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 여름
1
“트위스트! 울리불리!”
대천 해수욕장 대형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요란하게 울려나오고 있었다.
해수욕장 남쪽으로 난 둔덕을 넘으면 마을로 이어지는 풀밭 길이 나오고, 그 중간중간에 민박집이 흩어져 있었으며, 그곳에서 좀 더 들어가니 대천 파라다이 호텔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말이 호텔이지 허름한 3층 여관 건물을 사들여 급히 페인트칠하고 조잡한 현수막까지 내걸어 겉만 그럴듯하게 보일 뿐이었다. 사실 그럴듯하다는 말도 과하게 여겨진다. 한눈에 봐도 날림 건물이 확연한데다, 낡고 오래되고 여기저기 벽에 금이 간 것을 급하게 땜질한 것이 멀리서도 보였기 때문이다. 페인트도 칠하기는 한 모양인데 분홍색, 연두색, 연푸른색 세 가지를 번갈아 가며 위에서부터 아래로 주욱죽 내리그은 것처럼 발라놓아 유치원 아이들이 도화지에 물감으로 마구 칠해 놓은 느낌이었다. 호텔 입구에 내걸린 현수막의 신장개업이라는 글씨도 마구잡이로 흘려쓴 것이어서 영업을 할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해수욕장이 개장을 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어서 동네는 좀 한가한 편이었으며, 모래사장 주변에 설치한 대형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요란한 음악만 빈 휴양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예, 좀 후지죠? 하지만 두고 보십쇼. 이 후진 곳에 이 동네뿐 아니라 전국 양아치들 전부 모여들 겁니다. 원래 후진 놈들은 후진 곳으로만 모인다니까요. 일부러 이렇게 후지게 해놓은 겁니다. 딱 보면 후진 놈들만 올 것 같지 않아요? 후진 것들이 뭐 양지 좋아하겠습니까. 양반님네들은 저쪽 비까비까하는 곳으로 가라고 하고, 여기 후진 데서는 후진 놈들끼리 후지게 신나게 놀아봐야죠. 그리고 힌트 하나, 여기는 방값이 다른 데 반입니다.”
이게 바로 팔덕의 영업비결이었다.
하! 서울 변두리로만 돌며 남 등쳐먹던 우리의 팔덕이 3년 만에 이 대천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왜 ‘파라다이스’로 하지 않고 ‘파라다이’라 했냐고요? 유일무이란 말 아시죠? 어떤 영어쟁이가 그러더러고요. ‘스’가 들어가면 복수가 되니까,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호텔을 만들고 싶으면 ‘스’를 빼라고요. 파라다이, 대천 파라다이 호텔. 어떻습니까, 그 이름? 발음이 말하다 만 것 같아서 좀 허전합니까? 그게 바로 비결이죠. 여운이 남는 것. 우리는 좀 특색 있는 거 좋아하거든요. 저 건너편 홀에 당구대 들여놓을 건데, 나중에 와서 한 큐 하시겠습니까?”
팔덕은 씨익 웃으며 뒷짐을 진다.
“돈? 아 예, 제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런 건물을 사겠습니까. 아무리 후져도 호텔은 호텔인데. 안 그래요? 평택 회장님이 이걸 딱 사서 저한테 맡겼죠. 제가 좀 수완이 있거든요. 회장님이 저를 알아본 거죠. 며칠 있으면 내려오실 겁니다. 저희 회장님이 여기 대천 사장님에게 다 말씀드렸다고 하던데요. 자,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자 자…….”
팔덕이 손을 내밀고 ‘자 자’ 해가며 험상궂은 뚱보를 건너편 홀 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것도 말이 홀이지, 프런트 옆에 싸구려 나일론 커튼을 쳐놓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조그마한 공간에 먼지투성이 의자와 지저분한 식탁 몇 개 갖다놓은 곳일 뿐이다. 뚱보 뒤로는 대천 터줏대감 대칠이파 똘마니, 아니 쫄따구, 아 아니, 건달 둘이 따라붙어 있었다.
팔덕은 포마드 바른 머리칼을 올백으로 착 넘기고, 눈부실 듯 새하얀 와이셔츠에 하늘색 조끼, 흰색 줄무늬 들어간 짙은 감색 바지에 반짝반짝 빛나는 백구두로 화려하게 무장하고 있었다. 빨간 나비넥타이를 더했으면 더할 나위 없는 모습이었겠지만 어쩐 일인지 목만은 미지의 세계처럼 빈 공간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갓 스무 살밖에 안 되어 보이긴 했으나 요리조리 굴리는 눈망울은 그 속에 담긴 어둠의 세월이 짧지 않았음을 짐작케 해주고 있었다.
팔덕은 홀에 들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지저분한 수건으로 의자들을 쓱쓱 닦고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식탁은 손가락으로 쓰윽 문질러 본 다음 안 되겠다 싶었는지 저쪽으로 밀어놓았다. 그리고는 의자 하나를 들고 와서 뚱보 앞에 놓았다.
“앉으시죠. 아직 준비가 덜 되어서요. 직원들이 룸 청소하느라 좀 바빠서…….”
팔덕은 씨익 웃으며 말한다. 뚱보가 손을 저었다.
뒤따라 들어온 건달 하나가 의자 쪽으로 가서 앉는 곳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쓸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좀 있으면 우리 꼰대 올 건대 환경미화 좀 해야지……?”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밖에서 프런트를 탁탁 치는 소리가 들렸다.
“왔나 보네.”
건달 하나가 커튼을 젖히고 프런트 쪽으로 나간다. 잠시 떠들썩한 소리가 나더니 서너 명이 몰려서 오는 소리가 났다.
대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커튼을 들치고 들어오면서 인상을 쓰고 코를 킁킁거린다. 이 사람이 바로 대칠이파 두목 백대칠이다. 검은 양복과 검은 넥타이, 그리고 검은 중절모가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모습. 그러나 사분오열되어 있던 대천의 지하세계를 얼마 전 천하통일한 인물이다. 평택 회장 말로는 겉보기에는 그럴듯해도 속은 좀 맹한 구석이 있다고 한다. 대천에서는 백 사장으로 통하며 평택 회장과 형님아우 부른다고 한다.
“뭐야, 왜 이렇게 지저분해?”
백 사장이 이렇게 말하자 홀에 남아 있던 건달이 의자 쪽으로 손을 내민다.
백 사장은 의자를 쳐다보더니 눈살을 찌푸리고는 그대로 선 채로 손을 들어올려 엄지로 뒤쪽을 가리킨다. 뒤이어 들어오는 한 건달이 얼굴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어, 얘 왜 이래?”
안에 있던 건달이 다가가며 묻는다.
“저 놈이나 의자에 앉혀라. 다 죽게 생겼다.”
백 사장이 혀를 끌끌 차며 말한다.
얼굴엉망이 의자로는 가지 않고 선 채로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인다.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퍽 힘든 모습이다.
백 사장이 제일 나중에 들어온 건달 A에게 말한다.
“네가 자세히 설명해 봐라. 나도 좀 들어야겠다.”
건달 A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노마가…….”
백 사장이 끼어들어 나무란다.
“그 노마가 뭐야? 사투리 쓰지 마. 사투리는 너희 동네 가서 쓰고 표준말 써서 말해 봐.”
건달 A. “아 예, 그니까 가가 가를…….”
백 사장이 담뱃불을 붙이면서 웅얼거리듯 말한다.
“앞에 가는 누고, 뒤에 가는 누고? 아이그, 나까지 전염됐네. 앞에 가는 누구고, 뒤에 가는 누구냔 말이야? 이 등신아!”
건달 A가 더듬거리듯 말을 잇는다.
“그 가가…….”
“가가가가가 뭐야? 가나다라마바사 배우냐? 여기가 한글학당이야?”
백 사장이 건달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난 이놈이 하는 말 통 알아먹을 수 없으니 누가 통역해 봐라. 속 터진다.”
모두들 눈만 껌벅거리자 백 사장이 다그친다.
“야, 누구 이놈 말 통역해 줄 사람 없어?”
그러자 건달 B가 다시 나선다.
“그러니까, 에……. ‘가가 가를’에서 앞의 가는 거시기고, 뒤의 가는 거시기인데…….”
백 사장이 손으로 막으며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뭐하는 거야? 가는 뭐고, 거시기는 또 뭐야?”
“아니 저, 제가 좀 거시기해서…….”
“야야야, 저놈이 가가가 하는 거나 네가 거시기거시기 하는 거나 뭐가 다르냐? 아이고, 골치 아파.”
백 사장이 손을 내밀어 흔들며 모두에게 다시 말한다.
“너희들 앞으로는 꼭 표준말 써, 알았지? 가가가나 거시기거시기나…….”
그리고는 갑자기 두 사람에게 손가락질했다.
“너희 따뜻한 남쪽나라에서는 그런 말이 정답게 들리냐? 거기에서는 가가가 하면 다 알아듣고, 거시기거시기 하면 다 들어먹어? 신기하다 신기해. 가가가가, 거시기거시기, 씨×!”
고개를 숙이고 서 있던 건달 C가 끙끙거리며 신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팔덕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말한다.
“제가 병원으로 모셔다 드릴까요?”
대천제일의원으로 주르르 몰려간 건달들. 대기실에 있었던 환자들이 모두 슬금슬금 자리를 뜨자 건달들이 의자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팔덕이 종이를 몇 장 들고 사무실 같은 곳에서 나오더니 건달들에게 나눠준다.
“뭐야, 이게?” 건달 A.
“뭐꼬?” 건달 B.
“뭔데?” 건달 C.
“뭐래?” 건달 D.
백 사장은 종이를 받지 않고 팔덕을 올려다본다.
“제가 오늘 건강검진으로 모시겠습니다. 사장님께서 저를 직접 찾아주셨는데 제가 잘 모셔야죠. 기왕 여기 병원에 오셨으니 모두 건강검진 한번 받으시죠. 인사드릴 겸 검진비는 제가 내겠습니다. 건강 챙기셔야 합니다. 건강, 아아주 중요하죠.”
이렇게 해서 건달들은 이곳저곳에 앉아 건강검진 기록지에 기입하기 시작했다.
백 사장은 기록지를 들고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옆에 있는 건달에게 물었다.
“야, 먹물, 요기 요 신장, 체중 밑에 있는 영어 뭐라고 읽냐?”
“아, 그거……. 에스 이 엑스 말이죠? 섹스예요.”
“어, 그래……. 색시. 나도 알아, 인마. 그냥 물어본 거야.”
백 사장은 머릿속으로 손가락을 짚어보았다. 흠, 몇 명을 적어야 하지? 박 마담도 넣어야 하나……? 병원에서 뭐 이런 걸 다 물어봐. 호구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에이 모르겠다. 좀 줄여서 적자.
백 사장은 3명이라고 써넣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이 자식들 몇 명이라 적었는지 봐야겠다.
백 사장은 한 건달의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흠, 이놈은……. 어, 이게 뭐야? 남? 뭐가 남이라는 거야? 남……. 남자……. 색시가 남자라고? 아니, 그럼 호모?
“야, 너…….”
백 사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저 돼지같이 생긴 놈이 남자하고 뒹굴며 그 짓을……?
백 사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이고. 백 사장은 머리를 흔들었다. 저거 생긴 것과 달리 먹물 좀 먹었다고 해서 내가 좀 귀여워해 줬더니, 아이그…….
백 사장은 먹물 건달을 노려보면서 쏘아붙인다.
“이거 그렇게 안 봤는데, 이놈 아주 꼴통일세. 너 너무 ××분해, 이 새×야! 너 꼬나박아, 아니 대가리 박아, 아니 아니 머리 박아! 덩치가 아깝다, 이놈아. 보기보다 아주 웃기는 놈일세. 얼른 박아! 그리고 이 새×들아, 표준말 써, 표준말! 씨×!”
“표준말도 좋지만 고운 말부터 씁시다.”
“어쭈? 얘들아, 이놈 지금 뭐라는 거냐?”
“보스…….”
“보스? 차라리 버스라 불러라. 내가 표준말 쓰라고 했지? 우리말 좋은 말!”
“그러면 두목…….”
“두모옥? 지금이 조선시대야? 내가 산적두목이냐고? 사장이라 부르라 했잖아, 사장! (으이그)”
2
팔덕은 병원에서 돌아와 프런트 뒤 홀에 들어가자마자 발로 의자를 걷어찼다.
“저질 새×들!”
여러 번 의자를 걷어찬 뒤에 간신히 화가 풀렸다. 그리고는 씩 웃으며 하늘색 조끼를 툭툭 털고 프런트 쪽으로 나왔다.
“할멈! 아직 안 끝났어?”
팔덕이 계단 위쪽을 향해 소리쳤다. 위에서 뭐라고 대꾸하는 소리가 들린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반은 욕인데도 팔덕은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한다.
“빨리 내려오슈.”
또다시 욕지거리가 위층에서 들려오는데도 팔덕은 그대로 돌아서서 현관 밖으로 걸어나갔다.
밖에는 플래카드가 배배꼬인 채 요란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플래카드를 묶은 끈 하나가 풀어져 나간데다가 잔잔하던 바닷바람이 갑자기 강하게 불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팔덕은 건물 외벽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그러잖아도 대부분의 창문틀이 헐거운 탓에 강한 바람에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몇몇 창문은 위태위태했다.
팔덕은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냥 현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침 그때 계단통에서 쿵쾅 소리가 나더니 심통할멈이 고개를 삐죽 내밀고 마지막 계단을 내려선다. 그 뒤로 외다리 상이군인이 목발을 짚고 뒤뚱거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게 뭔 호텔이야? 방방마다 쓰레기 더미가 (××) 가득하고 천장이고 벽이고 (××) 다 떨어져 나갔어. 창문도 덜컹거리고. (××) 그런 걸 어떻게 나 혼자서 다 청소해? 사람 사서 하든지 (××) 말든지 해. (××) 난 더 못해. (××××)”
여기까지는 그래도 들어줄 만했다.
“(××××) 나 할멈이라 (××××) 부르지 마! (××××) 내가 어디 (××××) 할멈이냔 말야? (××××) 아직 한창인데. (××××××××)”
심통할멈. 이것이 심통아줌마나 심통아줌씨보다는 부르기가 낫다. 그것도 줄여서 할멈. 뭐가 어때서? 사실 심통할멈은 지금 팔덕에게 투덜거릴 처지가 아니다. 팔덕과 야매 수입 반반 나누기로 한 지 무려 1년 만에 양말 빼돌리다 걸려서 공장에서는 경찰에 알리네 마네 겁주고, 철종이라는 거간꾼은 욕심이 나서 단가를 내리는 대신 선불을 주었다가 심통이 걸리는 바람에 양말도 못 받고 돈도 돌려받지 못해 협박과 윽박으로 매일같이 폭격을 해댔다. 더군다나 공장에서는 그동안 빼돌린 금액의 두 배를 물어내라 하고, 철종은 한 술 더 떠서 세 배를 요구했다. 심통이 그동안 짬짬이 번 돈은 화투치고 술 먹고 해서 다 날려 주머니는 늘 비어 있었다. 그러니 심통을 아무리 다그친들 무슨 수로 되갚느냔 말이다. 심통은 팔덕과 함께 저지른 짓이라고 말했지만 공장이나 철종이나 모두 그것은 자기들이 알 바 아니고, 억울하면 억울한 몫을 팔덕에게 알아서 받으라고 했다. 철종은 나중에는 칼까지 들이대며 셋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집으로 갈 것이냐, 골로 갈 것이냐, 콩밥 먹으러 갈 것이냐.
사실 그동안 팔덕은 재미를 많이 보았다. 심통이야 당연히 울상이었고. 자기 몫이 반으로 줄었는데 좋아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줄어든 몫을 채우려고 정품 양말에 손을 대다가 드디어 걸리고 만 것이다. 꼬리가 너무 길고 굵었던 탓이다. 그래도 팔덕과 합작하기 전 1년, 그리고 그 이후로도 1년을 더 끈 것을 보면 심통의 잔재주가 얼마나 잽쌌는지 알 수 있다.
팔덕은 심통이 걸린 것을 알고 처음에는 구경만 했으나, 나중에는 나름대로 속셈이 있어서 심통을 쥐도 새도 모르게 빼돌렸다. 공장 사람이나 철종 쪽 사람이나 모두 심통의 찌글찌글한 사글세방을 감시하고 있었지만 팔덕이 누군가. 그 포위망을 뚫고 가볍게 할마공주를 구출해 낸 것이다. 팔덕은 심통을 구파발 은신처에서 당분간 지내게 하다가 결국 자기 일에 끌어들였다.
수원역 아래 공군부대 근처 세류동에 무허가 판자촌이 있었다. 팔덕은 그곳에 10여 가구를 헐값으로 사들였다. 그곳에서 소위 임대업을 시작한 것이다. 정 선생 통장에서 뺀 돈으로. 그리고 수원 일대 떠돌이들에게 다른 숙박업소의 반값으로 재우겠다고 떠벌이고 다녔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다리 하나가 목발인 상이군인을 고용했다. 자칭 상이군인이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중사 계급장과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군복과 군모를 쓰고 목발 짚어가며 인천상륙작전에서부터 평안북도 초산 전투, 흥남철수는 물론 왜정 때 만주에서 일본놈들하고 육박전 벌이고, 저 남쪽 버마까지 가서 한바탕 정글전도 치르고, 심지어 유럽으로 가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연합군 낙하산병으로 독일군 진지 한복판에 떨어졌었다나 어쨌다나 하며 구라치고 다녔다. 이런 말 죄다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빼빼 마른 체격 어디에서 그런 목청이 울려나오는지 고래고래 소리치며 드러누워 땡강 부리면 아무도 당하지 못했다. 다행히 남의 기물은 부수지 않아서 파출소 들락거리지는 않았지만 말술이어서 앉은 자리에서 소주 마구 입에 부어대면 아무도 당하지 못하고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팔덕은 이곳에서 이름을 바꾸었다. 박지훈. 이름을 이렇게 멋지게 지어놓았으나 사람들은 박쥐라고 간단하게 바꾸어 불렀다. 박쥐, 그러니까 수원 공군부대 옆에서 새로운 날쥐가 설쳐대며 날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 임대사업에 심통이 필요했다. 무허가 싸구려 하숙촌 한쪽 끄트머리에 밥집을 내고 그곳에서도 밥값을 반만 받았다. 식재료는 시장 골목골목 다니며 먹고 죽지 않을 것들을 죄다 그러모아 하루종일 푹푹 끓인 뒤 듬뿍듬뿍 퍼주라고 했다.
심통은 왕십리 친구들에게 걸리면 그 자리에서 결딴나게 되어 있다. 게다가 보아하니 일가친척도 없는 떠돌이 같으니 도망자 신세에 어디 가서 비렁뱅이 짓 하는 것보다는 이곳에서 풀칠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나이에 양갈× 짓도 할 수 없을 테고. 이 점에서는 오랜만에 팔덕, 아니 박쥐와 심통이 의견일치를 보았다.
상이군인에게는 마누라는 일찌감치 어떤 놈팡이와 눈 맞아 도망가고 어린 딸이 하나 남아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박쥐는 없는 것이 뻔한 그 딸에게 갖다주라며 미제 예쁜 물건들을 이것저것 모아와서 종종 건네주곤 했다. 상이군인에게는 밥 공짜, 술 공짜, 잠자리 공짜, 가끔 계집 붙여주면 더 좋고, 딸 선물에 용돈 약간 쥐어주면 그만이었다. 천하무적 막무가내 상이군인을 누가 건드리랴. 그리고 심통에게는 피난처 제공, 숙식제공, 단 월급은 나갈 일 없으니 공짜 노동력에 어디로 도망갈 일 없었고, 더군다나 심통의 입심이 좋아 주변 비렁뱅이 건달들 아무도 상대가 되지 못했으니 상이군인과 합하면 그야말로 좌청룡우백호였다. 따라서 박쥐, 즉 팔덕은 눈치를 봐서 나중에 그 둘을 맺어주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 둘, 즉 상이군인과 심통은 팔덕의 든든한 수하 겸 보디가드가 되었고, 또한 팔덕을 따라서 수원을 거쳐 평택, 대전을 지나 이곳 대천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팔덕은 대천에서 이름을 다시 바꿨다. 남성준. 그러나 사람들은 상상력과 진화론을 적용하여 남성준에서 남생이를 탄생시켰다.
심통할멈은 심통 사납게 평소에는 잘 부르지 않는 이름으로 팔덕에게 복수한다.
“이 남생이 같은 ××야, 저 따위 반병신 하나 붙여줘 놓고 (××) 날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 난 더 못해. 저 반병신은 청소할 생각은 안 하고 (××) 술만 처먹어 대고…….”
심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외다리 상이군인의 우렁찬 목소리가 대천 파라다이 호텔의 로비에 울려퍼졌다.
“씨×× ×의 (××) 예편네야, (××××) 그래서 (××) 내가 (××) 첨부터 (××) 여기 (××) 오지 (××) 말자고 (××) 했잖아! (××) 싫다는 (××) 나 (××) 억지로 (××) 데려와서 (××) 일만 (××) 죽도록 시켜 (××) 먹으려 (××) 드는 (××) 거야? (××) 나 (××) 지금 (××) 당장 (××) 수원으로 (××) 올라간다. (××) 딸네미가 (××) 기다린단 (××) 말야! (××××)”
아이고, 이 분은 심통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되면 남생이, 즉 팔덕이 자기 20년 인생 중 몇 안 되는 대실수 중 하나인 이 두 사람 맺어준 것이 한이 맺힐 정도가 된다. 그러나 어쩌랴. 안고 가는 수밖에.
3
3년 전, 인희는 팔덕을 따라 구파발에서 나와 우체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팔덕이 손금고에서 가져온 얼마 안 되는 돈, 그러나 인희에게는 꽤 큰 금액을 체신환으로 해곶으로 부쳤다. 인희 이름으로. 물론 팔덕은 그 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너 그동안 돈도 못 벌고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 내가 대신 네 할머니한테 돈을 부칠게……. 아냐 아냐, 나한테 미안해 할 것 없어. 나 때문에 너 서울 올라와서 고생만 했잖아. 이거 사실 그동안 네가 받았어야 할 돈이야. 내가 말했잖아, 그 사람들 모두 나쁜 놈들이라고. 말만 번드르르 하게 하고 돈은 안 주려고 하는 거야. 믿지 마, 그놈들.”
팔덕이 이렇게 다독이듯이 말하는 동안 인희는 시무룩하니 고개를 반쯤 떨구고 있었다. 인희로서는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지금 자신이 팔덕에게 이렇게 이끌려 다니는 것이 옳은지 그것도 판단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정 선생이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팔덕에게 그 편지를 가져가게 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절대로 빼앗기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아무리 곱씹고 곱씹어 봐도 자신의 행동이 어리석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그 편지를 돌려달라고 해보았었지만 팔덕은 읽어볼 필요 없다고 했다. 읽어봤자 그 사람들 그저 말로만 인희를 아끼겠다는 것이지 그들이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돈 한푼 안 주고 일만 시킨 사람들이 정 선생 편지를 읽는다 해서 갑자기 마음이 변하겠느냐고 했다. 대신 앞으로는 팔덕이 인희를 지켜주겠노라고 했다.
인희는 팔덕을 잘 모른다. 해곶에서 팔덕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욕을 많이 했다. 뒤에서. 그러나 그 앞에서는 아무도 거친 말을 하지 않고 오히려 피하기만 할 뿐이었다. 팔덕은 그런 모든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이나 일들을 거침없이 했다.
팔덕이 인희에게 서울로 가자고 했을 때 물론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팔덕이 찾아왔을 때는 마음이 달라졌다. 해곶에 그냥 있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벽은 누렇다 못해 거의 시커멓게 변한 신문지가 그나마도 거의 다 찢겨나갔고, 처음에는 누런 황토색이었을 벽이 썩은 듯이 칙칙한 색으로 드러나 있었다. 구들이나 창호지 문이나 다 깨지고 찢기고 덧붙이고 해서 성한 곳 없었고, 오랫동안 바꾸지 못한 초가지붕에서는 뱀도 기어나오고 지네도 달려가고 했다. 쥐는 밤이나 낮이나 방 안을 제집처럼 돌아다녔다. 그런 곳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인희가 해곶에 그냥 남아 있었다면 사정이 좀 피었을까? 인국도 아직 철이 없고, 알고 느껴도 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할 뿐이지 인희와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인국이 인희 나이였다면 팔덕이 다가와서 서울로 가자고 하면 인희처럼 따라나서지 않았을까?
인희가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팔덕의 속을 모를까. 팔덕이 결코 선량하지도 않고 남들에게 선의를 베풀지도 않을 것이란 사실은 나이와는 관계없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희는 따라나서기로 작정했다. 그곳에 더 있어 봤자 나아질 것은 없다. 배곯고 희망 없고 낮도 어둠처럼 살아야 하는 그 썩은 움막 같은 집, 거기에 어떤 미래가 있을까? 인희에게는 팔덕의 말 중에서 오직 한 가지만 귀에 들어왔다. 돈 벌 수 있다는 것.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무섭고 떨리기도 했지만 돈만 벌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서울로 올라오니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먹고 자고 입는 것은 걱정 없었으나 돈은 벌지 못했다. 차라리 덜 먹고 덜 자고 덜 입어도 돈만 준다면 그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인희로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해 보면 인희에게 돈을 준 사람은 팔덕밖에 없다. 할머니에게 체신환으로 돈을 보내주었잖은가. 자기는 지금까지 한 푼도 손에 쥐어 보지 못했다. 팔덕에게 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팔덕은 인희에게는 희망인 것이다.
팔덕이 가끔 찾아왔을 때 인희는 반갑고도 외로움을 느꼈다. 그 낯선 서울 땅에서 오직 자신이 의지해야 할 한 사람. 아무리 사람들이 팔덕을 욕하고 미워한다 해도 인희로서는 팔덕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팔덕 한 사람밖에 자신의 주위에 없다는 사실에 깊은 외로움을 느낀 것이다. 그밖에 누가 자신의 주위에 있는가.
팔덕 말고 인희가 정 붙였던 사람은 밤다리 할멈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 할머니와 밤이 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 주로 밤다리 할멈이 하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밤다리 할멈이 자신의 옛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면 인희도 울고, 밤다리 할멈이 한탄을 하면 인희도 슬퍼졌다. 그렇게 정들면서 밤을 보내고 낮을 보냈었는데…….
아, 정 선생님. 불쌍한 분. 정 선생님은 인희에게 너무도 많은 슬픔을 주었다. 어제 서울로 올라올 때는 차를 잘못 타거나 내리지 않을지, 길을 잃거나 혹 나쁜 사람들을 만나 어떻게 되지 않을지 하는 걱정이 더 많아 마음이 긴장했던 탓으로 감상에 젖기 힘들었다. 그리고 어젯밤 팔덕을 만난 뒤로는 또 다른 무서움과 걱정, 후회 같은 것들이 자신을 휘감아 정신이 혼란스럽기만 했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팔덕과 함께 창고를 나오면서부터는 눈물이 계속 났다.
어제 정 선생님을 그대로 두고 오는 게 아니었다. 자기도 그곳에 남아서 정 선생님을 지켜주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편지 빼앗긴 것보다 더 후회스러웠다. 정 선생님은 어찌 되었을까? 인희는 보지도 못한 정 선생님 아내의 무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 선생님은 그 무덤에 엎드려서 울었을 거야. 그리고 죽었을 거야. 아, 안 돼! 눈물이 계속 났다. 인희 자기가 옆에 있어서 정 선생님을 위로해 주고 달래주고 함께 울어주고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인희가 그 여관을 나올 때 정 선생님은 인희는 보지 않고 여관방의 천장과 벽 사이쯤을 멍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은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듯 아무런 초점이 없이 흐려 있었다. 인희는 후회가 되었다. 정 선생님 옆에 남아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인희는 생각했다. 자기가 같이 죽더라도 옆에서 정 선생님을 지켜주었어야 했는데. 그것이 못내 아쉽고 후회되었다.
흑!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팔덕이 깜짝 놀라 돌아다보았다. 팔덕이 지금까지 옆에 앉아서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고 있었지만 인희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팔덕이 당황해 하며 등을 두드려준다. 그렇지만 인희의 울음은 그쳐지지 않았다. 흑흑흑…….
한참 뒤 인희는 눈물을 닦고 얼굴을 들었다. 주변은 오래된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눈앞의 나무들 사이로 건너편이 내다보였다. 자그마한 공원 같았다. 나무벤치도 있고 돌벤치도 있고 한쪽 구석에는 낡은 시소가 둘 놓여 있었다. 맞아, 팔덕과 함께 버스 종점에서 내려 정릉이라는 곳 근처까지 온 것이 생각났다. 구파발에서 떠나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이곳에 왔었다. 왜 왔는지는 모른다. 팔덕을 따라온 것이니까.
인희가 낯선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만치 둔덕에서 채송화가 한 무더기 핀 것이 눈에 띄었다. 작고 앙증스러운 꽃들이 가느다란 꽃대 위에 올망졸망 붙어 있었다. 나무 그늘이 저렇게 짙은데 어떻게 피었을까? 인희는 해곶의 뒤란 쪽에 빨강 노랑 분홍으로 수를 놓았던 채송화가 떠올랐다.
인희가 채송화를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린 팔덕이 벌떡 일어나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채송화 한 움큼을 뜯어서 가지고 온다. 인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냥 놔두지……. 인희는 팔덕이 주는 채송화를 받아 코로 가져갔다. 향기는 없지만 꽃들이 정다웠다.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친구처럼 자라온 꽃. 인희는 손끝으로 살며시 꽃들을 쓰다듬었다. 나하고 동무하자, 꽃들아. 죽지 마. 살아야 해. 그늘 속이라도 죽으면 안 돼. 인희는 꽃에게 속삭였다.
잠시 후 팔덕은 가자고 했다. 어디를 또 간다는 거지? 인희는 조심스럽게 채송화를 바닥 풀밭에 내려놓고 힘없이 일어나 타박타박 팔덕의 뒤를 따랐다.
4
인희는 그날 정릉에서 본 채송화를 늘 잊지 못했다. 가느다랗고 연약한 꽃대, 힘없이 벌어진 꽃잎들, 그늘에서 자라 더 가엾어 보였었나? 그날 자기가 버린 그 꽃들을 누가 짓밟고 지나가 버리지는 않았겠지. 그 꽃들을 가져왔어야 했는데. 조심스럽게 손에 들고서. 햇빛을 많이 받으면 생기 있게 변했을 거야. 지금 자기 모습과는 달리 밝게 웃게 되었을 거야. 인희는 보이지 않는 채송화를 따라 저도 모르게 가냘프게 미소 지었다.
그날 팔덕과 인희는 정릉에서 다시 구파발로 돌아갔다. 팔덕은 말없이 앞장서서 걷기만 하고, 인희 역시 고개를 숙인 채 뒤따라가기만 했다.
구파발로 간 인희는 그 창고에서 며칠 더 지내다가 다시 팔덕을 따라서 부천으로 갔다. 팔덕은 그곳의 어떤 공장에 인희가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편물공장이었다.
팔덕 말에 의하면 꽤 큰돈 들여 인희를 그곳에 들어가게 했다고 한다. 그곳 조 계장이라는 사람을 어렵사리 소개받아 인희를 일단 먹고 재워주기만 하고 공장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술값, 밥값, 담뱃값, 용돈 등이 솔솔찮게 들어갔다고 여러 번 말을 했다. 인희는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희 스스로 생각해도 그 어떤 공장에서든 자신을 받아줄 리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도 체격도 수완도 경험도 없는 작은 계집애일 뿐이잖은가.
인희는 자신이 늘 초라하게 느껴졌다. 고향을 떠나와서 자기 스스로 무엇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고 남의 짐만 된 것이다. 때때로 팔덕이 자신을 서울로 데려온 것을 원망스러워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 온 뒤로 자신으로 인해 늘 팔덕이 고생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고도 고맙게 여겨졌다.
“이런 공장들은 지난번 네가 일했던 곳과는 달라. 높은 사람들도 많고 감독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아무도 너한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야. 너만 잘하면 돼. 조금만 참아, 응? 좀 지나면 월급도 많이 줄 거야.”
팔덕은 조 계장을 통해 가끔 연락을 해왔다. 간단한 소식 서로 전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인희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낮은 천장 아래에서 여러 사람이 ‘요꼬’라고 일본어로 부르는 편물기계를 끊임없이 좌우로 움직이며 일을 했다. 그렇게 하루종일 똑같은 일 반복하다 보면 목과 어깨와 팔이 저리고 아팠다. 그러나 인희는 경험도 없고 또 나이도 어려서 실타래 날라다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공장 안에서 인희는 나이가 제일 어렸다. 귀여움도 많이 받았지만 혼나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희를 아끼는 편이었다. 주임이나 계장 등 간부들은 대부분 남자였으며, 반장들은 모두 여자였다. 나머지 공원은 거의 대부분 인희보다는 적어도 대여섯 살 위의 언니들이었다.
세 달 지나서 첫 월급이 나왔다. 쥐꼬리만큼. 그러나 인희는 감격했다. 생전 처음 자기 손으로 돈을 번 것이다. 잠은 공장 기숙사에서 자고, 음식도 직원식당에서 해결했으며, 거기에 돈까지 받았다. 인희로서는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다. 그날 밤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날 반장의 허락을 받아 공장 근처에 있는 우체국에 갔다. 자기가 받은 돈의 반을 해곶으로 보냈다. 나머지 반은 언젠가 팔덕에서 벗어나 혼자 헤쳐나가야 할 때를 위해 모아두기로 했다. 자기 주소는 팔덕이 늘 쓰던 것으로 적었다.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진관외리……. 혹 언제 또다시 이곳을 떠날지 모르기 때문에 옮길 때마다 주소를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주소를 제대로 쓴다 한들 할머니나 인국이 찾아올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찾아와도 안 된다. 지금은. 언젠가 때가 되면 인희 스스로 찾아갈 것이다. 그때까지는 안 된다.
기숙사는 공장 제일 위인 3층에 있었다. 인희는 기숙사에서 순지라는 이름의 얌전한 언니를 만났다. 갸름한 얼굴에 늘 말없이 미소만 짓고 웃을 때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 하는 수줍음 많은 언니였다. 전라남도 흑산도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다 언젠가 지나가는 듯이 흑산도에서도 저 머얼리 떨어진 섬이라고 말을 했다. 공장에서는 다른 구역에서 일했지만, 인희가 처음 공장에 들어왔을 때 순지 언니 옆 침대에 있던 공원이 마침 고향으로 내려가게 되어 그 자리에 인희가 가게 된 것이다. 기숙사는 이층침대로 되어 있었으며, 가운데 통로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침대가 줄지어 있었다. 마치 학교 교실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한쪽은 바깥 유리창, 반대편은 복도로 난 창. 그러나 복도 쪽 창에는 전부 종이를 붙여서 밖이 내다보이지 않게 했다.
순지는 인희의 모든 것을 챙겨주었다. 순지는 바닷가에서 살 때 바닷바람에 얼굴이 많이 탔었지만 공장에서 일하면서 하얘졌다고 웃었다. 인희 역시 해곶 갯벌에서 살았기에 서로 통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둘은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순지는 특히 저녁바다가 좋다고 했다. 바다 멀리서부터 붉은 노을이 퍼져갈 때면 저 먼 수평선에서 바람에 묻어 여러 소식이 전해져 왔다고 한다. 순지는 날마다 다른 소식을 듣느라 한밤중까지 혼자서 바위 위에 앉아 있곤 하는 바람에 많이 혼나기도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무슨 소식일까……. 인희는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인희 자신도 저녁 바닷바람 속에서 여러 냄새를 맡곤 했으니까. 어떤 때는 미역줄기 같은 미끈거리는 냄새, 또 어떤 때는 커다란 고둥 껍데기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은 먼 나라 냄새, 심지어 바람에 묻혀 오는 푸성귀 파릇한 냄새 같은 것을 인희는 맡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저 멀리 어두워 가는 수평선에서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을 스치며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무섭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작은 별 하나둘 하늘에 놀러나오면 반갑기도 하고 무언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이처럼 저녁 해의 잔양 속에는 참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순지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바다, 언덕, 바람, 꼬마별, 은하수……. 그 대신 인희는 순지 언니가 가끔 한숨을 쉬며 간간이 풀어내는 그 이야기들이 좋았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기숙사 어둠 속에서 속삭이며 하는 이야기들 속에서 인희는 고향 해곶을 보았다. 순지 언니의 고운 얼굴빛에서는 할머니의 검고 쭈글쭈글한 얼굴 모습이 그려졌다. 순지 언니의 하얗고 가는 손에서는 인국의 때 묻고 손등 터진 시커먼 손이 보였다. 그렇게 눈물 흘리다 인희는 잠들어 버리곤 했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