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 진실 너머
영원과 순간 사이에
고양이 고 발톱
야옹이 뾰족뾰족 뾰뾰족 날선발톱
홍시콕 창호지콕 아이고 재밌어라
온방안 돌아다니며 아무데나 콕콕콕
주인님 돌아와서 방안을 살피더니
이노옴 여기저기 콕콕콕 찢어논놈
고양이 나는몰라요 돌아누워 콜콜콜
1
대통령의 호화 결혼식은 결국 취소되었다. 그 대신 상황이 뒤숭숭한 시국이라 약혼식으로 대신하며 두 사람이 간단한 예물만 교환했다. 이때 증인으로 한국의 4부 요인, 즉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대법원장 그리고 감사원장이 참석했다. 게다가 여기에 영국의 한국대사도 함께하여 영국 정부와 국왕의 축하 서한을 전달했다. 하지만 이것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한국 주재 각국 대사들도 축하 메시지를 보냈고,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국내외 유명 대기업, 특히 영국과 관련된 기업들은 모두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게다가 그 약혼 소식은 곧바로 전 세계로 타전되어 각국 언론과 방송 및 온라인 매체들의 메인뉴스가 되어 퍼져나갔다. 물론 한국과 영국 내에서는 축제 분위기였으며, 특히 두 나라와 연관된 기업들은 그 약혼 특수로 인해 그야말로 대박이 나고 말았다. 물론 글로벌 기업들 역시 이 축제에 빠질 리 없어서 마케팅에 열을 올렸고, 세계 각국에서 이 약혼식과 비슷한 행사가 붐을 이루게 되었다. 한마디로 지구 전체가 들썩인 것이다. 유라시아 대륙 양쪽 끝단에 있는 두 나라가 사돈 관계를 맺게 되고, 또한 흑백의 결합 자체가 전 지구인의 화합 이미지로 떠올라 평화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하여 백인이 아닌 황인종과, 흑인과 백인과 아메리칸 인디오의 혼혈이 결합하는 것이 흑백 양 끝단까지 포함한 모든 인종의 화학적 결합으로 승화된 듯이 포장되었다. 특히 언론에서는 바로 이 점을 대대적으로 부각시키며, 심지어 모든 지구인의 미래 모형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이 약혼을 통해 지구 전체의 모든 인종이 하나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인종차별의 벽이 허물어지고 드디어 전 인류는 하나가 되었다는 듯이 보도했다. 한마디로 두 사람은 지구 평화와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약혼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화합으로 떠오르고, 그와 동시에 한국의 대통령은 그야말로 영웅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전 인류를 대표하는 최고의 영웅. 완전체 인간.
이렇듯 말이 간이 약혼식이지 외형적으로는 결혼식 못지않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가톨릭 신자고, 약혼녀가 영국 성공회 소속이며, 신부의 보호자인 외숙부가 한때 이슬람에 몸담았다가 그 이후 불교에 심취했던 덕에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세계 3대 종교에 속한 모든 단체가 축하의 메시지를 발표했다. 게다가 유대인은 이들의 약혼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인종 통합이라는 상징에 한 발을 들여놓고 싶었는지 이들의 약혼을 축하한다면서 신혼여행 때는 예루살렘을 방문해서 전 세계 인종갈등의 종식을 위한 메시지를 발표해 달라고 이스라엘 주재 한국대사에게 은밀히 요청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전 지구의 축제가 되었던 셈이다. 게다가 세계 각지에서 여러 수족관의 폭발사고로 많은 인명이 희생되어 사회 모든 분야가 극도로 침체해 있었던 시국 가운데 모처럼 밝은 소식이 전해진 것이어서 실질적으로 전 인류 대부분이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젊은 커플이 이 약혼식과 동시에 자신들의 결혼식이나 약혼식을 올린 뒤 예복을 입은 채 거리로 나와서 색종이를 흩뿌리며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그 뒤로 수많은 들러리와 하객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지구는 이렇듯 한바탕 축제의 향연을 즐기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음모자들도 이러한 축제에 동참하며 자신들의 불꽃놀이에 전 지구인을 초청하는 계획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시간 서울 근처 청계산 지하에서는 엄청난 일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일에 암호명 ‘큐피드’를 붙여놓았다. 메리쿠리우스(Mercurius)와 베누스(Venus), 즉 비너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큐피드. [라틴어로 도로와 교차로를 주관하는 신은 메리쿠리우스, 그리스어로는 헤르메스(Hermes), 영어로는 머큐리(Mercury)라고 하며, 이는 또한 수은이나 수성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단어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도로나 교차로, 온도에 따라 쉬이 줄었다 늘었다 하는 수은, 태양 주위를 빠른 속도로 도는 별이라는, 즉 재빨리 움직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편, 여기에는 죽음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날 밤 대통령은 최측근 비서 한 명과 함께 국정원으로 갔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었던 국정원장을 만나서 그의 안내를 받으며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 다음 최측근 몇 명만 알고 있는 통로를 지나 육중한 문 앞으로 갔다. 그러자 문 위쪽에서 파란 불이 켜지며 문이 스르르 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타난 광경.
어마어마하게 넓고 천장이 높은 공간에 꽉 들어찬 기이한 여러 시설들. 그리고 미사일이나 우주선의 몸통을 연상시키는 커다랗고 육중한 느낌의 원형 금속 덩이. 이에 더해 수많은 사람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모습.
그러한 가운데 저만치에서 한 사람이 성큼성큼한 걸음걸이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외국인. 아마도 인도인 같았다. 터번을 둘렀으면 영락없는 힌두교도 같은 얼굴. 그리고 그 뒤로 두 사람이 더 따라오고 있었는데 모두 한국인 모습이었다.
인도인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미소 지으며 두 손가락을 경례하듯 머리에 갖다댄다. 대통령과 무척 친한 사이 같았다. 반면에 뒤의 두 사람은 아주 딱딱한 모습이다. 하나는 서양인, 또 하나는 동양인.
인도인 뒤에서 따라오던 동양인이 먼저 입을 연다. 한국어.
“어서 오십시오, 각하.”
요즘 각하라는 말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 말에 뒤이어 인도인이 입을 연다. 영어.
“어서 오십시오. 준비 다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대답은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그리고는 더 이상 말이 없이 대통령은 왼쪽으로 방향을 돌려서 걸어가고, 나머지 사람들도 뒤따른다. 그렇게 해서 여섯 사람이 도달한 곳은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마치 건축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듯한 리프트 같은 형태였다. 그곳에서 동양인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가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옆으로 물러선다.
이렇게 해서 모두 리프트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그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리프트는 꽤 천천히 올라가더니 드디어 멈춰선다. 그곳에서도 동양인 한 사람이 일행을 맞이하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하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는 않았다.
이들은 리프트에서 내려 철골로 된 통로로 잠시 걸어가다가 이번에는 출입제한 표지가 붙은 한 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주 넓은, 마치 컨트롤 타워 같은 공간이 나온다. 그곳 한쪽 면의 커다란 상황판 모니터 화면에는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고 여러 곡선이 어지럽게 그려져 있으며 그 선들을 따라서 반짝이는 빛이 나타나 있다. 아마도 지구 대기권 밖 인공위성들의 궤적 같았다. 그리고 그밖에도 여러 중대형 모니터의 다양한 화면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대통령 뒤에서 바짝 따라오던 비서관이 입을 열었다.
“10분 뒤에 첫 번째 모의시험이 실시됩니다.”
대통령은 말은 없이 눈만 한번 껌뻑였다. 그 뒤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어가서 미리 준비해 둔 듯한 VIP용 좌석에 천천히 앉았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잔뜩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좌석 앞에 있는 긴 테이블에는 플라스틱 생수병과 맑은 색 유리잔만 사람 수만큼 놓여 있었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이 책상에서 모니터를 보거나 벽에 붙은 여러 대형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며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고 있는 듯한 모습. 모두 청록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과 팔뚝에는 묘한 표식이 붙어 있었다. 흰색의 타원형 바탕에 진노란색의 A와 V자를 연속해서 붙여놓은 형태인데 A에는 가로막대가 없어서 마치 V를 뒤집어놓은 듯한 문양이다.
대통령 일행이 자리에 앉아서 말없이 대형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중에 갑자기 화면 정중앙 위쪽에 있는 기다란 네모 형태의 경광등 비슷한 것이 붉은빛을 내며 켜졌다. 마치 경고 사인처럼.
그리고는 방 안 가득 울려퍼질 정도로 큰 소리가 앞쪽 화면 양쪽에서 울려퍼진다.
발사 60초 전, 59, 58, 57…….
2
계지선은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직원과 통화했다고 밝히고, 통화 중 갑자기 전화가 끊긴 뒤 자신이 다시 그 번호로 두 번 전화를 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경찰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바꿔 받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자신이 그 죽은 남자와 통해했다는 사실을 비교적 소상하게 밝혔다. 그 직원이 지선에게 한 말, 지선이 방송에 나가서 빨갱이 소리를 들은 것 등을 모두 말해 주었다. 그러자 경찰은 집은 어디냐고 묻기에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런 뒤에 지금 방송국에 와줄 수 있겠느냐고 한다. 그래서 곧바로 방송국으로 가겠다고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지선은 와들와들 떨려오는 것 같아 곧바로 집을 나서지 않고 30분가량 의자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심장만 더 빨리 뛰고 극심한 불안만 몰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에서는 가장 최악의 상황만 자꾸만 떠오른다. 혹 자신이 이 사건에 휘말려 엉뚱한 일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외국에 혼자 나가 여러 어려운 일들을 헤쳐나간 경험이 있기에 웬만한 일쯤은 다 이겨낼 수 있으리라 평소 생각했지만, 이번 상황은 근본적으로 달랐다. 무엇인가가 옥죄어 오는 듯 느낌이 드는 것이다.
지선은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을 나섰다. 오피스텔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가려 하다가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택시를 타자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오피스텔 밖으로 나가면서 핸드폰에서 택시 앱이라는 것을 찾아 이리저리 살피는 중 문득 눈을 들어 보니 저만치에서 빈 택시가 오고 있었다. 지선은 얼른 손을 들었다. 그러자 택시가 스르르 미끄러지듯 다가와서 멈춘다.
일부러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쉰 뒤 지선은 택시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리고 방송국 이름을 말하며 그리로 가달라고 했다.
택시 운전사는 백미러로 지선을 살피는 것 같더니 조심스레 입을 연다.
“아주 힘든 일을 당하신 모양입니다.”
“…….”
지선은 고개를 들어 백미러에 비친 운전사 얼굴을 보았다. 퍽 선한 인상이다.
“그럴 때는 껌이라도 하나 씹으시면 좀 나아져요.”
운전사는 이렇게 말하며 어깨 너머로 네모난 껌 통을 내민다. 비닐을 아직 뜯지 않은 작은 박하 껌 상자.
지선이 멈칫거리자 운전사가 백미러로 지선을 바라보며 말한다.
“제가 오랫동안 운전하면서 여러 경험을 했는데, 아주 급한 분들이 대개 실수를 많이 저질러요. 그럴 때 껌이라도 씹으면서 당도 보충하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면 의외로 어려운 일이 쉽게 풀리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제 핸드폰으로 고맙다는 전화를 한 사람도 몇 번 있었거든요.”
운전사는 이렇게 말하며 운전석 옆에 붙은 운전사 사진과 핸드폰 번호를 가리켰다.
지선은 약간 당황스럽지만 멋쩍은 동작으로 껌 상자를 받으면서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황은섭. 택시를 탈 때와 백미러로 본 대로 사진으로 나타나 있는 운전사의 얼굴은 꽤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약간 투박하게 생기긴 했지만 옛 소설에서 나오는 시골동네 이장 아저씨처럼 어딘지 남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는 듯한 풍모.
하지만 지선은 껌 상자를 풀지는 않고 약간 멍한 마음으로 그냥 운전사 사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상자 뜯어서 하나 씹어 보세요. 박하 향이 입 속에 화하게 퍼지면서 마음도 많이 풀리실 겁니다.”
지선은 예의상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백미러로 보이는 운전사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천천히 껌 상자의 비닐을 풀어 안에서 조그만 종이에 싸인 껌을 꺼냈다. 지선은 종이를 풀고 매끄럽고 새하얀 덩이를 손가락 사이에 들고서 잠시 쳐다보았다.
“색깔이 이쁘죠? 저는 껌 위에 발라놓은 하얀 껍질의 색깔이 참 좋더군요. 아주 새하얗지도 않고 어딘지 차분하고도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그 색깔이.”
지선이 껌을 하나 입으로 넣으면서 백미러 비친 운전사 얼굴을 쳐다보았다. 눈가에 잔잔한 주름이 펴나가는 듯한 모습. 퍽 사람 좋은 편안한 인상이다.
“여기 길이 좀 막히네요. 저것 보세요. 차들이 많이들 나왔네.”
그 말마따나 좁은 2차선 길에 차들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약간 돌아서 가야겠습니다.”
또다시 잔잔한 미소가 감도는 백미러 얼굴.
지선은 머릿속으로만 고개를 끄덕이며 백미러 너머의 꽉 막힌 차들을 바라보았다.
택시는 솜씨 좋게 빽빽하니 밀려 있는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서 가장자리 차선으로 나가더니 어느 건물 사이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좁은 골목길 같은 곳을 이리저리 돌아서 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지선은 어딘지 모르게 나른함이 느껴지면서 눈이 스르르 감기려 한다.
지선은 깜짝 놀라 억지로 눈을 떴다. 그리고는 두어 번 눈을 깜빡이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여전히 좁은 골목길.
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눈이, 눈이……, 눈이 자꾸만 잠기려 한다. 머릿속에선 저어 먼 곳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야……, 안 돼…….
이러면 안 되는데…….
지선의 머리는 비스듬히 옆으로 푹 숙여졌다…….
3
지선이 어지러운 꿈속에서 뭐가 뭔지 모를 곳을 헤매다가 눈을 떴을 때는 사방이 캄캄했다. 꿈 반, 생시 반 같은 멍한 상태에서 머리를 살짝 흔들며 정신을 차리려 애써 보았다. 약간은 눅눅한 냄새가 나는 공기. 바닥은 그리 딱딱하지 않았다. 침대 같은 느낌. 지선은 팔을 짚으며 윗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머리가 조금 아파온다. 다시 한 번 머리를 흔들었다. 그 순간 퍼뜩 생각났다. 택시 안!
그러나 주변 환경은 택시 같지 않았다.
지선은 벌떡 일어났다.
아, 침대, 침대였다. 지저분한 침대 냄새. 좁은 공간처럼 여겨지는 답답한 공기. 천장에 매달린 낡은 전구에서 나오는 붉고도 희미한 조명.
그 순간 지선은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에서 나와 급한 마음에 아무런 생각 없이 다가오는 택시에 올라탄 것이다. 게다가 껌까지 받아먹었으니. 지선은 평소 매우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오랫동안 혼자 외국에서 살다 보니 주변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었던 탓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소극적으로 행동해 왔었다. 그랬던 자신이었는데 어쩌자고 그렇게 경솔하게 행동했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지선은 옷 위로 자신의 몸을 더듬어 보았다. 혹 무슨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러자 주머니 속에 들어 있던 지갑이 만져지지 않았다. 다른 소소한 것들은 핸드백에 넣고 다녀도 신분증과 신용카드 등이 들어 있는 작은 지갑만은 늘 윗도리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른 주머니들을 다 뒤져봐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메고 나온 큼직한 숄더백이 주변에 있나 둘러보고 더듬어 봤지만 그것 역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겠지……. 자신을 납치했으면 그런 것들은 모두 빼앗아가겠지.
지선은 의외로 마음이 담담한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 겁 많고 낯선 사람들을 꺼려했던 자신이 아니었던가. 위험하고 무서운 느낌이 드는 것은 무조건 피하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납치된 상황에서 의외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혹 자포자기인가……?
지선은 머리를 한번 흔들고 나서 침대에서 내려와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평수로 따지면 서너 평 될까, 지선은 하버드 대학이 있는 미국 동부의 케임브리지 인근에서 살 때 인도인 학생과 방을 함께 쓴 적이 있다. 그러나 말이 함께 쓴다는 것이지, 실제는 약간 큰 방의 한가운데에 커튼을 치고 인도인 여학생은 창가 쪽, 지선은 그 반대편에서 생활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와 도서관에서 지냈고, 단지 잠만 그 방에서 잔 것이었지만 그래도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 방은 인도 학생이 빌린 것이고, 지선은 방세의 3분의 1만 내는 것이어서 경제적인 면만 따져 보면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내면, 즉 심적인 면은 그렇지 않았다. 왠지 모를 서글픔, 서러움, 초라함 등등……. 아니, 지금 이런 쓰잘데없는 감상에 잠길 때가 아니지.
지선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흔든 뒤 고개를 바짝 쳐들고 맞은편 벽 위쪽, 천장 가까이를 바라보았다.
? ? ?
어? 저게 감시카메라 맞는 거지……?
이것들이 숙녀를 가둬놓은 것도 모자라 카메라로 엿봐?
지혜는 뭐 집어들어 던질 것이 없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주 희미한 전등 불빛 아래에서는 방 안을 제대로 살펴볼 수가 없었다. 오래 전 중학생 때 읽은 아주 낡은 소설집에 등장한 옛 화장실, 아니 변소 간에 대한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싸구려 하숙집 뒤편에 붙어 있는 변소, 그리고 그 안에 달랑 매달려 있는 아주 작은 전구 하나. 성탄절 트리에 달려 있는 꼬마전구보다 약간 큰 그 전등. 하루 종일 들락날락하는 하숙생들뿐만 아니라 근처에 사는 막노동꾼과 동네 건달들은 물론이고 이웃 아주머니 아저씨나 아이들까지 몰래몰래 침입하는 탓에 그 꼬마전등은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루 종일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악바리 같은 그 집 여주인은 다른 모든 것에는 인색하기 그지없으면서도 그 변소 인심만은 좋아서 알고도 모른 체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도둑질하듯이 몰래몰래 살금살금 그 변소를 들락거리면서 꼬마전구를 켰다 껐다 한다. 그러나 그 전구를 켜지 않고 변소를 사용하는 이가 단 한 사람 있는데, 알고 보니 바로 그 여주인이었다. 전기세가 아까워서. 지선은 그 소설을 읽으면서 은근한 미소가 감돌았던 것이 기억났다. 남들이 자기 집 변소 꼬마전구 쓰는 값은 아까워하지 않고, 오히려 집주인인 자신이 쓰는 전기세는 아까워하는 구두쇠 아주머니. 게다가 한번은 한밤중에 변소에 갔다가 어두웠던 탓에 헛디딘 바람에 발 하나가 똥통에 빠져 엄청 고생했는데도 남들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뒤로도 계속해서 자기 자신은 그 꼬마전구를 켜지 않고 볼일을 보는 왕고집.
아이구, 얘야, 지금 네 코가 석 자다. 누가 누굴 걱정해 주는 거니……?
지선은 눈을 크게 뜨고 방 안을 세밀히 살폈다. 그러자 희미한 시야 속에서 한 물체가 눈에 잡히는 것이었다. 한쪽 구석. 무엇인가 옆으로 길게 뻗쳐 있는 것. 상자? 나무상자? 그런데 모양이 좀 이상했다. 네모반듯하지 않고 어딘지 어색한 느낌.
그렇지만 지선은 갑자기 소름이 쫙 끼치는 것 같았다. 불길한 느낌이 본능처럼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지선은 침대에서 살그머니 내려섰다. 그리고는 온몸의 관절이 기름 치지 않아 굳은 것처럼 뻑뻑한 느낌이면서도 마음을 굳게 먹고 몸을 움직였다.
지선은 침대에서 내려서서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리고 동작을 멈춘 채 상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또다시 온몸을 관통하며 흐르는 공포감.
관, 관이었다.
한국식 관이 아니라 서양식 관. 기다란 육각형이면서 상체 쪽이 넓고 그 아래로 내려가며 좁아지는 나무 관. 지선은 미국에 있을 때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서 그런 모양의 관을 직접 보았다. 물론 영화에서도 그런 형태의 관이 등장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 관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온몸의 털이 모두 곤두서는 듯한 느낌. 모든 감각은 물론 사고까지 마비된 듯한 상태.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지선은 저도 모르게 그 관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러면서도 지선은 저도 모르게 한 가지 장면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있었다. 갑자기 관 뚜껑이 탁 열리며 시체가 튀어나오는 장면을…….
그, 그런데 왜 몸은 멈추지 않고 계속 관 쪽을 향하는 거지?
한발 한발 아주 느리지만 앞으로 발을 내딛고 있는 지선. 침대에서 관까지의 거리는 기껏해야 대여섯 걸음 정도.
평소 겁이 무지 많았던 지선이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머리 꼭대기가 하늘로 솟구치는 느낌일 정도로 공포에 질려 있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욕구가 나머지를 모두 압도할 정도로 지선은 마음을 아주 단단히 먹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이 나쁜 놈들…….
지선은 관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숨을 거의 멈춘 상태로.
지선은 오른발을 내밀어 살짝 관에 대보았다. 얼음 같은 시체를 건드리는 느낌.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혹 관 뚜껑이 덜컹 열리며 시체라도 벌떡 튀어나올까 잔뜩 긴장했지만 괴기영화와 같은 그런 일은 없었다.
지선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몸을 굽혀서 두 손을 관 뚜껑에 대고 가장자리를 더듬었다. 그러자 한 모서리가 잡힌다. 지선은 얼음처럼 차가워진 심장을 가슴 속으로 꽉 누른 채 두 손으로 그 뚜껑을 붙잡고서 확 열어젖혔다.
그러자…….
4
진규가 한 차장과 이 팀장을 따라 들어간 곳은 일종의 관제소와 같은 곳이었다. 널따란 방 사방 벽에 커다란 모니터가 여기저기 걸려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네가 이곳에 올 군번은 아닌데 어쩌다 이렇게 됐군.”
한 차장이 진규를 쳐다보지도 않고 중얼거리듯 말한다. 진규는 입을 꾹 다물고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의 의미를 아직 파악하지도 못했을 뿐더러 자신을 왜 이런 곳까지 데리고 왔는지도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따라와.”
한 차장이 짧게 말하면서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진규는 이 팀장을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무표정한 얼굴. 원래부터 포커페이스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어딘지 모르게 진규를 외면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이게 뭐지……?
하지만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약간 느리긴 하지만 이 팀장이 한 차장 뒤를 따라 계속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은 굳은 채.
진규는 머릿속이 복잡한 가운데에서도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떠올라 얼른 바지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핸드폰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 팀장 옆에서 걸어가며 손가락으로 더듬어 화면을 켠 뒤 살짝 꺼내어 흘끗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얼른 카메라 버튼을 누른 뒤 동영상을 찾아 다시 버튼을 눌렀다. 그런 다음 렌즈 부위를 주머니 밖으로 나오게 한 뒤 어색하지 않도록 양복 재킷을 벗어서 팔에 걸쳤다. 진규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뒤 시장에서 싸구려 양복을 사서 입고 있었다.
진규가 잠깐 머뭇거리는 듯한 동작을 보이자 이 팀장이 돌아다보고 눈짓을 한다. 빨리 따라오라는 뜻. 그게 아니면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는 의미 같기도 했다. 그러나 진규가 핸드폰 카메라를 켠 것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세 사람이 홀을 가로질러 가는 동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몇몇 사람이 한 차장을 돌아다보며 아는 표정을 짓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 차장과 이 팀장은 이 홀의 장면이 익숙한지 주변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넓은 홀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만 진규만이 너무 티 나지 않을 정도로만 사방을 슬쩍슬쩍 둘러보며 카메라 각도를 적당히 조절하며 뒤따라가고 있었다.
홀 맞은편에는 커다란 유리방이 있었는데, 그 안에 있는 사람 몇몇이 밖에서 세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유리 너머로 보였다. 그러나 아무도 서로 아는 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모두가 무덤덤한 표정들.
세 사람은 유리방 옆에 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 방의 책임자인 듯한 느낌을 주는 중후한 풍모의 남자가 책상 뒤에서 일어나며 손짓을 한다. 그러자 한 차장이 고개를 살짝 숙이는 듯 인사를 하고는 뒤의 두 사람을 돌아다보면서 손짓을 한다. 두 사람을 소개하려는 듯했다. 마침 이 팀장 역시 처음으로 남을 소개받는 듯한 동작으로 살짝 목례를 했다. 하지만 진규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자신이 왜 이곳에 온 것인지 알 수 없어서 엉거주춤한 동작을 하고 눈으로만 인사를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거……? 여기가 어디야? 이런 데가 있었어……?’
진규가 곁눈질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차장이 부른다.
“이쪽으로 와서 인사드려. 네가 할 역할이 좀 있다.”
그러자 남자는 바지주머니에 두 손을 집어넣고 몸을 곧추세우면서 진규를 노려본다. 꽤 용의주도한 얼굴에 단단해 보이는 몸매. 그리고 적의가 느껴지는 모습.
진규는 걸음을 멈칫하면서 고개를 살짝 숙이는 듯 마는 듯하면서 상대방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다. 그리고는 얼굴을 여전히 이쪽을 향하고 있으면서 누군가를 부른다.
“희성아, 이 양반 좀 모시고 가라.”
그러자 옆의 옆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남자가 눈은 여전히 모니터로 향한 채 몸만 일으킨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들어 진규를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책상을 돌아 나와서 진규 가까이 오더니 몸짓으로 자신을 따라오라는 표시를 한다.
진규가 한 차장과 이 팀장을 바라보았으나 두 사람 모두 외면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순간에 이 팀장이 살짝 고개를 흔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규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는 얼른 얼굴에 미소를 띠고는 주머니에서 카메라가 켜져 있는 핸드폰을 꺼내어 앞의 두 남자 앞으로 내밀어 얼굴을 정확히 화면에 담았다. 그리고는 그런 다음 카메라를 끄고 핸드폰 초기화면으로 들어가서 카톡을 찾아 어느 한 사람에게 지금까지 찍은 것을 보내주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그러나 그 동안 주변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오직 일부러 보란 듯이 느릿한 동작을 하는 진규의 손놀림만 그 공간을 휘젓고 있었다. 그런 다음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고서 약간은 능청스럽고 싱글거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약간은 과장된 듯이 진규가 행동하는 중에도 앞에 서 있는 남자들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것이었다. 책상에 앉아 무슨 일엔가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예 아무런 관심도 나타내지 않고 여전히 책상과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 사람들도 한결같이 똑같은 무표정. 모두가 마치 팬터마임을 하는 배우들 같았다. 아니, 그보다는 진규를 가운데 놓고 주변에 죽 둘러서서 무표정 대회를 벌이는 듯한 느낌. 정말로 주변 사람들 모두 가면을 쓴 듯 완벽한 무표정 얼굴로 눈만 진규에게 향해 있는 것이었다.
이건 또 뭐지?
진규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책상에 앉아 자기 일에만 몰두해 있고 주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장승처럼 우뚝 서서 무표정한 얼굴에 눈만 진규에게 향하고 있는 네 남자.
진규는 컴컴한 방에 갇혔다. 게다가 핸드폰을 포함해서 모든 소지품을 빼앗겼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한 가지 사실. 즉 그 시설에서는 핸드폰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사실은 나중에 알았지만, 어떻든 진규가 어디론가 동영상을 보낸 것은 헛수고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몇 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하나는 진규가 먼젓번 정신병원에서 탈출할 때 의외로 쉬웠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도망치도록 방치 아니면 유도한 듯한 느낌. 사실 그 점이 내내 진규의 머릿속에서 맴돌았었다. 그런데도 아무튼 그곳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것에 안도한 탓에 더 이상은 생각지 않으려 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급한 것, 즉 자신의 중고서점이 어떻게 노출되었는지 그 점을 생각하느라 다른 의문점들은 뒤로 미뤄두었었던 것이다.
지금 진규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어떤 중요한 음모에 휘말려 있는 게 확실하다. 그것도 아주 깊숙이. 어쩌면 진규 자기 자신에게 어떤 중요한 정보가 있는지도 모른다. 진규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게다가 그 정보는 아주아주 극비의 것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진규를 이렇게 살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혹 저들에게 불리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라면 진규를 벌써 제거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진규가 계속 살아 있어야 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그 정보가 그들의 적(?)에게 넘어가지 않아야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폭로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
무엇일까? 진규 자신도 모르는 기막히게 중요한 정보가 진규 자신에게 있다고? 진규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아니, 혹시……, 저들이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진규에게 그 어떤 정보가 있다고 말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는데도. 이것 참……. 그렇다면 저놈들이 착각하도록 계속 꾸미고 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진규에게서 나올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끔찍한 일이 생길 텐데. 그러나 언젠가는 진규가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전에 저놈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야 된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러면서도 진규는 자신에게 최근에 일어난 일들을 찬찬히 더듬어 보았다. 스스로도 모르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우선 큰 사건부터 따져보자.
첫째는 나미비아에서 일어난 수족관 폭파사건.
둘째는 런던의 수족관.
셋째는 여의도 63빌딩 수족관.
그러고 보니 그 세 사건은 사실 모두 엄청난 일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건에서는 사람들도 엄청 희생되었다. 그러나 세 번째 사건에서는 그곳 직원들 외에는 숨지거나 다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 대신 수족관 물이 건물 꼭대기에서부터 계단과 엘리베이터 등의 공간을 통해 아래까지 흘려내려 물적인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일어난 네 번째 사건에서는 물적인 피해 외에는 인적 피해가 거의 없었다. 적어도 죽은 사람은 없었고, 당시 근무하던 사람 약간만 다쳤을 뿐이니까. 이러한 사실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건이 거듭될수록 피해 규모는 차츰 줄어드는 것이었다.
아, 물론 다른 면을 따져 보면 세 번째 사건은 아주 오싹한 것이었다. 예정대로 각국 정상들이 모여서 조찬모임을 하는데 폭탄이 터졌다면 인적 규모보다는 그 의미 면에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을 수도 있다. 전 세계 정부가 혼돈에 빠졌을 테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 즉 세 번째까지는 그 나라의 수도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네 번째 폭파는 사실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은 도시의 수족관이었다. 그런데 이 점이 어딘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진규는 이 부분에 대해서 곰곰 생각하다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ABC 살인사건》이 문득 떠올랐다. 그 소설에서 세 번의 살인사건이 각각 ABC로 시작되는 이름의 도시에서 차례로 일어난다. 그러나 네 번째 사건이 일어나는 도시는 갑자기 알파벳 순서에 따르지 않게 된다. 혹 아직 그 책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그 의미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겠지만, 어떻든 이번 일련의 폭파사건을 여기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Okahandja(오카한자), London(런던), Seoul(서울), 그리고 Monterey(몬테레이). 하지만 이들 도시의 한글명이나 알파벳에서는 어떠한 순서적인 연관성이 없는 듯했다. 혹 국가명을 따져 볼까? Namibia, England, Seoul 그리고 USA. 여기에도 영어든 한글이든 아무런 순서적인 의미는 없다. 그들 국가들의 정식 명칭은 Namibia, United Kingdom, Republic of Korea 그리고 United States of America. 한국을 대한민국이나 남한으로 바꾸고 영국이나 미국을 각각 대영제국이나 미합중국으로 해도 한글이든 영어든 아무런 순서적인 연관성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그들 나라의 국가수반 이름이나 대표적인 상징물 등등을 대입해 보아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무작위로 도시를 고른 것일까? 그런데 왜 세 번째까지는 각국의 수도였는데, 네 번째만은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였을까? 이것은 《ABC 살인사건》에서처럼 앞의 세 사건과 네 번째 사건의 의미를 다르게 한 것일까? 설사 그렇더라도 그 의미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게다가 그렇게 엄청난 일을 벌이면서 기껏 추리소설의 소재에서 따온단 말인가?
진규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런 중에도 진규는 그들 네 도시 중 앞 세 도시와 네 번째 도시, 또는 국가의 순서적인 연관성을 곰곰 생각해 보았다. 국가명이나 도시명, 게다가 그들 나라의 상징이나 특성, 역사 등등에서 나올 법한 순서적인 연관성뿐만 아니라 수족관의 이름 등에서 혹 어떠한 연관성은 없는지도 따져보았다. 하지만 진규의 제한적인 지식으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것은 그러한 연관성과는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진규가 찾아다닌 국가의 순서?
진규는 한국을 떠나 독일로 갔다가 그곳에서 나미비아와 영국, 한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순서대로 사건이 발생했다. 그렇다면 몬테레이는? 진규는 이번에 그곳에는 가지 않았다. 물론 몇 년 전에 미국에 출장을 갔을 때 가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로 일부러 진규가 가보았던 도시들만 고른 것일까? 진규가 무엇인데? 진규가 그러한 엄청난 사건의 소재가 될 정도로 유명인사이던가?
아, 그리도 또 하나. 저놈들은 아직 진규가 떠돌았던 도시가 어디어디인지 모른다. 묻지도 않았고 대답하지도 않았으니까. 더군다나 각각 다른 가명을 써서 돌아다녔으니까 아직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어떻게 진규가 그 도시들을 찾아다닐 줄 알고 그 순서대로 일을 저지를 수 있을까? 크든 작든 폭파사건을 벌인다면 엄청 치밀한 계획을 세워야 할 텐데. 게다가 오랜 시간과 물적 인적 자원을 동원해서 말이다.
아하, 그리고 그 폭파사건들. 도대체 어떤 놈들이 어떤 목적, 어떤 방법으로 벌인 것일까? 그 엄청난 일들을.
여기에서 진규는 문득 최근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차근차근 따져보았다. 처음에는 대학병원 약국. 그곳에서 추설희로 여겨지는 여자를 보았지. 그런 다음 한 차장 방에서 추설희처럼 보인, 그러나 나중에는 마네킹이라고 한 것을 보았고, 그런 뒤 그 두 사람이 자신에게 각각 USB를 하나씩 몰래 주었다. 그 뒤부터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지시가 왔다. 그리고 진규는 그 지시를 따라야겠다는 판단을 하고 그대로 행동했다. 그 뒤부터 진규가 가는 곳마다 수족관이 폭파되었다. 그 이후 그들 사건의 배후를 알아보기 위해 잠시 중고서점에서 여러 정황을 살피던 중 서점 입간판에 표시된 지시에 따라서 건물 뒤편에 갔다가 정체불명의 놈들에게 공격당해 어느 정신병원으로 끌려갔다. 그 뒤 그곳에서 저놈들의 거의 의도된 수법에 의해 탈출에 성공했고, 게다가 마침맞게 의사 양복 속에 들어 있는 지갑의 돈으로 여기저기 시장에서 옷가지 등을 사서 이번에는 기세 좋게 국정원에 찾아갔다가 이번에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지하시설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또다시 붙잡혀 이번에는 거의 기획(?)된 탈출조차 불가능할 듯한 곳에 붙잡혀 왔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지?
처음에는 추설희, 마지막에는 어느 감옥.
아차, 추설희.
그녀는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죽은 거야? 아니면 그것도 음모……?
뭐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지러워. 뭐가 이렇게 복잡하지?
진규는 이러한 사실들이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상상의 공간에서 일어난 일일 뿐 자신은 그저 소설에서 눈을 떼고 책을 덮으면 된다. 그리고 나서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끝이니까. 그러나 지금 자신이 갇혀 있는 공간을 살펴보니 도무지 소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방. 사방은 칙칙한 시멘트 벽. 냄새 나는 시트가 깔린 침대에 지저분한 세면대, 그리고 창문은 없이 한쪽 벽 위편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곳에서 먼지가 잔뜩 낀 환기용 팬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 비하면 지난번 정신병원 병실은 5성급 호텔이었다.
그리고……, 아차, 진규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지난번 그 정신병원. 기획된 것이든 아니든 그곳에서 진규는 탈출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것이 기획된 것이었다면…….
갑자기 진규의 등허리로 소름이 쫘악 지나가는 것 같았다. 정말로 기획된 탈출이라면 저놈들은 그날 진규의 뒤를 쫓았을 것이고, 그러면 진규가 다녔던 곳과 만난 사람들 모두 알고 있을 텐데…….
안 돼!
진규는 갑자기 숨이 막혔다. 왜 그때는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저 탈출했다는 안도감으로, 눈 먼 승리감으로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이다. 오늘 제 발로 국정원에 찾아온 진규를 저들은 아무 말 없이 그 지하요새로 데리고 가서 결국 감옥에 처넣은 것은 자신들이 알아낼 것은 다 알아내어 더 이상 진규가 쓸모없어진 것 때문이 아닐까? 정말, 만일에 그것이 정말이라면 엄청난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동안 진규가 아무도 몰래 구축해 놓은 조직이 다 무너지는 것이다.
진규는 국정원에서 일하는 초기에 지금은 퇴직한 전 국정원장의 눈에 들어 비선조직에 들어갔었다. 그 조직은 퇴임한 전 대통령과도 연결되어 있으며, 그 당시부터 의심을 두고 있었던 현 대통령의 음모를 파헤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음모. 전 지구를 경악시킬 만한 글로벌 음모. 지금껏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초 울트라 메가 음모. 사실 진규는 지금까지 그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5
지선은 심장이 멎는 것을 감수하고 관 뚜껑을 열었다. 그랬더니 그 안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뭐하는 거지, 이게? 나보고 들어가라고 하는 건가? 관 속에 들어가 얌전히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라고? 그렇다면 한국식 관이라도 갖다놓지 왜 서양식인 거야? 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고 대접해 주려고 그런 건가?
지선은 아직도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가다듬고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침착하자. 침착해. 침착…….
잠시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지선은 눈을 다시 떴다. 사실 내심으로는 눈을 뜨는 순간 무엇인가 짠하고 바뀌어 주길 바랐다. 지금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던 것이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혹 납치나 살인 등은 현대사회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서 그렇다 쳐도, 감금된 방에서 서양식 관과 마주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 상상이 되는 일인가? 무슨 공포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의외로 갑자기 지선은 마음이 담담해지는 것이었다. 가장 절망적이고 가장 공포스러운 환경 가운데에서 오히려 머릿속이 뾰족해지며 이 장면이 희극적으로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것들이 나를 아주 물로 봤구나. 이런 관 짝이라도 갖다놓으면 내가 기절초풍해서 벌벌 떨 줄 알았니? 천만에! 나 혼자 미국 유학 가서 온갖 힘든 일 다 이겨내고 왔어. 어쩌면 내 그런 면을 알아보고 정치권에서 손짓한 것인지도 몰라. 니들이 생각하는 그런 내가 아냐. 니네들 이제 큰일 났다. 니들한테는 내가 그냥 야들야들해 보이지? 나 한번 돌아버리면 니들 다 죽는 거야. C……⛸!
지선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정말 무서웠다.
이렇게 죽는 건가? 여기에서?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나만 가지고 이러는 거야? 왜 그래? 왜, 왜, 왜?
왜……? 왜, 왜……, 왜에……, 왜에에……? 왜에에……. ……. …….
아, 맞다.
그거.
그, 그, 그거…….
아, 뭐지……? 그. 그게 뭐, 뭐지……?
하얀 거…….
그래, 바로 그거!
네모난 흰 테두리. 그 테두리 안에 있는 흑백사진. 사진 속의 두 사람, 그리고 그 뒤쪽에 희미하게 찍힌 한 인물. 그 사람이 누군지 알겠다. 바로 그 사람이야!
대통령……. 지금 대통령!
비록 희미하게 찍혔지만 그것을 확대했을 때 그 얼굴에 분명한 특징이 드러나 있었다.
입술 주변과 눈두덩이 쪽에 큼직하게 나 있는 큰 상처. 아니 흔적. 즉, 찌그러진 왼쪽 눈과 왼쪽 입술 근처에 나 있는 큰 상처자국. 그런 탓에 대통령의 얼굴은 사실 좀 추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그러한 모습을 하고서도 당당히 성공한 인물로 현재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대통령은 자신은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었지. 그러다가 흑인 혼혈여성과 약혼하며 두 사람의 소설 같은 이야기는 지구의 전 인류를 감동시켰던 것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그러한 추한 모습을 그러나 수술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적당한 성형수술을 받으면 꽤 괜찮아질 텐데도. 게다가 그 왼쪽 눈의 시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데, 의안을 끼거나 안대를 하지 않은 채 그냥 지낸다. 그런 탓에 얼핏 보면 고약한 인상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늘 입술에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보면 꽤 지성적인 느낌도 든다.
게다가 대통령은 정계에 입문할 때 자신의 추한 모습으로 인해 절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겠다고 선언했었다. 게다가 대통령은 어린 시절 부모한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컸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미국으로 입양되었으나, 그곳에서 양부모에게 학대받고 버림받아 거리를 헤매다가 구조되어 미군인 또 다른 양부모에게 또다시 입양되었다. 그리고 그 양부모가 한국으로 발령받아 함께 한국에 왔으나, 양부모가 모두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탓에 미국대사관에서 한국의 한 가정에 위탁하여 키우게 했다. 이렇듯 어린 시절에 여러 힘든 과정으로 인해 정서불안은 물론 성격이 많이 비뚤어져 가출과 비행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소년원 신세도 여러 번 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들어서서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전문대에 들어갔다가 대학에 편입하고, 그 뒤로도 열심히 공부한 덕에 검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 정계에 진출했다. 당시 이러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져 그는 국민적인 동정을 받고, 본인 역시 적극적으로 활동한 덕에 젊은 나이에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선은 그 사진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떠올렸다. 사실 그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무엇인가 연상되었었는데, 당시에는 대통령과 연결시킬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사진 속 인물의 왼쪽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게다가 입술 근처에서도 희미하긴 하지만 흉터 자국 같은 것이 보였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 대통령의 모습과 동일하다. 어렸을 때 미국의 양부모에게 학대받다가 얻어맞아 왼쪽 눈은 시력이 제로에 가까우며, 보기에도 거의 감기다시피 되어 있다. 비록 사진이 희미하게 찍히긴 했으나 그러한 특징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체적인 얼굴 윤곽 역시 대통령을 닮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대통령이 지선 양아버지의 사진에 찍힌 것일까?
물론 이것은 아직 모른다. 어쩌면 그 이유도 모르는 채 이곳 어두컴컴한 방에서 죽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진 속 인물과 대통령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100% 절대 확신한다.
대통령. 신체적 장애뿐만 아니라 환경적 장애까지 극복하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 것에서 더 나아가 흑인과 결혼한다고 해서 전 세계의 환호를 받고, 심지어 노벨평화상 후보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온 세상의 동정과 사랑을 받고 인류 평화의 아이콘으로 대접받고 있는 위대한 남자.
그런데 그 사실이 지금 떠오른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현직 대통령과 사진 속 인물이 동일하다는 사실이 떠오른 이유?
바로 택시운전사.
지선은 택시를 탈 때 처음에는 앞좌석 문을 열었다가 얼른 닫고 뒤쪽 문을 열고서 올라탔다. 그때 앞좌석 문을 열었을 때 문득 택시의 요금 미터기 뒤쪽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았다. 사진의 반쯤만 본 것이지만, 그것은 대통령의 모습이 분명했다. 너무도 특징적인 얼굴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좀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어떤 장면이 연상되었는데, 당시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이상했다. 아무리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해도 사진을 택시 안에 붙여놓는 것은 좀 지나치다. 게다가 지선의 지금 상황에서 생각해 보니 그 택시운전사의 정체는 아무래도 수상할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어떤 어두운 면에서. 예를 들어 음모와 같은, 그것도 끔찍한 정도로 지독한 음모. 소름이 끼칠 만큼 음침한 음모. 게다가 방송국 젊은 직원 살인과 연결될 뿐만 아니라, 어쩌면 교통사고로 죽은 그 PD, 나아가 지선의 양부모, 더 나아가 지선의 친부모의 죽음과도 연결되며, 거기에서 더욱더 나아가 지선 자신을 납치한 일당까지 모두 대통령과 연계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 음모는 지선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는 일, 혹 얼마 전까지 일어났던 아쿠아리움 폭파사건들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지 모르는…….
지선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갑자기 자기 자신이 너무도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되었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절망감에서.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