아올 때까지 밖에 나가지 못하고 내내 버스 안에서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중에 이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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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삼층버스는 하트의 오른쪽 크리스털 지역에 내려앉았다. 버스 문이 열리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나가려고 하자 배심규 선생님이 막았다. 그리고 배 선생님이 먼저 나가서 이곳저곳을 살펴본 뒤 버스에 올라와서 내려도 좋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한 사람씩 버스에서 내렸다.

“조심해.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아이들은 내리자마자 환호성을 질렀다. 바닥이 얼마나 반들반들한지 마치 검은 거울 같았다. 그리고 바닥에 하늘의 모든 별들이 비쳐서 마치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조심 다니면서 스키를 타는 시늉도 하고 바닥을 톡톡 두드려 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끝없이 퍼져 있는 새카만 크리스털 위에서 아이들은 그렇게 환호하고 노래하고 신나 하면서 놀았다.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한 아름다운 밤하늘 아래에서. 우주가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는 크리스털 바닥 위에서.

두 선생님도 가슴이 벅찬 채 아이들과 어울렸다. 지구에서 가장 먼 행성, 아차 지금은 행성 대열에서 내려왔지만 어떻든 태양계 가장 바깥에 있는 명왕성에 온 것이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평생 다시 경험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혹시 어떤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 몰라 두 선생님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주변을 살폈다.

아이들은 크리스털 위에서 한참 놀다가 싫증이 났는지 다른 곳에 가보자고 했다. 크리스털 하트 지역의 왼쪽, 즉 크리스털이 깨진 부분이 궁금하다고 했다. 그래서 모두 버스를 타고 그쪽으로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크리스털 위로 달려갔으나, 가도 가도 끝이 없자 하늘을 날아서 가기로 했다. 그래서 삼층버스는 배 선생님이 운전을 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삼층버스가 깨어진 하트 지역 상공으로 들어가자 바람이 몹시 불어 버스가 흔들렸다. 지구에서 명왕성까지 올 때도 이런 바람은 분 적이 없어서 모두들 무척 당황했다. 그러나 배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운전을 해서 깨어진 하트 윗부분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버스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다가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 호수다!”

정말로 호수가 보였던 것이다. 사실 깨어진 하트 지역은 멀리에서 보면 크리스털이 여기저기 많이 파손되어 있었는데, 사실은 그 대부분이 호수였다. 때로는 커다란 웅덩이와 낮은 언덕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아이들은 버스에서 내려 호수로 달려갔다. 그러다가 크리스털 바닥 때문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으나 그래도 깔깔거리며 뛰어간 것이다. 그리고 호수 가장자리에 모여서 호수 속을 들여다보며 혹 물고기가 있나 살펴보았다.

그러나 호수 속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없어. 아무것도.”

“무슨 호수가 이래?”

“여기는 아무도 안 사나?”

“수영할 수 있을까?”

“들어가 봐.”

“네가 먼저 들어가.”

“난 싫어.”

“그럼 너.”

“나도 싫어.”

“어쩐지 기분이 나빠.”

“다른 호수에 가보자.”

아이들은 삼층버스를 타고 깨어진 크리스털 지역 여기저기를 다니며 크고 작은 호수를 찾아갔다. 그러나 다른 호수들에도 물고기는 없었다. 아이들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없어. 아무것도. 무슨 호수가 이렇게 삭막해?”

“지구 말고 다른 별에 있는 호수는 다 그럴까?”

“그야 모르지. 가보지 않았으니까.”

“얘들아, 지구로 돌아갈 때 한번 살펴보자꾸나.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즐겁게 놀아봐.”

“선생님, 여기에서 수영해도 돼요?”

“수영복도 안 가져왔잖아.”

“발가벗고 하지 뭐.”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너 죽을래?”

“얘들아, 그만하고 다른 데 가보자. 아까 날아오면서 살펴봤더니 저 너머에 아주 큰 호수가 있는 것 같더라. 거기에 가면 혹시 볼거리들이 있는지도 몰라.”

이렇게 해서 삼층버스는 명왕성의 깨어진 하트 지역에서 가장 큰 호수로 가게 되었다. 그 호수 주변에는 작은 바위도 여럿 있어서 앉아 쉴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다른 호수들과 달리 모양이 아주 동그랗게 되어 있었다. 마치 아주아주 커다란 풀장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호수에는 온 우주가 다 비치고 있어서 마치 두 개의 우주를 동시에 보고 있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광경이 너무 장엄해서 보는 이들을 감탄하게 만들고 있었다.

“얘들아, 모두 버스에 타거라. 버스로 이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자꾸나.”

아이들은 신이 나서 버스로 뛰어가서 올라탔다.

“출발!”

누군가가 외치자마자 버스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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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드넓은 검은 호수 주위를 천천히 달렸다. 그러나 달려도 달려도 똑같은 모습이었다. 단지 호수에 비친 우주의 모습이 약간씩 변할 뿐이었다.

아이들은 약간씩 시들해지는 느낌이었다. 하품하는 아이도 있었다. 하긴 실망스럽기도 할 것이다. 지구에서 큰 기대감으로 이 먼 별까지 왔으나 시커멓고 반질반질한 것밖에는 보지 못했으니까.

버스가 거의 호수 반대편쯤 갔을 때 윤미가 소리쳤다.

“저기에 반짝이는 것이 있어요!”

모두들 윤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었다. 아주 하얀 색, 그러나 눈은 아닌 은색 느낌이 드는 어떤 것이 밤하늘의 별빛들을 받아서 반사되고 있었던 것이다.

삼층버스는 그곳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가면서 살펴보니 피리 같은 느낌이었다.

“이야―!”

아이들이 모두 소리쳤다.

버스가 피리 가까이에 가서 멈추자 아이들은 앞 다투어 뛰어내렸다. 두 선생님도 뒤쫓아왔다.

“얘들아, 만지면 안 돼! 선생님이 먼저 살펴볼게.”

호수 옆, 바위들이 몇 개 놓여 있는 곳 사이에 신비감이 도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물체가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이 몰려가서 바라보니 정말로 피리였다. 기다란 피리. 플루트처럼 생긴 것. 그러나 그보다 좀더 길면서도 약간 가는 듯했다.

“플루트 비슷하긴 한데…….”

배 선생님이 바로 앞까지 가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손을 살짝 대보았다. 그러다가 깜짝 놀라서 손을 떼었다. 아이들도 놀라서 뒤로 움찔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선생님은 다시 피리에 손을 대보더니 살며시 쓸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여기저기 만져보았다.

잠시 뒤 선생님은 피리를 들고 아이들에게 돌아섰다.

“위험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렇게 고운 색이 나는 피리가 어떻게 여기 떨어진 걸까? 누가 불다가 떨어뜨리고 간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 근처에 사람이 산다는 뜻이거든…….”

“우주인이 있나 봐요. 아니, 명왕성인이겠네.”

“글쎄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람 흔적은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선생님, 제가 만져봐도 돼요?”

“아, 그래 네가 플루트를 잘 불지. 네가 한번 살펴보거라.”

음악을 좋아하는 세희가 피리를 건네받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잘 살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피리를 잡고 입에 조심스럽게 갖다댄다.

그 뒤 세희는 조심스럽게 입으로 살짝 불어보았다.

삐리리리―.

세희는 얼른 손을 뗐다. 그러더니 다시 살며시 분다.

삐리리리리―.

이번에는 피리의 구멍마다 손가락을 올려놓고 음을 맞추듯 하나하나 손가락을 떼었다 눌렀다 하며 불어본다. 그럴 때마다 피리에서 나오는 소리가 참으로 맑고 고왔다. 투명하고 맑은 호수처럼, 밤하늘에 퍼져 있는 잔잔한 뭇별들처럼 맑고 고운 음들이 피리에서 흘러나왔다.

잠시 뒤 세희는 음들을 모두 테스트했는지 이번에는 간단한 아기 동요 한 곡을 불어본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 음이 너무 고왔다. 게다가 어딘지 하늘이랑 호수에 떠 있는 별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듣기에도 좋았다. 세희는 그 동요 말고도 이것저것 조금씩 불어보더니, 마치 본격적인 연주를 하려는 듯이 작은 바위 하나에 걸터앉고 자세를 바로 한다. 그리고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피리에 입을 갖다댔다. 그러고 나서 흘러나오는 노래…….

“모차르트야…….”

선생님이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은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가늘면서도 아름답게 흘러나오는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너무도 고운 소리. 별들만큼이나 반짝이는 소리. 가슴을 아련하게 하는 소리가 호수 위로, 하늘로, 우주로, 별들 사이로 울려 퍼져나갔다.

아이들은 모두 그 소리에 취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리를 부는 세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한 아이가 소리쳤다.

“저기를 봐요!”

갑자기 피리 소리가 끊어지고 모두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랬더니…….

밤하늘 저 멀리, 자잘하게 흩어져 있는 별들 사이에서 정말로 무엇인가가 나타난 것이다. 흰색의 물체.

“선생님, 저것 봐요!”

“저게 뭐야?”

“별인가?”

“아냐. 조금씩 커지는 것 같은데?”

“응, 정말.”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흰 점으로 보였던 것이 점점 커지는 것이었다.

“선생님, 어떻게 해요? 누가 오나 봐요.”

“우주인이면 어떻게 하지? 우주선 타고 오는 우주인.”

“아냐. 잠깐만……. 저, 저건……?”

“와―!”

“우리 쪽으로 오고 있어요!”

정말이었다. 그 흰색 물체가 아주 빨리 커지면서 쏜살같이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요, 선생님?”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잠깐만. 잠깐 기다려 봐. 저건 우주선이 아니라 새 같은데……. 날개가 있는 것 같아.”

그러자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정말 날개가 있어.

도망가야 되는 거 아냐?

버스에 탈까?

나쁜 놈들이면 어떻게 해…….

아이들이 그렇게 한마디씩 하는 중에도 그 하얀 물체는 점점 커져서 이제는 형태를 확실히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날개 달린 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마리였다. 커다란 날개를 양쪽으로 활짝 펴서 펄럭이며 쏜살같이 달려오는 백마들. 게다가 좀더 가까이 다가오자 그 말 등에 누군가가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들은 선생님 뒤로 가서 숨으며 소리쳤다.

“선생님, 도망쳐요! 버스로 가요!”

이제는 선생님도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 뒤로 돌아서서 아이들을 붙잡고 버스 쪽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선생님!”

그때 아이들이 합창하듯 소리친다.

선생님이 얼른 다시 돌아다보았다. 그러자 날개 달린 커다란 흰색 말 하나가 바로 앞에서 내려앉는 것이었다. 두 선생님은 아이들을 껴안았다.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모두 도망칠 생각은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말에서 한 남자가 펄쩍 뛰어내렸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은색 머리칼이 찰랑찰랑 흔들리며. 그리고 그 몸은 흰색 갑옷 같은 것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서는 은빛이 비쳐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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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뒤를 이어 다른 흰색 비마들도 내려앉았다. 모두 몇십 마리는 되어 보였다. 그 말에서도 남자들이 내렸는데, 모두 흰색 갑옷과 투구를 쓰고 있었으며, 흰색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에서도 은색 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말에서 내린 남자들은 제일 먼저 내린 남자 뒤에 가서 섰다. 허리에는 큼직한 칼을 차고 있었고, 등에는 긴 창이 꽂혀 있었는데 모두 머리에 옛 로마 병사들처럼 흰 닭 볏 같은 깃털이 달린 투구를 쓴 채 근엄한 얼굴로 아이들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제일 먼저 내린 남자는 꽤 젊어 보였는데, 얼굴은 귀공자같이 생겼으면서도 강인한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귀공자 남자가 뒤로 돌아서서 다른 남자들이 내리는 것을 모두 확인하는 것 같았다. 남자들 뒤로는 백비마들이 콧김을 내뿜으면서 머리를 아래위 또는 옆으로 흔들어대면서 날개를 접고 있었다. 그러나 날개를 완전히 접지는 않고 사람들이 올라타면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듯 날개를 반만 접은 채 천천히 흔들면서 발을 구르고 있었다.

닭 볏 투구들 중에서도 더 화려하고 큰 닭 볏을 단 한 남자가 제일 먼저 내린 젊은 남자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두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곧이어 젊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이들 앞으로 다가왔다. 너무도 눈부신 모습을 지닌 그 남자가.

아이들과 선생님은 모두 황홀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가 선생님 앞으로 와서 입을 열었다.

“실례합니다만, 이곳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와서 내렸습니다. 피리 소리였는데, 혹시 누가 불었는지 아시는지요?”

남자는 아주 정중했다. 그리고 그 얼굴은 환하면서도 어딘지 슬픔 같은 것이 깃들어 있었다.

“쟤가 분 거예요.”

한 아이가 나서면서 세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세희가 그때까지 등 뒤로 감추고 있었던 은색 피리를 내보였다.

“아…….”

남자가 신음소리를 냈다.

모두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세희 앞으로 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얼굴은 비통한 모습이었다.

“꼬마 아가씨, 이 피리 어디에서 난 거지? 아가씨 것인가?”

세희는 겁먹은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으면서도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니에요. 여기에서 주웠어요.”

세희는 이렇게 대답하며 피리를 내밀었다.

남자는 피리를 받아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고개를 푹 숙인다. 그 순간 세희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숨만 죽이고 있었다.

잠시 후 남자가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더니 피리를 다시 세희에게 주며 말했다.

“피리 말고 다른 것은 없었니?”

“아무것도 없었어요.”

배 선생님이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그 피리를 발견하게 된 경위를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지구에서 왔다는 말은 뺀 채 이 근처의 호수를 찾아다니다가 발견했다고 말한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남자는 일어나서 선생님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 피리는 제가 사랑하던 카이나 공주님이 불던 것입니다. 공주님이 이곳에 오랫동안 유배되어 있었는데 제가 오늘 구출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런데 공주님은 없고 이 피리만 남았군요.”

남자는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부탁입니다만, 그 피리를 저에게 주실 수 있나요? 공주님을 찾아서 돌려드려야 합니다. 공주님과 저는 결혼하기로 약속했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서로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공주님을 찾아 여기에 왔는데 저 멀리에서 이 피리 소리가 들리더군요. 그래서 저는 아직도 공주님이 여기 혼자 계신 줄 알고 더 급히 달려온 겁니다. 그런데…….”

남자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슬픈 표정으로.

그때 남자 뒤에 서 있던 큰 투구의 남자가 슬픈 남자에게 다가왔다.

“왕자님, 시간이 없습니다.”

슬픈 남자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자 세희가 슬픈 남자에게 다가가 피리를 내밀었다.

왕자라고 불린 슬픈 남자는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공손히 피리를 받으며 말했다.

“내가 기필코 카이나 공주님을 찾아서 이 피리를 전해 주마. 공주님이 우주 끝에 있다 해도 꼭 찾을 거야.”

왕자는 이렇게 말한 뒤 주머니에서 작은 펜던트를 꺼냈다. 은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펜던트였다. 그것을 세희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펜던트는 공주님이 나한테 준 선물이란다. 너한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주마. 이것을 잘 간직하거라.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다. 그때는 카이나 공주님과 함께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왕자는 일어섰다. 그러면서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느 별에서 오셨습니까?”

“네, 지구에서 왔습니다.”

“오, 지구? 그런데 나도 지구에는 몇 번 다녀왔는데 옷이 많이 달라졌네요. 그새 그렇게 많이 변했나……?”

“언제 오셨는데요?”

“글쎄……, 가장 최근에 간 것이 한 50만 년 전인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세상이 참 많이 변했나 봅니다.”

“…….”

선생님이 멍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가운데 왕자는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이 타고 온 말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호위병사들로 보이는 함께 온 사람들이 모두 말에 올라탔다. 뒤이어 왕자도 자신의 말에 훌쩍 올라탔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아이들에게도 들렸다.

“흠, 페가수스가 아니라도 꽤 괜찮은 녀석인데……. 공주님을 찾으면 이 녀석에게 타시라고 해야겠어…….”

뒤이어 백마들은 날개를 활짝 펴고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왕자는 곧장 날아가지 않고 아이들과 선생님 쪽으로 날아와 하늘에서 한 바퀴 빙 돈 다음 손을 번쩍 들어올린 뒤 다른 병사들 쪽으로 말 머리를 돌리고 날아갔다.

왕자님과 병사들이 탄 백마들은 순식간에 밤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선생님과 아이들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제15화/최종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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