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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선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팔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방법밖에 없다. 그 녀석 있는 곳에는 틀림없이 인희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천이라는 곳을 뒤져야 한다. 그러나 그곳은 거리가 멀어서 하루에 다녀오기는 힘들다. 게다가 대천 어디를 뒤진단 말인가?
그러나 한 가지 수월하겠다 싶은 것은 지금이 겨울이라서 피서객이 적어 여름 해수욕장이 있는 대천은 좀 한가할 것이다. 게다가 팔덕이 놈의 활동무대야 뻔하지 않은가. 카바레나 그 어스름 근처에서 또 누구를 등쳐먹겠지.
하지만 연말이라서 인쇄소 일이 많았다. 달력도 밀려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시간이 급하다며 매일같이 독촉하고 있었으며, 특히 정부 부처에서 맡긴 일은 절대로 기한을 넘기면 안 되는 것들이었다. 정 선생은 마음은 급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12월이 다 가고 12월 30일이 되었다. 그날 저녁때 송년회를 하기로 정했고, 다음날은 오전근무만 하고 직원들을 퇴근시키기로 했다. 물론 새해 첫날은 근무하지 않는다.
정 선생은 다음날 12월 31일 새벽 일찍 서울역으로 가보았다. 대천으로 가려면 우선 대전까지는 기차를 탄 다음 시외버스로 가야 한다. 그래서 혹 기차표 남은 것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없었다. 그러나 사람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았다. 암표도 알아보았으나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서울역 맞은편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보았다. 역시 없었다. 암표도 없었다.
다소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한 암표상이 슬쩍 다가와서 기차표는 구해 줄 수 있지만 좀 비싸다고 말을 한다. 정 선생은 서울역에도 없는 기차표가 웬일로 고속버스터미널에 있나 하면서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네 배를 달라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돈 문제도 정 선생에게는 큰 것이었다. 공장에서 가불받은 것을 지난달까지 겨우 갚았으나, 한성인쇄 미스 곽에게는 아직 한 푼도 갚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인국을 위해 들어가는 금액도 적은 것이 아니었다. 이 달이 연말이라 상여금도 조금 받기는 했지만 주머니는 늘 찬 바람이 불고 있어서 조심스러운 상태였다.
정 선생은 조금 망설이다 돌아섰다.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저만치 걸어가는데 암표 아주머니가 따라붙는다. 세 배만 달라는 것이다. 두 장이 필요한데 너무 비싸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한 장만 사려 했었는데. 그러자 두 배 반만 내라고 한다. 정 선생은 왜 두 장이라고 했지 하고 속으로 자신을 나무랐다. 그 순간 암표 아주머니가 두 장을 내민다. 그리고는 두 배에다 조금만 더 얹어주라고 한다. 정 선생은 자책을 하면서도 돈을 냈다.
잘한 것인가 못한 것인가 생각이 왔다갔다 하면서 정 선생은 집으로 돌아왔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 정 선생은 사장에게 대전으로 가는 기차표 두 장을 어렵게 구했다며, 새해 첫날에 세배를 드리러 가지 못하게 되었다면서 죄송하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사장은 참 정성도 많다고 말하며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이거 차비에 보태게.”
“아닙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도와주셨는데요.”
“아냐, 이 사람아, 받아. 이거는 자네 주는 게 아니라 인국이 걸세. 내가 세뱃돈 주는 거야. 인국이 세뱃돈.”
정 선생은 더는 거절할 수 없었다.
점심식사 후 정 선생은 인국과 함께 서울역으로 향했다.
기차 안은 마치 피난열차 같았다.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과 온갖 짐, 그리고 갓난아기들 울음소리와 각종 음식냄새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저녁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 대전역에 정 선생과 인국이 내렸다. 역사 주변의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도 정 선생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전역에서 대천으로 갈 때도 많은 고생을 했다. 막차 버스를 탔는데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버스가 터져나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콩나물시루. 이 말보다 더 알맞은 표현은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았다.
버스는 기우뚱기우뚱하면서도 위태위태하게 밤길을 달려 11경에 대천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날씨가 다소 풀려 그리 춥지 않아서 다행이지, 그야말로 피난길 떠나온 것 같았다.
시외버스터미널 앞에는 택시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운전사들이 차 밖에 나와 대천 근처 마을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정 선생은 우선 무엇이라도 좀 먹자고 생각하며 주변 음식점을 찾았다. 집에서 싸온 음식을 기차 안에서 먹기는 했지만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다.
버스터미널 근처의 상점들은 거의 모두 문을 닫았으나, 식당 몇 곳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정 선생은 그 중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는 두 남자가 먼저 들어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풍채 좋은 중년남자와 젊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였다. 정 선생은 떡국을 시켰다. 식당 아주머니는 큰 대접 한가득 떡국을 내오고 밥까지 푸짐하게 그릇에 퍼서 갖다주었다.
정 선생은 식사를 하면서 아주머니에게 이 근처에 하룻밤 묵을 곳 없느냐고 물었다.
“여기 많아요. 여름엔 방이 없어 난리인데, 겨울엔 한가해요. 민박도 많고. 오래 있을 거예요? 요 뒤에 내가 잘 아는 집 있는데…….”
“아닙니다. 오늘 하루만 자고 내일 떠날 겁니다.”
“서울에서 오셨나 봐요. 말씨 보니.”
“예, 여기 잠깐 볼일이 있어서…….” 정 선생은 잠깐 말을 끊고 나서 다시 물었다. “여기 대천해수욕장 있죠? 여기에서 멉니까?”
“왜요? 이 밤에 거길 가시게?”
“아뇨. 대천해수욕장 말을 많이 들어서요.”
“친척 집에 오셨수?”
“아닙니다. 그냥 좀 볼일이 있어서…….”
“우리 식당 나가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민박이 많이 있는데, 아무데나 들어가 봐요.”
“예, 감사합니다. 아 참, 그리고 이 근처에 큰 교회 있습니까?”
“아, 교회? 교회 오셨구나. 저쪽 시내로 들어가면 몇 군데 있는데……. 지금은 버스 없으니까 택시한테 물어보세요.”
중년남자와 동행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옆 의자에 걸어놓은 검은 외투를 들고 일어서서 나간다. 무표정하고 근엄한 얼굴. 정 선생과 눈이 잠시 마주쳤지만 아무런 표정 없이 식당을 나가버린다.
식당 아주머니가 잘 가시라 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한다. 그리고는 식탁을 치우러 가서는 돈을 들고 깜짝 놀라서 뒤돌아본다. 아주머니 손에는 고액지폐가 들려 있었다. 아주머니는 뒤쫓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자세로 엉거주춤하면서 중년남자가 나간 문 쪽으로 몇 발자국 떼다 멈춰선다.
“아이구, 시상에…….”
그리고는 문에 대고 꾸벅 절을 한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왔으리라.
정 선생은 인국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시외버스터미널에는 아직도 많은 택시가 줄지어 있었다. 마침 그 중 한 택시 운전사가 정 선생에게 다가와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시내에서 좀 큰 교회에 데려다 줄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리로 가시죠.”
그러나 운전사는 요금을 과하게 요구한다. 정 선생은 약간의 실랑이 끝에 요금을 깎아서 미리 주고 차에 올랐다.
택시는 정 선생과 인국을 태우고 불이 거의 꺼진 대천 시내를 달려갔다. 아니, 달려가는 것 같았다. 불과 5분 정도 달렸을까, 제법 큰 교회 앞에서 택시는 섰다. 어이가 없었다. 그 짧은 거리를 달려오는 데 그렇게 많은 요금을 달라고 하다니.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지불했는데.
정 선생은 떠나는 택시를 약간 분한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하긴,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했지…….
정 선생은 마음을 털어내고 인국을 데리고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11시 3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정 선생은 어렸을 때 연말에 교회에 두어 달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새해 전날 밤 송구영신예배에 갔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오늘 인국과 함께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옛날 그때 밝은 불빛 아래의 교회당 내부의 모습과 그 안에 꽉 차 있었던 사람들, 수십 명이나 되는 성가대의 우렁찬 찬송, 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복을 많이 받으라는 목사님 설교 등등이 연말만 되면 머릿속을 잠시 스치고 지나갔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이 많으신 장로님이 검은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채 강대상 위에서 기도하던 것이 지금까지도 무척 인상 깊이 남아 있었다. 기도 내용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과 같은 성경 속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이름을 들어 가며 우리 조선 민족에게도 큰 빛과 소망을 주시라고 한 것이 어린 나이에도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있었다. 당시 일제 억압이 극심하던 암흑과 같았던 시기여서 그런 기도에 눈물까지 핑 돌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사족 하나. 정 선생이 자랐던 온양에서 조금 들어간 마을에 아들이 징용나간 집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봉급 대신 받은 것이라며 담배를 고향집에 부쳐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은 담배가 아니라 낙타털이었다며, 피울 수도 없는 것을 담배라 속이고 봉급 대신 주었다고 사람들이 욕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연말만 되면 기억나는 교회인지라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정 선생 자신처럼 혹 인국에게도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여기에 더해 인희를 찾을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십사 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정 선생이 인국과 함께 예배당으로 들어가자 너른 공간에는 벌써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두 사람은 안내자를 따라 중상층이라는, 이층처럼 되어 있으나 일층 예배당 뒷부분의 위쪽으로 전체 예배당 4분의 1 크기로 올려져 있는 공간으로 올라갔다. 그곳도 사람들이 빽빽이 앉아 있었다. 안내자는 뒤쪽에 있는 긴 나무의자 옆으로 가서 사람들에게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달라고 부탁한 뒤 정 선생에게 앉으라고 했다. 인국을 먼저 들어가게 하고 정 선생은 그 옆에 가서 앉았다. 자리는 비좁았다. 인국 옆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외투를 무릎에 올려놓은 남자가 자리를 안쪽으로 옮기면서 고개를 살짝 이쪽으로 돌렸는데, 그때 정 선생은 어딘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정 선생은 자리에 앉으면서 ‘아, 그 식당’ 하고 생각이 떠올랐다. 큰 액수의 지폐를 식탁에 올려놓고 나간 사람. 정 선생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배는 기대했던 것보다 밋밋했다. 그러나 교회당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천까지 내려오는 동안 마음이 답답하고 꽉 막혀 있었던 것이 약간 풀어졌기 때문이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를 나갈 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혼잡했다. 정 선생은 한 손에는 가방, 다른 손으로는 인국의 손을 꽉 잡고 교회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서로들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한다. 정 선생도 인국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자, 이제부터는 여관을 찾아야 한다. 이 근처 어딘가에 있겠지.
두 사람이 길에 나가서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좀 전에 교회에서 보았던, 그리고 식당에서도 보았던 풍채 좋은 남자와 마주쳤다. 남자는 두 사람을 지나쳐 그대로 가는 듯하더니, 서너 발걸음을 옮기고 나서 뒤돌아본다.
“실례지만, 혹시 주무실 곳 찾으십니까?”
꽤 묵직한 목소리였다.
“아, 예, 그렇습니다. 이 근처에 혹시 여관이 있을까 해서…….”
중년남자가 한 손을 들어 저만치에 있는 어떤 사람을 부르는 동작을 하면서 입을 연다.
“제가 잘 아는 곳이 있는데……. 가보시겠습니까?”
정 선생은 머뭇거렸다. 따라가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약간 불안한 느낌도 들었다.
“사실은 제가 조그만 숙소를 가지고 있는데…….”
그때 중년남자가 부른 듯한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이분들 우리 호텔로 모셔다 드릴 거야.”
중년남자가 정 선생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말을 한다. 젊은 남자는 저쪽으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좀 누추하긴 하지만 하룻밤 주무시는 데는 괜찮을 겁니다.”
중년남자는 인국을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몇 살이냐?”
인국이 겁먹은 표정으로 정 선생 옆으로 다가서서 붙는다.
중년남자는 씩 웃고는 다시 정 선생을 바라본다.
“열세 살입니다.”
정 선생이 대신 대답했다.
중년남자는 다시 싱긋 웃으며 말을 한다.
“저희 숙소는 오늘밤 숙박비를 받지 않습니다. 그 바람에 별별 사람이 다 몰려와서 좀 시끄러울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중년남자의 이 말은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렇게 말을 덧붙이는 것이었다. “저쪽에 제 차가 있는데, 가보시겠습니까.”
정 선생은 머뭇거리면서도 털장갑 낀 인국의 손을 잡고 중년남자를 따라갔다. 정 선생과 인국은 모두 등에 배낭이 메고 있었고, 정 선생은 손에 작은 가죽 트렁크를 들고 있었다.
정 선생은 인국을 돌아보고서 털모자를 바로 잡아주며 매섭게 추운 새해 첫날의 밤길을 걸어갔다.
정 선생이 탄 검은 승용차는 한참을 달려서 시커먼 바다가 살짝 보이는 허름한 호텔에 도착했다. 이곳까지 오는 내내 정 선생은 마음이 좀 불안했었는데, 막상 호텔에 와보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이었다. 방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던 데다, 승용차가 문을 열자 요란한 음악소리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갑자기 정 선생 일행을 덮치듯 들려왔기 때문이다.
중년남자가 정 선생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말을 했다.
“애들이 좀 시끄럽게 놀기는 하는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러다 마니까.”
정 선생은 인국보다 서너 살 많을 듯한 호리호리한 남자애를 따라서 좁고 지저분한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갔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는 동안 한쪽에서는 삐빠빠룰라가, 다른 쪽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올드랭 송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남자애가 한 방에 이르러 문을 열어주었다.
정 선생은 기겁을 할 정도로 놀랐다.
방이 좀 지저분하고 추울 겁니다. 두꺼운 이불이 있으니까 잘 덮고 주무시면 괜찮을 겁니다. 중년남자가 이렇게 말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정 선생은 방에 들어가 대강 청소한 뒤, 졸음이 와서 어쩔 줄 모르는 인국에게 이부자리를 깔아주고 자라고 했다. 그런 다음 1층으로 내려가서 프런트로 갔다. 그 사이에 여러 젊은이들이 정 선생 주위로 흘끗흘끗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정 선생은 속으로 자신이 이방인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프런트에는 머리를 길게 기른 20대 초반 남자가 담배를 문 채 삐빠빠룰라를 흥얼거리며 있었다.
“사장님 좀 뵈러 왔는데…….”
“아, 예, 이 옆 홀에 들어가 보세요.”
이 청년은 정 선생에게 별 호기심도 보이지 않고 무심하게 대답했다.
“한 가지만 더……. 숙박비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청년은 손을 들어 흔든다. 그리고는 관심 없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흔들하고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정 선생은 조금 머쓱해서 잠시 서 있다가 청년이 홀이라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쪽의 커튼을 살짝 들춰보았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정 선생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호텔 (이곳이 호텔이 맞기는 한지 모르겠지만) 전체에 담배냄새가 너무 짙게 배어 있어 다소 역겨울 정도였었다. 그러나 이 홀은 아예 연기 속 그 자체였다. 앞도 침침하게 보일 정도였다.
어렸을 때 시골집 부엌에서 짚을 아궁이에 쑤셔넣고 불을 지필 때 같은 짙은 담배연기 저쪽에서 이곳 사장으로 여겨지는 굵은 목소리가 호령처럼 흘러나왔다.
“빨리 빨리! 연기 빨리 빼란 말이야, 이…… 여러분들아!”
문장이 좀 이상했다. 특히 마지막 말이. 어떻든 이곳은 여느 호텔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다음 순간 사장이 담배연기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아, 내려오셨군요. 들어오세요. 연기 금방 빠질 겁니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다보며 또 소리지른다. “야, 이 새…… 아니, 여러분들아, 여기 귀한 분 오셨는데 연기 빨리빨리 빼……시라니까!”
아직도 담배연기가 꽤 남아 있는 홀에 정 선생과 사장, 그리고 이곳까지 운전해 온 덩치 큰 남자, 그리고 몇몇 험상궂은 얼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었다.
계속되는 추위 때문에 담배연기 내보낼 송풍기 모터가 얼어붙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창문들도 모두 닫아놓아 담배연기가 빠져나갈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 홀이 담배연기로 가득 찼었던 것이다.
정 선생의 감사하다는 말에 이어 사장이 의례적인 인사말을 한 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커튼 너머에서 누군가가 심한 욕설을 섞어 불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영감 말 좀 조심시켜. 새해 첫날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듣기 거북하잖아. 법을 공부하신 선비님 앞에서.”
“아, 아니, 괜찮습니다. 법 공부 내려놓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러자 한 험상이 얼른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그 험상이 커튼을 열고 얼굴을 삐죽 들이밀며 말을 한다. 손으로 술잔 들이키는 시늉을 하면서.
“아주 갔어. 먹물, 데려다 눕혀.”
운전대 잡았던 남자에게 하는 소리 같았다.
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한다.
“상이군인이라 봐주고 있었는데, 오늘은 맛이 완전히 갔나 봅니다. 쯧.”
“괜찮습니다. 망년회 겸 그런 거겠죠.”
정 선생이 그렇게 대꾸를 하다가 갑자기 ‘상이군인’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크게 울려오는 것을 느꼈다.
정 선생은 몸을 앞으로 쑥 내밀면서 말했다.
“상이군인입니까? 다리 하나 목발?”
사장, 그러니까 백 사장이 되묻는 표정으로 정 선생을 바라본다.
“…….”
“저, 혹시 욕 잘하는 아주머니하고 같이 있는 분 아닌가요?”
“…….”
“혹시, 혹시 팔덕이라는 아주 젊은 애도 여기 있나요?”
“…….”
백 사장은 이게 뭔 일이래 하는 표정이었다.
결국 이렇게 해서 정 선생과 백 사장은 모든 일을 알게 되었다. 팔덕과 인희에 대해서.
욕쟁이, 즉 심통여사와 외다리 상이군인이 이 호텔에 함께 있으며, 상이군인은 술고래가 되어 욕반 말반으로 새해 첫날 새벽의 대천을 시끄럽게 하는 동안 심통여사는 일찌감치 술에 절어 곯아떨어져 잔다는 것까지도.
“이것 참 세상 좁수다.” 그리고는 싱긋 웃으며 백 사장이 말을 잇는다. “팔덕이놈 이젠 쫓기는 신세까지 되었구먼.”
“혹시 좀 전에 말씀드린 인희의 행방을 알 수 있을까요?”
“글쎄올시다. 그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해서.”
백 사장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한마디 덧붙였다.
“이쪽 세상 애들 죄다 풀어서 팔덕이 그놈 끝까지 찾아낼 테니 연락처나 주고 가시구려.”
정 선생은 명함을 꺼내어 두 손으로 정중하게 내밀었다.
2
인희는 사장의 차를 타고 신촌으로 갔다. 조그마하면서도 깨끗한 호텔로 들어갔다.
사장은 인희에게 당분간 그곳에서 지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에 다시 오겠다며, 밥 잘 챙겨먹으라고 말하고는 사장은 떠났다.
그러나 인희는 어쩌자고 자신이 그 사람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것인지, 그리고 원망의 말 한마디도 못하고 그 사람을 따라 차에 올라서 이곳 호텔까지 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장의 차를 타고 신촌으로 올 때도 인희는 창밖만 내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수많은 말이 돌고 있었다. 왜 아니 그러하겠는가. 그 말들을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다. 인희가 아무리 마음이 곱다 하더라도 자신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려 한 사람에게 고운 마음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함에도 사장과 마주친 순간 인희는 그 원망의 말 한마디도 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온 것이다.
인희는 생각할수록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나중에 몇 년 뒤까지 인희는 이때의 일을 늘 곰곰이 생각해 보았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도 찾을 수 없었고, 그 어떤 변명을 갖다붙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인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미쳤던 거지.” 인희는 늘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날 인희는 신촌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앞으로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금까지는 늘 남에게 끌려다녔다. 이제는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인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학력? 인희는 고개를 흔들었다. 경력? 역시 머리를 저었다.
사장은 내일 다시 온다고 말했지만 인희는 지금이라도 이곳을 나가면 된다. 그리하면 다시는, 아니 영원히 보지 않을 수도 있다.
“인희야, 너는 왜 망설이는 거니?”
나도 몰라.
“빨리 결정해!”
인희는 그 옛날처럼 또다시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안고 얼굴을 파묻었다.
눈물이 나왔다.
눈물.
슬픈 것인가?
분한 것인가?
인희는 눈에 눈물이 가득한 채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또다시 물었다.
지금 네 마음이 흔들리는 이유가 뭐니?
약속대로 사장은 다음날 아침 조금 느지막이 호텔로 왔다.
1층 커피숍에서 두 사람은 비스듬히 마주앉았다. 사장은 하룻밤 사이에 얼굴이 많이 수척해진 것 같았다. 인희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고, 사장은 인희 얼굴을 외면한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앉아 있었다.
“저…….” 인희가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사장도 말을 꺼냈다.
“내가…….”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닫았다.
잠시 뒤에 또다시 사장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때도 인희 역시 동시에 말을 꺼냈다.
“저는…….”
사장과 인희는 둘 다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마주보았다.
사장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을 마무리했다.
“일단 여기에서 나가자.”
사장이 인희에게 호텔에서 아침을 먹었느냐고 물었을 때 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사실 먹지 않았다. 어제 저녁 호텔 직원이 1층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고 말해 주었지만 인희는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런 곳에 혼자서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몰랐다.
사장은 더 묻지 않고 인희를 데리고 호텔 근처 해장국 집으로 향했다.
인희가 몇 숟가락 뜨지 않고 수저를 내려놓자 사장이 말했다.
“더 먹어. 든든히 먹어야 해. 그래야 이겨낼 수 있어.”
인희는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사장을 바라보았다. 사장도 인희의 눈을 받아 마주보았다. 인희는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나왔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인희는 자신이 생각해도 꽤 당돌하다고 느꼈다.
사장이 말없이 인희를 바라본다. 무척 그윽한 눈빛이었다.
잠시 후 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많이 먹어둬. 몸이 견뎌야 헤쳐나갈 수 있어. 앞으로 더 힘든 일이 많을 거야.” 사장은 계속 인희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나도 사실 아침을 못 먹었다. 같이 먹자.”
인희는 사장의 눈을 피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식사 후에 두 사람은 사장의 차를 타고 뚝섬으로 갔다. 차를 세운 뒤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내가 솔직하게 이야기하마.”
그리고는 이어진 이야기.
“지금 회사가 무척 어렵다. 너한테 그 깊은 이야기까지 다 할 수는 없지만, 간단히 말해서 앞으로 몇 달을 더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내가 뭐라고 말한들 정당화되지도, 또 용서가 되지도 않을 줄 안다만 그래도 이야기하마. 그래, 내가 순간적으로 판단을 잘못했다. 회사를 살릴 욕심으로 네게 부끄러운 짓을 벌였다. 다른 사람 탓할 수도 없다. 다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혹 네가 강 회장을 원망할 수도 있겠는데, 물론 솔직히 말해서 그 양반 잘못도 많다. 그러나 가장 크게 잘못한 사람은 나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일을 꾸몄으니까…….”
사장은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더 잇지 못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한동안 걸었다.
김 사장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인희는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 때문에 귀한 시간이 많이 빼앗긴 것 같았다. 마음이 조금 아팠다. 회사가 많이 힘들다고 했었다.
지금 여기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시게 해서는 안 되는데…….
“저……, 제 걱정은 하지 마시고 일 보셔요. 회사가 힘들다고 하셨는데, 저는 제가 알아서…….”
“아니다. 오늘 하루는 쉬려고 작정하고 왔다. 내가 저지른 잘못도 회사 일 못지않게 크다.”
인희는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저는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요.
사실 인희는 오히려 넓은 세상을 본 것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다. 이분이 아니면 자신은 평생 그 섬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기 때문에 그 큰 호텔이 어려워지면 어떻게 하나 하고 인희는 걱정이 되었다.
다른 사업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사장은 자신을 탓하는 말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나 인희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사장을 회사로 돌아가게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저를 남대문도서관에 데려다 주세요. 늘 거기를 구경하고 싶었어요.”
이 말은 진심이었다. 정 선생님과 온양에 가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정 선생님이 대학 때 그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많이 했었다는 말을 했다. 그 이후 남대문도서관이라고 하면 인희의 머릿속에는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자리 잡아, 어딘지 신비스럽기도 하고 고귀하게 여겨지기도 했었다. 정 선생님 말을 들은 이후 인희는 꼭 한번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인희 자신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동생 인국만은 언젠가 그 도서관에서 공부하게 될 날이 있었으면 하고 늘 꿈꾸었던 것이다. 사실 인국은 어렸을 때 매우 총명했었다. 그러던 아이가 가난한 환경 속에서 망가져 간 모습이 안타까웠었다. 남대문도서관, 거기 가서 인국의 모습을 찾고 싶었다. 한편, 시립남대문도서관은 그 당시에는 명동성당 옆에 있었으며, 그 이후 1965년 1월에 남산으로 이주하여 시립남산도서관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인희는 오랫동안 시골집에 돈도 보내지 못한 것은 물론 소식 한 장 전하지도 받지도 못했다. 그래서 더욱 남대문도서관에 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사장이 궁금한 표정으로 인희를 바라보았다.
인희는 무어라 설명할 수도, 또 그럴 만한 기운도 없었다. 그저 말없이 사장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사장 역시 말이 없이 인희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인희는 그 눈이 그윽하다고 생각했다.
그윽하다 |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깊고 은근하다.
인희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떻게 흔들렸을까? 평온해진 것인가? 두근거렸을까? 당황하게 된 건가? 아무튼 이 모든 것이 복합된 묘한 감정, 그런 것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인희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다음 화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