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징 | 사랑의 탄생
고양이 레이저 눈
고양이 영롱한눈 진초록 에메랄드
화들짝 크게뜨고 두눈에 초점맞춰
한구석 찍노려보며 두줄광선 내쏘다
방구석 나뒹둘던 장난감 수호랑이
몸둘곳 찾지못해 질펀히 주저앉자
고양이 쭈뼛수염거두며 몸둥글려 잠들다
1
대통령 관저에서 긴급발표가 있었다. 그러나 발표 전까지 언론에서는 속보 형식으로 온갖 추측성 기사와 뉴스를 내보냈다. 대부분 부분적인 개각이나 북한 또는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반면에 대통령 관저 출입기자와 정부 주변의 각종 소식통들은 외교나 국제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신변에 대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대통령은 건강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가족이나 친인척 하나 없이 홀홀단신 청렴결백 홀아비였기에 대통령 주변에서 특별발표와 관련된 어떠한 가십거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정오 12시 정각. 한 시간 전에 미리 긴급발표에 대한 뉴스가 전국에 나간 뒤라 모든 국민이 관심을 집중한 채 TV 화면으로 시선을 향했다. 광화문 사거리 중심으로 여러 고층건물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대통령의 담화 발표 현장장면이 나타났다. 그러나 뒤이어 등장한 사람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실 대변인이었다. 그 순간 숨죽이고 TV 화면에 시선을 던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일부 성급한 기자들은 ‘대통령 유고’라는 제목을 타이핑해 놓고 막 전송하려 하는 참이었다. 손가락을 버튼에 댄 채 침을 꼴깍 삼키며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대통령께서는…….”
대변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변인은 여기까지 말하고 눈을 들어 시선을 기자들 머리 뒤로 향한 채 잠시 말을 멈췄다. 아니, 말끝을 살짝 흐리는 듯했다.
“결혼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뒷말이 시작되기도 전에 성미 급한 일부 기자들의 손에서 떠난 ‘대통령의 유고’라는 제목의 속보가 TV 자막으로 나오고 외신으로도 타전되고 말았다.
2
어센션(Ascension) 섬. 아프리카 서쪽의 남대서양 한복판에 있는 작은 화산섬. 영국령이며 인구는 800명가량. 3년 전에 두 명의 외부인이 들어와서 인구가 0.25퍼센트 늘었다고 했으나, 작년에 노인 한 분이 타계하는 바람에 또다시 0점 몇 퍼센트 줄어들었다. 면적은 88㎢, 2,662만 평, 간단히 말해서 2천7백만 평 조금 안 된다. 언어야 영국령이니 당연히 영어고. 이 섬에서 남동쪽으로 1,100㎞ 가면 세인트헬레나 섬이 나온다. 나폴레옹이 유배되었던 그 섬이다. 세인트헬레나 섬은 거의 남대서양 한복판에 있어서 영국 해군에게는 아주 중요한 기지가 되고 있다. 해양 대정복 시대에 영국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전략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은 섬들을 많이 차지한 덕에 오늘날 불침 항모를 세계 곳곳의 바다에 건설한 셈이 되고 있다. 어센션 섬은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고 있는 바위섬이다. 섬 한가운데 해발 859m인 그린 산이 솟아 있으며 이 산 정상에서만 약간의 수목이 재배되어 많지 않은 과일 등이 생산된다. 한마디로 불모의 섬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불모의 땅에서도 생존해 나가는 우수한 고등동물이다. 해안은 바람이 거세고 물결이 매우 높으며, 비는 약간만 오는 정도. 그러나 기후는 온화하고 하늘은 매우 맑다. 바다거북이나 검은색 제비갈매기가 종종 찾아와서 섬사람들의 시름을 달래는 정도. 어센션이라는 섬의 이름은 1501년 포르투갈의 위대한 항해가인 주앙 다 노바 카스텔라가 예수 승천 대축일(Ascension Day)에 이 섬을 발견한 데에서 유래한다. 그 이후 무인도로 남겨져 있었으나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된 1815년에 영국군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현대에 들어서서는 1966년 영국국영방송국인 BBC가 이곳에 해외 최초로 해외 위성통신중계소를 세운 이후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19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의 포클랜드 전쟁 때는 영국 항공기와 군함의 연료보급기지로 사용되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 이 섬에는 영국과 미국 공군기지 및 미사일 관측소, 그리고 유인우주선을 추적하고 외계우주를 관측하는 시설이 건설되어 있다. 또한 이 섬에는 원주민은 없이 공군기지에 관련된 사람들만 살고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무인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대한민국 국민에게 가장 관심이 가는 사항은 바로 이 섬 출신의 한 여성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약혼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백인과 흑인, 아메리칸 인디오의 피가 섞인 젊은 여성. 40대 후반인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25살 어리다.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미국 보스턴의 명문음대인 NEC(New England Conservatory) 작곡과를 나오고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남가주대학) 대학원 영화음악과를 졸업한 수재이자 재원(才媛)이었다.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이명학은 야당 시절에 USC에 가서 국제경제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중 그 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안창호 선생 기념관에 들렀다 나오는 중에 한 여성과 몸을 살짝 부딪쳤다. 검은 머리에 약간 피부색 검은 늘씬한 20대. 한눈에 보기에도 백인과 흑인의 피가 섞인 모습. 그러나 어딘지 동양인 느낌도 나고 라틴아메리카 멕시칸 같은 인상도 풍겼다. 하지만 전체 얼굴에는 지성미가 흐르고 있었다. 미인은 아니지만 왠지 끌리는 듯한 모습. 그리고 그윽하고도 순수한 느낌의 맑은 눈. 명학에게는 그 눈이 한없이 깊어 보였다. 그리고 아무도 보는 이 없는데도 갑자기 자기 마음을 들킨 느낌. 그런데 무엇을 들킨 것이지……?
명학은 미안하다고 말하고서 고개를 약간 숙였다. 그러자 여자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한국어? 약간 굴러가는 발음이지만 정확한 억양이었다.
이명학은 약간 놀라면서 미소로 답해 주고 몸을 돌리려 했다.
“국회의원이시죠?”
이명학은 멈칫하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저 의원님 알아요.”
여자가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만났다. 그러나 처음에는 간단한 대화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다가 몇 달 뒤 우연히 또 만나게 되었다.
USC 졸업식 얼마 전 음대 대학원에서 이명학을 졸업파티 연사로 초청했다. 이명학이 한국에서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평소 영화산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미래의 강력한 대권 후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국의 영화가 여러 국제영화제 등에서 큼직한 상을 타는 등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한몫을 했다. 그리고 그 파티는 대학의 정식 졸업식 하루 전에 음대 대학원의 각 학과 우등 졸업생들과 그 부모들을 초청해서 여는 행사였는데, 마치 영화에서처럼 호화로운 홀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 또한 각 과의 우등생이 한 사람씩 나와서 상을 받는데, 특이하게도 영화음악과에서만은 우등생 세 명에게 상을 준다. 이는 LA가 할리우드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인 듯했다. 미국 동부 끝에 있는 뉴욕대학의 영화음악과와 서부 끝에 있는 LA의 USC 영화음악과가 그 계통에서는 쌍벽을 이루고 있다. 다만 뉴욕대학은 뮤지컬 쪽이 강세고, USC는 영화음악이 강세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뉴욕에는 뮤지컬의 본산인 브로드웨이가 있고, LA에는 영화의 본산인 할리우드가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렇게 해서 USC의 음대 학장과 음대 졸업생 중 현재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음악계의 대가, 그리고 한국에서 온 명사, 즉 이명학 등 세 분의 귀빈이 각각 우등생 한 사람씩 상을 주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명학 전 국회의원이 상을 주게 된 학생은 얼마 전 만났던 바로 그 혼혈여성이었다. 이러한 일로 이명학과 그 여성, 즉 메어리 퀸 데스본(Mary Queen Deathborne)은 가까워지게 되었던 것이다.
3
한국 대통령과 영국 규수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과 영국의 모든 언론은 물론 온 세계가 한동안 이 뉴스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서양의 검은 진주와 동양의 대통령. 마치 신데렐라 동화와 같은 이 스토리는 글자 그대로 가슴 설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직 막은 내려가지 않았다. 아니, 막이 올라가기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 막 발표가 되었을 뿐이니까. 즉 결혼식은 3개월 뒤에 이루어지게 된다. 신부가 박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일주일 뒤에 식을 올리기로 했으니까. 그것도 영국에서. 그런 다음에 신혼여행으로 아직은 발표되지 않은 모처에 다녀온 뒤 어센션 섬에서 이틀 밤 자고 나서 한국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다시 전통혼례 방식으로 한 번 더 예식을 치르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이 세기적인 결혼 소식으로 온 세계가 들썩이게 되었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바로 그 달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수족관 폭파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뒤 이어서 런던과 서울, 몬테레이 수족관에서 차례로 폭발이 일어났다.
따라서 그 결혼식이 제대로 치러질지 의문이었다. 일반 국민들도 결혼식은 물론 각종 행사를 미루거나 취소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이은 수족관 폭파로 인해 불안심리가 작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결혼식을 강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정치적인 면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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