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카페 | 열 번째 이야기
먼옛날 오랜옛날 여수와 호랭이가
한마을 담장사이 어려서 소꿉장난
얘너는 나무꾼하고 나는나는 각시다
코흘려 자라다가 각시는 시집가고
나무꾼 홀로남아 빈달만 쳐다보니
가슴팍 정한가운데 시퍼렇게 멍들다
호랭이 가슴답답 손으로 쥐어뜯다
가죽이 벗겨져서 홀라당 알몸남아
한밤중 고추가리고 벌판으로 달리다
때마침 밤비내려 온몸이 흠뻑한데
시커먼 밤하늘에 무지개 떠올라서
무작정 기어오르니 어디선가 까르르
무지개 꼭대기에 여수가 홀로앉아
밤하늘 별실모아 꽃신랑 예복지어
수줍은 미소지으며 두손으로 내밀다
그날밤 호랭이는 여수손 마주잡고
은하수 건너건너 온밤을 쏘다니다
새벽녘 동틀무렵에 샛별되어 . . . . .
차 한잔의 카페 | 열 번째 이야기
☼
여우비가 내렸다. 해가 높이 떠 있는 청명한 하늘에서 갑자기 비가 쏟아진 것이다. 그냥 지나가는 비가 아니라 폭우같이 퍼붓더니 금방 그친다.
“뭐여, 이게?”
“하늘에서 웬 날벼락이여?”
“이 근처에 높은 빌딩도 없는데……. 누가 물 뿌린 것도 아니고…….”
“호랭이 김매나?”
“호랭이 김매는 게 아니라 호랭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하는 거여.”
“그래도 호랭이는 맞혔잖어.”
“장허이.”
노인들 10여 명이 정자에 둘러앉아서 투덜거린다. 등에 ‘우리동네환경지킴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노란 조끼를 입은 분들이 온몸이 비에 젖은 채 맨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마디씩 하는 것이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넓은 공원의 쓰레기들을 줍기 위해 열 명 남짓 되는 어르신들이 커다란 비닐봉지와 또 기다란 집게를 들고 나왔다가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온몸이 흠뻑 젖고 말았다. 하필 나무도 별로 없이 잔디만 잘 가꾸어져 있는 넓은 공원에 나와 있었던 탓에 비를 몽땅 맞은 것이다. 그런 뒤 그 근처에 지어진 정자에 몰려가서 모자나 조끼, 바지 등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그런데 여우도 시집가남?”
“뭔 소리여, 그게?”
“여우가 시집가면 멀건 대낮에도 비가 온다잖어.”
“여우가 시집가는 날 비 오는 게 아니라 비 오는 날 여우가 시집가겄지.”
“거꾸로 같은데?”
“맞어, 맞어.”
“아니, 그럼 국수 먹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님?”
“각자 먹든가. 원래 우리가 그렇게 하기로 했잖어.”
“난 밥이 더 좋아.”
“그럼 밥 먹어.”
“국은?”
“어디에 있겄지.”
“무슨 말들을 하는 거여?”
“호랭이가 장가간대여.”
“아니, 아까 벌써 장가갔던 거 아녀?”
“그럼 그 호랭이하고 이 호랭이하고 다른겨?”
“무슨 호랭이가 그렇게 많어?”
“두 마리뿐이구먼 뭐.”
“그럼 나머지는 다 어디 갔담?”
“뭐가 남기는 했어?”
“잔치했다니까 뭣 좀 남기는 했겠지 뭐.”
“혹 국수 같은 거?”
“호랭이 얘기 하지 않았었나?”
“그건 호랭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고.”
“호랭이도 담배를 피워?”
“아니, 호랭이표 담배.”
“그게 뭐여? 그런 것도 있었어?”
“앞으로 나온다나 봐.”
“앞으로 나온다고? 뒤는 안 나오고?”
“어허, 이 사람……. 쯧쯧……. 앞이 나오면 뒤가 왜 안 나오겠어?”
“시방 뭔 소리 하는 거여?”
“저 양반한테 물어봐.”
“뭘 물어?”
“아무거나.”
“어이, 교장 선생님, 이 양반이 물어보라는데 뭘 물어봐야 하는 거여?”
“아, 제가 필요하면 연락 드릴게요.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댁에 돌아가셔서 잘 쉬시고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아니, 그런데 여우는 시집을 간 거여, 안 간 거여?”
“에구, 호랭이는 또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겄네.”
“아, 그러지 말고 여우하고 호랭이하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연을 맺어줘. 그럼 되잖어.”
“그거 좋네. 아이디얼이 아주 좋았어.”
“아이디얼이 아니라 아이디어.”
“아녀. 아이디얼이 맞어. 아니, 다이얼인감…….”
“다이얼 비누?”
“이 사람 무식하긴. 다이알 비누!”
“그럼 오늘 다이알 비누가 시집간겨?”
“그렇다나 봐.”
“거 참 신기하네. 멀건 대낮에 비가 오면 여우랑 호랭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줄 알았더니, 요즘은 신식이라 다이알 비누가 시집을 가네.”
“늙으면 죽어야 한다니까.”
“뭔 소리여?”
“호랭이가 늙어서 죽었다잖어.”
“집에 가, 집에. 당최 무슨 말들을 하는지 통 모르겄어. 머리가 아퍼.”
“호랭이기름 발라.”
“어디 있으면 줘봐.”
“여우 시집보낼 때 죄다 줘서 보냈지 뭐.”
“잘했네 그려.”
“암, 잘했지.”
“잘했군, 잘했어.”
“…….”
김 교장은 자원봉사자로서 이 노인들과 함께 공원 등을 다니며 사진도 찍어주며 청소한 내역 등을 정리해서 기록해 둔다. 그러나 그 내용을 구청 등 정부기관에는 전혀 알리지 않고 있다. 그저 뜻 있는 동네 노인들이 모여 운동도 할 겸해서 자신들이 사는 곳 근처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에게서도 찬조금 등을 받지 않고 모든 경비는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들 각자가 알아서 해결한다. 그리고 회장이니 하는 체계적인 조직도 없이 그저 총무라는 사람이 카톡으로 필요할 때마다 모이십사 연락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총무가 바로 김 교장이다. 김 교장이 총무가 된 것은 이분들 중에서 가장 젊기 때문이다. 김 교장의 나이는 70대 초반. 이 모임에서 김 교장의 바로 윗분은 70대 후반이다. 나머지 분들은 연세가 모두 그 위다.
“교장 선생님이 제일 막내라서 고생이 많소. 궂은일 다 맡아서 하시고.”
사람들은 이렇게 김 교장을 위로하지만, 실제로는 김 교장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 적당한 때에 단체 카톡방에 모이십사 하고 연락만 하면 된다. 한 달에 두 번꼴로. 김 교장은 교직생활을 은퇴한 뒤 별로 할 일도 없어서 동네 어슬렁거리다가 이분들을 알게 되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꼭 밝혀둘 일이 있다. 이 모임에서는 개인적인 일은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경조사를 포함해서. 그래서 자녀들이나 손자들 결혼 등은 물론 본인들 부고도 알리지 말자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모이자고 연락을 했는데 누군가가 안 나오면 그뿐이다. 돌아가셨어도 할 수 없다. 누가 대신 알려주면 몰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일은 절대로 알리지 말자고 처음부터 약속했다. 그거 다 남들에게 부담 주는 짓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동네 청소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품도 자신들이 알아서 마련한다. 점심 도시락이나 간식까지도 각자가 해결하기로 했다. 남의 것은 절대 사오지 말기. 자기 것만 알아서 챙겨오고, 깜빡 잊었으면 굶거나 알아서 해결하거나 하고. 이렇게 해야 서로 부담이 되지 않고, 또 깔끔해진다는 것이다. 다만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 총무가 된 김 교장이 단체 조끼만은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좀 넉넉히. 새로 들어오는 분들한테도 나누어줄 수 있도록. 이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다들 열심히 나와서 동네 청소를 한다.
참, 그리고 이 제안은 이 일을 처음 시작한 90대 어르신이었다. 몇 개월 전에 바로 지금 앉아 있는 정자에서 그 어르신이 이 근처에 모여앉아 있는 노인들에게 이렇게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 김 교장 역시 그 자리에 있어서 참여하게 되었다. 총무로서. 그러나 총무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참여하고 싶은 분들 전화번호를 받아서 단체카톡방으로 연락만 하면 된다. 그러면 여건이 되는 분들만 나오시는 것이다. 안 나오시면 그럴 만한 일이 있거나, 아니면 돌아가신 것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좀 야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도 그동안 거의 90퍼센트 이상 나오셨고 또 돌아가신 분도 없다.
모여 있는 노인들 중에서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분이 옷에 아직 남아 있는 물기들을 손으로 툭툭 털며 일어섰다.
“자, 다들 일어납시다. 집에들 조심해서 가시고요, 다음에 우리 막내인 총무 교장 선생님이 연락하시면 적당히들 빠지고 알아서들 나오십시다. 혹시 본인 사망으로 못 나오실 분 있으면 손 들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