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 조작과 음모
1
계지선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한동안 대기업에서 일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정치무대로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정치 경력 2년 차에 인천광역시 시의원에 도전했다가 아슬아슬한 차이로 낙선했다. 계지선이 속한 녹색미래창조당, 줄여서 녹미당은 아직 국회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신생당인데다가 투표일 며칠 앞두고 대형 악재가 터져서, 그러잖아도 인지도가 별로 없는 당과 후보였던 탓에 애초부터 승산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계지선의 개인 이미지가 그런대로 좋았던 덕인지 예상보다는 선전했다. 녹미당의 이전 당대표였던 진재숙 여사의 화려한 남성 편력이 갑자기 도마 위에 올라 투표일 직전까지도 온갖 언론을 도배하다시피 해서 애초부터 승산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에 대해 당과 진 여사는 극구 부인했지만, 사실 그 문제는 이미 이전부터 구설에 올라 있었던 것이고,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었는데 선거철이 되자 경쟁 당에게 공격하기 좋은 소재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던 내용이다.
하지만 계지선은 처음에는 승산이 없다고 여겨졌다가 막판에 기세를 올렸던 탓인지 아니면 덕분인지 1백 표도 안 되는 차이로 낙선한 것에 대해 며칠 밤을 못 잘 정도로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자연스레 진 여사 스캔들이 주요 패인이라고 분석되어 당 내에서는 진 여사에 대한 성토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계지선은 사흘 정도 속을 끓이다가 선거에 대한 일을 툭 털어버리기로 했다. 이미 끝난 일, 끌탕을 해봤자 아무런 아무 소용이 없다. 사실 계지선은 그동안 여러 경쟁 상황에서 아슬아슬한 차이로 앞서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상대방은 심한 좌절감과 심지어 분노도 느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오히려 자신이 덕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아주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당분간은 마치 성장통처럼 힘든 시간이 종종 있을 것이다.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야지…….
이렇게 마음먹고 있는데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처음에는 방송국인지도 모르고 전화를 받았다. 인천에 본거지를 둔 방송국인데, 오후의 한 FM 음악 프로그램에서 공동 호스트를 맡아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가벼운 클래식 음악과 함께 청취자들과 정치와 문화에 대해 전화로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며, 이번 인천 지역선거에서 가장 아쉽게 낙선한 사람에게 색다른 기회를 주고 싶어서 연락했다고 한다.
계지선은 한편으로는 씁쓰름했지만 그것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응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방송에 나가 본 적이 없기에 한편으로는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공동사회라고 하지만, 그래도 사회자의 역할이 만만치 않을 것이니 자신이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사실 계지선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누구하고 말도 잘 섞지 않을 정도로 내향적으로 살았다. 그 뒤 유학을 다녀오면서 다소 사회성이 늘어나긴 했지만, 사실 정치권에서 손짓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성격상 정말로 많은 사람 앞에 나설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었다. 그런데 그 제의를 받고서 사흘을 고민한 뒤 여성복 판매점 전신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응시하면서 마음속으로 중얼중얼 연설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는 순간, 갑자기 마음을 굳히게 되었던 것이다. 그 뒤 자신의 입에서 정치적인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스스로도 놀랐다. 깜짝 놀랐다. 너무 놀랐다. 조금도 의아하거나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고, 마치 태생적 정치인인 양 스스로가 당당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 뒤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청년 여성 100인에 선정되기까지 하자 마음속으로는 대한민국을 정복하고 UN에까지 진출하여 드디어 세계적인 명사가 되는 꿈까지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첫발로 지방 의회에 들어가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던 것이다. 결국 아쉬움으로 끝나긴 했지만. 게다가 정치연설이란 어느 정도 각본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전에 만들어진 원고를 외우다시피 해서 연단에 오르거나, 보좌진에서 늘 방향을 잡아주고, 머릿속으로 미리 구상해 놓은 것들을 적당히 포장해서 내놓거나 하면 대부분의 상황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방송은 다르다. 물론 원고를 미리 만들어 놓고 시작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순발력이 필요하고 또한 미리 많은 자료를 만들어 놓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이러저러한 면에서 다소 꺼려지는 마음이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정치판에 나온 것, 이름이라도 널리 알리려면 방송만 한 수단이 없겠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면서도 승낙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 프로그램에 나간 첫날, 시그널 뮤직이 끝나고 함께 사회를 보는, 그러니까 그 프로그램 고정 진행자가 계지선이 새로운 진행자로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한 청취자가 전화를 걸어 왔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여러 시민들이 전화로 참여해서 실시간으로 의견도 나누고 토론도 하며 중간중간에 음악도 곁들이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시작하자마자 전화가 걸려온 것이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방송을 처음 듣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궁금한 점이 하나 있어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 예,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인가요?”
“혹 개인적인 것을 물어도 될까요? 계지선 씨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계 진행자님, 괜찮으신가요?”
“그럼요, 물론이죠. 말씀하시죠.”
“저, 혹시 계태양이란 분 아시나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곧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야!”
“네……? 무, 무슨……?”
“야, 이 빨갱이 년아, 너는 이제 끝났어! 갈기갈기 찢어버릴 거야!”
“네……? 무, 무…….”
그러나 이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전화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2
방송은 엉망진창이 된 채 끝났다. 계지선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충격을 받아 프로그램 내내 횡설수설하다시피 하면서 방송을 끝내고 말았다.
오피스텔에 돌아온 지선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첫 번째는 너무 황당했고, 두 번째는 방송 내내 횡설수설했던 것에 얼굴이 화끈거려서. 하지만 오늘 같은 상황에서 마음 편히 방송할 사람이 몇 있을까 하고 스스로를 달랬지만, 그러나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첫 방송부터 죽을 썼으니 아마 지금쯤 댓글도 볼 만할 것이다. 방송국에서도 고개를 갸웃할 것이고.
그러나 그러한 것보다 더 지선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은 전화로 퍼부은 말이다. ‘빨갱이 년.’ 도대체 무슨 뜻이지? 지선은 지금껏 공개적으로 활동한 적도 없고,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단 한 번도 빨간색(?) 쪽으로 가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빨갱이 년이라니. 혹 자신이 속한 정당 때문에 그런 걸까? 다른 정당들보다 진보적인 구호를 내세워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자신이 선거운동 중에 한 연설 때문일까? 자신이 한 말 중에서 과격하거나 이념적으로 극단적인 것이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지선을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랬던 걸까? 왜? 무슨 이유로? 계지선이 무슨 중요인물이라도 된다고 생각해서? 아니면 혹 미래에 큰 인물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미리 그 싹을 꺾어놓으려고? 에이, 아서라. 그런 망상은 아예 마음에도 담지 말거라. 에비.
지선은 그러나 마음이 뒤숭숭하고 안정되지 않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빨갱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니 모르면 몰라도 아마 많은 사람, 특히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공격거리가 될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공개적인 활동이 힘들지도 모른다. 수많은 비난, 그중에서도 특히 빨갱이라는 말은 지선의 정치활동에 치명적으로 작용하게 될 수도 있다. 자유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라니. 그렇게 낙인찍히면 정치는 물론 취직이나 정상적인 삶 등등이 극히 힘들어지게 될 테지.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아마 당장 방송국에서도 꺼려 할지 모른다. 주변 친구나 지인, 더 나아가 당원들 사이에서도 기피인물이 될 것이다. 당의 이미지에 큰 누가 될 테니까. 아직 모든 SNS를 다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이미 지선을 향한 끔찍한 공격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특히 경쟁 정당에게는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될 테니까.
그런데 왜 지선에게 빨갱이라고 했을까? 무슨 근거로? 지선에 대해 무엇을 알기에 그런 거지?
지선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주욱 살펴보았다. 적어도 정치판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빨갱이로 오해 살 만한 일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렇다고 진보정당 후보로 사회에 나온 것이 빨갱이라는 말을 들을 만한 빌미가 될 수는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의 국민이 진보정당을 빨갱이라고 부를 정도로 무지하지는 않다. 혹 과거에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녹미당을 미래지향적으로 보고 한국 정치지형에서는 바람직하게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을 포함한 여러 정황을 살펴보건대 지선이 속한 당의 문제가 아니라 지선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문제라…….
지선은 문득 자신이 살아온 길을 더듬어 보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거의 기억이 없다. 보육원에서 자랐다고 하는데, 꿈결 같은 단편적이고도 희미한 몇몇 장면들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그중에서도 어떤 사람, 남자일지 여자일지 잘 모르긴 하지만 어딘지 남자같이 여겨지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승용차 같은 것을 타고 어디론가 떠났던 기억이 흐릿하지만 늘 머릿속에서 맴돈다. 누굴까? 여자인가, 남자인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 유치원에 다니던 밝은(?) 시절부터는 제법 명확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뒤 지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졸업하기 직전에 어디에선가 얻어들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거실 한쪽에서 누군가가 이야기 나누던 것을 얼핏 들어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했지만, 점차 커가면서 머릿속에서 크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지선은 물론 어느 사람도 입 밖에 낸 적은 없다. 지선이 그러한 사실에 대해 혼자만 생각하며 어딘지 우울하게 있으면 주위에서는 사춘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말해 준 경우도 가끔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한때, 지선은 공부에만 몰두하여 중고등학교와 대학 모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정부기관에 취직하여 제법 인재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 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다만, 친부모인지 아닌지 모를 두 분은 지선이 미국 유학 중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돌아가셨다.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가 산길에서 운전 부주의로 낭떠러지 아래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경찰조사에 의하면. 그런데 그 당시 계지선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어서 그 즉시 귀국하지 못하고 열흘 뒤에나 한국에 올 수 있었다.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지선 하나밖에 없었다. 그 탓에 지선은 장례식에 참석지 못한 것을 늘 후회하며 마음의 짐으로 가지고 있었다. 또한 부모님에게는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조차 없어서 다 큰 어른이지만 글자 그대로 천애고아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지선이 빨갱이로 여겨질 만한 요소가 있었을까? 다만 부모님의 과거에 대해서는 지선이 약간 의문스럽게 생각할 만한 부분은 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 일생에서 설명이 안 되는 공백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선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그에 대해 의문을 품거나 고개를 갸웃한 적도 없었다. 늘 외국으로 다니며 일을 하던 아버지에 대해 자랑스럽게만 생각했지 그에 대해 어떤 의문(?)도 가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역시 지선이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가끔 아버지와 함께 외국에 나갔고, 그때마다 신기한 물건들을 사다주는 바람에 늘 가슴이 뿌듯하곤 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유산을 확인하니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서울 근교 신도시의 중형 아파트는 담보대출이 많았고, 금융자산은 거의 남기지 않았다. 게다가 은행과 투자신탁회사 등에 들어 있는 계좌들은 거의 빈 상태였고, 주식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집 안에 값나가는 물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아주 소박하게 살아가면서 딸 하나 뒷바라지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신들 자신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근검하게 살아오신 것이다. 오직 똑똑한 딸 하나 키우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서.
지선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재산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 얼마 안 되는 금액으로 서울 변두리에 조그만 오피스텔을 하나 사서 들어갔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정치 쪽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빨갱이라니……. 게다가……, ‘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 지금껏 ‘년’을 포함해서 어떠한 욕도, 그 비슷한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공개적인 방송에서 그런 말을 들은 것이다. 물론 정치를 하다 보면 뒤에서 여러 가지로 수군거리는 말은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그런 말을 한다거나 듣는다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을까.
계지선은 충남 보령으로 향했다. 승용차 대신 고속버스를 탔다. 인천종합터미널에서 보령종합터미널까지 거의 길이 안 막히고 두 시간 40분 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보령종합체육관까지 갔다. 체육관 앞쪽과 옆으로는 널따랗게 농지가 펼쳐져 있는 가운데 여기저기 주택이 자리 잡고 있어서 평온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지선은 그곳에서부터는 느릿느릿 걸어서 남포저수지까지 갔다. 저수지 한가운데로는 철도가 달리고 있어서 어딘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곳에서 잠시 서서 주변 광경을 둘러본 뒤 지선은 메고 온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어 한 곳을 펼쳤다. 그리고 그곳에 끼워져 있는 사진 한 장을 꺼내들었다.
오래되어 약간은 퇴색한 듯이 보이지만 색감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지선은 그 사진을 들고 눈앞에 보이는 저수지와 철로 등을 비교해 보았다. 거의 비슷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배경으로 해서 찍은 세 사람. 과묵해 보이는 남자와 약간은 마른 듯이 여겨지는 한 여인, 그리고 그 옆에 겁먹은 듯 눈을 크게 뜨고 서 있는 조그만 여자아이. 두어 살 되었을까, 그러나 꽤 귀여운 모습이었다.
“네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지선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날 부모님이 불러서 거실에 갔을 때 한 말이다.
“소파에 앉거라.”
지선은 약간 겁먹은 눈을 크게 뜨고서 어색한 자세로 소파 한쪽에 걸터앉았다.
“편하게 앉아.”
엄마의 말에 계지선은 더욱 어색해졌다.
“지선야…….”
“…….”
“이제는 네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한다.”
“…….”
이때 지선은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게 되었다. 원래의 성은 이씨였다. 이지선. 그러나 친부인 이선학의 부탁으로 계씨 집안에 입양이 된 것이다. 친부는 지선을 친구, 즉 나중에 지선의 아버지가 된 친구에게 입양 보낸 뒤에 행방불명되었다. 친부는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이었으나, 친북활동은 하지 않고 자신의 뿌리를 찾다가 당시 한국의 정보부원인 현재의 아버지를 만나서 자신의 신분을 털어놓고 협조를 부탁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먼 친척뻘 되는 사이였던 것이다.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 이선학의 아버지는 육이오 때 인민군을 도와 미군에게 막대한 타격을 준 이태영이었다. 이태영이 백두부대에 들어가서 잠시 만난 중국어 통역관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그러나 태영은 아들이 태어난 것을 모른 채 백두부대에서 탈영하여 강원도로 향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방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 그 대신 태영의 아들 선학은 북한에서 엘리트로 성장하여 동독으로 유학 갔다가 서독의 한국 유학생들을 포섭하는 임무를 꽤 잘 수행한 덕에 남한으로 잠입해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때 선학은 노동당에서 짝지어 준 배우자와 함께 남한 노동계에 침투해서 여러 작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곧 북한에서 교육받은 것과 남한의 사정이 확연히 다른 것을 깨닫고 방황하다가 가족 모두 일본으로 밀항하려 했다. 그때 이 사실을 눈치챈 북한 당국에서 그들을 제거하려 특수임무조를 내려보냈다. 그러나 남한 정보부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선학을 찾아 보호하려 했지만 그 행방을 알지 못해 고심했다. 그러한 시기에 마침 선학과 함께 동독으로 유학 갔다가 한국 정보부에 포섭되어 전향한 또 다른 인물의 도움을 받아 선학은 한국 내에서 정보부 요원과 접촉한 뒤 남한에서 출생한 딸을 다른 정보부원에 맡기고 어디론가 잠적한 뒤 소식이 끊어졌다. 바로 그 딸이 계지선이었다. 그 뒤 선학 부부는 미국으로 도피하려다가 북한에서 보낸 암살자에게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진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진 바 없다.
지선은 이러한 이야기를 모두 다 듣지는 못했다. 다만 친부모가 다르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을 뿐, 그 이상은 계지선이 어른이 된 다음 알려주겠다는 말만 들었다. 그러나 그 소식은 끝내 듣지 못했다. 양부모가 어느 날 동시에 교통사고로 함께 죽었기 때문이다. 이 사고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기는 했지만 달리 해석할 만한 구석이 없어서 그대로 종결되고 말았다. 장대 같은 비가 오는 날 밤 자정 넘어 한 사거리에서 고장 난 신호등 때문에 차선을 벗어나서 서로 마주 보고 오던 승용차와 정면충돌한 것이다. 이날 양쪽 차에 탄 세 사람 모두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계지선의 부모 모두와 상대방 차의 중년남자 하나. 이 남자는 술에 만취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선이 미국에 유학 가 있을 때였다. 이 사고가 나자 지선은 한국에 와서 한 달간 머무르며 여러 가지를 정리하면서 부모님의 재산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퇴직금과 위로금, 자동차 사망보험금 등을 받아 은행에 예치한 다음 미국으로 다시 가서 학업을 마쳤다.
지선은 양아버지가 정보부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른다. 양어머니 말로는 아버지가 유럽 쪽 담당이라고만 했을 뿐 그 이상에 대해서는 자신도 정확히 모른다고 했다. 원래 정보부 일은 가족도 자세히 모른다고 하며, 알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도 했었다.
양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지선은 한동안 깊은 실의에 빠졌으나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으로 그 상황을 극복했다. 그리고 한국의 큰 기업에서 제의가 들어와 처음에는 그 회사의 미국 지사에서 근무하다가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한 미국 회사의 한국 지사로 옮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한국에 들어온 지선은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청년 100인에 선정된 뒤 정치권에서 러브콜을 보내오자 어쩐 일인지 곧바로 받아들여 선거에 나가게 된 것이다.
이제 겨우 20대 중반에 들어선 지선으로서는 정치가 완전히 낯선 세계이긴 하지만 한번 발을 디딘 이상 오지고 당차게 감당해 보자며 각오를 다졌다. 게다가 잘하면 당선될 가능성도 꽤 높다고 판단했다. 당선만 된다면 비록 지방의회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려 정치적 기반을 닦자고 생각했다. 물론 아쉽게도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변에는 강한 인상을 심어준 듯했다. 따라서 좀더 힘을 쏟으면 다음 선거에서는 빛을 볼 수 있으리라 희망하고 있었던 차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빨갱이로 낙인이 찍히면 어떠한 경우든 생존하지 못한다.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매장되고 만다. 그냥 그것으로 끝이다. 혹 미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재기하기가 쉽지 않다. 빨갱이란 딱지 때문에. 그런데 정말로 방송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빨갱이가 되고 만 것이다.
빨갱이. 어떤 뜻일까? 공산주의자? 친북세력? 혹은 간첩? 의미를 많이 축소한다 해도 결국 대한민국에서는 거부 또는 기피 대상이 되는 것이겠지. 기피한다고? 버러지 보듯?
버러지…….
지선은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버러지……. 꿈틀꿈틀 기어나오는 벌레들…….
발에서 기어오르는 벌레. 종아리를 타고 슬금슬금……. 꿈틀끔틀……. 바지 속으로, 속옷 속으로, 윗도리 속으로…….
속이 메슥거린다. 지선은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헛구역질을 했다. 엊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은 게 없어서 나올 것이 없었는데도 계속 신트림 같은 것이 올라오고 목구멍 깊은 곳에서 꺼억꺼억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뱃속은 물론 식도까지도 뒤틀린 듯 속이 난동을 부리는 것이었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