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현은 목포 외곽, 영산강에서 남창천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의 작은 집에서 둘째언니 지현과 함께 살고 있었다. 도현이 중학교를 휴학하고서 1년 이상이 지났다. 지현 언니는 지난 봄 복학했지만 1학기만 마치고 여름에 도현을 돌보기 위해 내려왔다. 지현 언니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한 학기도 못 마치고 휴학한 뒤 1년이 지나 겨우 한 학기 마치고 또다시 휴학한 것이다. 지현은 미팅 때문에 엄마에게 늦게 간 것에 대한 죄책감을 아직도 다 털어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을 동생 도현에게 갚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신들 네 자매 중 이들 둘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둘은 이 먼 목포까지 함께 내려와 있었다. 동병상련의 정 때문이겠지.
도현이 여러 번에 걸쳐 심신치료를 받은 뒤 김 사장은 막내딸 도현을 서귀포 호텔로 내려보냈었다. 그곳 매니저 김 상무에게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고서. 그러나 한 주일도 못 견디고 도현은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도현은 안정을 찾지 못했다. 김 사장은 김 상무에게 도현이 쉴 만한 곳을 찾아보라고 했다. 그래서 급하면 김 상무가 달려갈 수 있고, 또 몇 년간 그곳에서 일도 해서 사정을 잘 아는 목포 쪽에서 휴양할 만한 곳을 찾았다. 바로 그곳이 지금 도현과 지현이 살고 있는 집이었다. 지난번 목포 호텔을 운영할 때 알던 사람을 통해 한 아주머니를 소개받아서 두 자매의 집에 보내어 살림을 맡게 했다.
도현은 둘째언니 지현과 함께 지내면서 많이 나아졌다. 마음도 밝아졌고, 그동안 손 놓고 있었던 공부도 다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에 갈 정도는 아니어서 지현이 공부를 돌봐주고 있었으며, 나중에 검정고시를 통해 고등학교에 가자고 마음먹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이 느리게 흘러가고 심지어 정지된 듯이 보이는 1년여가 흐른 것이다.
도현은 집 앞 조그만 정원의 나무 흔들의자에 앉아 바닷물과 만나는 영산강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 가지가 생각났다. 인희. 해곶. 그래, 해곶에서 왔다고 했어. 해곶이 어디지? 서해안이라고 했나? 그럴 거야. 아니, 서해안이 아니라 시흥 저 너머라고 했는데, 그럼 그곳이 서해안이 되는 거겠지……? 그리고 또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까.
아……, 생각이 잘 나지 않아, 생각이.
도현은 답답했다.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엄마 일이 있고 나서는 생각하기가 힘들어졌다. 모든 생각들이 자꾸만 끊기고 거기서부터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는 것이었다. 도현을 비롯해서 세 언니 모두 공부에는 남에게 지지 않았다. 그것이 집안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도현은 어떤 생각이든 조금만 오래 하게 되면 머릿속이 혼란해지고 머리가 아프기까지 했다.
도현은 머리를 흔들었다. 안 돼. 생각해 내야 해. 생각해 봐, 이 바보야. 생각, 생각, 생각…….
며칠이 지나도록 도현은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생각나지 않는, 아니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과.
그러다가 어느 날, 도현은 잠자다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갑자기 중얼거렸다.
해곶에 가보자.
도현은 미현 언니에게는 서울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집에 가서 며칠 지내다 어디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아빠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서울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했다. 올라가겠다고.
도현은 서울에 올라온 다음날 도서관에 가서 지도를 뒤졌다.
해곶이 어디인가?
서울에서 안양으로 가고, 그 다음 안산을 거치면 바다로 향한다. 인천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다가 서쪽으로 가면 해곶이 나온다. 또 하나는 수원으로 가서 비봉을 거쳐 비스듬히 서북쪽으로 올라가면 해곶이 나온다. 어디로 갈까? 지도상으로 가깝기는 안산을 지나는 길이다. 인천에서 아래로 내려가 해곶으로 가는 길은 제법 멀었다.
지명사전을 찾아보니 해곶이라는 말은 서쪽바다에서 해가 떨어지는 곳이라는 말이 변형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해곶 개펄은 넓기는 하지만 거친 돌이 많고 교통 등의 입지조건이 좋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고 나와 있다. 한마디로 살기 힘든 가난한 어촌이라는 뜻이었다.
해곶 위쪽으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는 배곧이라는 어촌이 있는데, 그곳은 그래도 꽤 환경이 나은 듯했다. 도현은 왜 하필 사람들이 해곶에 가서 사는 걸까, 살기 좋은 다른 곳도 많을 텐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도상으로 해곶의 위치를 대강 파악했으나 도현은 그곳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해곶은 목포보다 더 먼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들도 그곳을 거의 모르고 있었고, 혹 그곳 사람들도 세상을 거의 모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잊혀진 곳.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어떻게 갈까?
기차는 물론 없을 테고, 버스나 승용차로 가야 할 것이다. 아빠에게 데려다 달라고 조르면 못 갈 것도 없겠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빠에게도 그곳은 악몽과 연결될 테니.
엄마의 외가가 인천이다. 그러나 육이오 때 외가 사람들이 대부분 북쪽으로 붙잡혀 가거나 죽거나 해서 지금은 남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엄마의 외가의 또 외가 사람들이 조금 있을 뿐. 그 외가의 외가 사람들이 장례 때 몇 분 왔다고 들었다. 외가의 외가, 즉 외할머니의 친정 쪽이다. 도현에게는 외증조할머니뻘이 되는 것이다. 뭐 따지고 보면 그렇게 먼 친척은 아닐 수 있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이니까.
어떻든 그쪽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어떻게? 글쎄다…….
도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인천을 통해서가 아니면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지도를 보니 해곶 근처까지 연결된 도로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북쪽 배곧 쪽으로 연결된 것이고, 하나는 서쪽, 즉 안산 방향으로 것이다. 그러나 안산으로 향하다가 다시 둘로 길이 나뉜다. 하나는 안산을 지나 안양 쪽으로 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동쪽으로 가서 또 갈라져 수원과 또 다른 곳으로 향한다.
도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없다. 학교 다닐 때 버스 탄 것과, 혹 멀리 가게 되면 아빠 차를 타고 다녔던 것 외에 혼자서 먼 곳에 가본 적은 없다. 더군다나 요즘 자신의 상태가 썩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혼자서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누구하고 상의하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 동안 머리를 집중한 탓에 도현은 마음이 지쳐 있었다. 따스한 가을날이었다. 도현은 별채 옆 작은 정원에 가서 서성거리다가 본채로 돌아갔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현관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도현은 문고리를 잡고 열려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멈추고 말았다. 큰고모와 둘째고모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고모들이 언제 왔지? 대문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도현은 어떤 것에 집중하면 주변 환경에 대해 잊어버리는 경우가 잦았다. 그런데 웬일이람? 네 고모 중 아래 두 고모는 가끔 한번씩은 와서 집안일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위의 두 고모는 인희 때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도현네 집에는 거의 오지 않았고, 어쩌다 오더라도 아이들 없을 때 잠깐 들렀다 가는 정도였다.
…… 인희를 찾아야 하잖아. 어떻게 할 거야……. 그냥 이렇게 손 놓고 있을 거야…….
큰고모가 재촉하는 소리. 뒤이어 둘째고모도 몇 마디 거든다. 그러나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여전히 아빠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 김 사장 아니면 우리라도 나설 거야……. 성현이를 찾아와야 해……. 대를 이어야지……. 인희……, 그년이…….
그때 일 하는 아주머니가 집 모퉁이에서 무엇인가 그릇을 들고 돌아나오다 도현과 눈이 마주쳤다. 에그머니……. 아주머니는 말은 하지 않고 표정만 짓는다.
도현은 얼른 돌아서서 발소리 나지 않게 별채 쪽으로 갔다.
인희……. 그동안 집안에서 금기시되던 그 이름. 지금까지는 아무도 그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성현의 이름도. 그러나 도현 자신처럼 모두들 그 두 이름을 마음에 품고 있을 것이다. 각자 자기 입장에서 다른 각도로.
그래, 찾아야지. 도현도 그들을 찾고 싶으니까. 아기 성현도 물론 찾고 싶다. 성현은 도현 가족의 핏줄이다. 게다가 그 빨간 볼과 예쁜 모습을 어떻게 잊을까. 그 초롱초롱하던 눈. 털도 별로 나지 않은 눈썹이 금방 빨개지며 울음이 터지려고 하던 모습이 생각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곤 했다. 예쁜 아기. 지금쯤 많이 컸겠지. 돌은 벌써 지났을 테니까.
고모들은 인희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직 성현만 중요하겠지. 그러나 웬일인지 도현은 성현보다 인희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도현 자신도 이유는 모른다. 아빠가 인희의 집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분노가 치밀었던 그 기억. 도현은 그것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일들은 생각이 자주 끊기고 심지어 꼭 알고 있어야 하는 일인데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그 때문에 도현은 마음이 힘들고 늘 자신을 나무라고 있었다. 하지만 인희, 아빠를 꾀어낸 여자. 그 여자로 인해 자신의 집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가. 엄마는 물론 도현 자신도 포함해서. 그 인희에 대해서만은 기억이 또렷했다. 특히 그 분노는 절대 잊혀지지 않았다.
문득 지금 아빠의 마음은 어떠할까에 생각이 미쳤다. 성현은 찾으려…… 하겠지. 당연히. 그럼, 인희는……?
아빠는 지금껏 단 한번도 인희나 성현에 대해 언급한 적 없었다. 그들을 찾으려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떠한 내색도 비친 적이 없다. 그러나 아빠의 마음은 어떨까?
도현은 머리가 아파왔다. 고개를 흔들었다.
아, 그만……, 그만……. 더는 생각할 수 없어. 이제 그만…….
2
11월에 접어들어 날이 추워지자 김 사장은 목포에 있던 두 딸을 서귀포로 보냈다. 도현이 서귀포 호텔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해 역시 호텔 근처에 조그마한 집을 얻어주었다. 그리고 가끔 김 사장 자신이 서귀포로 내려가 딸들과 놀아주었다.
성탄절과 신년 초까지 이어지는 기간에 김 사장은 딸과 함께 보내기 위해 서울에 있는 두 딸을 데리고 서귀포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온 수현과 미현, 그리고 김 사장은 호텔에 머무르며 지현과 도현을 데리고 오려 했으나 도현이 싫어한다 해서 두 딸은 그대로 밖에서 지냈다.
신년이 며칠 지난 뒤, 김 사장은 두 딸을 데리고 도현네 집으로 갔다. 방이 네 개 있고 거실까지 딸린 제법 규모 있게 지은 집이었다. 김 사장 친구가 별장으로 지어놓았으나 미국으로 이민가는 바람에 비워두었다가 마침 김 사장과 연락이 되어 안 받겠다는 세를 억지로 주기로 하고 두 딸을 보내어 지내게 한 집이다.
김 사장은 네 딸을 모아놓고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말을 꺼내기 거북해서 지금껏 김 사장 혼자만 진행하고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너희들에게 차마 알리기 힘들었다. 왜 그런지는 잘 알 것이다. 하지만 너희들도 알고 있어야 하기에 오랫동안 망설이다 오늘 말을 꺼내는 것이다…….”
뒤이어 이어진 이야기는 이러했다.
김 사장은 인희를 찾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기도 하고 수소문도 했다. 사실 인희보다는 성현을 찾기 위해서였다. 김 사장은 인희를 만나게 된 연유도 딸들에게 알리기 힘든 부분은 빼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인희와 다시 만나 1년여를 보냈다는 것, 그 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평창동 집으로 들어간 뒤는 다 아는 일이고. 그러한 기간에 인희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단 한번 남동생이 있으며, 이름이 인국이라는 것만은 알려주었다고 한다. 물론 시흥 너머 해곶이라는 마을에서 살았다는 것은 가거도에서 목포로 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중학교는 다니지 못하고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공민학교를 두어 달 다닌 것이 전부다. 인희는 거의 말이 없었다.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좀 더 많은 부분을 알아냈으면 쉽게 찾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 아이들 엄마가 죽던 날, 사실은 그 전날 김 사장은 인희가 아니라 아기를 보고 싶어 한밤중에 아무도 몰래 찾아갔었다. 그러나 인희가 거절해서 그 집을 나와 다음날 새벽에 다시 찾아가 잠깐 아기를 보았다. 그때 인희는 다시는 그 집에 찾아오지 말고 평창동 집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아침 인희의 태도가 평소와 달리 무척 단호했던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아쉽다. 어떻든 아이들 엄마가 죽고 나서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물론 마음에는 늘 걸려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뒤 고모들도 찾아와서 여러 번 채근을 했지만 김 사장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내에 대한 죄책감이 너무 컸던 것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마음을 고쳐먹고 성현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 여러 사람을 통해 알아보기도 하고, 사람을 사서 해곶에 가서 조사하라고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큰 소득이 없다. 인희 고향에서는 인희가 살던 집은 폐허가 거의 다 되어서 아무도 살지 않았고, 할머니가 한 분 있었는데 인희가 떠나고 나서 돌아가신 뒤 인국이라는 남동생도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머슴으로 팔려갔다. 인천에 있다는 그 집에 찾아가 보았더니 벌써 몇 년 전에 논밭과 집 다 팔고 이사를 갔다. 그래서 또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해서 그곳을 알아내어 가보았더니 그 집 주인인 노인이 얼마 전 중풍에 걸려 쓰러져서 말도 하지 못하고 손발도 쓰지 못하고 거의 식물인간처럼 된 상태였다. 단지 하나 소득이 있었다면 그 노인이 인천에 있을 때 어떤 젊은 남자가 인국을 데려갔는데 그 연락처는 이사 가고 하는 통에 없어져 버렸다. 단지 그 가족에 의하면 서울인쇄소……. 아니, 서울에 있는 인쇄소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인희는 13살 때 해곶에 살던 서너 살 많은 맹팔덕이라는 못된 놈에게 이끌려 서울로 함께 도망갔는데, 그 후 두 사람에 대한 소식은 해곶 사람들도 모른다고 한다. 인희가 가거도에 갔다가 목포를 거쳐 일본으로, 그 뒤 김 사장을 만난 것은 물론 아기를 낳은 것도 해곶에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아 참, 하나 빠뜨릴 뻔한 것이 있는데, 몇 년 전에 그곳 해곶에 사는 아주머니 하나가 볼일이 있어서 수원에 나왔다가 해곶으로 돌아가려고 수원역에서 버스를 탔는데, 버스 유리창 밖으로 인희가 분명한 여자를 보았다고 하더란다. 인희가 고향을 떠난 지 몇 년 만이어서 모습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인희가 확실했다고 한다. 아주머니가 창문을 열고 소리치자 그 여자가 손을 들고 따라왔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든 해곶에서는 인희나 그 동생 인국, 그리고 인희를 데리고 도망쳤다는 맹팔덕에 대해서는 그 이후 어떠한 소식을 듣지도 알지도 못한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김 사장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인희를 찾아야 성현이를 데려올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알아낸 게 하나도 없다. 너희들이 걱정할까 봐 미리 이야기한다만, 혹 인희를 찾아내더라도 나는 그 여자는 다시는 보지 않을 작정이다. 오직 성현이만 데려오면 돼.”
괴로워하는 아버지.
마음이 아픈 딸들.
산산이 조각난 단란했던 가정.
네 딸은 모두 초점 없는 눈으로 방바닥이나 벽이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 듣기는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단지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성현에 대해, 인희에 대해 아버지가 생각하는 것을.
3
1월 초 김 사장은 두 딸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고등학교 총동문회 총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번 2월 중순 모교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회장이 축사를 해야 하는데, 그 시기에 외국에 나가야 할 일이 생겨서 부회장인 김 사장이 대신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회장이 여럿 있고, 그 중에서도 김 사장은 막내 부회장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른 부회장들이 다 그 시기에 다른 일이 있어서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김 사장은 사실 현재 동문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상황이다. 회사가 어려울 때 동문들의 도움을 받은 것을 계기로 총동문회에 발을 들여놓긴 했지만, 인희 일도 있고 특히 아내의 죽음 이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사람들 만나는 것을 피해 왔었다. 그러나 여러 도움을 준 동문들의 눈치도 있고 해서 그저 몸만 동문회에 나가고 있을 뿐 실제로는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단지 후원금만 넉넉히 내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덕인지 탓인지 부회장은 그저 이름만 올려놓는 자리라고 하여 이번 연도에 막내 부회장 자리를 억지로 맡았던 것이다.
그래서 김 사장은 자신의 처지가 그런 곳에 나갈 만한 형편이 아니라고 하며, 증경회장 중에서 찾아보라고 하고 거절했다.
며칠 뒤 총무가 또다시 전화해서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다며 김 사장이 축사를 해야겠다고 말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막내딸 돌봐야 하는 문제도 있고 해서 마음의 여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그 다음날 동문회의 몇 대 위 나이 지긋한 증경회장 한 분이 김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하하, 김 부회장이 그 일 맡아줘야 되지 않겠소? 후원금도 많이 내시는데 이럴 때 한번 학교에 가서 얼굴 내미시고 이름도 알려야제. 집안일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한번 해보소.”
그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총무에게서 또 전화가 왔다.
“회장님이 축사 원고 써주신다고 합니다. 맡아주시지요. 그저 얼굴만 보이고 읽기만 하면 되는데요, 뭐.”
그리해서 김 사장은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나온 용산에 있는 명문 공립고등학교의 졸업식 때 동문회장 대신 축사도 하고 동문회장상도 수여하기로 약속했다.
4
인국은 중학교를 마치고 용산에 있는 명문 공립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정 선생 욕심으로는 사대문 안에 있는 일류 고등학교를 원했으나, 인국이 다닌 중학교 자체가 등급이 많이 낮은 곳이어서, 그곳에서 성적이 아주 좋다고 해도 문안의 일류학교는 다소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용산의 명문고였다.
정 선생은 내심 걱정도 좀 했으나 다행히 합격했다. 그리고 인국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잘 적응했다. 1학년 첫 번 시험에서는 중위권이었으나 곧바로 다음 시험에서 상위권에 들어갔다.
1학년 내내 그 이상은 올라가지 않았다.
2학년이 되자 기를 쓰고 공부한 덕에 상위권으로 들어가 학년말에는 전교 5등이 되었다.
3학년이 되어서는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인국은 고등학교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고, 더욱 감격스럽게도 서울 법대에 합격하기에 이르렀다. 그 해 연도에 그 학교에서는 개교 이래 대학진학 성적이 최악이어서 인국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졸업식을 앞둔 일요일, 정 선생은 인국을 데리고 산행에 나섰다. 2월이라서 산길이 진득거리고 미끈거려 깊은 산은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평창동 뒤쪽의 삼각산을 택했다.
북한산이라고도 하는 삼각산은 서쪽으로는 불광동 지나 연신네 너머까지 이어지며, 동쪽으로는 우이동으로 해서 도봉산으로 이어진다. 세 개의 봉우리, 즉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 사람들은 주로 북한산, 서쪽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삼각산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정 선생도 왕십리에 살 때는 북한산이던 것이 만리동으로 옮겨오면서 삼각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정 선생과 인국은 평창동을 통해서 삼각산으로 올랐다. 깔딱고개를 넘어가 조금 올라가니 대남문이 나온다. 그러나 문의 윤곽만 있을 뿐 그 양옆으로 이어져야 하는 도성은 사라지고 흔적도 없었다. 이는 불광동 쪽으로 있는 족두리봉 아래의 대성문도 마찬가지이다. 서울 북쪽 외곽을 둘러싼 도성은 극히 일부만 제외하고는 아예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두 사람은 대남문에서 문수봉 쪽으로 조금 들어가서 문수사에도 잠시 들렀다. 그리고 구천폭포, 노적봉, 도선사 등을 지났다. 그러나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등을 올라가지는 않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정도로 만족했다. 그 대신 남쪽 서울시내와 남산, 그리고 그 너머로 펼쳐지는 넓은 시야를 보고 인국에게 마음껏 누리라고 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마음속에 담고 저 아래 인간세상을 다 품을 정도로 큰 가슴을 지니라고 했다. 오늘 산에 오르고자 한 이유가 그것이라고 말했다.
인국은 말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산 아래 광경, 그 너머 한강과 관악산 자락들을 둘러보았다. 정 선생 말대로 자신이 이 모든 것을 품을 만한 호호탕탕한 인물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온 세상이 자신 아래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기억하자고 생각했다.
인국은 눈을 돌려 해발 800미터가 넘는 백운대와 인수봉을 바라보았다. 인국은 서울 인근에 이와 같이 높은 산이 있는데도 항상 땅만 바라보고 살아온 자신이 갑자기 너무 작게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자신과 앞으로의 인국은 다를 것이라 스스로 다짐했다.
정 선생은 불광동 쪽으로 내려가면서 인국에게 뜬금없이 물었다.
“인국아, 너 한국 고전에 대해 읽은 것들이 있니?”
인국은 좀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고전작품, 학교 도서관을 통해 웬만한 고전작품은 거의 읽은 것 같았다. 그런데 한국 고전이라…….
“춘향전이나 심청전 그런 것들을 말하시는 건가요?”
“그래, 그럼 그런 것들이라도 읽었니?”
“어렸을 때부터 이것저것…….”
“내가 미리 말하마. 사실 우리 한국인들은 한국의 고전작품을 거의 읽지 못했다고 할 수 있어. 안 읽은 것이 아니고.”
안 읽은 것? 못 읽은 것? 무슨 말인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읽은 춘향전, 심청전은 모두 동화처럼 각색한 것이고, 원본은 많이 달라. 사실 아이들이 읽기에는 부적절한 내용도 많고, 또 옛 글들을 현대어로 제대로 옮겨놓지도 않았어. 게다가 춘향전이나 심청전 외에는 사실 한국 고전 자체를 읽을 수 없게 되어 있지.”
인국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정 선생을 쳐다보았다.
“서양 고전작품은 물론 중국 고전, 심지어 일본 고전까지도 죄다 번역되어 있어서 애나 어른이나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지…….”
정 선생은 잠시 멈춰서서 허리를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한국 고전은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 한문에 정통한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사람들이 어떻게 읽을 수 있겠니? 중국 고전, 일본 고전들도 모두 한문이잖아. 그런데도 우리나라에 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들어와 있지.”
정 선생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한국 고전의 한문을 요즘 한글로 번역해서 내놓았다는 소리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거야. 우리 선조들의 작품은 하나도 읽지 못하고 남의 나라 고전만 잔뜩 쌓아놓고 있는 거지.”
인국은 정 선생이 말하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이었다. 역사책이나 국어 교과서에 한국 고전에 대한 것이 수없이 언급되어 있지만, 도서관이나 서점 어느 곳에서든 한글로 되어 있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서양 서사시의 대표적인 작품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같은 것도 많은 사람이 읽지는 못했겠지만 번역되어 나와 있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읽을 수 있지. 하지만 그 작품 못지않은 우리 고전이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모르고 있을 거야. 안다고 해도 읽을 수 없지. 방금 전에 말한 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으니까. 고려 중엽의 대학자 이규보에 대해서 들어보았을 거다. 《동국이상국집》이라는 명저를 쓴 학자인데, 그분이 《동명왕편》이라는 장엄한 대서사시를 썼다.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역사를 기록한 작품인데, 오언절구로 282구, 그러니까 1만4천 자가 넘는 어마어마한 작품이야. 하지만 그러한 서사시가 있다 한들 한문에 능한 사람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누가 그런 작품을 읽을 수 있겠니? 그뿐만 아니야. 우리 역사가 5천 년이다. 그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글이 남겨졌겠니. 그 모든 것 우리는 읽을 수 없다. 일본 고전, 중국 고전, 서양 고전은 열심히 번역해 대면서 정작 우리 작품은 거의 손대지 않고 있는 거야.”
정 선생은 인국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우리 고유문화에 대한 망각은 물론 모든 문화 전반이 대부분 사라졌어. 예를 들면 우리 고유의 가락에는 창이라는 것이 있다. 창은 우리의 음악이야. 창을 들으면 절로 어깨가 들썩이지. 우리의 가락이기 때문인 게야. 우리 민족의 삶 옆에는 창이 늘 있었어.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창이 만들어졌겠니. 그런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다섯 작품밖에 없다.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또 한 가지가 뭐지……. 아, 흥부가. 이것 외에는 모두 사라졌어. 춘향가를 들으면 너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지? 우리 가락이기 때문에 그런 거야. 우리 민족의 얼이지. 시조만 해도 그렇다. 요즘 현대시 많이들 알고 있을 거다. 그러나 시조는 세계문학사적으로도 아주 특이한 형태를 갖춘 시란다. 3행으로 끝나면서도 얼마나 멋들어지니. 3∙4조가 잘 어우러지면서. 전세계 아무리 찾아도 그런 시가 없다. 일본에는 한자로 단구(單句), 일본어로는 하이쿠라는 것이 있는데,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아주 간결하면서도 의미가 무척 강하지. 일본사람들은 그것을 세계화시켜서 함축문학의 결정판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면이 있기는 하지. 그러나 너무 함축적이어서 시퍼런 칼날과 같은 예리함은 있을지라도 속 깊은 맛이나 운치나 멋은 없어. 만일 우리 국력이 높아진다면 시조를 세계에 내놓을 수 있을 테지만, 그보다 현재 우리 민족에게조차도 외면 받고 있는 시조를 어떻게 부활시킬 수 있을까 그것이 더 중요하겠지. 내가 말한 것을 혹 국수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런 의미는 없다. 세계문학과 함께 우리 글, 우리 문학을 한번 돌아보자는 뜻이야.”
정 선생은 손등을 이마에 갖다대며 말을 이었다.
“내 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라. 내가 아무리 이런 생각을 한다 해도 나는 힘이 없다. 너와 같은 사람, 저 산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는 너와 같은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고 또한 이루어 가야 해.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정 선생은 인국의 등을 두드리며 말을 마무리한다.
“이제 내려가자.”
그러더니 아차 하고 말을 다시 이었다.
“숙제 하나 내줘야겠다. 이규보 선생이 젊은 시절 오랫동안 건달 노릇을 좀 했거든. 그 떠돌이 시절에 쓴 시를 하나 알려줄 테니 나중에 번역해 보거라.”
月夜聞子規
寂寞殘宵月似波
空山啼遍奈明何
十年痛哭窮途淚
與爾朱脣血孰多
달밤에 두견에게 묻노라
적막한 밤 달빛은 물결처럼 잔잔히 흐르는데
빈산에 울리는 새 울음소리 저러다 날이 깨면 어이할꼬
십년 세월 통곡하며 살아온 궁핍한 자의 눈물
네 붉은 부리와 내 피 중 어느 것이 더 짙겠는가
5
김 사장은 모교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서울에 있는 자신의 한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김 사장은 아내가 죽은 이후 회사 경영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임원들이 이끌어 나가도록 하고 있었으나, 아주 중요한 문제는 당연히 김 사장과 상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전화의 내용은 은행 대출금 상환문제가 복잡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대출 만료시한이 되었지만 자금이 넉넉지 못해 기한을 여러 번 연기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은 연장할 수 없게 되었다. 김 사장이 가지고 있는 개인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수익이 거의 없는 회사를 매각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 사장은 그 어느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시한을 한번 더 연장하면 자신이 자금을 끌어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 임원은 은행 입장이 완강하다고 했다. 혹시 정치권을 통해 은행에 힘을 써줄 수 없겠느냐고 임원은 말을 한다.
김 사장은 난감했다. 지난번 호텔사업 문제로 많은 도움을 받은 탓에 그 뒤로 발목을 붙잡힌 상태에서 크고 작은 일에 쫓아다니다 지쳤던 것이다. 당장 오늘 있는 졸업식 축사만 해도 그러했다. 집안에 우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들 앞에 나가 웃는 얼굴 보인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일단 알아보겠다고 대답하고 김 사장은 전화를 끊었다. 이미 졸업식에 가야 하는 시간이 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전화를 붙잡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학교로 향하면서 운전기사에게 독촉했다. 그러나 졸업식이라서 그런지 학교 앞은 복잡했다. 이미 남영동에서부터 길이 막혀 시간을 끈 데다 학교 근처에서는 아예 차가 더 나아갈 수 없었다. 김 사장은 차에서 내려 뛰어갔다. 학교 정문에서 총무가 서성거리고 있다가 김 사장을 보고 뛰어왔다. 졸업식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헐떡거리며 졸업식 강당으로 뛰어갔다. 그 와중에서도 총무는 큰 서류봉투를 내민다. 회장이 장학금을 전달하라고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다. 수석 졸업하는 학생이 서울 법대에 합격했는데, 회장이 개인적으로 그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하고 싶다고 해서 급히 장학증서와 수표를 마련해 왔다고 했다. 총동문회 회장 축사가 있고 나서 그 뒤에 따로 장학금 전달 순서도 갖기로 학교 측과 이야기가 되어 있으며, 그 학생과는 졸업식이 끝나고 나서 별도로 만나 사진도 찍고 부모도 만나보라고 했다.
강당 입구 앞에서도 총동문회 임원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연단이 있는 강당 뒤쪽의 문을 열고 김 사장에게 들어가라고 했다. 안에서는 이미 국민의례도 지나고 교가 제창도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김 사장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데도 어쩔 수 없이 허리를 숙이고 연단 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올라갔다. 단상 귀빈석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살짝 일어나 빈 의자를 가리킨다. 김 사장은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가서 의자에 놓인 꽃 사지와 총동창회장이라 쓰여 있는 리본, 그리고 행사 순서지를 집어들고 살며시 앉았다. 양 옆에서 근엄한 얼굴에 약간의 미간 주름을 잡고 김 사장을 쳐다보는 사람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김 사장은 숨이 가빴다. 양복 윗도리에 꽃도 꽂지 않고 순서지도 들여다보지 못했다. 무릎에 올려놓은 봉투도 열어보지 못했다. 정신이 멍한 가운데 총동문회 회장 대신 부회장 축사라는 안내자의 말을 듣고 일어나 나가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김 사장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의식하지 못한 채 아무튼 무사히 축사를 끝마쳤다. 그 뒤로도 이러저러한 순서들이 진행되고 시상식 차례가 되었다.
그때 갑자기 강당 뒷문, 김 사장이 들어온 문으로 누군가가 들어온다. 학교 여직원 같았다. 그러더니 누군가와 귀엣말을 나누고 나서 허리를 잔뜩 굽힌 채 단상으로 올라온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의자에 앉아 있는 귀빈에게 귀엣말로 무슨 말인가를 하며 종이쪽지를 전달하면서 김 사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김 사장은 멍한 가운데 곁눈으로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 김 사장은 자신에게 전달된 종이를 펼쳐보았다.
회사에 불이 났다는 것이었다. 성진운수 차고에.
김 사장은 의자에서 반쯤 일어난 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학교 여직원에게서 미리 내용을 들은, 김 사장에게 쪽지를 전달한 귀빈이 사태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허리를 숙인 채 김 사장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한 손을 김 사장 팔에 대고 밖으로 나가라고 하는 몸짓을 했다.
김 사장은 연단에서 내려갈 때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하필 자금난으로 쩔쩔매는 그 회사에 불까지 나다니.
[다음 화로 계속]