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 선생은 인국을 데리고 서울로 왔다. 자신이 서울인쇄소에서 그동안 받은 월급 저금한 것과 사장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3개월치 월급을 가불받고, 거기에 염치없지만 한성인쇄소의 미스 곽한테 돈을 빌렸다. 미스 곽은 염려하지 말고 인국을 잘 보살핀 다음 돈이 모아지면 그때 갚으라고 했다. 이렇게 모은 돈을 인국의 주인에게 주고 데려왔던 것이다. 게다가 인쇄소 근처에 사장이 임시로 조그만 방을 하나 얻어주었다.
“정 선생이 하도 성실한데다 좋은 일 하겠다는데 나도 좀 끼고 싶어서 그러는 걸세. 방은 좁지만 우선 거기에서 지내고, 차차 살아갈 방도를 찾아보세나.”
정 선생은 눈물이 났다.
“사람 참, 그깟 일로 뭘 그래? 나도 애를 기르고 있고, 정 선생도 나중에 살림 차리면 애 낳게 될 텐데, 애들은 누군가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아, 우리야 부모 잘 만나 그 밑에서 컸지만, 그렇지 못한 애들이 얼마나 많아. 염려 말고 애나 잘 키우시게.”
정 선생은 허리를 굽혀 크게 절을 했다.
그러나 사실 지금부터가 문제였다. 인국은 제대로 학교를 다녔으면 지금 중학교 1학년이어야 한다. 인국의 말로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고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동네 이 집 저 집 돌며 큰데다 국민학교 6학년 1학기 중간에 머슴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형편이 그러하니 공부라도 제대로 할 리 없었다. 한글은 읽지만 산수는 아주 간단한 것 외엔 전혀 하지 못했다. 구구단도 다 못 외고 있었으니까.
정 선생은 일단 며칠 동안은 인국을 잘 씻긴 뒤에 밥이나 배불리 먹이자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불안하여 밥도 잘 안 먹고 말도 안 하던 아이가 사흘이 지나니 조금씩 적응이 되어갔다. 그러면서 해곶에서 지낼 때 일이나 머슴 생활 등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면 그런대로 대답을 하고 할머니와 인희 이야기도 조금씩 해나갔다. 인국은 할머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울먹했다. 그러나 인희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아마도 원망 같은 것이 가득했던 모양이다.
정 선생은 그 다음 일요일 새벽, 인국을 인쇄소 직원에게 맡겨두고 해곶으로 향했다. 인국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보고, 무엇보다도 인희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수소문하기 위해서였다.
해곶의 인희네 동네에 가서 자신이 인국을 서울로 데리고 갔노라 밝히고 잘 키우겠다고 말을 했다. 모두들 등을 토닥여 주면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나 인희에 대한 것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팔덕이놈과 도망갔다는 것밖에는. 서울로 갔는지 어디 저승에라도 가서 처박혔는지 누가 아느냐는 것이었다. 물론 팔덕에 대한 말도 전혀 들은 바 없다고 했다.
사실 해곶에서는 그 둘 말고도 심심찮으면 도망가서 소식이 안 닿는 아이들이 꽤 있어서 팔덕이나 인희가 유달리 큰 관심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늙은 할머니와 어린 동생을 놔두고 천하의 몹쓸 놈과 줄행랑쳤다는 것에 심사가 안 좋았던 것이다. 그러한 타박의 이면에는 인희가 자라면서 보여준 행실이 너무 착하고 생김새도 고운 덕에 안타까움이 짙었던 마음들이 있었던 것 같았다.
정 선생은 그 이상의 수확은 없이 서울로 돌아왔다. 인국에게 여러 문제집을 사다주며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진도 나가기가 아주아주 힘들었다. 게다가 인국이 공부에 거의 집중을 하지 못해 정 선생은 마음이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 중에도 정 선생은 열흘 뒤 토요일에 휴가를 받았다. 해곶에 한번 더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새벽에 출발해서 오전에 해곶에 도착한 정 선생은 인국이 다닌 학교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인국의 담임이었던 선생님을 만나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아, 예, 제가 담임을 맡았었습니다.”
나이가 지극한 여선생님이 교실에서 나와 정 선생을 맞았다.
“무슨 일이신지……?”
정 선생은 자기소개를 하고 머뭇거렸다.
선생님이 손목시계를 보면서 난처한 얼굴로 말을 한다.
“지금 수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만 교무실에 가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오늘은 오전수업이니까 제가 조금 일찍 끝나고 내려가겠습니다.”
“아, 예 예,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정 선생은 인사를 꾸벅 하고 교무실로 내려갔다.
이번에 정 선생은 뜻밖에도 두 가지 커다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하나는 인국, 또 하나는 인희에 대한 것이었다.
우선, 인국에 대해서는 희망이 생겼다. 인국 자신은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고 말했으나, 선생님을 만나보니 나름대로 배려를 해서 수업일수를 채워주었다고 한 것이다. 해곶과 같은 오지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교를 못 오거나 안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서 학교 규칙대로 하면 졸업은커녕 학년을 올라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편법이긴 하지만 여러 상황을 만들어 수업일수를 채워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물론 공개적인 것은 아니다. 아마 젊은 선생님이었다면 곧이곧대로 처리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나이 지긋하고 경험 많은 선생님이라 남몰래 인국에 대해 배려를 해준 것이리라. 따라서 법적으로 인국은 국민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졸업식에 참석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정 선생은 코가 땅에 닿을 듯이 절을 하고 졸업장과 졸업증명서까지 받고서 학교를 나섰다. 게다가 인국을 잘 보살펴 달라는 당부까지 받았다. 혹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에게 연락하라고 명함까지 주면서.
두 번째로, 이것은 아직 속단할 수는 없지만 잘만 되면 인희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로 뜻밖의 사실이었다. 인희에게서 시골집으로 우체국 체신환이 배달되었다는 말을 동네 아주머니를 통해 들었던 것이다.
“서너 번인가 왔었지 아마. 두 번은 할머니 살아 계실 때 왔었는데, 그리고 나서 한참 뒤에 또 왔는데 그때는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인국이도 머슴인가 뭔가로 어디론가 가버려서 아무도 받지를 못했어. 인국이가 있는 데를 모르니까 우체부 양반이 몇 번 왔다갔다 하다가 도로 가져가 버렸어. 그 다음엔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몰라.”
정 선생이 밤늦게 흡족한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가자 인국이 리본 모양으로 접힌 종이를 건네주었다. 인쇄소 직원이 와서 주고 갔다고 했다. 내용은 통일양말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인쇄소로 전화를 걸어와서 남긴 메모였는데, 혹 도움이 될지 모르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시간이 되면 연락을 하거나 들러달라는 것이었다. 정 선생은 캄캄한 밤길에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느낌이었다.
다음날 통일양말로 전화를 걸어보니 일부 직원이 나와서 일을 한다고 말해 주었다. 그 중에는 어제 전화를 한 아주머니도 있다고 했다. 정 선생은 곧바로 달려갔다.
“아니, 저번에 정 선생이 그랬잖우. 심통아줌마가 잘 어울리는 화투판 사람들 중에서 혹 아는 게 있을지 모르니 짬이 나면 한번 알아봐 달라고. 나는 화투는 잘 못하지만 개평 뜯느라 가끔 이 사람 저 사람 화투에 잠깐씩 끼어들고 하거든. 그런데 아 글쎄, 그제 저녁에 말이우……. 그 왜 우리 공장에 가끔 와서 기계도 만져주고 기름도 쳐주는 양반 있잖어. 그 사람 마누라가 내가 오랜만에 간 그 골방에 왔더라고. 난 사실 화투 별루 안 좋아해서 아주 가끔 너무 심심하면 가는데, 그 마누라가 나를 보며 자기도 오랜만에 왔는데 나도 오랜만에 와서 이렇게 만났네 하면서 반가워하는 거야. 그러고는 이런저런 수다를 한없이 늘어놓는데……. 그 마누라가 원래 그렇게 말이 많아. 한번 시작하면 숨도 안 쉬고 일사천리야…….”
정 선생은 마음이 급해 무슨 말이라도 들은 거냐고 재촉하려다 꾹 참고 그 수다를 다 들어주었다. 그러다 한참 만에 이런 말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 마누라가 얼마 전에 수원에 마실을 갔는데, 글쎄 사람들이 그 동네 근처에 아주 고약한 외다리 상이군인이 하나 있다며 흉을 본다는 거야. 그 인간이 술고래인데 그냥 아무데서나 드러누워 땡강 부리면 아무도 못 당한다는 거지 뭐야. 아이고, 그런데 그 작자한테 예펜네가 생겼다는 거야 글쎄. 그러면서 얼마나 욕을 해대는지 자기 귀도 아주 시커멓게 되었다고 투덜거리잖겠어. 그런데 그 상이군인이 자기 예펜네 욕을 또 동네방네 다니면서 해댄다는 거야 글쎄. 아이고…….”
정 선생이 숨넘어가기 직전에 기다리던 말이 튀어나왔다.
“그 예펜네가 왕십리 어디선가 놀아먹던 년인데, 응, 화투판에는 이력이 났다고 씨부렁거리고 다닌다나 봐.”
이 말을 하고 나서도 한동안 말은 이어졌다.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데 정 선생이 지난번에 여기 와서 하도 절박하게 부탁하기에, 내 귀담아 들었다가 전해 주는 거구려. 뭐 도움이 안 되어도 할 수 없고……. 아무튼 그래서 내가 일부러 거기 우리 공장 단골인 삼일식품 가게에 뛰어가서 전화 좀 빌려달래서 연락한 거라우.”
정 선생은 고맙다고 몇 번 말을 하고 나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무척 쓸모 있는 정보 같았다. 왕십리 화투판에서 놀았다? 그렇다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정 선생은 통일방직에서 기계들의 잔 고장을 고쳐주던 황 서방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찾아서 불렀던 사람이니까. 원래는 왜정 때 면사무소에 고용되어 농기계나 자전거 등을 고쳐주던 사람인데 해방 이후 자전거포를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눈치가 좋고 손재주도 있어서 웬만한 기계는 두어 번 만져보면 대강 고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 선생이 그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부탁하여 자주 공장에 오곤 했었다.
그 자전거포로 정 선생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황 서방은 자리에 없었고, 자전거포에서 심부름하는 아이 말이 그 부인은 시집간 딸이 아이를 낳았다 해서 그리로 달려갔다고 한다.
정 선생은 자신이 다녀갔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하고는 인쇄소로 돌아왔다.
2
팔덕은 수원의 하숙집을 접자고 결심했다. 딱히 다른 것을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현재의 지저분한 상황에서. 지금까지 무슨 일 무슨 짓을 하든 늘 자신만만했던 팔덕으로서는 처음으로 느낀 허탈감이었다. 돈은 많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꽤 모았다. 자기처럼 어린 나이에 그런 돈을 모으기가 쉽지 않으리란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작은 인희에게 갈 돈이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인희에게 죄책감이 드는 것이었다. 지금껏 팔덕이 인희를 버릴 수 없었던 이유에는 그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팔덕은 고향 해곶에 내려가면 행세깨나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곧 머리를 흔들었다. 만금을 주어도 그곳에는 다시 가지도 연락하지도 않을 것이다. 해곶하고는 영원히 인연을 끊겠다고 진작에 자신과 다짐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인희가 있었다. 해곶이 아직 자신에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풀지 못할 큰 숙제처럼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팔덕 스스로 짊어진 짐. 어쩐지 요즈음 모든 일들이 다소 꼬여가는 느낌이 들었다.
“할멈, 우리 다른 데로 이사 가면 어때요?”
팔덕은 자신도 모르게 심통에게 불쑥 이렇게 말을 꺼냈다.
“또 뭔 수작을 부리려는 게야? 그리고 나 할멈이라 부르지 말랬잖아. (××)”
“아이고, 알았어요.”
팔덕은 벌떡 일어나서 밥집을 나왔다.
팔덕은 진작부터 평택 쪽으로 마음이 가 있어서 몇 번 찾아가 보았다. 수원에서 조금 내려가 오산 지나면 바로 나오는 조용한 도시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서울 쪽으로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무슨 일을 하느냐였다. 지금처럼 또다시 하숙과 밥집을 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생각나는 일도 없었다. 게다가 또 하나의 문제는 심통과 상이군인이었다. 만일 그 두 사람을 내치면 적어도 심통은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할 것이다. 혹여라도 왕십리 쪽에 팔덕의 정보를 흘리는 날에는 일이 복잡해진다. 애초에 심통을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형님, 하숙 말고 다른 일 없을까요?”
팔덕은 그런대로 가까이 지내고 있는 수원 건달에게 물었다.
“왜? 여기 뜨게?”
“아뇨. 꼭 그런 거는 아니지만 일이 재미가 없어서요.”
“재미있는 일 찾으려면 이거 장사 해야지.”
건달이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려 보인다.
팔덕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형님은 해보셨수?”
“여기 찾아보면 같이 할 사람 많아. 돈만 댄다면 와르르 몰려올걸.”
“한번 알아봐 줘요.” 팔덕은 별 흥미는 없지만 지나가는 투로 그렇게 대꾸했다. “아 참, 평택 쪽에 아는 사람 없어요?”
건달이 씨익 웃으며 대꾸한다.
“좋은 데 골랐네.”
며칠 뒤 건달이 건들거리며 찾아왔다.
“사람 한번 만나볼겨?”
“무슨……?”
“장사해 본댔잖아.”
건달이 새끼손가락을 건들건들 흔든다.
“…….”
“따라와 봐.”
건달이 건드르하게 돌아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걸어간다.
“오라니까.”
머뭇거리고 있는 팔덕을 돌아다보며 건달이 건덩대면서 말한다.
건달이 팔덕을 데리고 간 곳은 수원의 경기도청 맞은편에 있는 다방이었다.
“회장님, 접때 말한 박쥐가 이 앱니다.”
중절모 쓰고 선글라스까지 낀 중년남자가 신문을 내려놓으며 팔덕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앉아.”
중절모는 담배를 비벼끄고 몸을 뒤로 젖혀 앉으며 다리를 꼰다. 그리고는 고개를 약간 왼쪽으로 돌려 두 개가 붙어 있는 안락의자 안쪽을 향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길을 정확히 볼 수는 없지만 팔덕에게 안쪽으로 들어가 앉으라는 의미 같았다.
팔덕은 기분은 좋지 않지만 순순히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건달이 뒤따라 팔덕 옆에 앉는다.
레지가 와서 코맹맹이 소리로 ‘커피 둘?’ 하고는 돌아서서 종종걸음으로 가버렸다.
팔덕은 후회가 막급했다. 빼도 박도 못할 상황이 된 것이다. 중절모가 이름하고 몇 가지 간단하게 묻더니 천천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고, 팔덕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섰다가 건달에게 팔을 붙들려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중절모의 검은색 승용차를 타고 간 곳이 평택이었다.
중절모는 평택 시내에 자그마한 호텔 하나와 카바레 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카바레 하나를 더 늘이려 하고 있는데, 자신이 다른 데 돈을 급히 쓸 데가 있어서 자금이 좀 모자라니 팔덕이 채워넣으면 재미 좀 볼 것이라고 했다. 부탁하거나 상의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절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팔덕은 계약서 하나 없이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건달의 건달들이 수원 하숙집에 몰려와서 다른 사람과 매매계약을 하고, 팔덕은 돈은 구경도 못한 채 밥집까지 몽땅 팔리고 말았다. 금액이 얼마인지 말해 주지도 않았다.
건들건달이 씨익 이빨을 보이며 굵은 팔로 팔덕의 어깨를 두르고 말했다.
“박쥐 아우, 이제부터 좋은 거 보게 될 거야.”
건달은 또다시 씨익 웃으며 말을 잇는다.
“그런데 저 쌍판 둘은 어떻게 할 거야?”
평소 같으면 욕에 욕을 해대고도 남을 심통과 상이군인이 밥집 구석에서 눈만 껌벅거리고 서 있었다.
팔덕은 평택의 새 카바레로 가서 지저분한 일을 맡았다. 심통은 주방에서 일하고, 외다리 상이군인은 카바레 입구에서 서성거리며 빈대 붙는 인간들을 쫓아버렸으며, 팔덕 자신은 카바레 아가씨들 관리를 맡은 것이었다. 즉, 밤손님들에게 아가씨들 붙여주고 화대 일부를 챙기는 일이었다. 팔덕은 거절할 수 없었다. 건달은 팔덕에게 솜씨를 잘 부리면 투자한 원금과 이자 이상을 챙길 수 있다고 말을 했다. 사실 그런 종류의 일은 팔덕의 생리에도 잘 맞았다. 그리고 수입도 생각보다 좋았다. 그러나 뜯기는 것도 많아 실질적으로 주머니는 늘 빈약했다.
그렇게 한동안 보내다 회장은 대전에 카바레를 또 하나 늘렸다며, 그곳으로 팔덕을 보냈다. 보아하니 아가씨들 다루는 솜씨가 괜찮다는 것이었다.
대전에서 몇 달이 지난 뒤 하루는 회장이 찾아왔다. 대천해수욕장 근처에 허름한 여관이 하나 나왔는데 주변에서 회장에게 인수해 보라고 권한다는 것이었다.
“박쥐 네가 한번 가서 살펴봐라. 쓸 만한지. 꼼꼼하게 봐야 해. 그런 거 보는 눈 잘 길러두면 나중에 너한테 큰 도움 된다.”
팔덕은 다 쓰러져 가는 그 허름한 여관을 찾아가서 살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고쳐서도 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수리비가 엄청날 것 같아서 차라리 새로 짓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팔덕은 대전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의 처지가 참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해곶에서 도망쳐 나와 공장 몇 군데 전전하다가 미제 물건 팔기 시작했고, 그것이 팔덕의 생리에 맞는지 주머니가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뒤에 괜스레 배짱이 생겨 인희를 서울로 데리고 오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오히려 인희 덕에 짭짤한 목돈이 생겼고, 그 덕분에 수원으로 내려가서 처음으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엉뚱한 말 한마디를 잘못하는 바람에 그때까지 모았던 돈 다 날리고 이렇게 여기저기 전전하게 된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사기치고 협박하여 뜯어모은 돈까지 허공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이 무엇인가? 다른 사람 주머니에서 경찰과 소방서, 보건소 인간들 주머니로 옮겨준 것도 모자라 저 악당 놈 주머니까지 채워주고 말았으니 팔덕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팔덕은 그동안 자기에게 크고 작은 돈 뜯긴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정 선생은 물론이고. 미안했다. 그들 모두에게. 그러다 피식 웃었다. 팔덕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떠올린 것 자체가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웠다. 따지고 보면 팔덕 자신이나 평택 회장이나 다를 게 무엇인가. 다들 악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회장이 큰 악당이라면 팔덕 역시 피라미이긴 하지만 영락없는 악당인 것이다. 팔덕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어쨌든 미안한 건 미안한 거지. 자기에게 당한 그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지나온 일들을 더듬다가 문득 이런 상태로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천 그 허름한 여관은 사실 회장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소문은 그보다는 좀 좋게 난 모양인데 팔덕이 보기에는 가망성이 없다. 그렇지만 만일 자신이 그 여관을 떠맡는다면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 수원의 그 하숙처럼 여관비를 반값으로 내려서 모험을 해본다면 어떨까? 그 여관을 아주 헐값에 살 수만 있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도 같았다.
팔덕은 결심했다.
평택으로 돌아온 팔덕은 회장에게 그 여관을 자신에게 달라고 사정했다. 그 대신 수익금의 일부를 회장에게 드리겠다고 했다. 그 비율은 회장에게 정하라고 했다. 팔덕은 수원을 떠난 뒤로 자신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했다고 하며,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했다. 회장이 그 여관을 인수만 해준다면 나머지는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 수익금과는 별도로 그 인수금은 자신이 꼭 갚겠다고 했다.
회장은 눈을 감고 한참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뜨고 팔덕을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수원 하숙에서 재미는 좀 봤나?”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규모가 작아서.”
“네 나이에 대천 것은 너무 큰 거 아냐?”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해볼 자신 있습니다.”
“인수금 날리면 어떡할꼬?”
“…….”
팔덕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회장은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한참 만에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밑에 와서 고생만 했지? 좀 억울한 생각도 들 텐데?”
팔덕은 대답 없이 계속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회장은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울 동안 말이 없다가 꽁초를 비벼 끄면서 일어섰다.
“알았어. 한번 해봐.”
뜻밖이었다.
팔덕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는데 회장은 무심한 듯 팔덕을 지나쳐 가며 등 뒤로 말을 했다.
“대천에 내 아우가 있는데, 그 친구한테 도와주라고 할 테니까 한번 잘 해봐.”
나중에 건들건달한테 들어보니 대천 아우라고 하는 그 사람은 대천 대칠이파 두목 백대칠이라고 했다.
3
정 선생은 사장에게 또다시 부탁해서 하루 휴가를 냈다. 계속 염치없지만 정 선생 자신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이번에도 정 선생은 해곶으로 향했다. 시흥군 군자면의 가장 외진 곳. 그곳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정 선생은 우체국 출장소로 찾아갔다. 출장소는 도청이나 시청, 군청, 동사무소 등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설치한 임시 정부기관을 말한다. 정 선생은 출장소 한 여직원에게 인희와 인국, 그리고 그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그 집으로 3년 전에 체신환을 배달한 우체부를 찾는다고 했다.
“무슨 일인데요?”
여직원은 고개를 갸웃하고 묻는다.
“그 집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하나 남은 손자는 다른 곳으로 떠났는데, 그 뒤에도 체신환이 몇 번 그 집으로 보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살지 않으니까 반송이 되었을 텐데…….”
“혹시 그 체신환 보내신 분이세요?”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그 체신환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서요.”
여직원은 상당히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희가 아무 답변도 해드릴 수 없습니다. 체신환 보내신 분이 직접 오시라고 하세요.”
정 선생은 난감했다.
“제가 오해하게 말씀을 드린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실은 그 반송된 주소를 알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경찰이세요?”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고…….”
여직원은 홱 돌아서서 가버린다.
정 선생이 뒤쫓아가려는데 저쪽에서 한 남자가 부른다.
“무슨 일인데 그러시는 겁니까? 여기 사람 의심하는 겁니까?”
“아아뇨. 저는 단지 그 체신환을 보낸 사람…….”
“이것 봐요. 체신환 수취인이 없으면 보낸 곳으로 반송하지, 우리가 그런 것 가지고 어떻게 수작부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정 선생은 얼굴이 화끈해졌다. 정 선생은 깊이 허리를 숙였다.
“오해하시게 해서 죄송…….”
“어이, 심군, 이 사람 내보내!”
저쪽에서 사환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애가 뛰어온다.
정 선생은 그 남자 앞으로 뛰다시피 다가갔다. 명함을 꺼내들고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제가 좀 사연이 있습니다. 제 딸 같은 아이를 찾는데, 그 아이가 체신환을 해곶 할머니에게 보냈거든요.”
“해곶? 저쪽 갯벌 쪽?”
“예, 맞습니다. 인희라는 아이인데…….”
“인희? 그 서울로 도망갔다는 애?”
정 선생은 숨이 차 헐떡거리며 자신이 인희를 찾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남자는 처음에는 못마땅해 했지만, 정 선생의 이야기를 호기심을 가지고 다 들어주었다. 자신도 그 근처에 친척이 살고 있기에 그 사람들을 통해서 인희라는 여자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정 선생은 단지 그 체신환이 반송된 주소만 알고 싶다고 했다. 인희의 주소 말이다. 그러나 남자는 그러한 것을 함부로 알려주는 것은 규칙위반이라고 거절했다. 게다가 그 당시 그곳 담당 우체부는 지금 병으로 집에서 쉬고 있어서 다른 사람은 그것을 알 수도 없다고 했다.
정 선생은 그 우체부 주소를 알려줄 수 없느냐고 말을 꺼내려다 아차 싶어서 얼른 입을 닫았다. 그러한 개인정보를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하는 수 없이 정 선생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면서 혹 자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남자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명함을 받았다.
정 선생은 절을 몇 번이고 하고는 우체국을 나섰다.
서울로 올라오는 동안 정 선생은 맥이 다 풀렸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는 거냐고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다. 그날 밤 정 선생은 약간의 악몽 같은 꿈에 시달렸다.
그 뒤 정 선생은 며칠 동안 풀이 죽은 채 지냈다. 갑자기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며칠 뒤에 정 선생이 공장 안에 있을 때 사무실 김 양이 정 선생을 찾았다.
“정 선생님, 전화 받으세요. 해곶이라고 하는데 여자분이세요.”
정 선생은 후다닥 사무실로 달려갔다. 여자? 누구지?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아, 예, 송 선생님이시죠? 저 인국이 담임했던 사람인데, 아시겠어요?”
“아이고, 물론입니다. 어쩐 일로 전화까지…….”
“저, 혹시 얼마 전에 이곳 우체국에 다녀가신 일 있나요?”
“아, 예. 그런데 그걸 어떻게……?”
내용인즉 이러했다.
그 윤 선생의 친척 되는 사람이 암으로 수원도립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그곳에서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어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야 했다. 그리고 그 친척은 우체부라고 한다. 윤 선생이 그 사람 병문안을 갔었는데, 마침 같은 우체국의 계장이라는 사람이 먼저 찾아와 있었다. 윤 선생은 두 분이 말씀 나누시라 하고는 약간 떨어진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대화 중에서 인희라는 이름이 얼핏 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혹시나 하고 귀를 세우고 엿듣게 되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다 듣지는 못했지만 중간중간에 체신환, 주소불명, 반송, 고양군, 진도면 우체국 출장소 등의 단어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그래서 정 선생한테 혹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알려주려 했다는 것이다.
정 선생은 전화에 대고 절을 하듯이 허리를 숙이면서 고맙다고 대답했다.
“저도 인희를 잘 알고 있었어요. 우리 반은 아니지만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는데, 공부도 잘 했다고 하더라고요. 꼭 찾아주면 고맙겠어요. 인국이하고 그 아이하고 둘 다 선생님과 함께 살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아이 소식 아시게 되면 저한테 꼭 연락 주세요…….”
사흘 뒤, 그 다음날은 추석이며 토요일이었다. 따라서 오랜만에 일요일까지 합해 연휴가 되는 것이었다. 인쇄소 사장은 시골로 가는 직원은 오전근무만 끝내고 퇴근하게 하고, 나머지 직원들은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집에 가도록 했다.
정 선생은 사장에게 점심 뒤 일찍 외출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사장은 전혀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열심이군. 그 아이 끝까지 찾아봐. 여기는 내가 마무리 지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정 선생은 한 달음에 진관외리 근처의 진도면 우체국 출장소로 달려갔다. 추석 전날이어서 그런지 사람들로 붐볐다.
정 선생은 이번에는 제일 윗사람 방으로 찾아갔다. 심호흡을 하면서 문을 노크하려는데 문이 열리면서 한 여직원이 쟁반에 찻잔과 이것저것을 담고서 나왔다.
여직원은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묻는다.
“어떻게 오셨어요?”
“저, 뭣 좀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여직원은 무슨 일이냐는 듯이 쳐다보며 말을 한다.
“안에 아무도 안 계세요. 일이 있어서 일찍 나가셨어요.”
여직원은 마치 자신에게 이야기하라는 듯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한다.
정 선생은 갑자기 말문이 꽉 막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여직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중에 다시 오시면 안 될까요?”
여직원은 약간 당돌한 느낌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좀 이상한 부탁을 드려야 해서요…….”
여직원은 호기심이 이는 표정이었다.
“말씀해 보세요.”
정 선생은 심호흡을 한 뒤에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그 반송된 주소를 좀 알 수 있을까 해서요.”
“주소는 알려드릴 수 없어요. 어떤 경우든.”
그리고는 약간 낮은 목소리로 덧붙인다.
“그 이야기 저도 들었어요. 똑같은 주소로 반송된 체신환이 무척 많았거든요. 그래서 여러 사람이 이상하다고 말을 해서 여기에서는 많이 알고 있어요. 좀 오래 된 일이긴 하지만.”
여직원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이었다.
“한 가지 알려드리면, 반송된 주소는 없는 주소였대요.”
“네, 그게 무슨……?”
“저희도 어떻게 된 건지 몰라요.”
약간 냉정한 목소리.
정 선생은 갑자기 온몸의 맥이 다 풀리는 느낌이었다. 실오라기 하나라도 잡으려던 것이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다.
“좋은 일 하시려는 건데, 더 이상은 말씀드릴 게 없네요.”
정 선생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터벅터벅 걸어서 출장소 현관으로 걸어나갔다.
정 선생은 현관 앞에서 잠시 망연히 서 있었다.
여기까지구나.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 심통여사를 찾는 한 가닥 희망은 남아 있지만, 그 지루한 일을 또다시 해나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이쯤에서 멈추고 인국의 교육에만 힘을 쏟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사실 그 일도 쉬운 게 아니었다. 인희는 언젠가 운이 되면 그때에…….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정 선생은 무심코 돌아다보았다.
좀 전의 여직원이 숨을 몰아쉬며 뛰어오고 있었다.
“아휴, 벌써 가셨으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여직원은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으로 무릎을 잡은 채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쉰다.
정 선생은 놀라서 입이 벌어진 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직원은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저……. 한 가지 생각나는 게 있어서 알려드리려고요. 아까는 깜박 잊고 있었어요.”
여직원은 손을 가슴에 가져가며 다시 숨을 몰아쉬었다.
“후……, 그러니까……, 후……, 체신환의 경우 수취인 주소가 잘못되는 경우는 가끔 있는데, 발신인 주소가 불명인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후……, 그래서 그 당시 담당하던 선생님이 하도 이상해서 좀 조사를 해봤대요. 그 이야기도 저희 우체국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던 건데……, 후……. 아유, 이제 좀 낫네……. 그, 그 체신환 우리 우체국에서 접수된 게 아니거든요. 그 선생님이 알아보니까……, 부천이라고 했었어요.”
정 선생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하며 몸을 돌이켜 허겁지겁 달려나갔다.
추석 전날이어서 도로는 어디를 가나 꽉 막혀 있었다. 정 선생의 마음은 부천으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 가봤자 이미 문을 닫은 뒤일 것이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을 접고 정 선생은 만리동 공장으로 갔다. 우선 자신의 사글세방으로 가서 인국이 잘 있는지 확인한 다음 공장으로 걸어갔다. 벌써 날은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이미 불 꺼진 공장의 사무실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정 선생 책상에 편지 두 통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해곶 인국의 선생님에게서 온 것이었고, 또 하나는 삼도봉 흥불사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삼도봉은 1,100미터가 넘는 고봉이고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큰 산이어서 예로부터 삼남도(三南道)를 지켜주는 산이라 하여 나라에서도 중시하는 곳이었다.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가 만나는 곳이며, 정상은 날라리봉이라고도 부른다. 그곳에서는 해마다 산신제, 터울림 사물놀이 등을 지내며, 한반도 남부의 모든 정기가 그곳에 모이고 흩어진다 하여 많은 신앙인들이 찾아 기도와 치성을 드리거나 굿을 한다. 지금은 삼도봉이 어느 양씨 가문 소유라는 말도 있는데, 진위야 알 수 없지만 정말 그렇다면 그 가문은 조상 대대로 나라와 백성에게 큰 덕을 세운 게 틀림없다. 자자손손 덕성이 무궁할지고.
정 선생은 먼저 해곶에서 온 편지를 뜯었다. 간단한 안부인사와 함께 지난번 정 선생이 부탁한 사진을 보낸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초록 색종이로 잘 감싼 사진이 동봉해 있었다. 지난번 그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왔을 때, 전화 말미에 정 선생이 혹 인희의 사진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부탁해 두었던 것이다. 정 선생은 그동안 크게 후회하고 있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인희와 함께 신창에 갔을 때 왜 사진관에라도 가서 사진 한 장 찍어둘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때로서는 그런 생각을 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어떻든 그랬다면 인희를 찾는 데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래서 그 선생님과 전화를 다 하고 끊을 무렵 불현듯 그 생각이 나서 사진을 부탁해 두었던 것이다.
정 선생은 그 선생님이 멀리서 보기라도 하는 듯이 해곶 방향으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다시금 힘이 솟는 느낌이었다.
정 선생은 꼼꼼히 접은 색종이를 펴서 사진을 꺼냈다. 인희 담임에게도 알아보고 했지만 다른 사진을 찾을 수 없어 학교에 있는 졸업앨범에서 잘라 보낸다고 한 것이었다. 뒷면에도 사진이 있었는데 먹물로 지워놓았다. 그러나 너무 진하게 칠하면 뒷면이 배겨나올까 걱정되어 그랬는지 연하게 칠해져 있었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배려해 준 그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 이번에는 마음속으로 꾸벅 인사를 했다.
인희. 사진이 아주 또렷하지는 않았다. 깡똥 단발머리 모습. 그러나 알아볼 수는 있었다. 지금은 모습이 많이 바뀌었겠지만, 그래도 이 사진이 있으면 인희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또렷이 뜬 눈, 약간 웃는 듯한 입술이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천성은 그랬을 것이다. 환경이 나빴던 것이지. 정 선생은 그 사진을 다시 색종이 쌌다. 그 선생님의 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반듯반듯 꼼꼼하게 잘 접은 색종이.
두 번째 편지. 정 선생이 방황할 당시 충청남도에 있는 삼도봉의 흥불사에서 여러 번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거의 매년 추석날 밤이면 정 선생은 그곳을 찾았다. 흥불사에서는 1년에 세 번 바라춤을 신도들에게 공개했다. 정월대보름 밤과 청명이 지난 첫 보름, 그리고 추석날 밤. 정 선생은 지난 봄 서울에 돌아와서 이곳 인쇄소에서 일하게 된 뒤 흥불사로 편지를 보냈다. 올해 추석에는 회사 일 때문에 갈 수 없게 되었노라고.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보낸 그 글에 그곳 주지스님이 답신을 해준 것이다. 편지에는 간단한 안부와 함께, 흥불사로 올 수 없는 환경이라 하니 서울에서 가까운 곳을 소개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강화도의 성불암. 그곳도 역시 흥불사와 마찬가지로 1년에 세 번 똑같은 날짜에 바라춤을 공개한다고 했다.
4
추석이라 길은 한산했다. 성묘가기 위해 차량이 몰리는 곳 약간을 제외하고는 도로는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정 선생은 오후에 인국을 데리고 강화도로 향했다.
강화는 한강을 비롯해서 임진강과 예성강 등이 만나는 곳이며, 여러 개의 강 아래에 있다 하여 처음에는 강하(江下)라고 부르다가 나중에 강 아래쪽의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의 강화(江華)라고 불렀다 한다. 섬 남쪽에는 제일 높으며 높이가 500m 가까이 되는 마니산이 있고, 산꼭대기에는 하늘에 제사를 지낸 참성단(塹星壇)이 있다. 그 밖에도 오밀조밀한 여러 산이 있는데 마니산과 엇비슷한 높이이지만 그리 험준하지는 않다. 또한 서해 쪽으로 교동도와 석모도 등 크고 작은 섬이 여러 개 떠 있어서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섬 사이로 바다가 굽이돌아 펼쳐져 있어서 경치가 아주 좋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왕실이 개경에서 그곳 강화로 천도한 뒤 한 선사가 강화가 고려 국운을 지키는 성지가 될 것이라며 ‘강화천신강하도’라는 그림을 그려서 참성단 아래에 파묻었다고 하는 설화가 있는데 그 진위는 확실치 않다.
김포군을 지나 강화도로 들어가니 좁은 길에 도로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많은 돈을 달라는 시발택시 운전사와 간신히 타협을 해서 송해와 하점 사이로 난 길을 잠시 달린 뒤 별립산 입구에서 내렸다. 거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했다.
성불암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바라춤을 1년에 세 번 공개한다는 소문이 돌아서 일부러 그 시기에만 찾아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다. 삼도봉 흥불사 주지 스님의 편지에 의하면 별립산 입구에 자그마한 대피소 비슷한 것을 지어놓고 그 바깥벽에 성불암 찾아가는 나무판 안내도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약간 고생은 했지만 정 선생은 그곳을 제대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좁다란 길 조금 아래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어 여러 사람이 한 데 어울려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다가와 합장을 하고 정 선생에게 성불암 가는 것이냐고 먼저 물었다. 정 선생이 그렇다고 대답하고 초행길이어서 좀 헤매고 있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자신들은 매년 그곳에 올라간다고 하며 따라오라고 했다.
저녁 7시에 바라춤이 시작되었다. 이 바라춤은 불전에서 예를 드릴 때 자바라(啫哱囉)를 치고 천수바라니(千手陀羅尼)를 외면서 추는 것으로서, 불법을 지키고 의식도량(儀式道場)을 정화하여 사찰과 불전이 성스러운 곳이 되도록 비는 춤이다. 자바라는 놋쇠로 만든 둥글넓적한 두 짝을 마주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로서, 중앙의 배는 불룩하며 그 한가운데 끈을 꿰어 늘어뜨려 놓았다. 이 자바라를 ‘바라’라고도 부른다. 자바라를 서양악기로 치면 작은 심벌즈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천수바라니는 천수관음의 공덕을 적은 주문으로서, 이것을 외면 모든 악업과 무거운 죄가 사라진다고 한다. 성불암에서는 봄과 가을 및 겨울에 각각 명바라, 천수바라, 사다라니바라를 추는데, 오늘은 천수(千手)바라에 해당한다고 했다. 천수바라춤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으로서 보통 다섯 명이 한 줄로 늘어서거나, 한 명이 한가운데 서고 나머지 네 명이 그 둘레에 서서 추게 된다. 또한 바라춤은 죽은 사람의 혼이 극락으로 가도록 비는 천도재(薦度齋) 성격도 지니고 있다.
9월말이어서 저녁 해가 지긴 했지만 아직 잔양이 남아 있어서 사위는 약간 어둑할 뿐 사물을 분간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게다가 밝은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고, 불전 앞과 앞마당 여기저기에 불을 지펴놓았고, 불등도 달아놓았다.
고깔을 쓴 네 명의 여승이 동서남북 사방에 서서 흰 장삼에 붉은 가사 녹색 띠를 두르고 두 손에 바라를 들고서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한가운데에서는 한 여승이 특이하게도 흰 옷에 소매가 아주 긴 장삼을 입은 채 자바라는 들지 않고 승무를 추었다. 한쪽에서는 천수바라니를 외는 소리가 나고, 그 옆에서는 범패(梵唄)의 은은한 음률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불전 맞은편에서는 한 신도가 바라춤을 등지고 서서 바위에 새긴 부처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주문을 외고 있었다. 엎드려 바라옵나니 대중께오선 신비하고 묘한 불빛 대다라니를 동음으로 창화해 주시옵소서…….
춤이 무르익어감에 따라서 여기저기서 합장하고 기도하는 소리가 웅성웅성 들려왔다. 그러나 정 선생은 한가운데 선 여승의 희고 긴 적삼이 너울거리는 모습에 넋을 잃고 있었다. 그동안 바라춤이나 승무를 여러 번 보았지만 이 여승의 움직임에서는 남다른 것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적삼이 하늘 높이 올라가면서 불빛이 반사되어 나갈 때마다 그 빛 속에서 정 선생은 묘한 전율을 느꼈다. 희고 붉은 빛들이 흩어졌다 모아지고 잔별같이 화르르 퍼지기도 하며 영겁에서 오는 듯 한 줄기 섬광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흰 적삼이 휙 펼쳐지면서 인간의 모든 고뇌가 하늘로 일시에 퍼져나가 아스라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라지고, 두 팔을 모았다 하늘을 향해 들어올릴 때는 감추어진 손에서 늘어진 채 따라 올라가는 적삼 끝에서는 이 땅의 모든 생명이 담겨 소생하듯 피어나듯 벅찬 기운이 감도는 것이었다.
여승이 묵음의 세계처럼 고요한 모습으로 몸을 돌리며 한 손으로 적삼을 허리에 두를 때는 마치 위로와 안위의 기운이 정 선생을 감싸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한 손을 어두운 하늘 위로 번쩍 들어올리며 적삼이 영겁의 상천 하늘로 퍼져나갈 때, 아……, 그 적삼 끝에서 정 선생은 보았다. 연선의 모습을. 펄럭이는 적삼을 따라 연선이 저 어두운 구중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연선. 정 선생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뒤이어 여승의 또 한 팔이 허공으로 달려 올라간다. 그리고 하얀 적삼이 암흑의 공간 속으로 퍼져 들어가는 순간, 그 기운을 타고 또 한 영혼이 억겁을 향해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 태어났으나 모든 인고를 물리치고 하늘나라로 간 아기, 인희였다.
내 아기…….
정 선생은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안 돼! 붙잡아야 했다. 저 영혼들, 저 생명. 자신이 떠나보낸 아름다운 두 영혼. 정 선생은 두 팔을 들고 허적이며 달려나갔다. 안 돼! 마음에서는 소리치고 있었으나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는 절규. 그러나 절박했다. 자신의 생명과 같은 두 영혼. 붙잡아야 한다!
그 순간 한 손이 정 선생의 허리를 감쌌다. 스님이었다. 한 스님이 다 보고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 부드러운 손과 팔로 정 선생을 감싸안았다. 정 선생은 그 자리에서 무릎이 꺾이며 주저앉았다.
5
다음날 새벽 정 선생은 인국과 함께 강화도를 출발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향하는 내내 정 선생은 연선과 아기 생각에 가슴이 메었다. 그리고 마음에 또 한 번 다짐을 확고히 하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인희를 찾자고.
집에 도착한 정 선생은 마음을 가다듬은 뒤 인국과 함께 집을 나섰다.
버스에서 내려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 간단한 선물을 사 가지고 왕십리 자전거포로 행했다.
딸의 출산으로 사위집에 가 있던 부인이 추석이라 집에 와 있었다.
정 선생은 그 부인에게 자신의 입장을 간단히 설명한 다음 수원에 놀러갔었다는 친구 집을 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무슨 큰 사건에라도 휘말린 양 겁을 먹은 눈치였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 황 서방이 대답하라는 표정으로 부인을 쳐다본다. 하지만 부인은 입을 꼭 닫고 돌아앉았다.
“저는 그저 그 친구 분과 이야기만 하고 싶을 뿐입니다.”
부인이 일어서려는 자세를 취했다.
“아니, 잠깐만요. 심통 아주머니를 찾게 되면 제가 사례를 하겠습니다. 저는 다른 뜻은 없습니다. 여기 이 아이가 인희의 동생 인국입니다. 제가 시골에서 데려와서 키우고 있습니다. 부모도 없고 집도 없이 떠도는 아이들입니다. 인희를 꼭 찾아야 합니다. 도와주시지요.”
부인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돌아본다.
“난 끼어들고 싶지 않아요! 그 예편네가 괜한 말 옮겨서 나까지 고생이네. 쳇!”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 서방이 앉은 채 입을 연다.
“임자, 당신도 어렸을 때 친척집에서 크면서 고생했다고 했잖아. 좀 도와줘.”
“아, 내가 왜 이런 일에 끼어들어야 해요! 내 일도 바쁜데. 당신은 가만있어요!”
부인은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황 서방이 머쓱한 표정으로 부인이 나간 방문을 바라본다.
“젠장……, 고집은…….”
정 선생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황 서방이 주저하는 목소리로 입을 연다.
“정 선생, 내가 구슬러 볼 테니까 오늘은 그냥 가소. 내가 연락하리다.”
정 선생이 주춤주춤 일어서서 황 서방 쪽으로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여기 왕십리 분위기가 요즘 이상해…….”
황 서방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정 선생이 돌아다보았다. 황 서방이 뒤따라 일어나면서 말을 잇는다.
“요즘 말여, 이상한 인간들이 여기저기 기웃거려. 깡패놈들 같기도 한데, 아 저번에는 내가 없을 때 우리 가게에 와서 김군에게 우리 마누라 어디 갔느냐고 묻더라는 거야. 왜 그 심통아줌씨가 양말 팔아먹었다는 사람들 있잖아. 아무래도 그쪽 인간들 같은 느낌이 들어…….”
황 서방은 헛기침을 했다.
정 선생이 얼어붙은 얼굴로 황 서방을 쳐다보았다.
황 서방은 그 시선을 피하면서 방을 나가려 한다. 미닫이문을 반쯤 열다 말고 또다시 중얼거린다.
“우리 마누라 괜한 짓을 벌였어. 그놈의 화투에 미쳐서 수원까지 갔으니……. 정 선생도 조심하시게.”
정 선생은 얼른 다가가서 황 서방 팔을 붙잡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 찾아온 사람들이 누구예요?”
황 서방의 말은 이러했다.
열흘 전쯤에 자신이 일을 나간 사이에 건달 같은 놈 둘이 자전거포 김 군에게 주인아주머니 어디 있느냐고 묻더래. 그래서 딸집에 갔다고 했더니 그냥 한참 쳐다보기만 하고 가더라는 거야. 그래서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지냈는데, 며칠 뒤 어떤 양복쟁이가 와서 돈을 조금 주면서, 주인아주머니가 오면, 왜 저 건너 밑다리 동네 지나서 말여, 거기 장미다방이라고 있잖어, 거기 와서 민지라는 레지를 찾아서 알려주라고 하더라는 거야. 김 군은 얼떨결에 돈을 받긴 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겁이 나서 뛰어가 돌려주었다나 봐. 아, 나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겁이 덜컥 났지 뭐야. 그저께 마누라가 여기 집에 와서 그 이야기를 듣고는 얼굴이 하얘져서, 아이고 내가 괜한 말을 했네, 그 예편네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말 옮기는 데 선수인데……, 하고 안절부절못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자세히 물었지. 대체 뭔 말이냐고. 그랬더니 수원인가 어디 가서 화투치며 놀다가 들은 얘기를 하고 다녔다는 거야. 속없는 마누라 같으니라구. 그 얘기가 정 선생한테까지 들어갔구먼.
정 선생은 짐작이 갔다. 철종인지 하는 인간이 심통여사를 집요하게 뒤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원 화투쟁이가 심통여사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정 선생은 황 서방에게 무릎을 꿇었다.
“아니, 이 양반 왜 이려? 아이고, 일어나. 어서 일어나셔.”
“영감님, 저 꼭 그 아이 찾아야 합니다. 여기 이 아이 보세요. 이 아이들 불쌍하잖아요. 제가 그 애 찾아서 이 두 아이에게 미래를 심어줘야 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아이고…….”
황 서방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이틀 뒤 황 서방에게서 인쇄소로 전화가 걸려왔다. 근처 쌀집에서 전화하는 거라고 했다. 자기 부인이 겁을 많이 집어먹은 상태라고 했다. 김 군에게는 절대 그놈들하고는 접촉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놨다고 한다. 그러면서 마누라 설득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는 말을 하고는, 수원 화투쟁이가 산다는 곳을 대강 알려주었다.
감사, 감사합니다. 정 선생은 전화기에 대고 머리를 조아렸다.
6
정 선생은 그 주 토요일 사장에게 휴가를 내달라고 부탁했다. 이번에도 사장은 흔쾌히 허락하고 등을 두드려 주며 말했다.
“참 열심일세. 끝까지 가봐. 좋을 일 생길 거야.”
정 선생은 우선 부천으로 향했다. 오전에 부천에서 일을 끝내고 오후에는 수원으로 향할 요량이었다.
부천 우체국으로 들어서는 순간 정 선생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게다가 막상 들어오긴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디에 가서 누구를 붙잡고 또 그 긴 설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정 선생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 설명을 하도 여러 번 한 덕에 간단하고도 핵심만 말하는 요령도 익혔다. 그것이 도움이 되었으리라고 정 선생은 스스로를 위안했다.
정 선생은 눈에 띄는 첫 번째 창구에 가서 좀 기다리다 접수계원에게 다가갔다.
“저, 말씀을 좀 드려야 하는데요……. 이 사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이것은 4~5년 전에 찍은 것인데, 한 3~4년 전에 이 아이가 여기 자주 와서 체신환으로 시골에 돈을 부쳤거든요…….”
직원은 짜증난 얼굴로 정 선생 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는 사진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얼굴을 들어 정 선생을 바라보았다. 빨리 용건만 말하라는 표정이었다.
“이 아이 기억하실 만한 분 계실까요? 제가 꼭 찾아야 하는 아이라서요. 실은 이 아이가…….”
직원은 사진을 돌려주면서 정 선생 말을 막으며 고개를 흔든다.
“지금 바쁜 시간이거든요. 저기 저 끝에 있는 창구에 가서 물어보세요. 저 사람이 1~2년 전인가 어떤 애가 자주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정 선생은 또다시 허리를 굽혔다.
정 선생이 끝 창구에 가서 한참을 기다려 만난 직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사진을 바라보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자리를 떴다. 사무실 안쪽 깊숙이 들어가서 어떤 책상으로 가서는 중년남자와 사진을 함께 보며 무슨 이야기인가를 나누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두 사람이 창구로 왔다.
창구직원이 아닌 또 한 사람인 중년남자가 정 선생에게 말을 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지요.”
남자가 창구 옆 작은 쪽문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정 선생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창구가 지금 바빠서요. 저한테 말씀하시지요.”
남자는 자신의 책상으로 정 선생을 데리고 가서 의자를 권했다.
정 선생은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비교적 소상히 설명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인내심 있게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도 그 아이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한 2년, 아니 3년 전부턴가 근 1년 이상 그 아이가 이곳에 찾아왔었는데, 저 앞에서 조금 전 만났던 그 여직원이 그 아이를 상대했다고 하더군요. 인희라는 아이가 저 직원에게만 왔었던 모양이에요.”
그리고 나서 이어진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체신환 신청서에 쓴 이름은 송인희였는데 주소는 고양군 쪽으로 되어 있어서 창구 직원이, 인희가 두 번째인가 왔을 때 왜 부천에 와서 보내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희는 대답이 없이 고개를 약간 숙이고 머뭇머뭇하더란다. 그래서 직원은 그 이야기는 더 묻지 않고 일을 진행했는데 그것이 몇 달간 계속 이어지면서 두 사람이 간간이 대화를 나누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시골에 있는 할머니와 동생에게 보내는 것이라는 말과, 해곶인가 하는 곳에서 왔다는 것 외에는 거의 말이 없었으며, 그 직원이 몇 학년이냐고 물었더니 우물우물하는 것을 보고 아마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근처에서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말은 없이 고개만 끄덕이더란다. 어디냐고 물으려다 아이가 꺼려할 것 같아서 참고 있다가 한번은 공장에 다니느냐고 넌지시 물은 적이 있었는데, 아이는 그때도 말은 없이 고개만 약하게 끄덕였다고 한다. 창구가 항상 바쁘고 또 그 아이가 오는 시기도 늘 사람으로 붐비는 월말이어서 이러한 말들 외에는 거의 대화가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 아이가 온 기간은 1년 조금 넘었다고 한다. 그 뒤 그 아이에 대해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고양군 쪽 우체국에서 연락이 와서 그 아이가 신청한 체신환에 대해 묻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직원이 전화를 받아 대화해 보니 초반에 보낸 두어 번 말고는 모두 반송되었으며, 반송된 주소로 찾아가 보니 주소불명이었다고 하더란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체국 내에서 잠시 화제가 된 적 있었다고 한다.
정 선생은 희망이 낙망으로 변하는 느낌을 받으며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물었다.
“혹시 인희가 오지 않게 된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그러나 남자는 그런 상세정보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아마 그 시기에 이 근처 공장에서 큰 불이 났었던 것은 기억이 납니다.”
정 선생은 귀가 번쩍 뜨이는 느낌이었다.
“사람도 몇 죽고 하는 바람에 몹시 시끄러웠어요. 신문에도 많이 실리고. 공장 직원들이 오랫동안 데모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기억이 남아 있어요. 그 시기가 맞을 겁니다. 왜 불난 공장에서 목매 죽은 시체가 나왔다는 그 사건 말입니다. 그 일 아시나요?”
사실 정 선생은 그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연선이 죽고 나서 심산유곡을 떠돌던 시기였으니까.
“그때 이곳 근처가 무척 소란했습니다. 별별 해괴한 소문이 다 돌고…….”
여기까지였다.
아쉽지만 정 선생은 일어나야 했다.
정 선생은 처음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준 명함으로 혹 도움이 될 만한 소식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부탁하고는 큰 절을 한 뒤에 돌아섰다. 그리고는 창구 그 여직원에게 가서도 역시 큰 절을 했다. 여직원은 당황해 하며 자신도 고개를 숙였고, 근처에 있던 손님들은 궁금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실망이 컸지만 정 선생은 일단 그 정도로 만족하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이 그런 식으로 실망과 기대가 겹쳐지면서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지 않았던가. 사실 따지고 보면 인희가 이 근처에 1년 이상 있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큰 성과가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는 또 어떻게 되겠지…….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